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
대문은 열려 있었다. 어머니가 실려 나간 날 구급대원이 밀어놓은 그대로였고, 경첩 아래에 마른 감잎이 쌓여 문짝이 반쯤 걸린 채 멈춰 있었다.
마당에 사람이 있었다. 감나무 아래에 쪼그려 앉은 여자, 장독대에 등을 붙이고 선 남자, 툇마루 끝에 어깨를 맞대고 앉은 노인 셋. 헛간 쪽으로 돌아가며 세어 보니 여덟 명이었다.
부고를 낸 데는 없었다. 장례는 서울에서 이틀 만에 치렀고, 이 집 주소를 아는 사람에게 연락한 적도 없었다.
대문이 삐걱거렸는데도 고개를 돌린 사람이 없었다. 여덟 명 모두 마루 안쪽 닫힌 신당 문을 향하고 있었고, 앉은 사람은 앉은 채로 선 사람은 선 채로 눈의 높이만 서로 달랐다.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었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운 얇은 조각이었는데, 여덟 명이 전부 같은 손가락으로 같은 방향으로 들고 있었다.
장독대 쪽 남자에게 갔다. 쉰쯤 되어 보였고 점퍼 지퍼가 목까지 올라가 있었다.
"오늘은 안 합니다. 어머니 돌아가셨어요."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손가락만 조금 움직여 조각을 고쳐 잡았는데, 손톱이 손끝에서 1센티 넘게 자라 끝이 노랗게 말려 있었다. 열 손가락이 전부 같은 길이였다.
조각을 빼냈다. 걸리는 데가 없었다.
종이는 아니었다. 명함보다 얇은데 손끝에 닿는 면에 결이 있었고, 뒤집자 결이 반대 방향으로 누웠다. 손바닥에 올려둔 채 마당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온기가 빠지지 않았다.
가운데에 숫자가 있었다. 인쇄가 아니라 뒤에서 눌러 쓴 자국이었다. 23.
옆 사람 것도 확인했다. 24였다. 툇마루 노인 셋은 25와 26과 27을 들고 있었고, 감나무 아래 여자는 31, 나머지 둘은 29와 30을 들고 있었다. 28을 든 사람은 마당에 없었다.
툇마루 밑에서 발권기를 끌어냈다. 굿날마다 어머니가 마루 끝에 내놓던 쇠붙이로, 손잡이를 당기면 한 장씩 나오는 물건이었다. 옆면에 녹이 앉아 손바닥에 붉은 가루가 묻었다.
손잡이가 뻑뻑했다. 힘을 주자 한 장이 밀려 나왔다. 같은 두께에 같은 결이었고, 눌러 쓴 숫자가 있었다. 32.
발권기를 뒤집어 뚜껑을 열었다. 뭉치가 들어가는 자리는 비어 있었고, 바닥에 마른 자국이 남아 손가락으로 문지르자 가루가 일었다.
손잡이를 다시 당겼다. 33이 나왔다.
마당을 돌아보니 감나무 아래에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새로 앉은 쪽은 여자보다 몸이 작았고 무릎을 세워 팔로 감싼 자세였는데, 손에 든 조각에 28이 있었다.
나는 33을 주머니에 넣고 마루에 올라갔다. 신발을 신은 채로 올라갔는데도 마당에서 고개를 든 사람이 없었다.
신당 문에는 걸쇠가 없었다. 밀자 안쪽에서 마른 것이 밟히는 소리가 났다. 창이 없는 방이라 마루 쪽에서 들어오는 빛만으로 벽이 어디까지인지 가늠했고, 정면에 붙은 제단 위로 촛대 두 개와 놋그릇 다섯이 늘어서 있었다. 흰 천을 씌운 액자가 그 뒤에 세워져 있었는데, 천을 걷으니 유리 안쪽이 비어 있었다.
제단 아래에 오동나무 함이 있었다. 뚜껑 가운데에 손자국 모양으로 나뭇결이 닳아 그 부분만 밝았다.
함을 열었다.
조각이 들어 있었다. 발권기에서 나온 것과 같은 두께였고 크기는 제각각이어서, 위쪽 몇 장은 손바닥만 하고 아래로 갈수록 작았다. 몇 장에는 잔털이 남아 결과 같은 방향으로 누워 있었으며, 바닥에 가까운 것들은 색이 짙고 가장자리가 말려 있었다.
한 장을 집어 마루 쪽 빛에 대 봤다. 가운데에 눌러 쓴 숫자가 있었다. 7이었다. 네 변 가운데 세 변은 곧게 잘렸는데 한 변만 곧지 않고 완만하게 굽어 있었고, 굽은 정도는 지름 20센티쯤 되는 원의 호와 같았다.
밑에서 두 번째 장은 굽은 선이 두 군데였다. 접힌 자리를 펴자 그 사이에 잔주름이 잡혔던 흔적이 나란히 남아 있었다.
함 안의 장수를 세었다. 스물두 장이었고, 맨 위가 22였으며 아래로 내려가며 하나씩 줄었다.
밖에서 신발 끄는 소리가 나서 마루로 나가 마당을 봤다.
열세 명이었다. 헛간 앞에 넷이 새로 서 있었고, 그중 하나는 왼팔 소매를 팔꿈치 위까지 걷어 올린 채였다. 팔 안쪽 살이 한 뼘쯤 없었다. 파인 것도 아물다 만 것도 아니고, 그 자리만 다른 데보다 얕게 들어가 매끄러웠다.
내려가서 그 사람 앞에 서니 예순쯤 된 남자였다.
"그 팔은 어떻게 된 겁니까."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손에 든 조각을 고쳐 잡았고 시선은 신당 문에 붙어 있었다.
남자의 손에서 조각을 빼내 팔 안쪽에 가까이 대 봤다. 조각의 굽은 변과 들어간 자리의 위쪽 선이 같은 방향으로 휘어 있었다.
조각을 남자의 손에 돌려주었다. 남자의 손가락이 처음 잡았던 각도로 되돌아갔다.
마당을 한 바퀴 돌며 소매와 바짓단과 목깃을 확인했다. 장독대 쪽 남자는 목 뒤쪽에 한 뼘, 툇마루 노인 셋은 각각 종아리와 등과 손등, 감나무 아래 여자는 정강이였다. 모두 파인 것이 아니라 얕게 들어가 매끄러웠고, 가장자리에 실밥 자국이 없었다.
다시 신당으로 들어가 함을 바닥까지 비웠다.
맨 아래 한 장은 나머지와 색이 달랐다. 갈색으로 변하지 않고 누런 기가 도는 흰색이었으며, 크기는 손바닥 절반쯤이었고, 가장자리에 여러 번 접혔다 펴진 자국이 나 있었다. 굽은 변이 하나 있었다. 가운데에 눌러 쓴 숫자는 1이었다.
어릴 때 어머니는 내 왼팔 안쪽에서 무언가를 떼어 갔다. 부엌에서 했고, 도마 옆에 물을 끓여 두었으며, 약을 만든다고 했다. 아물 때까지 사흘 동안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그 뒤로 여름에도 반팔을 입지 않았다.
1번을 손에 든 채 마루로 나와 왼쪽 소매를 걷었다. 팔꿈치와 손목 사이, 안쪽 살에 한 뼘 못 되는 자리가 다른 데보다 얕게 들어가 매끄러웠다.
마당에서 발권기 손잡이 당기는 소리가 났다. 툇마루 밑에서 누군가 그것을 끌어내 손잡이를 당기고 있었고, 마당에 선 사람은 스물셋이었다.
조각을 팔 안쪽에 댔다. 굽은 변이 들어간 자리의 위쪽 선과 맞았고, 나머지 세 변이 아래쪽 경계에 그대로 얹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