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기

그이가 나온다는 통지서를 받은 건 사흘 전이었다.

법무부 도장이 찍힌 종이에는 만기 출소라는 말이 있었다. 형기를 다 채웠다는 뜻이다. 25년. 그 사람이 갇혀 있던 세월이 그만큼이다. 나는 그 숫자를 손끝으로 짚어 보았다. 25년이면, 세 살이던 우리 막내가 시집갈 나이가 되고도 남는 시간이고, 남편이 나를 떠나 다른 여자와 새살림을 차렸다가 그 여자와도 갈라서기에 충분한 시간이며, 내 머리가 온통 세기에 알맞은 시간이다. 그동안 나는 하루도 그 사람을 잊은 적이 없다.

부엌에서는 젓갈 냄새가 났다. 나는 밥상을 차리는 중이었다. 반찬은 다섯 가지인데, 그중 하나를 나는 유난히 상 가운데 놓는다. 갈치속젓이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은 늘 그이 앞자리로 밀어 놓게 된다. 그 여름밤, 그 사람 몸에서 나던 냄새가 딱 그 젓갈 냄새였기 때문이다. 짜고 비리고, 오래 삭은 냄새.

그 밤 이야기를 해야겠다.

남편은 조합 일로 읍내에 나가 사흘째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 집은 마을에서도 한참 떨어진 산 밑이라, 밤이 되면 개구리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소리를 질러도 들을 사람이 없는 집. 나중에 안 것이지만, 그이는 그런 집만 골랐다. 큰애가 다섯 살, 작은애가 세 살이었다. 애들을 재우고 나도 막 등을 붙였는데, 마당에서 자갈 밟는 소리가 났다.

문고리를 잡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복면을 쓴 남자가 서 있었다. 손에 든 칼이 부엌 백열등에 번득였다. 냄새가 먼저 들어왔다. 갈치속젓 냄새. 짜고 비린 그 냄새가 방 안에 확 퍼졌다.

남자는 돈을 내놓으라고 했다. 패물을 내놓으라고 했다. 나는 장롱 밑을 뒤져 그동안 모은 것을 다 꺼냈다. 그러면서도 애들 쪽은 보지 않았다. 애들 얼굴을 보면 내가 무너질 것 같아서, 나는 이불 밑에 애들을 밀어 넣고 무슨 일이 있어도 눈 감고 있으라고만 했다. 작은애가 이불 밑에서 훌쩍이자 남자의 고개가 그쪽으로 홱 돌아갔다. 나는 얼른 남자의 소매를 붙들어 패물 보따리를 안겼다. 애 쪽으로 가려는 그 몸을 내 몸으로 막았다.

남자는 물건을 챙기면서도 칼끝으로 자꾸 나를 툭툭 건드렸다. 어깨를, 목덜미를. 겁을 주려는 게 아니라 재는 것 같았다. 살릴지 말지를.

살려 달라고 빌었다. 집에 있는 건 다 가져가도 좋으니 목숨만 살려 달라고. 신고하지 않겠다고. 그러자 남자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자기가 안 잡힌 이유를 아느냐고, 남자가 물었다.

한 번도 아무도 살려 두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딱 한 번, 아주 오래전에 잡힌 적이 있는데, 그때는 살려 주면 신고하지 않겠다는 말을 믿었다가 그랬다고. 그 뒤로는 믿지 않는다고 했다. 산 사람은 반드시 입을 연다고. 그러니 미안하지만, 하고 남자는 칼을 고쳐 쥐었다.

나는 그때 무슨 말을 했는지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냄새까지 기억한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당신은 나한테 강도가 아니라고. 우리 애들한테 엄마를 돌려준 사람이라고. 당신이 우리를 살려 주면 나는 평생 당신을 목숨의 은인으로 여기겠다고. 세상에 어떤 자식이 제 어미 목숨을 구해 준 사람을 신고하겠느냐고. 은인을 어떻게 경찰에 넘기느냐고. 나는 죽는 날까지 당신한테 고마워하며 살 거라고, 그건 신고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라고. 사람 마음이 한번 그렇게 되어 버리면, 그 사람은 절대로 은인을 못 판다고.

거짓말이 아니었다. 나는 그 순간 정말로 그렇게 믿기로 마음을 먹었다. 살아야 했으니까. 애들을 살려야 했으니까.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정말로 은인을 바라보는 눈으로 그 복면을 올려다보았다. 그 눈빛이 진짜가 아니었다면 그 사람이 몰랐을 리 없다. 그런 사람은 살려 달라고 우는 거짓 눈빛을 수백 번은 봤을 테니까. 그리고 그 사람은, 그 수백 번 중에 진짜를 하나쯤은 봤을 것이다. 그날 내 눈이 그 진짜였다.

한참을 서 있던 남자가 칼을 내렸다. 이번 한 번만 다시 믿어 보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마당의 자갈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냄새만 오래 남았다.

나는 약속을 지켰다.

날이 밝고 파출소에서 순경이 왔을 때, 나는 아무것도 못 봤다고 했다. 복면을 써서 얼굴을 못 봤고, 키도 모르겠고, 목소리도 기억이 안 난다고. 손에 잡힐 만한 것은 하나도 주지 않았다. 순경이 몇 번을 캐물어도 나는 고개만 저었다.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정말로, 그 사람을 팔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문제는 남편이었다.

읍내에서 돌아온 남편은 처음엔 나를 끌어안고 울었다. 식구가 하나도 안 상한 걸 하늘에 감사하다고 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눈빛이 달라졌다. 밤마다 내게 물었다. 어떻게 그런 놈이 순순히 물러갔느냐고. 강도가 든 집에서 애 하나 안 다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내가 그 밤의 이야기를 낱낱이 해 주자, 남편은 더 견디지 못했다. 제 처가 칼 든 놈을 은인이라 불렀다는 것을, 그 말이 입에서 나온 꾀가 아니라 진심이었다는 것을, 남편은 도저히 삼키지 못했다.

당신, 그놈이 또 어느 집에 들면 어쩔 거냐고 남편은 소리쳤다. 그 집 애들은 누가 살려 주느냐고. 당신 손으로 살린 우리 애들 목숨값이, 다음 집 애들 목숨이냐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그 밤에 우리 애들만 생각했지, 다음 집은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그 생각을 처음 했고, 곧 그 생각을 마음 깊은 곳에 묻어 버렸다. 묻지 않으면 내가 살 수 없었으니까.

그해가 다 가기 전에 그 사람이 잡혔다.

텔레비전에서 봤다. 여러 집을 털고 여러 사람을 해친 강도가 잡혔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화면 속 그 체구와, 자막으로 지나가는 수법을 보고 대번에 알았다. 그이였다. 살려 준 집이 우리뿐인 줄 알았는데, 잡히고 보니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죽은 줄 알았던 피해자 중 하나가 살아남아 입을 열었다고 했다.

나는 신고하지 않았다. 끝까지. 하지만 경찰서에서 다시 나를 불렀을 때, 나는 남편이 그 사이 무슨 말을 하고 다녔는지 알게 되었다. 우리 집도 그 강도가 들었던 집이라는 것을, 남편이 어디선가 흘린 것이다. 나는 조사실에 앉아서도 아무 증언을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우리 애들의 목숨을 살려 준 은인이니까. 조서에는 기억나는 게 없다는 말만 스무 번쯤 적혔다. 형사가 책상을 치며, 아주머니 지금 살인범을 감싸는 거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이 사람은 나한테 살인범이 아니라고. 세상 사람들한텐 몰라도, 우리 집 밥상에서만은 아니라고.

집에 돌아온 날,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이었느냐고. 남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게 대답이었다. 그해 가을에 우리는 갈라섰다. 남편은 내가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칼 든 놈한테 정을 준 여자와는 한 이불을 못 덮겠다고 했다. 나는 붙잡지 않았다. 그이를 판 사람과 나는, 이제 한집에 살 수 없었다. 남편은 옳았고, 나는 옳은 사람과 사는 법을 잊은 지 오래였다.

재판이 열리던 겨울, 나는 증인으로 불려 갔다.

방청석에는 그이가 해친 사람들의 식구가 앉아 있었다. 어떤 젊은 여자는 그이 손에 죽은 제 어머니의 영정을 품에 안고 있었고, 어떤 노인은 재판 내내 소리 없이 어깨를 떨었다. 그 죽은 사람들 중에는,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마을의 일가족도 있었다. 우리가 겪기 얼마 전에 그이가 든 집이라고 했다. 그 집에도 아이가 둘 있었는데, 그 집 어미는 아이들을 이불 밑에 숨겨 주지 못했던 모양이다.

검사가 나에게 물었다. 그 밤에 무엇을 보았느냐고. 나는 그 얼굴들을 하나하나 마주 보면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목이 멨지만 말은 또렷했다. 그날 밤 그 부엌에서 나를 살린 것도 저 사람이고, 저 방청석의 울음을 만든 것도 저 사람이었다. 나는 둘 다 알면서 나를 살린 쪽만 붙들었다. 저 집 아이들은 이불 밑에 숨지 못했고, 우리 애들은 숨었다. 같은 손이 한 집은 그냥 두고 갔고 다른 집은 두고 가지 않았는데, 그 차이는 내가 빌었다는 것 하나뿐이었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집에 돌아와 그해 담근 갈치속젓 항아리를 열어 보았다.

그렇게 25년이 갔다.

나는 애들을 혼자 키웠다. 큰애는 도시로 나갔고 작은애는 결혼해 멀리 산다. 애들은 그 밤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불 밑에서 눈을 감고 있었으니까. 나는 한 번도 그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다. 다만 나는 명절이면 갈치속젓을 담갔다. 애들은 왜 아무도 안 먹는 젓갈을 해마다 담느냐고 핀잔을 줬다. 나는 그냥 웃었다. 그 냄새가 나면 나는 아직도 그 밤의 부엌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짜고 비린 냄새 속에서, 칼을 내리던 그 손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동안 나는 그 사람을 미워한 적이 없다. 이상한 일이다. 나한테 칼을 들이댄 사람인데. 그런데 세상 누구도 나한테 그렇게 큰 것을 준 적이 없다. 남편도, 자식도, 결국은 저 살자고 나를 떠나거나 나를 잊었는데, 그이는 마음만 먹으면 가져갈 수 있었던 내 목숨을, 내 애들의 목숨을 그냥 두고 갔다. 그 빚은 갚아지지도 않고 잊히지도 않았다. 나는 그 빚을 25년 동안 이자까지 쳐서 마음에 쌓아 두었다. 가끔은 그이가 감옥에서 나만은 기억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끝까지 저를 팔지 않은 그 산 밑 집을.

한번은 큰애가 다녀가다가, 엄마는 이 비린 걸 뭐가 좋다고 해마다 담그느냐고 상에서 젓갈 종지를 물렸다. 나는 하마터면 다 말할 뻔했다. 네가 다섯 살이던 그해 여름밤에 이 냄새가 너를 살렸다고. 이불 밑에서 눈 감고 있으라던 그 밤에, 이 냄새 나는 손이 네 머리맡에서 칼을 내렸다고. 그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삼켰다. 삼키고, 남은 젓갈을 냉장고 맨 안쪽에 도로 넣었다. 애들은 몰라야 했다. 이 빚은 내 것이지 애들 것이 아니니까.

통지서를 받고 이레째 되던 날, 이웃 마을에서 사람이 상했다는 말이 돌았다.

밤에 누가 든 집이 있는데, 옛날 그 강도 사건에서 증언을 했던 집이라고 했다. 큰길가 방앗간 집. 그 시절 파출소에 그 강도의 걸음걸이를 일러 준 집이었다. 그다음 밤에는 아랫마을 어느 집이 또 그랬다. 역시 그때 뭔가를 말한 집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25년 전 그 강도가 나와서, 자기를 신고하고 증언한 집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다닌다고 수군거렸다. 그 오랜 세월을 어떻게 다 기억하고 있느냐고 무서워했다.

나는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상을 차렸다. 갈치속젓을 새로 꺼내 상 가운데 놓았다. 그이는 자기를 판 집만 찾아다닌다. 그 사람의 셈법은 25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판 사람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고, 끝까지 믿어 준 사람은 건드리지 않는다. 이 마을에서 그 사람을 팔지 않은 집은, 조서에 끝내 아무것도 적지 않은 사람은, 나 하나다.

간밤에 마당에서 자갈 밟는 소리가 났다.

나는 불을 켜지 않았다. 문고리를 잡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냄새가 먼저 들어왔다. 짜고 비리고 오래 삭은 냄새. 그 여름밤과 똑같은 냄새. 다만 이번에는 복면이 없었다. 늙은 남자의 맨얼굴이 어둠 속에 있었다. 나는 그 얼굴을 처음 보는데도 알아보았다.

나는 앉으라고 했다. 밥상을 그 앞으로 밀었다. 그리고 갈치속젓을 그이 앞으로 한 번 더 밀어 놓았다. 늘 하던 대로. 이 집에서 이 반찬은 언제나 그이 몫이었으니까. 25년을 그렇게 상 가운데 놓아 왔으니까.

그이는 아무 말 없이 수저를 들었다. 나는 맞은편에 앉아 그 손을 보았다. 칼을 내리던 그 손. 이제는 젓가락으로 내가 밀어 준 젓갈을 집는 그 손. 나는 또 젓갈 종지를 그이 쪽으로 밀었다. 자꾸만 밀었다. 손이 저절로 그렇게 움직였다. 그이는 사양하지 않고 다 받아먹었다. 은인이 은혜를 받아 주듯이.

밥을 다 먹고 그이가 나를 보았다. 그 눈은 25년 전, 나를 재던 그 눈이었다. 살릴지 말지를 재던 눈. 나는 그 눈을 마주 보며 웃었다. 정말로 은인을 바라보는 눈으로. 그 여름밤에 지었던, 그 진짜 눈으로.

이제 이 사람은 갈 데가 없을 것이다. 나온다는 통지서에는 나가서 살 곳을 적는 칸이 있었을 텐데, 거기 우리 집 주소가 적혀 있지 않았을까. 세상에 그이를 팔지 않은 집은 여기 하나뿐이니까. 은인은 은혜 갚을 사람을 찾아오는 법이니까.

나는 내일 아침에도 이 상을 차릴 것이다. 갈치속젓을 상 가운데 놓고, 자꾸만 그이 앞으로 밀 것이다. 죽는 날까지. 그렇게 하기로, 나는 그 여름밤에 이미 약속했다. 평생 당신을 은인으로 여기겠다고, 내 입으로 그렇게 말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