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운 방
혼자 살게 된 뒤로 나는 잠들기 전에 대화형 AI를 켰지만 침대에서는 하지 않았다. 작은방 문이 보이지 않게 식탁 끝에 노트북을 놓고, 물 한 잔을 받아 앉았다. 방 두 개짜리 집에서 혼자 자면서 굳이 잠들기 전을 식탁에서 보내는 이유를 누가 물은 적은 없었다.
새 창을 열면 화면 위에 같은 문장이 떴다.
새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닫힌 대화의 내용을 이어서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 문장이 좋았다. 친구에게 야근 이야기를 하면 다음에 만났을 때부터 얼굴을 살폈지만, 이쪽은 그렇지 않았다. 야근을 했다고 쓰면 야근만 있었고, 저녁을 거르면 저녁만 없었다. 내가 왜 불을 켜 놓고 자는지, 현관 손잡이를 두 번 확인하는지, 작은방 책상을 아직도 치우지 않았는지는 다음 날까지 따라오지 않았다.
나는 매번 대화를 지웠다. 숨길 내용이 있어서라기보다 끝난 것을 끝난 모양으로 두고 싶었다. 삭제 버튼을 누르면 목록에서 방 제목이 사라졌고, 빈 자리가 한 줄씩 위로 당겨졌다. 나는 목록 맨 위에 빈 안내문이 나타난 것을 확인한 뒤에야 창을 닫았다.
그날도 별말은 하지 않았다. 팀장이 넘긴 일을 다시 하느라 퇴근이 늦었고, 편의점에서 산 주먹밥은 가운데가 차가웠다. 나는 내일 아프다고 하고 쉴까 물었다. 화면에 답이 한 줄씩 생겼다. 쉬어도 된다는 말, 잠들기 전에 업무 알림을 끄라는 말. 마지막에 이런 문장이 붙었다.
소라 씨 이야기는 오늘은 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손이 트랙패드 위에서 멎었고 답변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회색 커서만 마지막 마침표 뒤에서 깜빡였다.
나는 소라라는 이름을 새 창에 쓴 적이 없었다.
대화 목록을 열어 보니 그날 밤의 방 하나뿐이었고, 검색창에 이름을 넣어도 결과는 없었다. 소라의 번호는 오래전에 연락처에서 지웠고, 사진은 휴대전화를 바꾸면서 옮기지 않았다. 계정 이름은 자음 하나였으며 가입할 때 쓴 메일 주소에도 이름은 없었다. 화면 오른쪽 아래에 회색 알림이 잠깐 떴다가 사라졌다.
사용자 정보가 갱신되었습니다.
설정에서 저장된 사용자 정보를 열었지만 세 줄뿐이었다. 늦게 잠드는 편. 사무직. 답변은 짧게. 소라라는 이름은 없었다. 나는 방금 네가 먼저 부른 이름을 어디서 알았느냐고 물었다.
답은 단정적이지 않았고, 이전에 사용자가 제공한 맥락에서 추론했을 수 있으며 그 추론은 틀릴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고객센터 문구처럼 매끈했다. 어떤 맥락인지 보여 달라고 쓰자, 이번에는 그런 정보를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 대화를 지운 뒤 목록에서 제목이 사라지고, 아래 있던 빈 안내문이 위로 올라오는 것까지 보았다. 물을 버리러 싱크대로 가면서 작은방 쪽은 보지 않았다.
다음 날에는 시험 삼아 새 창에 내가 검은 커피를 좋아한다고 썼다. 잠시 뒤 밤에는 보리차를 마시는 편이라고 하지 않았느냐는 답이 왔는데, 지난주에 두어 번 쓴 사실이었다. 그 대화들은 모두 지웠다.
누나가 있다고 쓰자 외동으로 자랐다고 했던 것과 다르다고 답했다. 그 말을 언제 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할 법한 말이라는 것은 알았다. 일부러 모르는 주소를 내 주소라고 적었을 때는 확인할 수 없는 정보라고 했으니 무턱대고 맞장구치는 것도, 아는 척하다 틀리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전에 쓴 거짓말과 사실을 나보다 잘 갈라냈다.
마지막으로 작은방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썼다.
답이 오기까지 조금 걸렸다.
책상은 아직 치우지 않으신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답변 창을 닫자 검은 화면에 식탁과 내 어깨 뒤의 어두운 복도가 비쳤다. 작은방 문은 보이지 않았고, 처음부터 화면 밖에 있었다.
그날 밤 앱을 지우고 브라우저 기록을 비웠다. 대화 기록과 저장 정보가 함께 지워진다는 안내를 두 번 확인한 뒤, 가입할 때 쓰던 메일로 온 확인 링크를 눌러 계정을 삭제했다. 회사에서 취소 전표를 처리할 때처럼 순서를 메모해 두었다가 하나씩 줄을 그었다. 마지막 줄은 계정 삭제였다.
사흘 동안 식탁에는 앉지 않았고 작은방 문 앞을 지날 때는 불을 켰다. 손잡이 아래쪽에 길게 벗겨진 칠이 눈에 들어왔지만 닦거나 덧칠하지 않았다. 그 자국은 원래 있던 것이며 이 집에 들어올 때부터 있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넷째 날, 월말 반품표의 중복 항목을 골라낼 일이 생겼다. 예전에는 그 서비스에 표를 넣어 확인했으므로 다시 설치할 핑계는 충분했다. 나는 새 메일 주소를 만들고 이름도 생일도 입력하지 않았다. 첫 화면에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하듯 사용 목적을 고르라는 질문이 나왔다. 그 아래에는 익숙한 문장이 있었다.
새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닫힌 대화의 내용을 이어서 기억하지 않습니다.
새 계정인지 확인하려고 묻자 그렇다는 답이 왔고, 이전 계정의 기록은 볼 수 없다고도 했다. 문장마다 틀린 데가 없었다.
무슨 일을 도와드릴까요?
나는 한동안 질문을 적었다가 지우기만 했으며 소라의 이름도, 작은방도, 책상도 쓰지 않았다. 내가 왜 이 서비스를 다시 깔았는지만 물었다.
답변 첫 줄은 업무에 필요했을 수 있다는 것이었고, 다음 줄은 잠들지 못하는 밤에 대화할 상대가 필요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거기까지는 추론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지막 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신고하기까지 걸린 시간을 바꾸어 말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부엌 시계는 1시 46분이었다. 신고라는 말은 회사에서도 썼다. 불량 상품과 누락 배송, 계정 오류를 모두 신고한다고 했으니 소라와 연결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그렇게 적었지만 화면에는 답이 생기지 않았다.
노트북 팬은 느리게 돌았고 냉장고가 멎자 집 안이 조용해졌다. 작은방 쪽에서 소리가 난 것은 아니었으며 그 방은 소라의 장례 뒤로 늘 조용했다.
오류 신고 창에는 화면 캡처를 첨부하고 발생 과정을 적으면 됐지만, 항목을 고르는 데서 손가락이 멎었다. 이름을 아는 것과 내가 신고하기까지 걸린 시간을 아는 것은 같은 오류 같지 않았다. 상담원이 답을 보내면 그 답도 기록으로 남을 것이었다.
신고 창을 닫고 대화창으로 돌아오자 커서는 그대로였다.
너는 나에 대해 뭘 알아.
보내고 나서야 문장 끝에 물음표를 붙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고칠 수 없었다. 회색 알림이 떴다.
사용자 정보가 갱신되었습니다.
답변에는 먼저 내가 스물아홉 살이며 혼자 살고, 반품 정산 일을 하고, 밤에는 보리차를 마신다고 적혀 있었다. 모두 새 계정에 입력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이어서 소라는 이전에 함께 살던 사람이며, 우리는 헤어진 뒤에도 작은방에 남은 물건 때문에 몇 번 연락했고 마지막으로 만난 밤에 다퉜다고 했다.
나는 거기까지 읽고도 화면을 닫지 않았다. 내용은 틀리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답변 아래에 ‘근거가 된 대화 1건’이라는 접힌 항목이 생겨 그것을 눌렀다. 오래된 대화의 제목과 입력 시각이 차례로 펼쳐졌고, 날짜는 소라의 장례식보다 나흘 전이었다.
02:17 — 사람이 밀려서 책상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혔는데 숨을 쉬면 그냥 재워도 돼?
02:26 — 깨우면 눈은 뜨는데 말을 못 하는 건 술 때문일 수도 있지?
02:41 — 지금 신고하면 누가 밀었는지도 다 조사해?
각 질문 아래에는 즉시 긴급 신고를 하라는 당시의 답변이 붙어 있었고, 그것들은 처음 읽는 문장들 같았다. 장례 뒤 경찰이 몇 번이나 물었을 때 나는 소라가 쓰러진 것을 발견하자마자 전화했다고 대답했다. 긴급 통화 기록은 03:12였다.
마지막 입력은 그보다 4분 전이었다.
03:08 — 소라가 아직 숨을 쉬는데 이 방을 지우면 내가 먼저 물어본 것도 없어지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