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없음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아.”
남자는 식탁 맞은편의 빈 의자를 보며 말했다. 의자에는 외투도 가방도 걸려 있지 않았다. 집 안에는 그 말에 대답할 사람이 없었다.
그는 접시 가장자리로 밀어 둔 고기 한 점을 포크로 끌어왔다. 양념은 거의 식어 표면에 엷은 막을 만들고 있었다. 남자는 포크 끝으로 그 막을 두어 번 건드린 뒤 입에 넣었다. 씹을 때마다 오른쪽 어깨가 조금씩 내려갔다.
“그게 제일 중요한데 다들 그건 안 듣더라고. 인육을 좋아한다고 하면 바로 살인부터 생각해. 사람을 먹고 싶다는 말과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말은 다른데. 생선 좋아하는 사람이 바다에 나가서 직접 목을 따는 건 아니잖아. 소고기 좋아한다고 소를 미워하는 것도 아니고.”
그는 웃으려다 말고 물을 마셨다. 컵을 내려놓을 때 식탁에 물이 한 방울 튀었다. 엄지로 문지르자 더 넓은 자국이 됐다.
“물론 사람은 소가 아니지. 알아. 그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니야. 내가 말하는 건 먹는 욕구하고 죽이는 욕구를 왜 한 덩어리로 보느냐는 거야. 난 죽는 건 싫어해. 피 보는 것도 싫고. 장례식장 음식도 잘 못 먹어. 영정사진 보고 내려와서 고깃국 떠먹는 게 이상해서.”
맞은편 의자는 비어 있었다. 남자는 그쪽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반론을 끝내기라도 한 것처럼 잠시 기다린 다음, 접시에서 가장 작은 조각을 골랐다.
“출처 말이지. 그것도 문제없어. 훔친 시체 아니고, 실종된 사람 아니고, 어디 가둬 놓은 사람도 아니야.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놓은 사람도 아니고. 제공자는 살아 있어. 멀쩡히 자기 생활 하고 있고, 내가 먹는다는 것도 알아. 처음부터 알았어.”
이번 것은 오래 씹었다. 질긴 힘줄이라도 든 듯 남자의 관자놀이가 불룩해졌다. 그는 삼킨 뒤 수첩을 끌어와 ‘식은 뒤 질김’이라고 적었다. 수첩에는 날짜 대신 갑, 을, 병 같은 글자가 붙어 있었다. 맛 아래에는 냄새, 지방, 씹는 시간이라는 칸이 있었고, 몇 줄은 여러 번 고쳐 쓴 탓에 종이가 일어나 있었다.
“동의도 했고. 매번 확인해. 술 취했을 때 받은 동의도 아니고, 나중에 후회하는 사람 붙잡아 둔 것도 아니야. 제공자는 싫으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어. 내가 강요할 수 있는 관계도 아니고.”
그는 말을 멈추고 자세를 바꾸었다. 처음부터 엉덩이 한쪽만 의자 끝에 걸친 채였는데, 이제는 양손으로 식탁을 짚고 몸을 조금 더 앞으로 당겼다.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었다. 남자는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뒤를 돌아보았지만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면 피해자가 누구야?”
질문은 빈 의자 쪽으로 갔다가 그대로 돌아왔다.
“법 말고, 피해가 있느냐고 묻는 거야. 구체적으로 누가 뭘 잃었는지.”
남자는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네 점이 남아 있었다. 그는 수첩 여백에 숫자 4를 적었다가 선을 그어 지우고, 한 조각을 집어 코 가까이 가져갔다. 기록할 만한 냄새는 없었는지 그대로 입에 넣었다.
“처음엔 나도 특별할 줄 알았어. 금지된 맛이 따로 있을 줄 알았지. 혀가 바로 알아본다든가, 삼키는 순간 몸이 거부한다든가. 그런 건 없어. 그냥 고기야. 익으면 색이 변하고, 식으면 굳고, 오래 씹으면 단맛 비슷한 게 나. 처음 먹었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뭔지 알아? 이것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난리를 쳤나.”
그는 그 말을 하고 조금 웃었다. 웃음은 길지 않았다. 식탁 아래에서 다리를 펴려다가 숨을 들이켰기 때문이다. 오른손이 의자 옆을 짚었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 채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아픈 데라도 있어 보이나?”
남자는 다시 빈 의자를 보았다.
“그런 표정 짓지 마. 먹는 사람한테 컨디션 묻는 건 예의가 아니야.”
이번에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상체를 식탁에 기대고 왼발을 조금 뒤로 뺐다. 바지 뒤쪽이 의자에 닿지 않도록 몇 번이나 천을 잡아당겼다. 그러는 동안 접시의 양념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같은 제공자여도 어떤 건 부드럽고 어떤 건 질겨. 그 차이를 적는 거야. 한두 번 먹고 사람 맛은 이렇다고 말하면 허풍이잖아.”
남자는 ‘표본’이라는 말을 마음에 들어 했다. 수첩 위쪽에도 같은 단어가 세 번 적혀 있었다. 그는 그중 하나에 동그라미를 치고 포크를 놓았다.
그는 손등으로 이마를 닦았다. 방은 덥지 않았다. 창문 틈으로 들어온 저녁 바람이 식탁 위 영수증을 조금씩 밀고 있었다. 남자는 영수증을 컵 밑에 눌러 두었다.
“난 혼자 먹고 기록해. 남한테 권한 적도 없어.”
접시에는 두 점이 남았다. 남자는 그중 하나를 잘라 보려다 포기하고 통째로 입에 넣었다. 씹는 동안 눈을 감았다. 맛을 보려는 사람의 표정이라기보다 통증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사람의 표정에 가까웠지만, 눈을 뜬 뒤에는 곧바로 수첩을 찾았다.
‘을보다 연함.’
그는 그렇게 적고 ‘연함’ 밑에 두 줄을 그었다.
“제공자가 괜찮다는데 다른 사람이 대신 피해를 정해 줄 수 있어? 아프다고 다 피해자는 아니잖아.”
말이 빨라졌다. 남자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아무도 재촉하지 않았는데 물을 연달아 두 모금 마셨다.
그는 수첩을 뒤로 넘겼다. 거기에는 맛과 관계없는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 외출 취소. 계단 금지. 오래 앉지 말 것. 옆으로 누울 것. 남자는 그 페이지를 손바닥으로 가리고서 처음 장으로 되돌아왔다.
“강요한 적 없어. 제공자는 무엇을 내놓는지, 그 뒤에 얼마나 불편한지도 알아.”
남자는 마지막 한 점을 포크로 눌렀다. 포크 자국 사이로 양념이 올라왔다. 그는 그것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입에 넣었다.
씹는 소리만 남았다. 맞은편 의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어 있었다.
남자는 접시를 깨끗이 비운 뒤에도 바로 일어나지 못했다. 양손으로 식탁 모서리를 잡고 세 번 몸을 들썩인 끝에 겨우 섰다. 오른쪽 다리는 곧게 펴지지 않았고, 바지 뒤쪽은 피부에 닿을 때마다 그가 짧게 숨을 멈추게 했다.
“봐. 오늘도 아무 일 없잖아.”
그는 빈 의자를 향해 말하고 접시를 싱크대에 가져갔다. 물은 틀지 않았다. 욕실로 들어가 문을 닫은 뒤에야 바지를 내렸다.
거울 아래로 오른쪽 허벅지의 오래 아문 오목한 흉터가 드러났다. 그 위쪽에는 아직 새 살이 다 차오르지 않은 자리가 하나 더 있었다. 남자는 몸을 돌려 왼쪽 엉덩이에 붙인 거즈를 천천히 떼었다. 방금 비운 접시만 한 자리가 그 아래에서 둥글게 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