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상
응급실 자동문이 닫히자 엄마가 우리에게 허리를 숙였다.
“오늘 큰 신세를 졌습니다.”
준호가 엄마의 팔을 붙잡았다. 주삿바늘을 뽑은 자리에 붙인 솜이 코트 소매 아래로 밀려나 있었다. 내가 다시 눌러 붙이는 동안 엄마는 남의 손길을 참아 주는 사람처럼 가만히 섰다.
“엄마, 나 누군지 알아?”
“유진이지.”
“얘는?”
“준호고.”
이름은 틀리지 않았다. 생년월일과 오늘 날짜도 의사 앞에서 정확히 말했다. 웃어 보라면 웃었고 양팔도 같은 높이로 들었다. 촬영과 피검사에서는 당장 입원시킬 만한 문제가 나오지 않았다. 의사는 증상이 심해지거나 말이 어눌해지면 바로 돌아오라고 했다. 다음 날 오전 신경과 진료를 잡아 준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간호사가 보호자 관계를 물었을 때 엄마는 우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댁 자제분들이 데려다주셨습니다.”
택시 뒷좌석에서 준호는 엄마 손을 놓지 않았다. 엄지로 손등을 계속 문질러 엄마 피부가 붉어졌다. 엄마는 창밖만 보다가 신호에 차가 멈출 때마다 문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그거 당기면 안 돼.”
내가 세 번째 말하자 엄마가 손을 무릎으로 가져갔다.
“죄송합니다. 제가 차를 오래 타 본 적이 없어서.”
엄마는 15년 동안 보험회사 보상팀에서 일했다. 아버지가 술을 마신 날에는 서울 끝에서 끝까지 운전해 데리러 가기도 했다. 그 기억이 없는지 물으려다가 그만뒀다. 같은 질문을 병원에서 이미 열 번은 했다.
엄마가 달라진 건 그날 오전, 외할머니의 빈집에서였다.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외삼촌이 혼자 살던 집이었다. 외삼촌마저 이사하면서 집을 팔게 되자, 명절에 모인 식구들이 장롱과 그릇을 정리하러 갔다. 엄마는 안방 이불을 묶겠다며 혼자 들어갔다. 2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아 준호가 찾으러 갔다.
엄마는 열린 장롱 앞이 아니라 문지방 안쪽에 무릎을 모으고 앉아 있었다. 벗어 놓은 양말 두 짝을 손에 들고서.
준호가 왜 그러고 있느냐고 묻자 엄마는 안방 안쪽을 한번 돌아보고 대답했다.
“주인어른이 안 계신데 방에 들어와 버렸구나.”
그 뒤로 엄마는 집 안의 어느 문도 먼저 열지 않았다. 마실 것을 건네기 전에는 물도 찾지 않았고, 화장실에 가면서도 다녀와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외삼촌이 이름을 부르며 어깨를 흔들자 놀라서 주저앉았다. 그때 준호가 119를 불렀다.
택시가 엄마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내리지 않았다. 기사에게 요금을 결제하고 문까지 열어 줬는데도 좌석 끝에 붙어 있었다.
“왜 안 내려?”
“여기가 어디인지 말씀을 안 해 주셨습니다.”
준호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숙였다. 병원에서부터 참던 것이 턱 끝까지 올라온 얼굴이었다. 나는 엄마 팔을 잡아 끌지 않고, 여기가 엄마 집이라고 두 번 말해 주었다. 그러자 엄마는 택시 기사에게 또 허리를 숙이고 내렸다.
집 안은 아침에 나간 그대로였다. 싱크대에는 불린 미역이 담긴 그릇이 있었고, 베란다 건조대에는 엄마 속옷이 널려 있었다. 엄마가 살던 흔적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하나도 증거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준호는 소파에 엄마를 앉히자마자 체온계를 찾았다. 정상 체온을 확인하고도 두 번 더 쟀다. 내가 죽을 끓이려고 냄비를 꺼내자 찬장에서 새 그릇을 찾아 내밀었다.
“이걸로 줘.”
“왜?”
“먹던 그릇에는 안 먹어. 응급실에서도 간호사가 드시라고 말한 뒤에야 물 마셨잖아.”
준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태연한 것이 아니었다. 엄마가 할 수 있는 행동과 못 하는 행동 사이에 금을 그어 놓고, 그 선만 따라가면 아침까지 버틸 수 있다고 믿는 얼굴이었다.
나는 새 그릇을 받지 않았다. 엄마가 늘 쓰던 밥그릇에 죽을 담아 식탁에 놓았다.
“엄마, 와서 먹어.”
엄마는 소파에서 일어났지만 식탁 앞에 서기만 했다. 의자를 빼 주자 앉았고, 수저를 놓아 주자 두 손을 무릎 위에 포갰다. 내가 한 숟갈 뜨라고 해도 움직이지 않았다.
준호가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많이 드세요.”
그제야 엄마가 수저를 들었다.
죽을 삼키는 모습은 평소와 같았다. 뜨거운 것을 못 먹어서 입술로 오래 식혔고, 씹을 것도 없는데 오른쪽 어금니 쪽으로 혀를 움직였다. 나는 그 익숙한 버릇을 발견할 때마다 안도했다가, 엄마가 물컵을 들기 전에 우리에게 가볍게 목례하는 것을 보고 다시 겁이 났다.
큰이모가 온 것은 엄마가 반 그릇쯤 먹었을 때였다. 코트 단추를 잘못 끼운 채 들어와 엄마 얼굴부터 만졌다. 엄마는 손을 피하지 않았지만 이모를 알아보는 표정도 아니었다.
“언니야. 나 선희야.”
엄마는 잠시 이모를 살피더니 웃었다.
“큰따님이 어머님을 많이 닮으셨네요.”
큰이모의 손이 엄마 뺨에서 떨어졌다.
이모는 부엌으로 나를 불렀다. 목소리를 낮추려다 자꾸 숨이 섞였다.
“니 외할머니도 저런 적 있었다.”
외할아버지 장례를 치른 다음 날이었다고 했다. 외할머니는 자기 집 안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사흘 동안 대청 끝에 앉아 있었다. 딸들을 알아보면서도 모두 그 집 자식들이라고 불렀고, 음식을 권해야만 먹었다. 당시 열일곱이던 큰이모는 증조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상을 차리고, 외할머니의 신발을 문밖에 내놓았다.
“그랬더니 돌아왔어?”
“다음 날 아침에는 우리 이름을 제대로 불렀다.”
“병원은 갔고?”
이모가 입을 다물었다.
엄마는 그 일을 전혀 다르게 말해 왔다. 아버지를 잃은 외할머니가 며칠 앓았고, 집안 어른들이 아픈 사람을 붙들고 굿 비슷한 짓을 했다고 했다. 큰이모가 무슨 일만 생기면 점집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그때 겁을 먹어서라고 비웃었다.
“엄마는 그런 일 없었다고 했어.”
“없었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했지.”
큰이모는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식탁 가장자리를 문질렀다. 그러면서도 빈집의 어느 방에서 시작됐느냐고 물었고, 내가 안방이라고 하자 손을 멈췄다.
“그때도 그 방이었어.”
준호가 부엌 문 앞에 서 있었다. 언제부터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눈은 벌겋고 입술은 말라 있었다.
“그럼 어떻게 했는데?”
나는 준호를 막았지만 큰이모가 먼저 대답했다.
“먹여서 보냈다.”
상이라고 해 봐야 새로 필요한 것은 없었다. 큰이모는 냉장고에 있던 나물과 생선전을 꺼냈고, 준호는 식은 국을 데웠다. 나는 둘이 움직이는 사이 엄마 옆에 앉아 내일 병원 예약 문자를 다시 확인했다. 오전 9시 20분. 지금은 밤 10시 48분이었다. 아침 진료까지 기다리지 못해 우리가 무엇을 하려는지 생각하자 손끝이 저렸다.
“상만 차리는 거야.” 큰이모가 말했다. “억지로 내쫓는 거 아니고, 갈 사람이면 문을 열어 주는 거야.”
“안 갈 사람이면?”
이모는 대답하지 않았다.
엄마는 상 앞에 앉아 우리가 권하는 만큼 먹었다. 제사를 지내듯 절하거나 주문을 외우는 사람은 없었다. 큰이모는 엄마가 좋아하던 동태전의 가시를 발라 주었고, 준호는 국이 식을 때마다 전자레인지에 넣었다. 그 모습만 보면 병든 사람에게 늦은 저녁을 먹이는 가족이었다.
상 위의 그릇이 거의 비자 큰이모가 엄마에게 물었다.
“이제 가실래요?”
엄마가 수저를 내려놓았다. 처음부터 그 말을 기다린 사람처럼 두 손으로 식탁을 짚고 일어났다.
준호가 숨을 들이켰다. 나는 의자를 밀치며 일어났지만 엄마는 이미 현관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외투도 입지 않은 채였다. 큰이모가 신발장에서 엄마 운동화를 꺼내 바닥에 놓았다. 엄마는 벽을 짚고 한쪽씩 신었다.
“이거 엄마 신발이야.” 내가 말했다.
엄마가 끈이 풀린 운동화를 내려다보았다.
“빌려 신고 가겠습니다.”
큰이모가 현관문을 열었다. 복도의 찬 공기가 들어와 식탁 위 비닐 덮개를 흔들었다. 엄마는 문턱을 넘어 한 발을 복도 타일에 디뎠다.
나는 뒤에서 엄마의 조끼를 붙잡았다. 큰이모가 내 손목을 잡으려다가 멈췄다. 엄마가 천천히 돌아보았다.
그 얼굴에서 엄마를 골라낼 만한 표정을 찾고 있었다. 화를 낼 때 올라가는 왼쪽 눈썹, 울기 싫을 때 깨무는 입술, 내 이름을 부르기 전 짧게 들이쉬는 숨. 무엇이든 하나만 나오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의 입술이 떨렸다.
“유진아.”
나는 조끼를 놓지 않았다.
“나 추워.”
그 말이 엄마가 돌아왔다는 증거는 아니었다. 내 이름은 응급실에서도 알고 있었고, 복도는 실제로 추웠다. 그래도 나는 엄마의 어깨를 안쪽으로 돌렸다. 운동화 바닥이 문턱에 걸려 엄마가 비틀거렸고, 준호가 달려와 겨드랑이를 받쳤다.
큰이모는 문을 닫지 않은 채 우리를 보았다. 화도 확신도 없는 얼굴이었다. 내가 손을 뻗어 현관문을 닫았다.
그날 밤 엄마는 안방 침대에 눕지 않았다. 문 가까운 바닥에 이불을 펴 주자 그 위에서 잠들었다. 준호는 한 시간마다 체온을 쟀고, 나는 엄마가 숨 쉴 때 가슴이 같은 높이로 오르내리는지 보았다. 큰이모도 돌아가지 못하고 소파에 앉아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아침 8시 30분, 내가 병원에 가자며 엄마의 팔을 잡았다. 엄마는 순순히 외투를 입었지만 현관 밖으로 나온 뒤 엘리베이터가 어느 쪽인지 찾지 못했다. 전날까지 수천 번은 오간 복도였다.
나는 엄마와 팔짱을 끼고 버튼 앞까지 데려갔다. 엄마가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저를 어디로 데려가십니까?”
“병원.”
엄마는 더 묻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내가 먼저 들어갔고, 엄마는 잠시 문턱 앞에 섰다가 따라 들어왔다.
내려가는 동안 엄마는 내 손을 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