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서 오는 길

빈소를 나온 것은 밤 11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조문객용 엘리베이터 앞에서 코트를 입는데, 식탁에 국을 나르던 노인이 내 소매를 잡았다. 상주 쪽 친척인지 장례식장 직원인지는 알 수 없었다. 검은 앞치마에 흰 밥풀이 하나 붙어 있었다.

“혼자 가요?”

내가 그렇다고 하자 노인은 자동문 너머를 한 번 보았다.

“집으로 바로 가지 말고 사람 있는 데 들렀다 가요. 개천이나 나무 많은 길로 가지 말고. 문 앞에서 소금 밟고 들어가고.”

말을 마친 노인은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한꺼번에 내린 사람들 사이로 돌아가 빈소 쪽에 놓인 카트를 밀었다. 따라가서 얼마나 머물러야 하는지, 다리를 건너는 것도 물가로 치는지 물을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런 걸 묻는 순간 내가 믿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믿는 사람보다, 그런 말을 진지하게 받아 적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더 싫었다. 장례식장 복도에서는 다들 검은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괜히 나 혼자 속옷 차림으로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원래 이런 말을 잘 버리지 못했다. 어릴 때 어머니가 밤에 손톱을 깎지 말라고 하면 낮까지 기다렸고, 시험 날 식탁에 미역국이 올라오면 숟가락을 대지 않았다. 믿어서라기보다, 무시한 뒤에 나쁜 일이 생겼을 때 둘을 연결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집까지는 버스로 30분이었다. 다음 버스가 막차였고, 아침 8시에는 출근해야 했다. 나는 정류장 쪽으로 가다가 길 건너 국밥집의 불 켜진 창을 보았다. 안에는 택시 기사 두 명과 병원 근무복을 입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저 정도면 사람이 있는 데라고 해도 될 것 같았다.

문을 열자 뜨거운 김과 들깻가루 냄새가 얼굴에 붙었다. 빈소에서 육개장을 반 그릇 먹고 나와 배는 고프지 않았다. 그래도 앉아 있으려면 주문해야 할 것 같아 순댓국을 시켰다. 직원이 반찬통을 내려놓으며 일행이 있냐고 물었다. 내가 혼자라고 하자 직원은 내 어깨 너머를 한 번 보고, 물컵을 두 개 집었다가 하나만 내려놓았다. 나는 장례식장 손님들이 몰리는 시간이라 습관처럼 묻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 별일 아닌데도, 식탁 아래로 발을 한 번 모았다 펴게 됐다. 누가 내 의자 뒤에 서 있다가 방금 물러난 것처럼 등이 서늘했다.

국이 나오기 전까지 휴대전화 지도를 들여다봤다. 버스는 북천교를 건넜다. 다리를 피하려면 택시를 타고 순환도로로 돌아가야 했지만, 우리 동네는 북천 안쪽에 있어서 어느 길로 가든 물을 한 번은 넘어야 했다. 노인은 물가로 가지 말라고 했지 물을 건너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다. 지도에서 파란 선을 확대하자 교량 아래로 흐르는 하천이 화면을 가로질렀다. 파란색이 너무 선명해서 나는 지도를 껐다.

순댓국은 끓는 채로 나왔다. 나는 국자를 들었다 놓고 벽시계를 보았다. 막차까지 16분 남아 있었다. 사람 있는 데에 ‘들렀다’고 하려면 몇 분쯤 있어야 할까. 문만 열었다 닫는 것은 아닐 테고, 주문한 음식을 두고 나가는 것도 제대로 들른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밥을 반 공기 말아 입천장을 데어 가며 삼켰다. 건너편 택시 기사들이 일어나 계산했다. 근무복 차림 셋은 그대로 앉아 있었지만 한 사람은 팔짱을 낀 채 졸았고, 둘은 각자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세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국그릇에 고개를 숙였다.

직원이 내 빈 물컵을 채우다가 맞은편 자리에 시선을 두었다. 탁자 끝을 행주로 한 번 닦고서야 내 쪽 컵에 물을 채웠다. 나는 국을 절반도 먹지 못한 채 계산했다. 정류장까지 뛰는 동안 입천장이 벗겨진 듯 따끔거렸고 뜨거운 것이 목구멍에서 자꾸 올라왔다. 방금 삼킨 국이 아니라, 아까 못 물어본 말들이 식도에 걸린 채 식지 않는 것 같았다.

막차에는 기사 말고 승객이 네 명 있었다. 뒤쪽에 두 사람, 중간에 한 사람, 맨 앞에 잠든 사람. 뒤쪽 좌석의 남자가 통로 쪽에 둔 가방을 들어 무릎에 올렸다. 내가 그 옆에 앉을까 싶어 비키는 줄 알았지만, 나는 출입문 가까운 두 번째 줄에 앉았다. 남자는 잠깐 빈 옆자리를 쳐다보다가 다시 가방을 내려놓았다. 국밥집에서 한 일과 버스에서 한 일을 합쳐도 되는지 생각했다. 빈소에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머릿속 계산은 자꾸 틀리는 산수처럼 제자리로 돌아왔다. 사람 셈이 안 맞을 때마다 내가 아니라 누가 하나 더 빠뜨리고 있는 것 같은데, 그 빠뜨린 쪽이 나인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버스가 북천교에 올라섰다. 밤이라 물은 보이지 않았고 난간 아래 가로등만 길게 흔들렸다. 다리 한가운데에서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었다. 기사는 브레이크를 밟고 하품을 했다. 버스가 멈추자 바닥 밑에서 낮은 진동이 발바닥으로 올라왔다.

나는 창밖을 보지 않았다. 물을 보는 것과 물가에 가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하면서, 보지 않으면 어느 쪽인지 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뒤에서 비닐이 구겨지는 소리가 났다. 이어서 누가 코를 훌쩍였다. 고개를 돌릴 뻔했지만 앞유리에 비친 뒤쪽 좌석을 먼저 봤다. 승객 한 사람이 편의점 봉투에서 생수병을 꺼내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었다. 다리를 건너는 데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집 앞 정류장에 내렸을 때 자정이 지나 있었다. 평소에는 단지 서문으로 들어갔다. 북천 산책로를 따라 5분쯤 걷다가 작은 공원을 가로지르는 길이었다. 나는 반대편 큰길로 향했다. 15분은 더 걸리지만 물에서 멀고, 공원도 지나지 않았다.

큰길에도 가로수는 있었다. 플라타너스가 보도 한가운데 일정한 간격으로 심겨 있었고, 가지가 겨울 하늘을 덮고 있었다. 나무 많은 길이라는 말이 숲을 뜻하는지 가로수까지 포함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차도 쪽 가장자리로 붙었다. 나무 한 그루를 지날 때마다 다음 나무까지의 밝은 구간이 짧아졌다.

아파트 동 앞 편의점에는 작은 소금이 없었다. 진열대 맨 아래에 김장용 꽃소금 1킬로그램짜리만 두 봉지 남아 있었다. 나는 한 봉지를 집었다. 야간 직원이 바코드를 찍다가 내 뒤쪽을 한 번 보고 영수증은 같이 안 드릴까요, 했다가 곧 말을 고쳤다. 영수증 필요 없으세요? 계산대 옆에서는 배달 기사가 컵라면에 물을 받고 있었다. 나는 필요 없다고 답한 뒤에도 카드를 지갑에 넣는 척하며 잠시 서 있었다.

배달 기사가 젓가락을 들고 창가 자리로 갔다. 직원은 휴대전화 화면을 아래로 내려다봤다. 두 사람이 각자 나를 보지 않는 가운데 있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으로 칠 수 있을까. 국밥집에 이미 들렀으니 상관없다고 생각했다가, 상관없다면 내가 왜 아직 서 있는지 알 수 없어졌다. 자동문 위 센서가 가끔씩 작게 딸깍거렸고, 나는 그 소리가 누가 바로 내 뒤에서 숨을 고르는 소리처럼 들려 고개를 돌릴까 말까를 두 번이나 망설였다.

직원이 고개를 들었다.

“더 필요한 거 있으세요?”

나는 소금 봉지를 들고 나왔다.

공동현관을 통과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거울 속 얼굴에는 국밥집에서 흘린 땀이 말라 있었고, 조문할 때 몇 번이나 고쳐 맨 넥타이는 다시 한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나는 층수가 올라가는 동안에도 손을 대지 않았다.

우리 집 앞에서 소금 봉지를 뜯었다. 힘을 너무 줘 비닐이 길게 찢어졌고, 소금이 현관 매트와 복도 타일에 쏟아졌다. 나는 손바닥으로 대강 모아 문 앞에 두 발이 들어갈 만한 자리를 만들었다. 왼발을 올리고, 오른발도 그 옆에 놓았다. 운동화 밑창에서 소금이 갈리는 감촉이 났다.

도어록 번호를 누르는데 같은 층 이웃집 문이 열렸다. 종량제 봉투를 들고 나온 그는 내 발밑을 보더니 걸음을 늦췄다.

“뭐 깨졌어요?”

“아뇨. 제가 쏟았습니다.”

나는 이웃이 지나갈 자리를 내주려고 문 안쪽으로 한 걸음 들어갔다. 오른발만 현관 안에 있었고 왼발은 소금 위에 남아 있었다. 이웃은 고개를 끄덕이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난 뒤에야 나는 내 자세를 보았다. 한 발은 밖에, 한 발은 안에 있었다.

다시 나가 처음부터 해야 할까. 이미 들어온 것으로 친다면 나가는 순간에는 무엇이 되는가. 나는 왼발을 안으로 가져오고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평소보다 얇았다. 끝까지 제대로 닫히지 않은 말처럼, 혀끝에 남는 소리였다.

현관 센서등 아래로 소금 알갱이가 이어져 있었다. 운동화 밑창에 낀 소금이 신발장 앞까지 떨어진 것이었다. 들어오기 전에 떼어 놓아야 했던 것을 내가 안으로 운반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신발을 벗어 문에 기대 놓고 빗자루를 가져왔다. 복도에 흘린 소금부터 쓸어야 했지만 문을 열기가 싫었다. 안쪽에 떨어진 것만 모아 쓰레받기에 담았다.

밖에서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기계음이 났다. 이웃이 돌아오기 전에 복도를 치워야 했다. 나는 쓰레받기를 든 채 문을 열고 나갔다. 소금은 내 운동화 자국에 눌려 넓게 퍼져 있었다.

쭈그려 앉아 소금을 쓸면서 나는 웃음이 났다. 소리를 내면 이웃이 들을 것 같아 입을 다물었고, 그러자 웃음이 목 안에서 기침처럼 몇 번 꺾였다. 집에 들어가지 말라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이미 두 발을 모두 들였고 한 번 다시 나왔다. 그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무릎을 접은 채 복도 바닥을 쓸고 있자니, 무사한 사람이라기보다 늦은 밤 남의 집 앞에서 잘못한 것을 치우는 사람 같았다. 내 집 문 앞인데도 그랬다.

그 사실이 나를 조금도 안심시키지 못했다.

소금을 쓰레기봉투에 털어 넣고 다시 현관 앞에 섰다. 이번에는 봉지에서 한 줌만 꺼내 타일 위에 뿌렸다. 두 발로 밟고, 문을 열고, 뒤로 물러나지 않은 채 안으로 들어왔다. 문이 완전히 잠기는 소리를 들은 다음 운동화를 벗었다. 남은 소금 봉지는 문 바로 안쪽에 세워 두었다.

거실과 주방, 작은방 불을 모두 켰다. 씻으려다가 물가를 피하라는 말이 생각나 세면대 앞에서 멈췄다. 길에 관한 말이었다. 집 안의 수도까지 포함될 리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수도꼭지를 틀지 못했다. 입안에는 순댓국의 기름과 데인 살 맛이 남아 있었다. 그 맛은 식은 국물보다 오래된 동전 같았다. 자꾸 혀로 굴리게 되는데 뱉을 데는 없는 맛이었다.

나는 코트도 벗지 않고 식탁에 앉았다. 냉장고가 멈추자 집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고, 잠시 뒤 윗집에서 물 내려가는 소리가 벽을 타고 흘렀다. 엘리베이터는 몇 번 오르내렸다. 현관 센서등은 켜지지 않았다. 나는 소금 봉지가 보이는 쪽으로 몸을 틀어 앉아 있다가 그대로 잠들었다. 누가 들어오면 그 봉지부터 보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안심인지 감시인지 끝내 구분하지 못한 채였다.

휴대전화 알람이 아침 6시 40분에 울렸다. 나는 식탁에 엎드린 채 눈만 떴다. 목 뒤가 뻣뻣했고 넥타이 매듭은 밤새 목을 죄고 있었다. 밤새 아무 일도 없었다. 문손잡이는 움직이지 않았고, 초인종도 울리지 않았고, 집 안으로 가져왔다고 여긴 것은 소금 몇 알뿐이었다.

알람을 끄고 고개를 드는데 현관 쪽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문 바로 안쪽에 다시 뿌려 둔 소금이 반쯤 눌려 있었다. 밑창 무늬처럼 홈이 패인 자리가 문턱에서 시작해 안쪽으로 두어 번 이어지다가, 내가 어젯밤 벗어 둔 운동화 앞에서 끊겨 있었다. 누가 젖은 신발로 밀가루 바닥을 슬쩍 디디고 간 것 같은 자국이었다. 선명하다기보다, 분명히 본 사람만 더 오래 쳐다보게 되는 종류의 흔적이었다.

나는 한참 그 자리를 보고 있다가 새벽에 반쯤 잠든 채 화장실이라도 다녀온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기억이 안 나는 것은 이상했지만, 어젯밤에도 제대로 들어왔는지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으니 그쯤은 그럴 수 있었다. 차라리 내가 그런 편이 나았다. 기억이 빠진 쪽이, 기억 밖에 누가 더 있었던 쪽보다 쉬웠다. 쭈그려 앉아 가까이 보니 굵은 소금 알갱이가 가장자리부터 조금씩 무너져 홈을 메우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는 앞코 무늬처럼 보이던 자리가 금세 흐려져, 그냥 발로 문질러 놓은 얼룩처럼 퍼졌다. 지워진다기보다 처음부터 그런 모양은 아니었다고 잡아떼는 얼굴 같았다.

나는 빗자루를 가지러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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