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에 둔 것

수연은 이삿짐 상자에서 꺼낸 컵 두 개를 싱크대에 씻어 엎었다. 현관에서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자 옆집 여자가 운반 상자의 한쪽 손잡이를 내밀었다. 수연이 받아 들자 상자 밑에 붙은 작은 바퀴가 문턱을 넘었다.

“빈집 청소할 때 우리 집에 뒀어요. 창가로 가져가면 돼요.”

상자에는 화분 세 개가 들어 있었다. 하나는 잎이 넓었고 하나는 잎 가장자리가 깊이 갈라져 있었다. 나머지 하나에는 가늘고 긴 잎이 모여 났다. 여자는 화분을 하나씩 들어 바닥에 놓았다. 지름이 한 뼘쯤 되는 회색 화분 아래로 투명한 덮개가 조금씩 돌출되어 있었다.

수연은 창턱에 붙은 포장 테이프를 떼었다. 젖은 행주로 먼지를 닦자 둥근 받침 세 개와 색이 다른 연결구가 나왔다. 여자가 받침을 짚었다. 수연은 넓은 잎부터 차례로 옮겨 놓았다. 세 화분에 똑같은 표찰이 꽂혀 있었다. 수액 접촉 금지·섭취 금지. 수연은 마지막 화분에서 손을 떼고 싱크대로 가 비누로 손가락 사이를 문질렀다.

창에는 손잡이가 없었다. 통유리 아래의 벤치는 길이가 약 이 미터였고, 앉는 면의 깊이는 육십오 센티미터라고 보호 필름에 적혀 있었다. 수연은 필름을 벗기고 그 위에 이삿짐 가방을 올렸다. 벤치 안에서 냉장고가 돌아갈 때와 비슷한 소리가 났다. 싱크대 옆 냉장고의 전선은 아직 바닥에 놓여 있었다.

좁은 중정 건너편에도 같은 높이의 창이 줄지어 있었다. 커튼이 열린 세 집의 창턱마다 넓은 잎과 갈라진 잎, 가는 잎이 놓여 있었다. 수연의 창에 가까운 잎 하나에는 운반 상자에서 떨어진 종이 조각이 붙어 있었다. 여자가 장갑을 꺼내 그것을 집었다.

장갑의 검지와 엄지 사이에 갈색으로 굳은 자국이 있었다. 손가락을 굽힐 때 자국의 가장자리가 희게 갈라졌다. 여자는 긴 소매 끝을 장갑 안으로 밀어 넣고 수연에게 새 장갑 한 켤레를 건넸다.

“잎은 맨손으로 꺾지 마세요. 수액이 피부에 닿으면 씻어야 해요.”

넓은 잎 화분을 들어 올리자 바닥의 투명한 덮개가 아래로 늘어났다. 젖은 뿌리를 감싼 슬리브였다. 끝에는 파란색 밀폐 커넥터가 달려 있었다. 여자는 같은 색 연결구에 끝을 넣고 화분 밑의 고리를 돌렸다. 고리의 짧은 선과 받침의 선이 맞닿았다.

“이건 끝까지 돌려야 해요.”

창턱 표시창의 회색 칸 하나가 녹색으로 바뀌었다. 수연은 갈라진 잎 화분을 들었다. 노란 커넥터를 꽂고 고리를 돌렸다. 중간에서 손을 놓자 여자가 고리의 선을 손톱으로 짚었다. 수연이 조금 더 돌렸다. 두 번째 칸이 녹색이 되었다. 가는 잎의 흰색 커넥터까지 연결하자 표시창 아래의 ‘임시 카트리지 교체 예정’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 ‘식물 회로 운전’이 떴다.

벤치 옆에 붙어 있던 청소 완료표에는 임시 카트리지 설치 시각과 유지 기한이 적혀 있었다. 여자는 표를 떼어 접었다. 펌프 소리가 잠시 높아졌다가 일정해졌다. 표시창의 실내 공기 항목에도 녹색 선이 생겼다.

“다시 뺄 때는 먼저 카트리지를 넣어요. 복도 안내에도 있어요.”

둘은 현관을 나와 계단참으로 갔다. 벽의 입주자 안내판에는 파랑, 노랑, 흰색 순서의 연결 그림이 있었다. 여자는 연결 그림과 그 위에 따로 그려진 카트리지 그림을 차례로 짚었다. 수연이 몸을 돌리자 중정을 향한 계단참 창으로 위층 창가가 보였다. 유리 안쪽에 놓인 세 화분의 색과 잎 모양이 같았다. 위층의 넓은 잎 끝은 유리에 닿아 납작해져 있었다.

집에 돌아온 여자는 빈 운반 상자를 접었다. 수연에게 현관 옆 이웃 호출 버튼을 가리킨 뒤 자기 집으로 갔다. 수연은 장갑을 벗어 싱크대 모서리에 나란히 놓았다.

전기 주전자는 컵을 꺼낸 상자 아래쪽에 있었다. 수연은 전선을 풀어 콘센트에 꽂았다. 주전자 안쪽의 종이를 빼고 물을 받아 한 차례 헹궜다. 다시 받은 물이 끓는 동안 상자에서 수저통과 접시 두 장을 꺼냈다. 접시는 아직 종이에 싸인 채였다. 벤치에서는 일정한 간격으로 작게 물 흐르는 소리가 났다.

주전자의 스위치가 올라갔다. 수연이 컵에 물을 따를 때 벤치 안에서 세 번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첫 소리와 두 번째 소리 사이보다 마지막 소리까지의 간격이 길었다. 수연은 주전자를 받침에 놓았다. 컵을 싱크대 안쪽으로 밀고 창가로 갔다.

벤치 오른쪽에 올려 둔 가방을 왼쪽 끝으로 옮겼다. 가방 아래에서 사각형 이음매가 드러났다. 다른 부분에는 이음매가 없었다. 표시창에 ‘구강 관리’라는 글자가 떠 있었다. 수연은 화면을 한 번 닦고 그 항목을 눌렀다. 오른쪽 이음매 안에서 걸쇠가 빠지는 소리가 났다. 덮개 가장자리가 손톱 두께만큼 올라왔다.

화면에는 서랍 그림과 병 그림이 나왔다. 소모품 서랍의 두 번째 칸, 일 회 십 밀리리터. 수연이 화면 아래의 화살표를 눌러도 같은 그림이 확대되어 나왔다. 병 옆의 굵은 눈금에 짧은 가로선이 겹쳤다. 다른 문장은 없었다.

수연은 벤치 오른쪽 측면의 서랍을 당겼다. 첫 칸에는 접힌 거즈가 있었고 두 번째 칸에는 가느다란 주둥이가 달린 세척병이 꽂혀 있었다. 병의 눈금은 오 밀리리터씩 나뉘어 있었다. 그 옆에는 개별 포장된 턱받이와 회색 천이 들어 있었다. 수연은 세척병의 봉인을 뜯었다. 작은 비닐 조각을 빈 포장 상자에 넣고 병을 서랍 위에 세웠다. 벤치의 사각 덮개를 들어 올렸다.

안쪽은 어두웠다. 덮개 뒷면에 붙은 작업등 스위치를 누르자 누운 남자의 얼굴이 나왔다. 머리는 오목한 받침에 들어 있었고 귀 옆에는 고정띠가 지나갔다. 몸통 쪽은 별도의 관리용 덮개에 가려져 있었다. 수연이 열어 놓은 점검구에서는 턱 아래까지만 손을 넣을 수 있었다.

목 앞쪽에 연결된 관이 오른쪽 벽으로 이어졌다. 관을 잡아 주는 테두리에 눌린 피부가 둥글게 솟아 있었다. 투명한 관 안의 얇은 막이 일정하게 움직였다. 턱 아래에는 천으로 된 턱받이가 펼쳐져 있었다. 천의 가운데에 물이 말라 생긴 선이 여러 겹 남아 있었다. 가장 오래된 선을 따라 누런 테두리가 생겼다.

남자의 눈이 움직였다. 수연이 서랍 쪽으로 손을 옮기자 눈동자도 그쪽으로 갔다. 입술에는 얇은 껍질이 붙어 있었다. 아래 입술 한가운데가 벌어졌고 그 틈에서 혀끝이 나왔다가 들어갔다.

서랍 안쪽에는 점검구를 위에서 본 그림이 붙어 있었다. 수연은 그림의 목 관과 눈앞의 관을 번갈아 보았다. 세척병 주둥이가 들어갈 곳은 입 한쪽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림 아래의 작은 회로도에는 파랑은 혈액 순환, 노랑은 영양 공급, 흰색은 배설 처리라고 적혀 있었다. 각 뿌리 슬리브의 선은 펌프와 교환막을 거쳐 관리용 덮개 아래로 이어졌다. 뿌리 쪽과 혈액 쪽은 막의 양쪽에 따로 그려져 있었다. 목의 호흡관은 그 선들과 떨어져 점검구 오른쪽으로 나갔다.

“물 좀 주세요.”

남자의 목소리는 낮았다. 말이 끝난 뒤에도 벌어진 입술 사이로 앞니 두 개가 보였다. 수연은 병을 들어 눈금을 확인했다. 주둥이를 입 한쪽에 대고 눌렀다. 물이 볼 안쪽으로 흘렀다. 남자가 혀를 움직였고 턱받이에 물이 떨어졌다. 수연은 병 속 수면이 두 칸 내려간 곳에서 손을 풀었다.

거즈로 턱과 턱받이 위의 물을 닦았다. 젖은 천 위로 새 물자국이 번졌다. 남자의 아래턱이 한 번 올라갔다 내려왔다. 수연은 세척병 뚜껑을 닫았다. 사용한 거즈를 서랍 옆 폐기 주머니에 넣고 손잡이를 눌러 입구를 붙였다.

수연은 현관 옆 호출 버튼을 눌렀다. 작은 화면에 옆집 여자의 얼굴이 나왔다. 수연이 창가를 가리켰다. 화면 아래의 카메라 전환을 누르자 열린 점검구가 화면에 잡혔다. 여자는 가까이 몸을 기울였다.

“턱받이 젖었네요. 갈아야 해요.”

수연이 현관문을 열어 두었다. 여자는 장갑을 끼고 들어와 벤치 오른쪽에 섰다. 손가락 두 개로 남자의 턱을 조금 들었다. 젖은 턱받이 양옆의 누름단추를 풀고 천을 안쪽으로 접어 뺐다. 새 턱받이는 목의 관을 건드리지 않게 아래에서 밀어 넣었다. 여자가 단추를 잠그는 동안 남자의 입이 두 번 열렸다. 턱 아래에서 단추가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여자는 서랍에서 회색 천을 꺼냈다. 펴 놓으니 가운데가 도톰하고 양쪽에 납작한 끈이 달려 있었다. 포장에는 통기성 입마개라고 적혀 있었다. 수연이 천을 손가락 사이에 끼우자 천 너머 작업등 빛이 작은 점들로 비쳤다.

“처음엔 말을 많이 해요.”

여자는 머리 받침 양옆의 고정 홈을 가리켰다. 오른쪽 홈에는 이미 짧은 끈 끝이 끼워져 있었다. 그것을 빼내 입마개에 달린 끈과 나란히 놓았다. 여자가 손을 치우자 남자의 눈이 수연 쪽으로 돌아왔다. 입마개는 서랍 위에 펼쳐진 채 남았다. 여자는 젖은 턱받이를 폐기 주머니에 넣고 집을 나갔다. 현관문이 닫혔다.

남자의 입술 끝에 물방울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수연은 새 거즈를 뽑아 물방울을 찍었다. 입술을 따라 움직인 거즈 끝에 누런 껍질이 붙었다.

“닫지 말아 주세요.”

수연은 거즈를 접어 서랍 위에 놓았다. 열린 점검구 가장자리에는 검은 패킹이 둘러져 있었다. 손가락으로 누른 부분이 납작해졌다가 올라왔다. 모서리에는 턱받이에서 떨어진 짧은 실밥이 끼어 있었다. 수연은 실밥을 집어 거즈 위에 놓았다. 남자의 입술이 다시 벌어졌다.

벤치 왼쪽 끝의 가방 끈이 바닥까지 내려와 있었다. 수연은 가방을 들어 창가에서 한 걸음 떨어진 바닥에 놓았다. 가방 옆에 주름진 보호 필름을 말아 세웠다. 창턱에는 화분 밑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세 개 남아 있었다. 수연은 행주의 마른 면을 접어 받침 둘레를 닦았다. 화분의 연결 고리는 세 개 모두 선이 맞아 있었다.

맞은편 창가에 사람이 섰다. 흰 천으로 넓은 잎의 앞뒤를 닦았다. 잎 하나를 끝까지 닦은 뒤 그 사람은 창 아래로 몸을 숙였다. 통유리에는 정수리와 한쪽 어깨가 남았다. 수연은 행주를 창턱 끝에 놓았다.

점검구 안에서 남자가 말을 이었다. 물을 달라는 말과 닫지 말라는 말 사이에 입술이 마주 붙는 소리가 났다. 수연은 서랍 위의 거즈를 폐기 주머니에 넣었다. 세척병을 두 번째 칸에 꽂고 회색 입마개를 집었다. 끈이 서랍 모서리에 걸렸다. 한쪽씩 풀어 길이를 맞췄다.

수연은 도톰한 천을 남자의 입에 댔다. 코 아래에 천의 윗단을 맞추고 왼쪽 끈을 머리 받침의 홈에 끼웠다. 오른쪽도 같은 위치에 고정했다. 목의 관은 입마개 아래로 떨어져 있었다. 관 안의 막이 움직일 때마다 작은 바람 소리가 났다. 표시창의 식물 회로와 실내 공기 항목은 녹색을 유지했다.

남자의 입이 움직이며 천 가운데가 올라왔다. 왼쪽 가장자리는 뺨에 붙어 있었다. 오른쪽에는 손가락 끝이 들어갈 만큼 틈이 남았다. 그 틈으로 닫지 말라는 말이 나왔다. 수연은 남자의 말소리가 멎을 때까지 입마개의 오른쪽 끈을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