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봄
제가 당한 것은 재작년 11월입니다.
검찰을 사칭한 전화였고, 제 명의로 대포통장이 만들어졌으니 자산을 안전계좌로 옮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사흘에 걸쳐 세 번에 나눠 3,800만 원을 보냈고, 마지막 송금을 마치고 나서야 창구 용지에 계좌번호를 옮겨 적었습니다. 1802로 끝나는 번호입니다. 그 숫자는 지금도 외웁니다.
경찰에서는 계좌가 이미 비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날 이후로 그 사건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는 다 나갔습니다.
'다시봄'은 작년 3월에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구청 상담실을 빌려 여섯 명이 모였고, 총무는 제가 맡았습니다. 다들 저보다 나이가 많으셨고, 서류를 읽고 정리하는 일은 제가 제일 익숙했습니다.
모임은 매달 둘째 주 토요일 오후 2시에 했습니다. 회비는 월 2만 원이고, 제 명의 통장으로 받았습니다. 단체 명의로는 통장이 열리지 않는다고 은행에서 그랬습니다.
회원은 작년 말에 열아홉 명이 됐습니다.
박옥희 선생님은 재작년 12월에 오셨습니다. 일흔둘이시고, 남편분 사별하시고 혼자 사셨습니다. 손자 사칭이었습니다. 합의금이 급하다고 해서 6,500만 원을 보내셨습니다. 첫 모임에서 그 이야기를 하시다가 중간에 나가서 20분쯤 뒤에 들어오셨습니다.
박옥희 선생님은 모임에 한 번도 빠지지 않으셨습니다. 늘 30분 일찍 오셔서 의자를 놓으셨고, 여름에는 매실차를 담아 오셨습니다. 제 이름을 부르실 때는 지연 씨라고 하셨습니다.
작년 9월에 제가 자료를 하나 가져갔습니다.
피해금 회수를 전문으로 하는 법무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해외 계좌까지 추적해서 민사로 붙는 방식이고 이미 회수한 사례가 있다고 해서, 저는 그 사무실에 두 번 다녀왔습니다. 상담해 주신 분은 정 실장님이라고 하셨고, 명함에는 법무법인 이름과 사무장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모임에서 그대로 전달했습니다. 착수금이 300만 원이고, 회수되면 회수액의 20퍼센트를 성공보수로 낸다고 했습니다. 저는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자료를 나눠 드리고, 결정은 각자 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세 분이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박옥희 선생님은 그날 아무 말씀도 안 하셨습니다. 모임 끝나고 저를 복도에서 부르셨습니다.
"지연 씨는 했어요."
"저는 제일 먼저 했습니다."
"그럼 나도 할게요."
그다음 주 화요일에 박옥희 선생님이 300만 원을 보내셨습니다.
11월에 정 실장님이 중간 보고를 하셨습니다. 계좌 세 개를 특정했고 명의자 주소까지 확보했는데, 해외 송금 구간을 추적하려면 현지 법무비가 따로 든다고 했습니다. 인당 250만 원이라고 했습니다.
여덟 분이 내셨고, 박옥희 선생님도 그중 한 분이셨습니다.
올해 2월에 한 번 더 있었습니다. 가압류 공탁금 명목으로 400만 원이었는데, 이번에는 네 분만 내셨습니다. 박옥희 선생님은 그때 처음으로 아드님 이야기를 꺼내시면서, 아들이 반대한다고 하셨습니다.
"아들은 몰라요. 자기 어머니가 어떻게 당했는지를 몰라."
"아드님도 어머님 위해서 그러시는 겁니다."
"지연 씨는 알잖아요."
박옥희 선생님은 3월 초에 400만 원을 보내셨습니다.
4월에 정 실장님 사무실 전화가 끊겼는데, 저는 처음에 이전한 줄 알았습니다. 5월에 그 건물에 가 봤더니 사무실 자리가 비어 있었고, 관리인은 3월 말에 뺐다고 했습니다.
저는 모임 단톡방에 그대로 알렸습니다. 열아홉 명 중 열한 명이 방을 나갔습니다.
박옥희 선생님은 나가지 않으셨습니다. 6월 둘째 주 토요일에도 오셔서 의자를 놓으셨고, 그날은 여섯 명이 모였습니다.
모임이 끝나고 박옥희 선생님이 저한테 봉투를 주셨습니다.
"이거 지연 씨가 갖고 있어요."
"이게 뭡니까."
"300이에요. 정 실장이 다시 연락 오면 그때 바로 넣어야 하니까."
"지금은 안 됩니다. 사무실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지연 씨가 갖고 있으라고. 나는 아들이 통장을 보니까."
저는 그 봉투를 받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세지는 않았습니다.
7월 3일에 박옥희 선생님이 한 번 더 오셨습니다. 모임 날이 아니었고, 제 집 앞으로 오셨습니다. 봉투를 하나 더 주셨고, 저는 두 번 거절했다가 세 번째에 받았습니다.
박옥희 선생님은 7월 19일에 돌아가셨고, 사시던 아파트 화단에서 발견되셨습니다.
아드님이 지난주에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어머니 물건을 정리하다가 나온 것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가계부였습니다. 5년째 쓰시던 것이고, 날짜와 금액과 용처가 한 줄씩 적혀 있었습니다. 손자 사칭 사건 이후로는 뒤쪽에 따로 장을 나눠서, 회수 관련해서 나간 돈만 모아 적으셨습니다.
작년 9월 300만 원, 11월 250만 원, 올해 3월 400만 원까지는 제가 아는 액수와 같았습니다.
그 아래로 두 줄이 더 있었습니다. 6월 13일 300만 원, 7월 3일 300만 원입니다. 두 줄 다 용처 칸에 지연 씨 편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아드님은 그 아래도 보라고 하셨습니다.
박옥희 선생님은 처음 손자 사칭으로 돈을 보낸 계좌번호를 가계부 맨 뒷장에 옮겨 적어 두셨습니다. 은행명과 예금주와 계좌번호가 볼펜으로 눌러 쓰여 있었습니다.
그 계좌는 1802로 끝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