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자리
아들이 챙겨 준 봉지에는 흰 알약 하나와 유성펜 글씨가 있었다. 검사일 저녁 8시에 드세요. 나는 그 글씨가 아들 것인지 약국 사람 것인지 한참 들여다보다가, 결국 아들 글씨라는 걸 알아보고 봉지를 다시 접었다. 서른 넘은 자식이 아직도 받침을 흘려 쓴다는 게, 그날따라 왜 그렇게 오래 마음에 걸렸는지 모르겠다.
약은 시킨 대로 8시에 먹었고, 병원까지 가는 40분 동안 창밖이 어두워지는 걸 보고 있으니 약 기운인지 저녁의 피로인지 눈꺼풀이 자꾸 무거워졌다. 나는 그게 반가우면서도 조금 억울했다. 집에서는 그렇게 안 오던 잠이, 검사받으러 가는 버스에서는 이렇게 쉽게 온다.
수면다원검사라는 걸 받으라고 한 건 아들이었다. 지난 설에 자고 갔는데, 새벽에 내 숨이 멎더라는 거였다. 코를 골다가 뚝 끊기고, 한참을 안 쉬다가, 죽는 사람처럼 몰아쉰다고. 아버지 그러다 자다가 큰일 난다고,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서른 몇 해를 그렇게 자고도 멀쩡한데 뭘 그러냐고 웃었지만, 아들이 병원 예약을 잡고 문자로 날짜를 보내왔을 때는 지우지 못했다. 지우면 또 전화가 올 테니까.
병원에는 저녁 9시가 조금 넘어 도착했다. 접수대 불만 밝고 나머지는 어둑한 게, 내가 30년을 드나든 관리사무소 야간 근무 시간과 꼭 닮아 있었다. 나는 아파트 지하 관제실에서 오래 일했다. 새벽 3시의 로비, 아무도 안 지나가는 복도, 바람에 흔들리는 화단 그림자. 그런 걸 모니터로 들여다보며 밤을 새우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없는 시간의 공기를 잘 안다. 그 공기에는 무게가 있다. 접수대 앞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오랜만에 그 무게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온 기분이었다.
담당 선생은 젊은 여자였다. 스물 몇쯤 됐을까. 하품을 참느라 눈가에 힘이 들어가 있었는데, 그걸 들키기 싫어서 자꾸 서류로 얼굴을 가렸다. 나는 그게 좀 안쓰러웠다. 이 사람도 밤을 파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검사실은 1인실이었다. 침대 하나, 협탁 하나, 벽에 붙은 작은 세면대. 여느 병실 같았지만 천장 구석에 반구형 카메라가 달려 있었고, 침대 머리맡 위로는 손바닥만 한 마이크가 검은 코를 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 카메라를 한눈에 알아봤다. 관제실에서 수십 대를 보던 물건이었다. 사람들은 저게 자기를 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반대편에 앉아 있던 사람이라, 저 매끈한 반구 안에서 밤새 무엇이 돌아가는지 안다. 카메라는 눈을 깜빡이지 않는다. 그게 카메라의 유일한 재주다.
선생이 내 몸에 선을 붙이기 시작했다. 이마에, 관자놀이에, 턱에, 가슴에, 다리에. 차가운 젤을 바르고 동그란 전극을 누르고 반창고로 고정했다. 코 밑에는 숨을 재는 관을, 손끝에는 집게 같은 걸 물렸다. 다 붙이고 나니 온몸에서 가느다란 선이 뻗어 나와 머리맡 상자로 모였다. 나는 낚싯줄에 걸린 물고기 같기도 하고, 어딘가에 접속된 낡은 기계 같기도 했다. 뒤척이면 선이 당길 테니 똑바로 누워 주무세요, 선생이 말했다. 화장실 가고 싶으면 이 버튼 누르시고요. 불 끕니다.
10시가 넘어서야 불이 꺼졌다. 문이 닫히고, 복도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어둠에 눈이 익자 카메라의 붉은 점 하나가 보였다. 나는 그 점을 한참 봤다. 저 점 너머 어느 방에서, 아까 그 젊은 선생이 내 잠을 모니터로 지켜보고 있을 것이었다. 내가 30년을 하던 일을, 오늘은 누가 나한테 하고 있었다. 관제실에서 나는 늘 화면 이쪽이었다. 저쪽에서 자는 사람이 무슨 꿈을 꾸는지, 무슨 생각을 하다 잠드는지, 나는 알 필요가 없었다. 그냥 이상이 없으면 됐다. 이상이 없다는 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똑바로 누우라고 했지만 나는 어느새 침대 왼쪽 끝으로 붙어 있었다. 오른쪽 절반을 비워 둔 채였다. 그게 내 잠버릇이었다. 아내가 가고 3년, 나는 그 넓은 자리를 한 번도 제대로 써 본 적이 없다. 아내는 오래 앓았다. 마지막 한 해는 거의 그 오른쪽 자리에 누워만 지냈는데, 나중엔 혼자 돌아눕지도 못해서 나는 밤마다 왼쪽에 누워 손을 뻗어 아내를 내 쪽으로 돌려 뉘였다. 그렇게 서로 마주 본 자세로 우리는 오래 잠들었고, 아내가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을 때도 얼굴은 내 쪽을 향해 있었다. 이불을 반듯이 펴고 정중앙에 누우려고 하면, 몸이 저절로 벽 쪽으로 굴러갔다. 남은 자리를 남겨 두는 게 몸에 배어 버린 것이다. 처음엔 곧 고쳐지겠지 했다. 3년이 지나도 안 고쳐지는 버릇이 있다는 걸, 그 나이가 되어서야 알았다.
병원 침대에서도 나는 왼쪽 끝에 누워 있었다. 낯선 데 와서까지 오른쪽을 비워 두는 내가 우스웠다. 여기서는 아무도 안 오는데. 나는 억지로 몸을 가운데로 옮겨 보려다 선이 당기는 바람에 그만뒀다. 그러고는 이상하게, 다시 왼쪽으로 붙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오른쪽이 비어 있는 게 아니라 비워 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견딜 만했다.
약 기운이 제대로 돌기 시작했다. 생각이 물에 풀리듯 흩어졌다. 잠들기 직전, 나는 오른쪽 어깨 쪽에서 이불이 아주 살짝 무거워지는 걸 느낀 것 같았다. 누가 옆에 앉을 때 매트리스가 기우는, 그 익숙한 기울기. 나는 그게 약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그냥 이불 무게라고. 사실 요즘 집에서도 잘 때 종종 그랬다. 옆이 눌리는 느낌. 숨소리 비슷한 것. 나는 그때마다 눈을 뜨지 않았다. 눈을 뜨면 아무것도 없을 걸 알았고,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면 다시 잠들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냥 자는 척을 했다. 자는 척을 하다 진짜로 잠들었다.
어쩌면 내가 검사를 받으러 온 진짜 이유는 그거였는지도 모른다. 코골이는 핑계였다. 나는 옆자리가 비어 있다는 걸, 기계한테라도 확인받고 싶었던 것 같다. 아무것도 안 잡혔다고. 당신 옆엔 아무도 없었다고. 그 말을 듣고 싶어서.
깨워서 눈을 뜬 게 새벽 4시 무렵이었다. 선생이 불을 반쯤 켜고 내 얼굴에서 전극을 떼고 있었다. 반창고를 떼는 게 아파서 나는 몇 번 얼굴을 찡그렸다. 잘 주무셨어요, 선생이 물었다. 목소리가 아까보다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푹 잔 것 같다고 했고, 실제로 몸이 개운했다.
선생은 대답 대신 선을 정리하다가, 잠깐 손을 멈췄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선생님,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잠깐만 뭐 좀 같이 봐 주실 수 있을까요, 했다. 확인할 게 있어서요. 나는 그러라고 했다. 병원에서 확인하자는 거야 늘 있는 일이니까.
선생이 노트북을 협탁에 올리고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렸다. 여러 개의 그래프가 가로로 흐르고 있었다. 심장, 호흡, 뇌파. 나는 그런 걸 볼 줄 몰랐지만, 선생이 짚어 주는 대로 봤다. 여기, 이 줄이 숨이에요. 선생이 한 줄을 가리켰다. 파도처럼 오르내리는 선이었다. 코를 골 때는 촘촘하게 떨렸고, 아들 말대로 중간중간 뚝 끊겼다가 다시 크게 몰아쉬는 데가 있었다. 무호흡이라고, 선생이 말했다. 이건 뭐 흔한 거고, 치료하면 되는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요, 하고 선생이 화면을 조금 더 넘겼다. 소리를 좀 들어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선생이 음성 파일을 열었다. 검은 화면에 파형이 길게 누워 있었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내 코 고는 소리가 나왔다. 낯선 소리였다. 자기 코골이를 처음 듣는 사람은 다 그럴 것이다. 짐승 같기도 하고 낡은 펌프 같기도 한 소리에, 나는 좀 민망해서 헛기침을 했다.
그런데 코골이가 뚝 끊긴 자리, 그 조용한 틈에서 다른 소리가 났다. 처음엔 잡음인 줄 알았다. 선생이 소리를 키웠다. 숨이었다. 느리고 고른 숨. 코를 안 골고, 무호흡도 없이, 아주 편안하게 쉬는 숨. 내 숨이 멎어 있는 그 몇 초 동안, 방 안에서는 누군가 계속 숨을 쉬고 있었다.
나는 그게 내 숨의 메아리 같은 거냐고 물었다. 기계가 두 번 잡을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선생은 아니라고, 그러기엔 박자가 안 맞는다고 했다. 선생님 숨하고, 이 숨하고, 빨라졌다 느려졌다 하는 게 서로 달라요. 두 사람이 자는 것처럼요. 선생은 그 말을 하고 나서 스스로도 놀란 듯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 그 단어가 방 안에 떨어져서 한참을 굴러다녔다.
나는 마이크가 뭔가 잘못 잡은 거라고, 옆방 소리가 새어든 거라고 말했다. 벽이 얇으면 그럴 수 있지 않냐고. 선생은 이 마이크는 침대 바로 위만 잡게 돼 있다고 했다. 지향성이라고요. 옆방 소리는 안 들어와요. 그러고는, 영상도 한번 보실래요, 하고 물었다. 나는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안 본다고 하면, 안 본 채로 집에 가야 했다. 그게 더 무서웠다.
영상은 흑백이었다. 적외선이라 눈알만 하얗게 뜨는, 내가 관제실에서 지겹도록 보던 그 화질. 화면 속의 나는 침대 왼쪽 끝에 붙어 자고 있었다. 오른쪽은 비어 있었다. 나는 안심했다. 봐라, 아무도 없지 않냐.
그런데 오른쪽 이불이, 눌려 있었다. 사람이 누우면 생기는 그 자국. 베개도 한쪽이 꺼져 있었다. 화면상으로는 아무도 없는데, 자리는 누가 누워 있는 자리였다. 그리고 내가 무호흡으로 숨을 멈추는 그 순간마다, 눌린 이불께가 아주 천천히, 오르내렸다. 숨을 쉬듯이.
나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선생이 뭐라고 말했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 자국을 알고 있었다. 3년 동안 매일 아침 내가 개던 자리였다. 아내가 눕던 쪽. 아침마다 나는 이미 비어 있는 그쪽 이불을 굳이 반듯하게 폈다. 안 그러면 하루 종일 마음이 걸렸다. 나는 그걸 청소라고 불렀다.
아내가 마지막으로 앓을 때, 요양보호사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떠날 때가 된 사람한테는 이제 가도 된다고 말해 줘야 편히 간다고, 어떤 사람은 그 말을 못 들어서 며칠씩 붙어 있는 거라고. 나는 그 말을 끝내 못 했다. 아내 손을 잡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있자고만 했다. 오늘에서야 나는, 매일 아침 내가 이부자리를 편 게 청소가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 나는 3년째, 아직 가지 말라고 아내의 자리를 봐 주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 하고 선생이 나를 불렀다. 혼자 사세요? 나는 대답을 못 했다. 목이 막혀서가 아니라,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였다. 혼자 산다고 하면 저 자국이 설명이 안 됐고, 혼자가 아니라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나는 그냥, 아내가 몇 년 전에 갔다고만 했다. 선생은 더 묻지 않았다. 그 젊은 사람이 나보다 먼저, 무슨 말을 해야 하고 무슨 말을 하면 안 되는지 알았다.
수납을 하고 병원을 나오니 밖은 아직 어두웠다. 첫차까지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병원 앞 벤치에 앉아 하늘이 천천히 밝아 오는 걸 봤다. 검사 결과지 봉투 안에는 무호흡이 어떻고 치료가 어떻고 하는 종이가 들어 있을 것이었다. 병은 고치면 된다고 했다. 기계를 끼고 자면 숨이 안 멎는다고. 나는 그 종이가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무서운 건 따로 있었다. 나는 오늘 밤, 집에 가서 다시 왼쪽 끝에 누울 것이다. 3년을 그랬던 것처럼. 오른쪽을 비워 두고. 그리고 이불이 살짝 무거워지고, 옆에서 고른 숨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나는 또 눈을 뜨지 않을 것이다.
전에는 그게 없는 걸 확인하기 싫어서였다. 이제는 아니다. 나는 이제 그게 거기 있다는 걸 안다. 기계가 봤으니까. 나보다 먼저.
버스가 왔다. 나는 타지 않았다. 한 대를 더 보내고, 또 한 대를 보냈다. 집에 가면 다시 자야 하는데, 나는 아직 그 자리에 눕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 자리에 눕고 싶었다. 그게 무서웠다.
날이 다 밝을 때까지, 나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오른쪽 어깨가 조금 시렸다. 누가 옆에 앉으면 그늘이 지는, 딱 그 자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