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 재방문

냉장고 문에는 전에 배달시킨 족발집 자석으로 에어컨 청소 영수증을 붙여 두었다. 아래쪽에는 볼펜으로 `30일 이내 냄새 재발 시 무상 방문`이라고 적혀 있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읽었다. 18만 원을 냈으니 다시 부르는 게 당연했지만, 냄새가 돌아온 뒤에도 하루를 더 미뤘다.

장마가 시작될 무렵 에어컨을 켜고 10분쯤 지나면 오래 젖어 있던 행주 같은 기운이 방 안에 퍼졌다. 조금 더 지나면 음식물 봉투를 묶지 않았을 때처럼 단내가 섞였다. 봉투를 내다 버리고 싱크대 배수구까지 씻어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몇 년 동안 청소하지 않은 에어컨이니 다른 원인을 찾을 필요는 없어 보였다.

처음 온 사람은 박 기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현관에 공구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휴대전화를 충전기에 꽂아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오후 일이 밀려 어린이집 마감 전에 딸을 데리러 가야 하는데 배터리가 4%라고 했다. 나는 거실 콘센트 하나를 비워 주고 에어컨 아래의 빨래 건조대를 접었다.

덮개를 연 박 기사는 이건 냄새가 날 만하다고 했다. 필터에는 회색 먼지가 눌어붙어 있었고 안쪽에서 씻겨 나온 물은 검었다. 비닐 자루 하나가 젖은 먼지와 휴지로 차자 그는 사진을 찍어 보여 주고, 이런 집이 드물지 않다며 웃었다.

창문을 열어 둔 2시간 동안 아래층에서 생선을 굽는 냄새가 올라왔고 골목에서는 유리병을 쏟는 소리가 났다. 박 기사는 발코니에서 딸에게 오늘은 늦지 않는다고 전화했다. 청소가 끝났을 때 집 안에는 약품 냄새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그가 준 영수증을 냉장고에 붙이고 미뤄 둔 이불 빨래를 돌렸다.

사흘은 괜찮았다.

나흘째 밤에는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잠들었다가 입안에 단맛이 고여서 깼다. 처음보다 옅어진 대신 침실 커튼과 베개에 붙어 있었고, 아침에 머리를 감고 출근했는데도 옆자리 직원이 무슨 반찬을 쏟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어제 된장국을 끓였다고 둘러댔다. 그날 저녁에는 정말 된장국을 끓였지만 두 숟갈만 먹고 버렸다.

탈취제를 사고 세탁소에는 겨울 외투 네 벌을 맡겼다. 주인은 옷을 받아 들고 고깃집에서 일하느냐고 물었으며, 아니라고 하자 더 묻지 않고 주머니에서 영수증이나 꺼내 두라고 했다. 외투 한 벌의 안주머니에서는 500원짜리 동전 하나가 나왔다. 주인은 내 손바닥에 올려 주었다.

그날 관리실에서 전화가 왔다. 같은 층 복도에 음식물 썩는 냄새가 난다는 민원이 들어왔으니 각 집의 쓰레기와 배수구를 확인해 달라고 했다. 직원은 우리 집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냉장고 안의 음식이 한 번 녹았던 것 같다고 먼저 설명했고, 직원은 대답 대신 복도 창문을 열어 두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냉장고의 영수증을 사진으로 찍었다. 냄새 원인이 에어컨이었다는 말을 기사에게 적어 달라고 하면 관리실에서 집 안까지 볼 이유가 없을 것 같았다.

다음 날 박 기사에게 전화했다.

그는 무상 방문이라는 말을 두 번 확인했다. 나는 청소 뒤에도 냄새가 났다는 확인을 영수증에 적어 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그는 직접 보고 나서 말하자고 했다. 재방문 건은 시간이 잡혀도 수당이 없으니 어린이집에 들른 다음 저녁에 와도 되겠느냐고도 했다. 7시가 조금 넘어 도착했을 때는 지난번보다 말이 없었고, 에어컨을 켜서 바람을 맡아 본 뒤 덮개도 열지 않은 채 침실 쪽을 보았다.

“이건 기계에서 나는 냄새가 아닌데요.”

나는 청소가 덜 된 것 아니냐고 물었다.

박 기사는 대답하지 않고 에어컨을 껐다가 송풍으로 다시 켰다. 바람이 침실에서 거실 쪽으로 움직이자 벽과 걸레받이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침실 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지만 나는 문을 반쯤만 열어 두었다.

“안쪽에 물 먹은 가구 있어요?”

“장롱은 이사 올 때부터 있던 거예요.”

“장롱 뒤를 봐야 할 것 같은데.”

장롱은 이사 올 때부터 벽에 붙어 있었고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다고 말했다. 바닥을 긁으면 집주인이 보증금에서 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박 기사가 장롱 옆에 쪼그려 앉아 걸레받이와 장판 사이를 손전등으로 비췄다. 나는 그가 더 가까이 가지 못하게 겨울 이불 상자를 앞에 내려놓고, 상자 바닥이 뜯어진 척하며 테이프를 찾았다.

박 기사는 일어나면서 마스크를 고쳐 썼다.

“에어컨이 냄새를 만드는 게 아니라, 저쪽 냄새를 집 안으로 돌리는 것 같아요. 벽이나 가구 안이면 제가 할 일이 아니에요.”

그는 돈을 받지 않았고 현관에서 신발을 신다가 관리실이나 집주인에게 먼저 말해 보라고 했다. 그러고는 충전할 시간이 없었다며 휴대전화를 흔들어 보였는데, 화면에는 어린이집 번호가 깜박이고 있었다.

문을 닫은 뒤 박 기사가 밟은 자리와 손전등 불빛이 머물렀던 장판 틈을 물걸레로 닦았지만, 이불 상자는 장롱 앞에 그대로 두었다. 냉장고의 영수증을 떼려다 그만두었다.

밤이 깊자 복도 창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고, 잠시 뒤 현관문 아래로 관리실 안내문이 들어왔다. 다음 날 오전에 같은 층 배관을 점검하며 집 안 출입이 필요할 수 있으니 협조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안내문을 식탁 위에 펴 놓고 된장국 냄비를 씻었다. 수세미에서도 같은 기운이 올라왔고, 손을 씻고 갈아입은 뒤에도 손톱 밑에 단맛이 남은 것 같았다. 에어컨을 끄자 집 안이 조용해지면서 어느 쪽에서 오는지 전보다 분명해졌다.

침실에 들어가 이불 상자를 치웠다. 장롱 문은 겉으로 보기에는 달라진 데가 없었다. 그 사람을 안쪽 칸에 넣고 문을 닫은 건 에어컨을 처음 켜기 전이었다.

밀봉을 단단히 해놨는데. 한번 더 확인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