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퍼

포항으로 내려가는 밤이었고, 라디오 일기예보는 주말 내내 맑다고 했다.

터널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하늘엔 별이 있었다. 그런데 출구를 빠져나오는 순간, 세상이 무너지듯 비가 쏟아졌다. 소나기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거대한 물탱크의 바닥이 한꺼번에 터진 것 같았다. 와이퍼를 최고 속도로 올렸지만 앞유리는 단 한 번도 닦이지 않았다. 물이 닦이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물속에 잠겨 있는 것처럼.

속도를 줄였다. 상향등을 켰다. 불빛은 빗속으로 뻗지 못하고 뿌옇게 흩어졌다. 꼭 흙탕물 속에 손전등을 담근 것처럼.

이상한 건 그뿐이 아니었다.

토요일 밤 아홉 시인데도 고속도로에 차가 한 대도 없었다. 빗소리도 이상했다. 비는 원래 차 지붕을 타닥, 타닥, 점으로 두드린다. 그런데 이 비는 두드리지 않고 무겁게, 끊김 없이 짓눌렀다. 소리라기보다 압력이어서 귀가 먹먹했고, 침을 삼켜도 뚫리지 않았다.

라디오를 켰다. 음악이 나오다가 뚝 끊기더니, 지지직거리는 소음 사이로 여자 목소리가 반복됐다.

"…호 터널… 전면 통제… 진입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직 한 대가…"

잡음 사이로 들린 건 방금 지나온 터널의 이름 같았다. 통제라니. 나는 방금 멀쩡히 지나왔는데.

내비게이션을 봤지만 화면 속 내 차는 아직 터널 안에 있었고, 파란 화살표는 터널 한가운데에 박힌 채 움직이지 않았다. GPS 오류겠지. 터널을 갓 나오면 원래 저러니,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때 전화가 왔다. 아내였다.

"여보, 지금 어디야?"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뉴스에서… 여보, 제발 아니라고 해줘. 그 터널… 무너졌대. 아홉 시에… 물이…"

"무슨 소리야, 나 방금 지나왔어. 지금 터널 밖이야. 비가 좀 심하게 와서 그렇지—"

"여보." 아내가 이상할 만큼 천천히 말했다. "밖에 비 안 와."

전화가 끊겼다.

와이퍼는 여전히 미친 듯이 좌우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앞유리의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 않았다. 아래에서 위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빗소리가 변했다. 무겁게 짓누르던 소음 사이로, 같은 간격의 소리가 섞여 들었다.

쿵, 쿵, 쿵—잠깐 멈춤—쿵, 쿵, 쿵.

비는 세 번씩 끊어서 내리지 않는다.

뭉개진 목소리가 지붕 위쪽에서 새어 들어왔다.

"…들리세요? …들리시면… 아무거나 두드리세요…!"

나는 핸들을 더 세게 쥐었지만 두드리지 않았다. 두드리면 인정하는 것 같아서였다. 여기가 고속도로가 아니고, 이 비가 비가 아니며, 내가 아직도—아니, 영영—저 터널 안이라는 걸.

앞쪽 저 멀리, 빗줄기 너머로 하얀 빛이 보였다. 둥글고, 환하고, 점점 커지는 빛.

출구다.

나는 액셀을 끝까지 밟았다.

[속보] ○○터널 붕괴 사고 마지막 실종자 발견… "물속에서 와이퍼가 움직이고 있었다"

27일 새벽, 지하수 유입으로 붕괴된 ○○터널에서 마지막 실종자 김 모(42) 씨가 매몰 11시간 만에 발견됐다. 구조에 참여한 잠수 대원 박 모 씨는 차량 접근 당시 상황에 대해 말을 아끼다가 다음과 같이 전했다.

"수심 9미터였습니다. 그런데 차량의 와이퍼가 최고 속도로 작동하고 있었어요. 전조등도 상향으로 켜져 있었고요. 저희가 지붕을 세 번씩 두드리며 구조 신호를 보냈지만 응답이 없었습니다."

발견 당시 차량의 기어는 주행(D)에 놓여 있었고, 김 씨의 오른발은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은 상태로 굳어 있었다. 계기판의 속도계는 시속 130킬로미터를 가리키고 있었다.

대원 박 씨는 인터뷰 말미에 덧붙였다.

"이상한 건… 저희가 차를 인양하려고 견인줄을 걸던 순간에야 와이퍼가 멈췄다는 겁니다. 꼭, 어딘가에 도착하기라도 한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