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원은 맞았다

민석은 냉동창고 제어반 사진을 팀장에게 보내고 나서야 버스 좌석에 등을 붙였다. 사흘 동안 밤마다 알람이 울린 탓에 제대로 잔 시간이 6시간도 되지 않았다. 낮에는 센서를 바꾸고, 새벽에는 영하 22도로 내려간 창고 안에서 배선 번호를 다시 읽었다. 숫자는 아직 눈앞에 붙어 있었지만 그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한 박자씩 늦게 떠올랐다.

서울행 막차는 출발한 지 20분도 안 되어 실내등을 껐다. 민석은 컵홀더에 생수병을 꽂고 휴대전화를 충전선에 연결했다. 아내에게는 아침에 깨우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집에 도착하면 씻지도 않고 작은방에서 잘 생각이었다.

눈을 뜬 것은 버스가 휴게소에 멈춘 뒤였다. 앞좌석 승객들이 이미 통로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기사에게 몇 분 쉬느냐고 물었으나, 기사는 출입문 밖에서 누군가와 통화하며 손가락을 펴 보였다. 다섯인지 열인지 민석은 확인하지 않고 내렸다.

세면대의 찬물로 얼굴을 씻고 커피를 샀다. 카드 승인이 한 번 실패했다가 두 번째에 됐다. 영수증을 기다리는 동안 계산대 옆 전자시계가 1시 48분에서 1시 49분으로 넘어갔다. 그는 그 숫자를 보고도 몇 시에 서울에 닿는지 계산하지 못했다.

주차장에는 같은 회사 버스가 세 대 서 있었다. 흰 차체 옆으로 푸른 줄이 흐르고, 뒤쪽 유리에는 같은 글씨의 안전운행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민석은 가장 가까운 버스의 열린 문으로 올라갔다. 기사는 자리에 없었다. 좌석 위 번호를 짚어 가며 11번으로 돌아가니 비어 있었다.

커피를 컵홀더에 넣으려다가 생수병이 없는 것을 알았다. 청소하는 사람이 치웠나 싶었지만 휴게소에서 청소할 리는 없었다. 발밑에도 병은 없었다. 대신 앞좌석 아래에서 갈색 종이봉투의 접힌 귀퉁이가 조금 나와 있었다. 옆 사람이 밀어 넣은 짐이겠거니 하고 그는 충전선을 찾았다. 선도 보이지 않았다.

잠결에 가방에 넣었을 수도 있었다. 민석은 확인하는 대신 커피를 두 모금 마셨다. 목이 마르지는 않았고, 무엇보다 눈꺼풀이 아팠다. 버스가 움직이자 빈 컵홀더에서 종이컵이 가볍게 떨렸다.

두 번째로 깼을 때 휴대전화 배터리는 13퍼센트였다. 버스는 고속도로가 아니라 왕복 2차선 길을 달리고 있었다. 창밖의 가드레일 너머로 비닐하우스가 몇 동 지나갔고, 그 뒤에는 불빛 없는 산이 붙어 왔다. 서울 외곽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보기에는 가로등이 너무 드물었다.

지도 앱은 흰 화면 가운데에서 푸른 점만 깜박이다가 위치를 찾지 못했다. 민석은 창에 이마를 대고 도로 표지판을 기다렸다. 앞자리 머리받침 사이로 보이는 승객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푸른 수면등이 정수리와 귀의 윗부분만 비추어서 얼굴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잠이 덜 깼다고 생각하자 오히려 잠은 달아났다. 민석은 손바닥 가운데를 손톱으로 눌렀다. 통증이 선명했고, 커피는 이미 식어 혀끝에 단맛만 남겼다.

버스가 속도를 줄였다. 정류장 표지도 없는 길가였는데 중년 남자가 검은 가방을 들고 일어났다. 기사가 무어라고 안내했지만 스피커가 갈라져 지명은 들리지 않았다. 문이 열리고 남자가 내렸다. 그는 비상등 불빛을 두 번 지나 산비탈 쪽 계단으로 내려갔다. 아래에 마을이 있는지, 길이 이어지는지 보이지 않았다.

문이 닫히기 전에 젖은 흙냄새가 들어왔다. 냉동창고 방열문을 열 때 밀려 나오던 공기처럼 차고 묵직했다. 민석은 남자가 내려간 쪽을 돌아보았으나 버스는 이미 커브를 돌고 있었다.

그다음에는 두 사람이 내렸다. 한 사람은 꽃무늬 보자기를 싼 납작한 상자를 안고 있었고, 다른 사람은 잠든 아이를 업은 여자였다. 여자는 아이의 운동화 한 짝이 벗겨질까 봐 손으로 발목을 받치면서도 기사를 재촉했다. 문밖에는 불 꺼진 상가와 약국 간판만 있었다. 셔터 앞에 서 있던 노인이 아이를 받아 들자 여자가 허리를 펴고 웃었다.

민석은 그 웃는 얼굴을 보았는데도, 버스가 출발하고 푸른 등이 다시 켜지자 방금 본 것이 맞는지 자신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누군가 기다리는 곳에서 내렸다. 그게 현실인지 꿈인지, 수면 부족의 몽롱한 상태로 구별할 근거는 없었다.

휴대전화는 여전히 위치를 잡지 못했다. 회사 단체방에는 팀장이 남긴 `사진 해상도 낮음. 오전에 원본 다시`라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민석은 `버스 안이라 도착해서 보내겠습니다`라고 썼다가 지웠다. 서울행 버스가 왜 이런 길을 가느냐고 먼저 기사에게 묻는 편이 쉬웠지만, 통로 끝 운전석까지 가는 동안 모든 승객이 고개를 들 것 같았다.

옆자리 노인은 외투 안주머니를 뒤지다가 눈을 떴다. 민석은 그제야 노인이 계속 자고 있던 게 아니라 보청기를 찾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서울까지 얼마나 남았습니까?”

노인은 한쪽 귀에 보청기를 끼우고 민석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어디요?”

“서울이요.”

노인의 얼굴에서 잠기운이 사라졌다. 그는 앞쪽을 보고, 다시 민석을 보았다.

“이 차가 서울을 왜 가.”

마침 버스 바퀴가 파인 도로를 밟았다. 차체가 크게 흔들렸고 선반 안 물건들이 한꺼번에 떨렸다. 민석은 마지막 말을 정확히 들었으면서도 `이 차가 서울을 왜 가`와 `이 차가 서울로 가` 사이에서 잠깐 헤맸다. 노인은 더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고 통로 건너편 여자에게 무언가 물었다. 여자는 민석을 한번 보고 기사 쪽을 가리켰다.

둘이 나누는 낮은 말에서 `잘못`이라는 단어가 들렸다. 민석은 그 말이 자기에게 향한 것임을 알면서도 다른 뜻으로 받아들였다. 잘못 올라온 사람. 아직 내릴 곳이 아닌데 올라온 사람.

휴대전화 화면을 켜 승차권을 열었다. 출발지와 도착지는 분명했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 23시 40분 출발, 11번 좌석. 날짜도 틀리지 않았다. 자기 표가 맞다는 사실이 버스까지 맞다는 뜻은 아니었지만, 민석은 그 둘을 나눠 생각하지 못했다. 표가 맞으니 자신이 맞고, 자신이 맞으니 이 버스가 이상했다.

배터리가 8퍼센트로 내려갔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자 신호가 가지 않았다. 그는 녹음 버튼을 눌러 음성메모를 켰다.

“지금 위치를 모르겠어. 휴게소 지나서 길이—”

목소리가 생각보다 컸는지 앞의 승객 둘이 돌아보았다. 한 사람은 눈을 찌푸렸고 다른 사람은 다시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민석은 그 평범한 짜증이 더 무서웠다. 죽은 사람도 잠을 방해받으면 저런 얼굴을 할 것 같았다.

버스는 안개가 고인 고갯길로 들어갔다. 앞유리 너머로 중앙선이 짧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민석은 13명이 남았다고 세었다가, 다음 커브 뒤에는 12명이라고 셌다. 누가 내린 적은 없었다. 다시 세니 14명이었다. 좌석 머리받침과 사람 머리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세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운전석 위 전광판에는 붉은 점들이 번져 있었다. 민석은 허리를 숙이고 글자를 읽으려 했다. 목적지처럼 보이는 세 글자는 처음 보는 지명이었다. 그 아래 시계는 3시 06분을 가리켰다. 서울 도착 예정 시각은 이미 한참 지났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님, 앉으세요.”

기사가 룸미러로 민석을 보았다.

“여기 어디예요?”

“움직이면 위험합니다. 거의 다 왔어요.”

“어디에 다 와요?”

기사는 앞차의 불빛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대답 대신 오른손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앉으라는 뜻이었다. 통로 양쪽의 얼굴이 하나씩 민석에게 돌아왔다. 낮은 푸른빛 아래에서는 눈동자가 보이지 않았다.

민석은 11번으로 물러났다. 노인이 그의 소매를 잡아 자리에 앉혔다.

“가서 물어보면 되지, 왜 달리는 차에서 그래.”

꾸지람에는 겁도 비밀도 없었다. 민석은 그 목소리를 믿고 싶었지만, 노인의 손이 너무 차가웠다. 방금 창가에 대고 있던 손이라는 생각은 뒤늦게 났다.

종점에 가까워졌다는 안내가 나왔다. 승객들은 일제히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누군가는 계속 잤고, 누군가는 가방 지퍼를 닫았고, 꽃무늬 보자기의 주인은 빈자리에 두고 내린 영수증을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민석은 그 사소한 동작들을 보면서도 문이 열리면 혼자 남아야 할지 사람들을 따라야 할지 정하지 못했다.

버스가 넓은 터미널 안으로 들어가며 형광등이 켜졌다.

푸른빛에 납작해 보이던 얼굴들에 혈색이 돌아왔다. 노인은 보청기 통을 외투 주머니에 넣었고, 앞의 젊은 남자는 휴대전화 카메라로 헝클어진 머리를 살폈다. 창밖에는 편의점과 택시 승강장, 새벽 첫차 시간을 적은 전광판이 있었다. 서울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내리는 동안 민석만 앉아 있었다. 기사가 통로를 올라와 좌석 선반을 살피다가 그를 발견했다.

“안 내리세요?”

민석은 대답 대신 휴대전화 승차권을 내밀었다. 기사는 화면과 민석을 번갈아 보더니, 날짜를 확인하고 차량 안쪽을 돌아보았다.

“손님, 이거 서울 차 표예요.”

“그러니까요.”

“여긴 서울 차가 아닙니다.”

기사는 휴게소 이름을 말했다. 그곳에서 서울행과 이 버스가 나란히 섰고, 같은 회사의 같은 차종이었다고 했다. 생수병과 충전선은 서울로 가고 있을 터였다.

“출발할 때 사람 안 세셨어요?”

기사는 대답하지 않고 회사로 전화했다. 새벽 당직자에게 차량 번호를 말하고, 휴게소에서 함께 출발한 서울행 기사를 찾게 했다. 통화가 두 번 넘어간 뒤 상대의 큰 목소리가 수화기 밖으로 샜다.

서울행 버스에도 표가 맞지 않는 승객이 한 명 타고 있었다. 이 버스 11번에 앉았던 여자였다. 두 사람이 같은 휴게소에서 서로의 버스로 돌아간 탓에 어느 쪽도 인원이 모자라지 않았다. 여자는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자신이 잘못 탄 줄 몰랐다고 했다.

기사는 전화를 끊고 민석의 표를 다시 보았다.

“아침 첫차 전에는 서울 가는 게 없습니다. 대합실은 열려 있어요.”

민석이 버스에서 내리자 찬 공기가 땀 밴 셔츠 안으로 들어왔다. 아까 죽은 사람이라고 믿었던 승객들은 택시를 잡거나, 마중 나온 가족에게 가방을 넘기거나, 편의점 앞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노인은 아들이 끌고 온 승용차에 타기 전에 민석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손등은 형광등 아래에서도 창백했지만 그뿐이었다.

대합실 콘센트에 휴대전화를 꽂자 전원이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 아내의 메시지와 팀장의 독촉이 차례로 들어왔다. 민석은 먼저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잘못 탄 버스의 종점에 와 있다고 말했다. 아내는 한동안 웃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어디인데?”

민석은 전광판의 지명을 보고 천천히 읽었다. 입 밖으로 내고 나니 모르는 곳은 그냥 모르는 곳이었다.

통화를 마친 뒤 그는 서울행 버스 회사에 전화해 좌석에 둔 물건을 접수했다. 생수 한 병과 검은 충전선. 상담원은 찾으면 연락하겠다고 했다.

첫차까지 2시간 남아 있었다. 민석은 밝은 대합실 의자에 앉아 회사 원본 사진을 다시 올렸다. 업로드 막대가 끝까지 가는 동안에도 잠은 오지 않았다. 창밖에서 기사는 운행일지를 펼쳐 놓고 회사와 다시 통화했다. 휴게소에서 재출발하며 적어 둔 인원은 열넷이었다. 당직자는 이 차에서 승차 처리된 좌석 번호를 하나씩 읽었다. 모두 열세 자리였다. 이 차의 11번 승객이 서울행으로 가고, 서울행 11번 승객인 민석이 이 차로 왔으니 그 교환은 수를 바꾸지 않았다.

기사는 좌석표를 위에서부터 다시 짚었다. 한 번 세고, 전화기 너머의 당직자와 번호를 대조한 뒤 다시 세었다. 사용된 표는 열세 장이었다. 그는 출발 인원 칸의 열넷을 지우지 않은 채 비고 칸에 `승차 처리 13, 미확인 1`이라고 적었다. `미확인 1` 옆에는 끝내 좌석 번호를 붙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