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근한 계단
봉례가 그 집에 든 것은 그해 초가을이다. 언덕 중턱에 새로 앉은 이층 양옥으로, 아래층에 마루와 안방과 부엌이 있고 위층에 방이 셋 있어 동네에서는 그냥 양옥집이라 불렀다. 벽이 두껍고 창이 커서 한낮이면 마루가 발바닥에 따뜻했다. 처음 걸레질을 하던 날 봉례는 그 온기에 발을 뗐다. 스물몇 해를 남의 집 찬 부엌 바닥만 딛고 산 발이었다.
주인 내외는 젊었다. 나리는 은행에 다니는 서른 줄 남자로 말수가 적었고, 퇴근길에 군밤을 사 들고 와 아씨 앞에 슬그머니 밀어 놓는 사람이었다. 아씨는 스물서넛에 살결이 흰 이로, 식모를 부리는 데 서툴지 않았고 삯을 후하게 쳐 주었다. 김장 때는 봉례 옆에 나란히 앉아 소를 버무렸고, 서리가 내리기도 전에 솜버선을 지어 봉례 방에 들여놓았다. 발이 따뜻하면 겨울이 반은 수월하다고 했다. 봉례는 그 버선이 아까워 잘 신지도 못했다.
저녁이면 마루에 등을 밝히고 나리가 신문을 읽었다. 아씨는 그 곁에서 바느질을 하다가 나리가 소리 내어 읽는 대목에 이따금 낮게 웃었다. 부엌에서 설거지물에 손을 담근 채 봉례는 그 웃음을 들었다. 물은 차도 등 뒤가 훈훈한 집이었다. 오래 붙어살 집이라고 봉례는 그때 정했다.
계단은 현관 옆에서 위층으로 꺾여 올라갔다. 참나무 단이 열둘이고 중간에 좁은 계단참이 하나 있었다. 아씨는 그 계단참에 화분 두 개를 올려 두고 아침마다 물을 주었다. 잎이 도톰하고 붉은 꽃이 지지 않는 서양 화초였다. 이름을 물었더니 제라늄이라고, 겨울을 밖에서 못 나는 꽃이라고 했다.
첫서리가 온다는 말이 돌던 날, 봉례는 마당에 내놓았던 나머지 화분들을 안으로 들였다. 맨 구석 옹기 화분을 드는데 밑에서 쇠붙이가 하나 떨어졌다. 조그만 놋쇠 열쇠였다. 눌린 흙에 화분 앉았던 자리가 동그랗게 찍혀 있었다. 어제오늘 거기 둔 물건이 아니었다. 봉례는 열쇠를 행주치마에 닦아 품에 넣었다. 아씨에게 내놓을 셈이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집 안 공기가 이상하게 얼어 있어 말할 참을 놓쳤고, 한 번 놓친 말은 자꾸 놓쳐졌다.
공기가 언 것은 나리 때문이다. 나리는 그 무렵부터 밤에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봉례는 사랑방에 일거리가 밀려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밤 숭늉을 뜨러 나갔다가 현관 쪽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 나리가 계단 아래 어둠에 가만히 서서, 오르지는 않고, 수만 세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셈은 열둘에서 멎었다. 한참 만에 아주 낮게 열셋 하는 소리가 나고 사랑방 문이 닫혔다.
집 내력은 삯바느질로 드나드는 어멈한테서 들었다. 이 양옥을 지은 것은 윤 주사라는 이로, 관청에 오래 다니다 나온 돈으로 언덕을 사서 도면까지 제 손으로 그렸다고 했다. 집 짓는 내내 목수들을 들볶은 것이 계단이라는 것이다. 열세 단은 안 된다, 열셋은 목매다는 데나 쓰는 수다, 그래서 이 집 계단이 열둘이라 했다. 그 윤 주사가 작년 동짓달 열사흗날, 은행 빚에 집이 넘어가던 무렵에, 제가 짠 그 계단 난간에 목을 맸다. 어멈은 소리를 낮추었다. 도장 찍은 종이에 적힌 것보다 빚이 곱절로 불어 있더라고, 윤 주사가 죽는 날까지 억울하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다녔다고 했다. 집은 경매에 나왔고 그걸 헐값에 받은 것이 지금 나리라는 것이다. 어멈은 말끝에 하나를 보탰다. 혼담도 올봄에 저쪽에서 먼저 들어왔다더라, 집 얻고 색시 얻고, 복이 겹으로 굴러든 남자라고 했다.
봉례는 그 말을 오래 곱씹지 않았다. 남의 복이든 남의 흉이든 식모가 담아 둘 것은 아니었다. 열쇠는 그때도 품에 있었다.
나리가 봉례에게 말을 붙인 것은 동짓달 초입, 다리미질하던 아침이다. 숯불 다리미가 지나간 자리의 온기가 가시기도 전에, 나리는 마루 끝에 앉아 남의 말 하듯 말했다. 밤에 계단을 오르면 단이 하나 남는다고 했다. 열둘을 다 디뎠는데 발이 한 단을 더 찾는다는 것이다. 그 단은 밟히는 것부터 다르다고 했다. 밤이면 나무도 어는데 그 단만 미지근하다고, 꼭 사람 살을 딛는 것 같다고 했다. 나리는 그 말을 하며 웃었다. 눈이 반들반들했다. 겁내는 얼굴이 아니라 오래 기다린 것을 마중 나온 얼굴이어서, 봉례는 다리미 손잡이만 힘주어 쥐었다.
열사흗날까지만 견디면 된다고 나리는 덧붙였다. 죽은 사람도 한 해가 차면 산 사람을 놓아준다더라고 했다. 그런데 그것은 나리의 말투가 아니었다. 어디서 들은 말을 그대로 외워 옮기는 말투였다. 나리는 그 말을 하고 나서 아주 개운한 얼굴이 되어 손톱을 들여다보았다.
그 뒤로 나리는 낮에도 위층에 올라가지 않았다. 서재에 둔 서류를 봉례를 시켜 가져 내려오게 하고 마루에서 일을 보았다. 은행에서 사람이 다녀간 날은 저녁내 수저를 들었다 놓았다 했다. 국그릇을 쥔 손이 떨려 봉례가 밥상 모서리를 잡아 주었더니 손이 시려 그런다고 했는데, 아궁이를 세게 땐 날이라 방바닥이 절절 끓던 저녁이었다. 나리는 그날 밤 마당에 나가 한참을 섰다가 들어와, 봉례를 붙들고 웃으며 말했다. 이레 남았네. 엿새 뒤면 다 지나가네. 셈이 어긋난 것을 봉례는 바로잡지 않았다. 나리의 셈은 늘 하루씩 빨랐는데, 마치 하루라도 당겨 그날에 닿고 싶은 사람 같았다.
동짓달로 접어들자 추위가 하루 한 켜씩 내려앉았다. 마루가 발바닥을 밀어냈고 걸레는 널기가 무섭게 뻣뻣해졌다. 위층은 더했다. 불기가 없어 계단을 반만 올라도 찬 기운이 정강이를 감고 올라왔다. 아씨는 그 찬 위층에서 혼자 자면서도 춥다는 말을 하는 법이 없었다. 아침이면 계단참의 제라늄에 물을 주고 마른 잎을 따고, 그 붉은 꽃 곁에 한참을 서 있다 내려왔다.
아씨는 이 집 살림에 낯설어하는 데가 없었다. 비가 오면 뒷문이 불어 안 열리는 것을 첫 비가 오기도 전에 알았다. 광 선반이 한 뼘 높은 것도, 계단 일곱째 단이 유난히 우는 것도 알았다. 새로 든 안주인이 아니라 오래 비웠다 돌아온 사람처럼 몸에 익어 있었다. 봉례는 그것을 아씨가 총명한 덕으로 돌렸다. 친정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는데, 아씨가 제 입으로 친정을 올리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저녁상 시중을 들다가 아씨가 나리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국이 식겠다는 말끝에 아무렇지도 않게, 이 집 계단이 열두 단이라더군요, 지은 이가 열셋을 그리 꺼렸다더군요, 하고는 수저를 들었다. 나리의 국그릇에서 김이 오르다 말았다. 나리는 그 말에 대꾸를 못 하고 아씨의 흰 얼굴만 건너다보았다. 그날 밤도 사랑방 문은 일찍 닫혔다.
기일까지 이레 남은 밤에 봉례는 또 세는 소리를 들었다. 뒷간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하나, 둘, 셋. 그런데 소리는 사랑방 쪽이 아니라 계단 위쪽 어둠에서 내려왔다. 나리의 것이라기에는 가늘었다. 잠결에 잘못 들었다고 봉례는 정해 버렸다. 그렇게 정하는 편이 발이 덜 시렸다. 그 밤 위층에서는 늦도록 바느질 기척이 났다. 실이 팽팽하게 당겨졌다가 잇새에서 톡 끊기는 소리가 조용한 집에서는 이상하리만치 크게 들렸다.
사흘 남은 날에는 아씨가 심부름을 시켰다. 빨랫줄이 삭았으니 새로 한 타래 끊어 오라는 것이다. 마당 빨랫줄은 지난달 봉례가 제 손으로 갈아 맨 것이었다. 그 말을 하려다가 아씨의 낯을 보고 그만두었다. 아씨는 웃고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은 부드러운 웃음인데, 그날은 그 웃음이 방 안의 온기를 슬슬 걷어 가는 것 같았다. 봉례가 철물점에서 끊어 온 삼줄 한 타래는 뻣뻣해서 손안에서 저 혼자 버스럭거렸다. 아씨는 그것을 받아 들며 고맙다고 했다. 그 줄이 마당에 걸리는 일은 없었다.
기일 전날 밤, 봉례는 품에서 열쇠를 꺼냈다. 달포를 몸에 붙이고 다닌 쇠는 살 온도로 미지근했다. 그 미지근한 것이 손바닥에 얹히는 순간 나리가 말한 계단이 떠올라, 봉례는 하마터면 열쇠를 놓칠 뻔했다.
위층 북쪽 끝방은 이사 올 때부터 잠겨 있었다. 전 주인 살림살이가 남았다는 방이었다. 열쇠장이를 부른다 부른다 하는 사이 석 달이 갔고, 나리는 그 방 앞을 지날 때면 걸음이 빨라졌다. 봉례는 등잔을 들고 계단을 올랐다. 일곱째 단이 울었다. 열둘을 디디고 복도 끝까지 가서 자물쇠에 열쇠를 꽂자, 두어 번 헛돌던 쇠가 물리는 손맛이 왔다.
방 안은 복도보다 더 추워서, 문을 여는데 찬 기운이 물처럼 발등을 타넘었다. 책상이 하나, 벽에 세워 둔 널빤지가 몇 장, 책상 위에는 종이 뭉치가 문진에 눌린 채 그대로였다. 등잔을 대고 보니 같은 문장을 몇 번이고 고쳐 쓴 초고였다. 찍힌 도장은 제 것이 틀림없으나 액수가 다릅니다, 하는 문장이 장마다 있었다. 어느 장에는 은행 서기 최현도라는 이름이 적혔다가 먹으로 지워지고 다시 적혀 있었다. 최현도는 나리의 이름이었다.
서랍에는 사진이 한 장 들어 있었다. 의자에 앉은 중년 남자 곁에 열예닐곱 된 처녀가 선 것이다. 남자는 모르는 얼굴이었다. 처녀는 아는 얼굴이었다. 예닐곱 해 어릴 뿐, 아침마다 계단참에서 마른 잎을 따는 바로 그 얼굴이었다. 사진 뒤에 붓글씨가 있었다. 정혜 열일곱. 나리가 안방에 대고 아씨를 부르는 이름이 정혜였다.
봉례는 등잔을 든 채 오래 서 있었다. 창밖 언덕 아래로 동네 불빛이 하나씩 죽어 가는데, 그 방만 겨울 웅덩이처럼 고여 있었다. 만져지는 것은 모두 이승의 물건이었다. 종이와 사진과 먹 자국. 봉례는 사진을 서랍에 도로 넣고 문을 잠그고 열쇠를 품에 넣었다. 내려오면서 저도 모르게 단을 셌다. 열둘이었다. 열둘이 맞는데도, 제 방에 들어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오래 떨었다.
날이 밝고 나서 봉례는 나리에게 그 방 이야기를 할 참으로 몇 번이나 부엌을 나섰다가 도로 들어왔다. 마당에서 마주친 나리는 하늘이 맑다고, 오늘로 다 끝난다고, 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세수를 하고 손톱을 깎아, 먼 길 나서는 사람처럼 정갈했다. 그 웃는 낯에 대고 놓을 수 있는 말이 봉례에게는 없었다. 아씨 이야기는 더구나 없었다. 식모가 안주인을 입에 올리는 것은 제 밥그릇을 엎는 일이다. 오갈 데 없는 겨울이었고 삯은 후했다. 봉례는 부엌으로 돌아와 아궁이에 불을 넣었다. 부지깽이 쥔 손이 자꾸 헛나갔다.
말을 해야 할 상대는 나리가 아니라 순사였고, 봉례도 그것을 알았다. 그러나 식모가 관가를 찾아가 안주인이 죽은 이의 딸이더라고 고하는 그림은 봉례의 머릿속에서 끝까지 그려지지 않았다. 그려지는 것은 그다음, 종이 한 장 없이 안주인을 걸었다가 도로 쫓겨나는 제 모습이었다. 봉례는 그 그림 앞에서 늘 걸음을 돌렸다.
열사흗날은 그해 들어 가장 추운 날이다. 낮부터 바람이 문풍지를 물어뜯었고 부엌 물독에는 살얼음이 앉았다. 나리는 저녁을 반 그릇도 비우지 않았는데 얼굴만은 환했다. 아씨는 여느 밤처럼 바느질감을 안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일곱째 단이 한 번 울고, 집이 조용해졌다.
봉례는 자지 않았다. 부뚜막에 붙어 앉아 아궁이에 남은 불기에 손을 쬐며 밤이 깊어 가는 것을 들었다. 자정이 넘고 바람이 크게 한 번 몰아치고 난 뒤, 현관 쪽에서 소리가 났다.
하나. 둘. 셋.
나리의 목소리였다. 이번에는 아래에서 세는 것이 아니라 오르면서 세고 있었다. 단이 눌리는 소리가 셈을 하나씩 따라 올라갔다. 일곱에서 나무가 울었다. 열, 열하나, 열둘. 셈이 멎었다.
봉례는 부엌 문틀을 붙잡았다. 등잔에 불 붙일 생각도 못 했다.
길고 긴 정적 끝에, 계단 위 어둠에서 가는 목소리가 내려왔다.
열셋.
나리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나무가 크게 울고, 무엇이 허공에서 팽팽하게 당겨지는 소리가 뒤를 이었다. 봉례가 등잔을 켜 들고 마루로 나갔을 때, 계단 위 어둠에 나리가 있었다. 두 발끝이 가지런히 모여, 열두 번째 단 바로 위, 다음 단이 있어야 할 자리의 허공을 사뿐히 디디고 있었다. 새 삼줄이 이층 난간에서 팽팽했다. 등잔불이 흔들려서, 발끝은 정말로 보이지 않는 한 단을 딛고 가만히 선 것처럼 보였다. 나리는 마지막까지 그 미지근한 단을 찾아낸 얼굴이었다.
계단 꼭대기에 아씨가 서 있었다. 자다 나온 매무새가 아니었다. 낮에 입던 옷 그대로,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지지 않은 채였다. 아씨는 난간 아래를 잠깐 내려다보고, 그다음에 봉례를 내려다보았다. 등잔 빛이 못 미치는 데서 얼굴은 희게만 보였다.
내려가서 순사를 불러오게. 아씨가 말했다. 국이 식겠다고 하던 저녁의 그 목소리였다.
순사와 의사가 다녀갔고 나리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처리되었다. 은행에서 온 사람들은 고인이 근래 심기가 많이 상해 있었다고 수군거렸다. 작년에도 이 계단에서 사람이 갔다는데, 하고 말을 잇던 젊은 행원은 곁의 눈짓에 입을 다물었다. 상을 치르는 동안 아씨는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소복이 저리 잘 받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문상 왔던 바느질어멈이 부엌에서 말하다가 제 입을 제 손으로 쳤다.
봉례는 그 집에 남았다. 오갈 데가 마땅치 않았고 삯이 후했다. 무엇보다 아씨가, 겨울이 깊어 살림에 익은 사람을 새로 들일 철이 아니라며 남으라 했다.
장례 지나고 처음 맞는 아침에 봉례는 아씨가 계단참에서 제라늄 화분을 드는 것을 보았다. 아씨는 화분을 들어 그 밑자리를 손바닥으로 한 번 쓸고 도로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는 얼굴로 마른 잎을 땄다. 돌아서던 아씨와 마루 아래 봉례의 눈이 마주쳤다. 아씨가 웃었다. 솜버선을 들여놓아 주던 날의 그 웃음이었다.
겨울에도 꽃이 지지 않게 잘 부탁하네. 아씨가 말했다.
봉례의 품속에서 열쇠가 살 온도로 미지근했다. 봉례는 그것을 그 뒤로도 버리지 못하고 내놓지도 못한 채 지니고 살았다. 계단이라는 것을 오를 때면 남의 집 계단이라도 저도 모르게 수를 세는 버릇이 들었다. 열둘 안에 끝나는 계단만 마음이 놓였다. 셈이 그 위로 넘어갈 것 같으면 마지막 단은 숨을 참고, 발바닥에 닿는 것이 행여 미지근할까 봐 한겨울에도 발끝으로 먼저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