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시간

방학 전날, 나는 냉장고에 시간표를 붙였다.

아침 먹기, 문제집, 자유 놀이, 점심, 낮잠 또는 독서. 색연필로 칸을 나누고 그림까지 그려 넣자 네 살짜리는 자기 이름 위에 분홍색 동그라미를 잔뜩 쳤다. 아홉 살인 4학년 큰애는 학교 시간표보다 더 빡빡하다며 냉장고 문을 닫아 버렸다. 자석 하나가 밀려나면서 맨 아래 적어 둔 ‘조용한 시간 30분’이 반쯤 가려졌다.

그건 아이들 시간이 아니라 내 시간이었다. 굳이 설명하지는 않았다.

첫날 아침 8시가 되기 전에 우유를 쏟았고, 9시에는 리모컨으로 싸웠다. 큰애가 화장실 문을 잠그면 작은애는 꼭 그때 쉬가 마렵다고 울었다. 문제집은 두 쪽을 펴는 데 20분이 걸렸고, 다 푼 건 한 쪽도 없었다. 나는 싱크대 앞에 서서 점심만 먹이면 조금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점심 뒤에는 작은애가 졸 테고, 큰애에게는 만화책을 주면 됐다.

간장계란밥을 해 주었더니 작은애는 흰자 가장자리가 갈색이라고 먹지 않았다. 큰애는 라면을 끓여 주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흰자를 떼어 작은애 그릇 가장자리에 놓고, 큰애 밥에는 참기름을 한 번 더 둘렀다. 그러는 동안 식탁 밑으로 김 가루가 떨어지고 물컵이 넘어졌다.

“엄마도 밥 좀 먹자.”

아이들에게 한 말이었는데 내 귀에는 부탁처럼 들렸다.

설거지를 마치고 보니 시간표는 오전부터 틀어져 있었다. 나는 남은 칸을 손가락으로 훑다가 냉장고 문을 닫았다. 작은애는 식탁에서 색종이를 잘랐고 큰애는 그 옆에서 투명테이프를 길게 뽑고 있었다. 서로 건드리지만 않으면 10분은 갈 것 같았다.

나는 소파 끝에 앉아 등을 기댔다. 눈을 감은 건 에어컨 바람이 얼굴에 닿는 동안만이라고 생각했다. 식탁에서 가위가 색종이를 자르는 소리와 테이프가 길게 풀리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들이 잠깐 멀어졌다.

집 안이 조용해졌다.

조용하면 쉬어야 하는데, 아이를 키운 뒤로 정적은 늘 확인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벽에 크레파스로 그린 날도, 변기에 물티슈 한 통을 넣은 날도, 베란다에서 화분 흙을 퍼 나른 날도 그 직전에는 조용했다. 나는 몸을 다시 일으켰다.

두 아이는 그대로 식탁에 있었다. 작은애는 혀를 내밀고 색종이 귀퉁이를 자르고 있었고, 큰애는 손가락에 붙은 테이프를 떼느라 고개를 숙였다.

그때 작은방 안에서 큰애가 소리쳤다.

“내가 먼저 쓰고 있었잖아.”

뒤이어 작은애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야, 내 거야. 엄마아.”

식탁에 앉은 큰애가 테이프를 든 채 나를 보았다. 작은애도 자기 목소리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입을 벌리고 작은방 쪽을 쳐다봤다.

방문은 닫혀 있었다. 거실 에어컨을 켜 두는 낮에는 작은방 문을 늘 닫아 두었다. 주방에서 작은방까지는 거실을 가로질러 네댓 걸음이면 됐다. 내가 복도를 지나는 동안에도 안에서는 두 아이가 서로 말을 덮어 가며 싸웠다. 무슨 물건을 두고 그러는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말끝이 올라가는 버릇도, 울기 직전 숨을 삼키는 소리도 똑같았다.

손잡이를 내리자 소리가 끊겼다.

방 안에는 접어 둔 요와 장난감 상자 두 개, 빨래를 걷어 던져 둔 의자뿐이었다. 창문은 닫혀 있었고 커튼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요를 들추고 장난감 상자 뚜껑을 열었다. 소리가 숨어 있을 곳을 찾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손을 멈출 수 없었다.

“태블릿 여기 있어.”

뒤따라온 큰애가 식탁을 가리켰다. 태블릿은 가위 옆에 놓여 있었다. 내 휴대전화는 뒷주머니에 있었다.

“윗집 소리겠지. 여름에는 창문 열어 놓으니까 소리가 이상하게 들려.”

우리 집 창문부터 닫혀 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큰애도 지적하지 않았다. 작은애가 내 다리에 팔을 감았다.

그날 밤, 두 아이는 작은방에서 자지 않겠다고 했다. 큰애는 덥기 때문이라고 했고 작은애는 그냥 엄마 옆이 좋다고 했다. 나는 거실에 이불을 깔아 주었다. 셋이 바닥에 누우니 방학 첫날 캠핑이라도 하는 것 같아서 작은애가 한동안 들떠 있었다. 큰애는 불을 끄라고 세 번 말했다.

아이들이 잠든 뒤 나는 식탁 위 색종이와 테이프를 치웠다. 가위는 서랍에 넣고 물컵 두 개를 씻었다. 하루 동안 내가 끝낸 일은 치운 것을 다시 치운 것뿐인 듯했다.

싱크대 물을 잠갔을 때 작은방에서 작은애가 나를 불렀다.

“엄마, 물.”

나는 거실을 보았다. 작은애는 이불을 배까지 걷어찬 채 큰애 쪽으로 몸을 붙이고 있었다. 머리맡에 빨대컵도 있었다. 내가 채워 둔 물이 반쯤 남아 있었다.

작은방 문 아래로 불빛은 새어 나오지 않았다.

“엄마, 물 줘.”

이번에는 끝에 잠이 묻어 있었다. 아이가 정말 목이 마를 때 내는 목소리였다. 나는 방으로 가지 않고 거실 이불 옆에 앉았다. 작은애의 콧등에 땀이 맺혀 있었다. 손바닥으로 머리칼을 쓸어 넘기자 아이가 한 번 칭얼대고 돌아누웠다.

문 안에서는 더 부르지 않았다.

다음 날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다음 날 오전에도 그랬다. 나는 애써 작은방 문을 열어 두었고, 아이들이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쳐다보지 않는 척했다. 점심을 먹고 작은애가 낮잠든 사이에는 휴대전화 녹음기를 켜서 방바닥에 놓아 보기도 했다. 40분 뒤 파일에 들어 있는 건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와 내가 큰애에게 수박 먹을 거냐고 묻는 목소리뿐이었다.

그날 저녁, 진짜로 큰애가 작은방에서 대답했는데도 나는 거실부터 확인했다.

“나 여기 있잖아.”

큰애가 방문 사이로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쳐다보는 눈이 선생님에게 억울한 지적을 받은 아이 같았다.

“알아. 그냥 어디 있나 본 거야.”

“봤으면서 왜 또 봐?”

대답할 말이 없어 빨래나 가져오라고 했다. 큰애는 입을 다문 채 베란다로 갔다. 나는 아이가 바구니를 끌고 오는 동안 그 뒤를 따라가고 싶었지만 참았다. 내가 자꾸 확인할수록 아이들까지 자기 목소리를 의심하게 될 것 같았다.

목소리는 매일 들리지 않았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대개 내가 두 아이를 한눈에 볼 수 있을 때 들렸다. 아이들이 거실 바닥에 엎드려 만화를 볼 때 작은방에서는 둘이 리모컨을 두고 다퉜고, 셋이 식탁에서 수박을 먹을 때는 방 안에서 큰애가 작은애에게 조용히 하라고 타일렀다. 실제 아이들은 처음처럼 놀라지 않았다. 작은애는 방에서 자기 목소리가 들리면 내 표정부터 살폈고, 큰애는 볼륨을 높이거나 문을 더 세게 닫았다.

나는 소리가 날 때마다 두 아이를 셌다. 하나는 소파, 하나는 바닥. 하나는 식탁, 하나는 내 옆. 처음에는 눈으로만 확인했지만 나중에는 손까지 뻗었다. 어깨나 머리, 발목처럼 닿는 곳을 만져야 안심이 됐다. 큰애는 귀찮아했고 작은애는 안아 달라는 뜻으로 알아들었다.

방학이 시작된 지 닷새째 되는 오후였다. 큰애가 블록으로 긴 다리를 만들고 작은애가 그 아래로 자동차를 밀고 있었다. 나는 소파에서 빨래를 개며 두 아이를 보고 있었다. 작은방 문은 닫혀 있었다. 오전에 에어컨이 시원해지지 않는다고 큰애가 닫은 뒤 그대로였다.

안에서 블록 쏟아지는 소리가 났다.

이어서 작은애가 울음을 터뜨렸다. 거실의 작은애는 자동차를 쥔 채 고개를 들었다. 방 안에서는 큰애가 자기는 안 건드렸다고 소리쳤다.

“나 안 그랬어.”

거실의 큰애가 방문을 향해 말했다.

나는 개던 수건을 놓쳤다.

“대답하지 마.”

“근데 내가 안 했잖아.”

안쪽의 울음이 뚝 그쳤다. 짧은 침묵 뒤, 이번에는 내 목소리가 들렸다.

“둘 다 그만해. 엄마 머리 아파.”

내가 자주 하던 말이었다. 오늘은 하지 않은 말이었다.

거실에 있던 두 아이가 동시에 나를 올려다보았다. 작은방 안의 나는 낮게 한숨을 쉬더니 블록을 치우라고 했다. 안쪽의 큰애가 싫다고 대꾸했고, 작은애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우리가 하지 않은 오후가 계속되고 있었다.

“엄마가 저기에도 있어?”

작은애가 물었다.

“아니. 엄마는 여기 있어.”

나는 바로 대답했지만 작은애는 내 쪽으로 오지 않았다. 방문을 보며 자동차만 양손으로 꼭 쥐었다.

그날 나는 작은방을 비웠다. 소리가 나서 그러는 게 아니라 청소를 해야겠다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큰애는 이유를 묻지 않고 장난감 상자를 거실로 옮겼다. 작은애도 인형을 한 개씩 날랐다. 나는 의자에 쌓인 빨래를 개고 접어 둔 요를 거실로 내놓은 뒤 바닥을 닦았다. 먼지와 구슬 하나, 부러진 색연필이 나왔다. 벽도 바닥도 다른 방과 다르지 않았다.

남은 물건까지 거실로 옮기고 나니 방은 생각보다 작았다. 우리는 열린 문 앞에 나란히 서서 텅 빈 바닥을 보았다. 큰애가 안으로 들어가 두 번 손뼉을 쳤다. 마른 울림이 바로 돌아왔다.

“이제 문 닫지 마.”

큰애가 말했다.

나는 수건 하나를 접어 문 밑에 끼웠다.

그날 저녁은 시끄러웠다. 장난감이 전부 거실로 나온 탓에 발 디딜 곳이 없었고, 작은애는 빈 장난감 상자 안에 들어가 인형을 전부 다시 꺼냈다. 큰애와 나는 번갈아 아이를 끌어냈다. 나는 세 번쯤 큰소리를 냈고 저녁은 배달 음식으로 때웠다. 아이들이 잠든 뒤에는 치우지 않았다. 바닥의 블록을 발끝으로 밀어 길만 내고 셋이 나란히 누웠다.

새벽에 눈을 떴을 때 집 안은 조용했다.

에어컨 불빛 아래 큰애가 보였다. 등을 돌린 채 자고 있었다. 옆에 있어야 할 작은애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나는 상체부터 일으켰다. 작은방 문이 닫혀 있었다. 문 밑에 끼워 둔 수건은 복도 한가운데 떨어져 있었다.

작은애가 방문 앞에 앉아 있었다. 무릎을 세우고 문에 한쪽 귀를 댄 채였다.

“거기서 뭐 해?”

내가 다가가자 작은애가 입술 앞에 손가락을 세웠다.

문 안에서 내 목소리가 속삭였다.

“쉬. 엄마 자잖아.”

작은애가 나를 돌아보았다. 아이는 잠이 덜 깬 얼굴로 문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엄마랑 얘기했어.”

나는 아이의 겨드랑이에 두 팔을 넣어 들어 올렸다. 작은애가 놀라 내 어깨를 붙잡았다. 방문 안쪽의 내가 웃으며 뭔가를 더 말했지만, 심장이 뛰는 소리 때문에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는 작은애를 안고 거실로 돌아왔다. 그날부터 우리는 작은방 문을 열어 둔 채 거실에서 잤다. 문이 닫힌 날에는 여전히 목소리가 났고, 열어 보면 언제나 빈 방이었다. 아이들은 소리가 들려도 나를 부르지 않았다. 큰애는 작은애를 먼저 찾아 내 옆으로 데려왔고, 나는 말없이 둘의 어깨나 머리를 한 번씩 만졌다.

그렇게 끼니를 차리고, 엎어진 물을 닦고, 끝나지 않는 문제집을 두고 싸우는 동안 냉장고 시간표의 칸이 하나씩 지나갔다. 계획대로 된 날은 없었다. 비가 와서 나가지 못한 날도 있었고, 작은애가 낮잠을 건너뛰어 저녁 내내 우는 날도 있었다. 작은방에서는 우리가 이미 한 싸움과 아직 하지 않은 싸움이 뒤섞여 들렸다.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 따지는 일은 그만두었다. 두 아이가 내 눈앞에 있으면 그걸로 됐다.

개학 전날이 왔다.

큰애가 겨우 끝낸 문제집을 가방에 넣었고, 작은애의 유치원 가방에서는 방학 내내 찾던 손수건이 나왔다. 나는 두 가방을 현관 앞에 세워 두고 냉장고의 시간표를 떼었다. 종이는 습기를 먹어 가장자리가 말려 있었고 분홍색 동그라미는 손에 묻어났다.

종이를 구겨 재활용 봉투에 넣고 아침 알람을 두 개 맞췄다. 작은방은 조용했다. 휴대전화 화면에는 월요일, 개학일이라고 떠 있었다.

셋이 누운 거실에서 아이들이 현관을 나서야 끝난다고 생각했다.

“엄마.”

누가 내 손목을 흔들었다.

눈을 뜨자 분홍색 색종이를 든 작은애의 얼굴이 코앞에 있었다. 나는 소파 끝에 앉아 있었고 목덜미에는 에어컨 바람이 닿았다.

식탁에서는 큰애가 투명테이프를 뽑고 있었다.

“엄마, 왜 자?”

허벅지 옆에 떨어진 휴대전화에는 방학 첫날, 오후 1시 47분이 떠 있었다.

냉장고의 시간표는 아직 빳빳했다. ‘조용한 시간 30분’은 밀려난 자석 아래에서 반쯤 가려져 있었다.

큰애가 테이프를 내려놓았다.

“엄마, 이제 뭐 해?”

나는 작은애의 손목과 큰애의 어깨를 차례로 만졌다. 둘 다 따뜻했다.

그때 닫힌 작은방 안에서 큰애가 소리쳤다.

“내가 먼저 쓰고 있었잖아.”

식탁의 큰애가 나를 보았다.

뒤이어, 내 앞에 서 있는 작은애의 목소리가 울먹였다.

“아니야, 내 거야. 엄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