AI 창작 · 미간행 오리지널
안 아프면 장땡
식탁에서 카드 영수증을 날짜순으로 펴고, 휴대전화에 남은 어제의 위치 기록을 그 옆에 띄웠습니다. 장례식장 다음에는 편의점에서 생수를 샀고, 영수증에는 오후 아홉 시 십칠 분이라고 찍혀 있습니다. 지도에는 장례식장과 우리 아파트만 표시됩니다. 화면 아래 설명에는 위치를 일정한 간격으로 측정한다고 나옵니다. 그사이 이동이 전부 찍히지는 않았어도 결제한 카드와 생수병이 여기 있으니, 다른 곳에 들른 것은 확인됩니다.
수진아, 너는 먼저 옆집 아주머니 문상을 잘 다녀왔느냐고 물었어야 합니다. 서른 해 넘게 연락이 없다가 부고를 보내온 집에도 엄마는 가서 조의금을 냈습니다. 집에 와서는 현관에 소금을 뿌리고 목욕도 했습니다. 욕조에서 나올 때 짚었던 손목에 파스를 붙였는데, 종이를 누를 때마다 모서리가 들립니다. 소금 그릇은 바닥에 놓다가 깨져 식탁 다리 옆에 두었고, 새 소금은 봉지째 세워 두었습니다.
네가 보낸 유품 봉투와 감식 사진 봉투도 식탁에 있습니다. 옛집에서 사람의 유해가 나왔다는 말과 그곳이 할머니 방이라는 말은 전화로 들었습니다. 엄마가 설명할 것은 우리가 이사하기 전에 어머니가 그 집을 떠나셨다는 점입니다. 날짜는 1994년 7월 18일입니다. 방에 일기 낱장이 남았다는 이유로 사람의 출발 날짜까지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일흔넷이었고 너는 여섯 살이었습니다. 지금 예순여덟인 제가 당시에는 집 열쇠와 어머니 통장, 약과 식사를 관리했습니다. 아버지는 지방 공사 현장에서 숙식했고, 대신 맡겠다고 찾아온 사람은 없었습니다. 일기에는 제가 어머니를 돌본 과정이 전부 적혀 있으니 날짜순으로 옮겨 주겠습니다. 날짜가 인쇄되지 않은 가로줄 공책이라 제가 써 둔 쪽수도 붙입니다.
1994년 7월 9일. 1쪽.
작은아버지 문상을 마치고 저녁 여덟 시에 집에 왔다. 버스에서 내려 곧장 대문을 여는데 옆집 여자가 자기 대문 앞에서 말했다. “문상하고는 딴 데 한 군데 들렀다 와야 해.” 가게가 닫혀 있었다고 하니 대답 없이 우리 집 처마를 보았다. 받아 온 수건은 부엌 못에 걸었고, 수진은 안방에서 자고 있었다. 어머니 밥그릇에는 낮에 놓아 둔 밥이 반쯤 남았다.
어머니는 바닥을 짚고 문까지 기어오거나 엉덩이를 옮겨 앉을 수 있다. 부엌에서는 물통 손잡이를 붙들고 몸을 세운 적도 있다. 그러나 부엌 문턱을 넘어 좁은 마당을 지난 뒤 대문 계단 두 개를 혼자 내려가지는 못한다. 식은 밥을 치우러 들어가니 내 치맛단을 잡고 멸치가 딱딱하다고 했다. 손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보이기에 물에 헹궈 드렸다.
공책을 가계부와 묶으려고 송곳을 눌렀는데 아래 구멍을 너무 안쪽에 뚫었다. 세 구멍 사이는 손가락 두 마디와 세 마디만큼 벌어져 있다. 앞표지 안쪽부터 열두 장까지 같은 구멍이 나서 실은 꿰지 않았다. 오른쪽 위에는 1부터 60까지 쪽수를 써 두었다. 약을 몇 번 드렸는지 묻는 사람이 있으면 이 공책을 보여 주면 된다.
7월 10일. 2쪽.
새벽에 이불을 걷다가 팔꿈치와 무릎이 쑤셔 체온을 재니 38도 1분이었다. 부엌에서 물을 마실 때 어머니가 문을 세 번 두드렸다. 죽은 일곱 시에 드린다고 말씀드리고 다시 누웠다. 눈은 떠졌는데 팔이 이불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수진의 발이 내 종아리에 닿아 있었다. 부엌 쪽에서 나무 긁는 소리가 나는 동안에도 팔을 들지 못했다. 발가락이 움직인 뒤 팔을 들어 시계를 보니 네 시 사십 분이었다. 공책에는 가위라고 적는다.
아침에 방문 아래에서 나무 가시가 떨어졌고 어머니 손톱 밑에도 갈색 가루가 끼어 있었다. 펴 보인 손의 손톱을 깎아 드리고 죽을 데웠다. 방에는 내 키보다 높은 고정창과 부엌으로 나오는 문 하나가 있다. 유리는 열리지 않고, 방문을 열면 부엌 다음에 있는 안방까지 소리가 들어온다. 어머니는 낮잠을 주무실 수 있지만 나는 낮에도 물을 긷고 밥을 해야 한다.
7월 11일. 5쪽.
장례식 수건을 삶고 대문 밖에서 신발 밑창을 털었다. 문상 뒤 다른 곳에 들르지 않아 생긴 일로 적어 둔다. 굵은소금은 대문에서 마당으로 조금씩 놓고 부엌 문턱에도 한 줄 놓았다. 어머니 방문 앞의 소금을 손가락으로 고르는데 안에서 문을 밀어 문짝 밑에 끼었다. 문 아래 틈으로 종이나 얇은 천은 지나가지만 손가락은 나오지 못한다.
낮에 물을 달라고 해서 밥상에 보리차를 올려 드렸다. 어머니는 사발을 두 손으로 들고 남은 물을 흔들어 보였다. 빈 사발을 받아 나온 뒤 밤에는 다시 문을 세 번 두드렸다. 새벽 체온은 37도 8분이었고 잠에서는 두 번 깼다. 마당으로 옮기다 깨뜨린 빈 간장병도 문상 뒤에 생긴 파손으로 넣는다.
7월 12일. 6쪽.
아침 소금 위에 젖은 종이가 문 아래에서 부엌 쪽으로 반 뼘 나와 있었다. 문을 열자 어머니가 바닥을 짚고 앉아 종이 쪽으로 손가락을 뻗었다. “그거 내 거야.” 종이에는 연필로 그은 선이 있었으나 젖어서 글자는 읽히지 않았다. 집 밖에서 들어온 것이 소금을 지나며 남긴 흔적으로 적는다.
큰 고무대야에 뜨거운 물을 섞어 목욕하고 문상 때 입었던 속옷까지 빨았다. 어머니 방은 걸레로 닦고 이불을 털어 드렸다. 틀니를 낀 어머니가 “밤에 문 좀 열어 놔”라고 했다. 부엌의 찬 기운이 들어간다고 말씀드렸는데 문을 닫은 뒤에도 같은 말을 했다. 수진이 받아 말하기에 안방으로 보냈다. 아이에게도 몸살이 생기면 약을 먹일 사람이 둘이 된다.
7월 13일. 9쪽.
동사무소 게시판의 보상 공고에서 날짜와 도장을 옮겨 적었다. 건너편 세 집 담벼락에는 문패를 그대로 둔 채 빨간 글씨를 썼다. 점심에 인부 둘이 트럭으로 장롱 한 개를 옮겼는데, 계단에서는 앞사람이 먼저 내려갔다. 우리 집 대문에서도 어머니를 모시려면 두 사람은 와야 한다. 친척들에게 전화할 때 이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밤에 부엌까지 나온 어머니가 문설주에서 손이 미끄러져 빈 사발을 건드렸다. 사발 가장자리가 깨졌고 왼쪽 무릎에는 붉은 자국이 생겼다. 겨드랑이 밑을 받쳐 방에 앉힌 뒤 안방 앞의 수진에게 말했다. 어머니가 넘어지시면 누가 일으켜 드리겠느냐고 했다. 방문 바깥 걸쇠는 못이 솟아 끝이 걸리지 않으므로 짧은 못 두 개를 찾아 선반에 놓았다.
7월 14일. 10쪽.
방문은 부엌 쪽으로 당겨 여는 문이라 바깥 쇠막대를 문설주의 고리에 내려놓으면 안에서 밀어도 열리지 않는다. 솟은 못을 뽑고 다른 자리에 두 개를 박았다. 어머니가 다치지 않게 밤에만 걸어 두기로 했다. 낮에 상을 넣을 때도 내가 쇠막대를 들어야 하지만 열쇠가 필요한 장치는 아니다.
보상 서류를 가져온 옆집 여자가 내가 상을 들고 걸쇠를 올리는 것을 보았다. “그건 안에서 못 열잖아.” 서류를 부엌에 놓으라고 하니 어머니 방에는 들어가지 않고 갔다. 남의 문에 달린 쇠붙이는 보면서 싱크대의 설거지는 그대로 두었다. 오후에 어머니가 문설주를 두 번 가리켜 밤에 넘어지시면 안 된다고 다시 말씀드렸다.
7월 16일. 13쪽.
소금과 목욕을 해도 열이 내렸다가 오르므로 오늘부터 표로 적는다. 날짜, 한 일, 체온, 잠에서 깬 횟수, 부서진 물건 순서다. 밥을 드린 일은 아래에 따로 써야 어느 절차 뒤에 몸살이 멎었는지 구분할 수 있다.
7월 14일 / 소금, 목욕 / 37.9 / 세 번 / 방문 아래 나무 가시. 7월 15일 / 소금, 목욕 / 37.7 / 두 번 / 사발 가장자리. 7월 16일 / 소금, 목욕, 문상 옷 버림 / 38.0 / 네 번 / 방문 안쪽 긁힌 부분.
검은 치마와 흰 블라우스를 신문지에 쌀 때 수진이 소매를 잡아 손을 떼었다. 빨아 입을 수 있는 옷이지만 몸살약 값도 계속 나간다. 옷을 버리고 돌아와 방문 안쪽을 보니 바닥에서 한 뼘 높이에 손톱 자국이 모여 있었다. 문설주 가까이에는 세로로 긴 자국도 생겼다. 가시가 박히지 않도록 튀어나온 부분만 사포로 밀고 문밖에 새 소금을 놓았다.
7월 18일. 14쪽.
아침 약과 죽을 드린 뒤 빨래를 걷었다. 남편에게 전화했으나 현장 사무실에서 저녁에 다시 하라고 했다. 쌀가게에서 반 말을 받아 와 약을 세면서 공책을 어머니 밥상 옆에 내려놓았다. 어머니가 표지 모서리를 문질렀고, 상을 치울 때 공책도 가지고 나왔다. 연필이 방바닥에 남아 다시 문을 여니 어머니는 문 쪽으로 돌아앉아 있었다. 밤의 체온은 37도 6분이었다.
7월 20일. 17쪽.
오전 아홉 시부터 물이 나오지 않아 지난주 받은 단수 통지를 이 면에 붙인다. 시행일은 1994년 7월 20일이다. 통지서를 보여 줬는데도 쌀가게에서는 자기네 물이 나온다고 했다. 같은 동네라고 같은 관을 쓰지는 않으므로 빈집 표시가 없는 쪽까지 걸어가 물을 받아 왔다. 양동이 두 개를 들면 대문에서 하나씩 내려놓아야 한다.
목욕물 세 양동이. 설거지 반 양동이. 수진 세수와 발 씻기 반 양동이. 어머니 물 드림. 남은 물 한 양동이.
양동이마다 손잡이 아래까지 채웠으며 목욕물은 먼저 빼놓았다. 목욕을 거른 뒤 열이 오르면 다시 물을 길어야 한다. 어머니 약은 물에 풀어 드리고 입술 옆으로 흐른 것은 수건으로 닦았다. 어머니가 사발을 문 쪽으로 밀어서 문을 여는 데 걸리지 않게 안으로 도로 밀었다. 닫힌 문 안에서 “물”이라고 했다.
콩나물 200원과 두부 300원 영수증을 단수 통지 아래 붙였다. 날짜 도장이 번져 다시 찍어 달라고 해서 7월 20일이 두 번 찍혔다. 체온은 37도 5분, 잠에서는 두 번 깼다. 파손 칸에는 방문 안쪽 아래라고 쓴다. 사포질한 자리 옆에 가시가 일어 손톱을 더 짧게 깎아 드렸다. 이불 밑에 넣은 오른손은 손목을 잡으니 꺼냈다.
여기까지 옮기고 네가 보낸 메모를 다시 폈습니다. ‘할머니는 어느 집으로 갔어? 누가 뭘 타고 모셔 갔어?’ 그 아래에는 엄마가 답하지 않은 항목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네가 기록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올해지만 저는 그때 이미 기록했습니다. 큰아버지는 그해 봄에 한 번 왔고 고모는 설에 떡을 놓고 갔습니다. 작은고모가 전화한 것은 보상 공고 뒤 두 차례였으며, 그중 어머니 물그릇을 씻은 사람은 없습니다.
옆집 아주머니도 같은 기준으로 적어 주기 바랍니다. 우리 집 문을 본 날짜는 있어도 어머니를 씻겨 드린 날짜는 없습니다. 어머니가 밤에 부엌으로 나오면 다칠 수 있었고, 제가 매번 먼저 일어나 문턱에 서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네 메모에는 걸쇠라는 명사만 있고 깨진 사발이나 어머니 무릎 이야기는 빠졌으니 일기를 더 옮깁니다.
7월 21일. 18쪽.
어머니 틀니를 위아래 따로 솔질해 부엌 찬장 둘째 칸의 흰 대접에 넣었다. 찬장 문을 닫으면 수진 손이 닿지 않는다. 틀니를 끼고 주무시면 잇몸에 자국이 남으며 죽은 틀니 없이도 드실 수 있다. 아침상을 들고 나오는데 찬장 쪽을 가리키며 “그거 주고 가”라고 했다. 저녁에 씻은 뒤 드린다고 말씀드렸고, 다시 한 말은 끝소리가 뭉개져 적지 않는다.
공책이 처음보다 얇아져 앞쪽을 넘겨 보니 뜯긴 종이 끝이 제본 실에 붙어 있다. 처음에 써 둔 쪽수는 고치지 않았고 빠진 장수도 세지 않았다. 상을 넣을 때 공책을 방바닥에 놓은 날이 여러 번 있었다. 종이가 없어질 때마다 부엌에 있던 사람에게 물을 일은 아니다. 표지 안쪽 구멍은 그대로이며 공책도 잘 펼쳐진다.
낮에는 문 앞에 앉아 젖은 발을 닦는 동안 소금 위로 종이가 나왔다. 끝이 문 밑에서 나오더니 멈췄다가 부엌 쪽으로 더 밀려왔다. 안에서 어머니가 “문”이라고 했고, 조각 한쪽에는 둥근 구멍이 반쯤 남아 있었다. 소금은 종이 밑에 깔렸으므로 바깥에 떨어졌던 것이 안으로 간 것은 아니다. 문상 뒤의 흔적이 집 안까지 들어온 것으로 적는다.
목욕물 세 양동이를 데울 때까지 어머니가 문을 두드렸다. 손바닥과 손톱 소리가 번갈아 나서 물을 나르는 중이라고 말씀드렸다. 대답하는 동안에도 걸쇠 고리가 문설주에 부딪혔다. 양동이를 부엌 가운데 내려놓고 고리의 못을 망치로 두 번 쳤다. 어머니가 말을 했으나 물 끓는 소리에 가렸다. 틀니가 없으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줄어든다.
7월 22일. 23쪽.
어젯밤 열한 시에 누워 아침 여섯 시 십 분까지 한 번도 깨지 않았다. 표의 깬 횟수 칸에 처음으로 0을 쓴다. 가위도 없었고 팔을 머리 위로 올려도 어깨가 쑤시지 않았다. 체온은 36도 7분이며 소금, 목욕, 옷 버림은 유지한다. 새로 부서진 물건도 없었다. 전날들에는 문 두드리는 소리 다음에 목소리가 왔는데 어젯밤에는 누운 뒤 어느 쪽도 듣지 않았다.
문 앞의 소금은 전과 달리 문짝 가까운 곳까지 한 줄로 남아 있었다. 어제 저녁에 밀려 나온 종이도 더 나오지 않아 그대로 두었다. 밥은 묽게 끓였고, 어머니 물 드림, 약 드림을 아래에 쓴다. 수진이 문턱에 앉아 할머니를 부르다가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아이를 안방으로 보내고 숟가락은 주워 씻었다. 식사 기록 아래에는 칸이 모자라 오늘부터 표를 먼저 그린다.
7월 23일. 24쪽.
체온 36도 6분, 깬 횟수 0, 파손 없음으로 이틀 연속이다. 목욕물은 두 양동이로 줄였고 소금은 그대로 썼다. 문상 옷을 버린 날짜 옆에도 줄을 그었다. 절차를 시작한 날 바로 낫지는 않았으니 며칠을 함께 해야 표시가 난다. 대문에 남은 소금을 쓸어 방문 앞에 보탰다. 비가 오지 않았고 단수 뒤에는 마당에 물도 뿌리지 않아 마른 상태였다.
찬장에서 흰 대접을 꺼내 틀니 사이에 남은 물기를 닦고 도로 넣었다. 수진이 할머니 것은 왜 안 싸느냐고 해서 아직 꺼낼 것이 있다고 했다. 공책 앞부분은 뜯긴 가장자리가 서로 걸려 잘 넘어가지 않는다. 손바닥으로 눌러 펴니 연필 가루가 묻었으나 뒤쪽 빈 종이는 깨끗했다. 이삿짐 목록은 뒤에서부터 쓰기로 했다.
7월 24일. 25쪽.
대문에 붙인 통지에는 오전 중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전기는 열두 시가 넘어서 끊겼다. 냉장고 밑의 물을 닦고 남은 두부를 끓였으며 우유는 수진에게 먹였다. 해가 지기 전에 안방 짐을 묶었다. 어머니 방은 높은 고정창으로 벽 위쪽에만 빛이 들고 방문을 닫으면 부엌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촛불은 아이 손이 닿지 않는 부엌 선반에 세웠다.
연료가 모자라 저녁 목욕은 하지 않았지만 체온은 36도 8분이었다. 깬 횟수와 파손도 0으로 표에 변화가 없다. 방문 앞의 사발을 발끝으로 건드려 쏟은 물은 걸레를 문 아래에 대고 닦았다. 안으로 들어간 걸레 끝을 두 손으로 잡아당긴 뒤 젖은 소금을 바꾸었다. 수진 발바닥에 붙은 소금도 털어 주었다.
7월 25일. 26쪽.
남편이 보낸 돈을 찾아 새집 잔금을 주고 어머니 통장은 작은 가방 안쪽에 넣었다. 도장과 약봉지도 고무줄로 묶어 다른 집에서 달라고 할 때 찾기 쉽게 했다. 동사무소에서는 우리 집 쪽 사업이 멈췄으며 이미 나간 집은 담으로 막는다고 했다. 다시 시작할 날짜는 말하지 않았고 이삿짐차 예약은 취소하지 않았다.
수진이 대문에서 옆집을 불렀으나 창문에는 안쪽으로 신문지가 붙어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부엌에 들어와 걸쇠 고리 밑으로 나온 못 머리를 망치로 눌렀다. 쇠막대는 위로 들면 잘 풀렸고 문 안쪽은 사포로 민 자리가 거칠었다. 나무 가시를 쓸어 담은 뒤 파손 칸에는 어제와 같음이라고 썼다. 체온은 36도 5분이며 잠에서 깬 횟수는 0이다.
7월 26일. 27쪽.
그릇은 신문지에 싸고 이불은 보자기에 묶었지만 찬장의 흰 대접은 두었다. 틀니를 종이에 싸면 짐 푸는 사람이 버릴 수 있다. 수진 옷은 보따리 하나에 들어갔고 내 검은 치마 자리는 비었다. 버린 옷값까지 쓰면 생활비를 많이 쓴 사람이 되므로 장부에는 새로 산 것만 적는다. 아침 체온 36도 6분과 깬 횟수 0을 쓰고 공책을 덮었다.
어머니 방문 아래로 반쯤 들어간 수진 신발을 꺼내 대문 쪽에 놓으라고 했다. 문턱의 소금은 종이에 받아 쓰레기와 내놓았다. 문 밑에서 나온 조각은 먼지와 섞여 집게로 집히지 않아 빗자루로 방 쪽에 밀었다. 마당에서 돌아보니 부엌 바닥은 깨끗했다. 짐은 대문 계단에 부딪히지 않도록 안방부터 차례로 옮겨 놓았다.
7월 27일. 28쪽.
이삿짐차는 열 시에 오며 아침 체온은 36도 5분이다. 여섯 밤 연속으로 깨지 않았으니 몸살약은 더 사지 않는다. 양동이 하나는 가져가고 손잡이가 녹슨 것은 둔다. 어머니 방문 걸쇠를 내려놓고 부엌 찬장의 흰 대접도 확인했다. 공책은 달력 종이로 싸서 빈 약봉지, 보상 서류와 함께 찬장 맨 아래에 넣는다. 남편에게 새집 전화가 놓이면 번호를 알려 주기로 하고 수진에게 신발을 신겼다. 안 아프면 장땡.
옮길 일기는 여기까지이며 네가 유품 목록에 그은 밑줄도 읽었습니다. 남은 쪽수는 1, 2, 5, 6, 9, 10, 13, 14, 17, 18과 23부터 60까지입니다. 제본부에 뜯긴 자리가 여섯 곳이라고 적혀 있지만 저는 그 숫자를 센 적이 없습니다. 일기를 쓰는 사람과 훗날 종이를 세는 사람은 하는 일이 다릅니다. 18쪽 뒤에서 두 장이 연달아 빠졌다는 것도 이번 목록에서 확인했습니다.
너는 7월 18일에 떠난 할머니가 왜 20일과 21일 기록에 나오느냐고 적었습니다. 그보다 네가 여섯 살 때 했다는 말부터 정확히 해 주기 바랍니다. ‘이삿짐 아저씨가 왔을 때도 할머니는 방에 있었어.’ 너는 그날 부엌에 몇 분이나 있었습니까. 방 안을 본 것인지 닫힌 문을 본 것인지도 메모에는 없습니다. 날짜는 제가 잘못 적을 수 있습니다. 수도도 전기도 끊기는 집에서 쓴 일기에 지금 달력을 대는 일은 간단합니다.
17쪽에 붙은 단수 통지와 식품점 영수증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네가 확대해 보낸 두 번의 날짜가 원본에도 보이고 둘 다 1994년 7월 20일입니다. 그 옆에 제가 적은 어머니의 말은 ‘물’입니다. 다음 쪽에는 틀니를 넣은 찬장 칸과 ‘그거 주고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날짜를 고쳐 옮기지는 않았으니 네가 받은 사진과 대조할 수 있을 겁니다.
카드 영수증을 누르고 있던 손을 떼어 들뜬 파스를 다시 붙였습니다. 목욕을 하고 나와 붙인 것인데 가장자리가 벌써 말렸습니다. 팔꿈치로 소금 봉지를 건드려 깨진 그릇 옆에 흰 알갱이가 떨어졌습니다. 공책에 들어가지 않도록 손바닥으로 쓸어 식탁 끝에 모았습니다. 어제도 다른 곳에 들렀다는 증빙은 따로 두겠습니다.
현장 통지에는 사업 중단 뒤 해당 필지를 담장으로 막았다고 적혀 있습니다. 재추진 철거 때까지 지붕이 유지되었고 어머니 방에 빗물이 든 흔적은 없다고 합니다. 종이가 남은 조건은 그 문서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방에 남은 낱장은 어머니가 찢은 것으로 적어 주십시오. 손가락을 쓰셨다는 기록과 공책을 방에 놓은 기록은 제가 먼저 보여 드렸습니다. 바닥의 종이로 제가 드린 식사 내용을 정할 수는 없습니다.
감식 사진 봉투의 접착면을 떼고 확인서를 폈습니다. 경찰이 가족에게 필적과 물품 출처의 확인을 요청한 문서입니다. 제출할 제 답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 방에서 나온 제 일기 낱장은 모두 바닥에 남아 있던 종이입니다.
사진 4번과 5번은 방바닥에서 수거한 낱장이고 8번은 별도 수거품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펼쳐 촬영한 종이 옆의 자를 보고 앞표지 안쪽을 재니 세 구멍의 간격이 같습니다. 18쪽 다음에 남은 종이 끝은 가운데가 뾰족하게 솟았고 사진 속 가장자리에는 그만큼 들어간 자리가 있습니다. 오른쪽 위의 19와 날짜의 21, 체온 칸의 연필 숫자도 제 글씨입니다. 확인서에서 8번의 수거 위치를 읽었습니다. 제가 어머니가 떠났다고 적은 날보다 사흘 뒤의 증상표가, 세 개의 구멍을 그대로 남긴 채 어머니의 위턱과 아래턱 사이에 뭉쳐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