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온 친구

나는 술을 못 마신다. 회식 자리에서도 맥주잔에 탄산수를 받아 놓는 사람이라, 멀리 조문을 갈 일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내 차를 쓰게 된다. 그날도 재민이와 준영이는 빈소에서 소주를 몇 병이나 비웠고, 나는 육개장 국물만 두 번 떠먹었다.

장례식장을 나온 건 새벽 1시가 가까워서였다. 집까지는 3시간. 준영이는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서부터 벽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고, 재민이는 재킷을 팔에 건 채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내가 먼저 내려간다고 손짓하자 재민이도 빈손으로 휘휘 가라는 시늉을 했다.

나는 준영이를 데리고 내려가 뒷좌석 오른쪽에 눕혀 놓았다. 시동을 걸고 재민이를 기다렸지만 좀처럼 내려오지 않았다. 빈소에서 마신 건 탄산수뿐인데 눈꺼풀이 자꾸 내려왔다. 히터를 끄면 추웠고 켜면 졸렸다. 나는 이마를 핸들에 대고 눈만 잠깐 감았다.

뒤쪽 문이 열렸다 닫혔다.

“다 탔냐?”

누가 작게 욕을 했다. 히터가 너무 덥다는 말도 들렸다. 재민이는 술을 마시면 더위를 탔고 준영이는 잠꼬대도 욕으로 시작했으므로, 어느 쪽 목소리인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차를 빼 지하 주차장 출구로 향했다.

고속도로에 올라선 뒤에는 말소리가 끊겼다. 준영이는 오른쪽 창문에 관자놀이를 붙인 채 자고 있었고, 재민이는 왼쪽 좌석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검은 양복 둘이 나란히 흔들리는 모습이 영정 앞에 서 있던 조문객들 같아 나는 룸미러를 조금 위로 밀었다. 얼굴 대신 뒷유리와 도로 불빛만 보이게 했다.

출발한 지 40분쯤 됐을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한 번 끊었는데 곧바로 다시 걸려 왔다. 새벽에 연달아 전화할 사람이라면 급한 일이겠지 싶어 핸들에 달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야, 너 어디야?”

재민이 목소리였다. 술에 취해서 혀가 조금 두꺼워진 것까지 같았다.

“어디긴 어디야. 운전 중이지.”

“차 끌고 갔어?”

나는 웃음이 나오려다 말았다. 뒤를 보지 않고도 재민이가 왼쪽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계기판 아래에는 처음 보는 번호가 떠 있었다.

“너 누구 전화로 하는 건데?”

“내 폰 없어졌어. 1층 편의점 사장님 거 빌렸어. 나 화장실 갔다 나오니까 아무도 없잖아. 너희 나 두고 간 거야?”

마지막 말에서는 취기가 빠져 있었다. 나는 액셀에서 발을 조금 뗐다. 속도가 줄자 준영이가 창문에 머리를 한 번 부딪쳤다.

“너 지금 어디라고?”

“장례식장이라고. 주차장에도 내려가 봤는데 차 없고, 전화도 안 받고. 준영이 같이 있어?”

나는 룸미러를 다시 내렸다. 도로 조명이 지나갈 때마다 뒷좌석이 한 칸씩 밝아졌다. 오른쪽에는 입을 벌리고 자는 준영이가 있었고, 왼쪽에는 재민이가 있었다. 이마와 감긴 눈, 빈소에서 묻힌 국물 자국까지 아는 얼굴 그대로였다.

“야, 재민아.”

내가 부르자 왼쪽의 재민이가 눈을 뜨지 않은 채 대답했다.

“왜.”

스피커 너머가 조용해졌다. 타이어가 노면의 이음매를 밟는 소리만 규칙적으로 올라왔다.

“현수야.” 전화 속 재민이가 낮게 말했다. “방금 누구야?”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핸들만 움켜쥐었다. 뒷좌석의 재민이가 천천히 고개를 들고 룸미러 속의 나를 보았다.

“전화 끊어.”

룸미러 속 재민이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빨리.”

전화 속 재민이가 내 이름을 불렀다. 뒷좌석의 재민이는 한동안 나를 보다가 평소처럼 코로 짧게 웃었다.

“재밌는 이야기 해 줄까?”

그 얼굴 위로 도로의 그림자가 지나갔다. 그림자가 걷혔을 때 왼쪽 자리는 비어 있었다.

경적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앞유리 너머에는 고속도로가 아니라 장례식장 지하 주차장의 회색 벽이 있었다. 차는 주차선 안에 그대로 서 있었고 기어도 P에 놓여 있었다. 뒤에서는 준영이가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 코를 골았다. 왼쪽 자리는 비어 있었다.

통화 기록에는 모르는 번호가 없었다. 시동을 건 뒤 7분이 지나 있었다. 잠깐 졸았던 모양이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지른 뒤 히터를 끄고 창문을 내렸다. 찬 공기가 들어왔는데도 눈앞에서 도로의 흰 차선이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 뒷문이 열렸다.

“야, 왜 연락을 안 받아.”

재민이가 왼쪽 자리에 올라탔다. 재킷 오른쪽 소매 끝에 육개장 국물 자국이 있었다. 나는 몸을 돌려 그 얼굴을 보았다. 재민이는 안전벨트를 잡은 채 눈살을 찌푸렸다.

“뭘 그렇게 봐?”

“아니야.”

목소리는 멀쩡하게 나왔다. 나는 그제야 숨을 길게 내쉬었다.

차가 장례식장 주차장을 빠져나갈 때까지 재민이는 편의점에 두고 온 담배 얘기를 했고, 준영이는 깨지 않았다. 나는 차단기 앞에서 한 번, 고속도로 진입로에서 또 한 번 룸미러를 확인했다. 왼쪽에는 재민이, 오른쪽에는 준영이가 있었다. 둘 다 우리가 데리고 온 얼굴이었다.

20분쯤 달렸을 때 재민이가 내 등받이 사이로 몸을 숙였다.

“야, 현수야.”

룸미러를 보자 재민이가 웃고 있었다.

“재밌는 이야기 해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