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 얼굴
복원 업체에서 보낸 메일에는 파일이 세 개 첨부되어 있었다.
`WEDDING_01.mp4`, `WEDDING_02.mp4`, `SCAN_REPORT.pdf`.
남지원은 첫 번째 파일을 거실 텔레비전에 연결했다. 화면 오른쪽 아래에 날짜가 떠 있었다. 1995년 10월 21일. 대전의 한 예식장에서 부모가 결혼하는 장면이었다. 어머니는 스물아홉, 아버지는 서른셋이었다. 지원은 이듬해 7월에 태어났다.
영상 6분 40초에서 카메라가 하객석으로 돌아갔다.
맨 뒷줄에 지원의 얼굴을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지원은 재생을 멈췄다. 여자의 턱은 왼쪽으로 조금 돌아가 있었다. 오른쪽 귀 윗부분이 삼각형으로 접혀 있었다. 지원의 귀에도 같은 접힘이 있었다. 좁은 미간과 얇은 윗입술도 같았다.
여자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보고 있었다.
지원은 화면을 캡처해 어머니에게 보냈다. 전화가 바로 왔다.
“필름 어디서 났어?”
“아빠 책장 안쪽에 있었어.”
“업체에서 사람을 잘못 넣은 거 아니니?”
“원본을 그대로 스캔했대.”
어머니는 여자의 얼굴을 모른다고 했다. 아버지 쪽 친척일 것이라고도 했다. 지원이 고모에게 사진을 보내자 그런 친척은 없다는 답이 왔다.
다음 날 지원은 복원 업체를 찾아갔다.
작업자는 스캔 보고서를 열었다. 필름 가장자리의 제조 코드와 프레임 수, 손상 구간이 적혀 있었다.
“1994년에 생산된 필름입니다. 현상 시기는 늦어도 1996년 초고요. 디지털 합성 흔적은 없습니다.”
“이 사람 얼굴을 더 선명하게 만들 수 있습니까?”
“원래 찍힌 정보 이상은 만들 수 없습니다.”
작업자는 여자가 나온 스물세 프레임을 따로 뽑아 주었다. 여자는 처음 열두 프레임 동안 정면을 보고 있었다. 열세 번째 프레임에서 옆 사람이 말을 걸자 고개를 돌렸다. 마지막 프레임에는 왼쪽 뺨과 귀가 찍혀 있었다.
왼쪽 귀 뒤의 살이 반달 모양으로 패여 있었다. 지원의 같은 자리에도 길이 2센티미터의 홈이 있었다. 어머니는 지원이 세 살 때 장롱 모서리에 찢어진 흉터라고 말해 왔다.
지원은 결혼식 앨범을 다시 펼쳤다. 단체 사진은 맨 뒷줄이 잘린 채 인화돼 있었다. 사진관은 십 년 전에 폐업했고 전화번호는 다른 업체로 넘어가 있었다.
앨범 마지막 장의 비닐 속에서 접힌 종이가 나왔다. 예식 방명록 사본이었다. 신랑 쪽과 신부 쪽 이름이 두 줄로 적혀 있었다.
좌석표는 없었다. 지원은 방명록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의 대학 동창 박선희가 결혼식 단체 사진을 보관하고 있었다.
박선희는 지원이 보낸 프레임과 사진을 번갈아 확대했다.
“유리잖아.”
“누구요?”
“네 엄마 동생.”
지원은 어머니에게 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박선희가 보내온 사진에는 어머니 옆에 선 젊은 여자가 있었다. 영상보다 얼굴이 선명했다. 사진 뒷면에는 `정유리, 결혼식 날`이라고 적혀 있었다.
“왜 어머니는 모른다고 했을까요?”
“유리가 없어지고 나서는 그 집에서 이름을 안 꺼냈어.”
“언제 없어졌는데요?”
“결혼하고 얼마 안 됐을 때.”
지원은 옛 신문 검색 서비스에서 정유리의 이름을 찾았다. 1996년 7월 3일자 지역면에 실종 전단이 있었다. 스물일곱 살, 키 164센티미터. 마지막으로 확인된 장소는 유성구의 산부인과였다.
지원의 생일은 1996년 7월 2일이었다.
가족관계증명서에는 어머니 정미영과 아버지 남기태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적혀 있었다. 출생신고는 생후 스물여드레 뒤에 접수됐다. 출생 장소는 `자택`이었다.
지원은 어머니 집 식탁에 실종 전단과 가족관계증명서를 놓았다.
“유리는 어디 있어?”
“몰라.”
“내가 유리 이모 딸이야?”
“네 엄마는 나야.”
“아버지는?”
어머니가 물컵을 싱크대에 놓았다.
“그 사람은 네 아버지 맞아.”
정유리가 마지막으로 방문한 산부인과는 이름을 바꿔 같은 자리에서 운영 중이었다. 진료기록은 폐기됐지만 창고에는 미수금 장부가 남아 있었다. 1996년 6월과 7월에 `정유리`의 이름이 네 번 적혀 있었다. 보호자 칸에는 남기태의 이름이 있었다.
마지막 기록은 7월 2일이었다.
`분만 후 전원 권고. 보호자 거부.`
그 아래에는 빨간 펜으로 `미수`라고 적혀 있었다.
지원은 경찰에 정유리 실종 사건의 재수사를 문의했다. 오래된 사건 기록에는 신고자가 외할아버지로 되어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참고인 조사에서 정유리가 아이를 낳은 사실을 몰랐다고 진술했다.
담당자는 새 증거가 있어야 기록을 다시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지원은 아버지의 철제 서류함을 열었다. 자동차 보험증권과 세금 영수증이 연도별로 묶여 있었다. 1996년 봉투만 없었다.
어머니 집 장롱 위에는 오래된 여행 가방이 있었다. 지원이 내려 달라고 하자 어머니는 열쇠가 없다고 했다. 지원은 자물쇠 수리공을 불렀다.
가방 안에는 아기 옷과 배냇저고리, 카세트테이프 두 개, 갈색 서류봉투가 들어 있었다.
봉투 겉면에는 `지원이에게는 절대`라고 적혀 있었다.
지원은 봉투를 열었다.
맨 위에는 정유리의 주민등록증이 있었다. 그 아래에는 산부인과에서 사용한 신생아 발도장 카드가 있었다. 카드 오른쪽 위에 `1996. 7. 2. 04:18`이라고 적혀 있었다.
산모 이름은 정유리였다.
신생아 이름 칸에는 어머니의 필체로 `남지원`이라고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