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사연
복귀 첫날.
퇴근하고 오면 집이 따뜻하다. 그걸 제일 먼저 안다. 현관 센서가 불을 켜기도 전에, 복도의 찬 공기와 집 안 공기의 온도 차이가 손등에 먼저 닿는다. 누군가 나보다 먼저 와서 보일러를 올려놓았다는 뜻이다.
동생이다.
"언니 왔어?"
방에서 목소리가 났다. 대답 대신 신발을 가지런히 놓는데, 종일 돌덩이 같던 어깨가 그 목소리 하나에 스르르 풀렸다. 이상하지. 서른이 넘도록 나는 이 애 목소리 앞에서만 어린애가 된다.
밥 냄새가 났다. 된장을 풀었는지 부엌이 훈훈했다. 나는 손을 씻으면서 오늘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떠들었고, 동생은 방에서 그걸 다 들었다는 듯 맞장구를 쳤다. 팀장이 나를 대하는 게 어색하더라고, 다들 나만 보면 말을 조심하더라고, 그런 얘기.
"원래 그래. 시간 지나면 괜찮아져."
동생이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좋아서 한참을 물끄러미 서 있었다.
회사에서 준 손목 밴드가 그때 짧게 울었다. 복귀 프로그램이라는 거다. 병가가 길었던 사람한테 회사가 채워주는 건데, 심박이랑 수면이랑 뭔지 모를 '정서 안정 지수'를 잰다고 했다. 화면에 작은 글씨가 떴다.
*동거인이 확인되지 않습니다.*
나는 밴드를 소매로 덮었다. 기계가 뭘 알겠어, 하고 부엌에서 끓는 국을 보러 갔다.
—
그 주는 그냥 흘러갔다.
동생은 아침이면 없고 저녁이면 있었다. 나는 그 리듬이 편했다. 출근길에 굳이 깨우지 않아도 되고, 퇴근하면 늘 먼저 와 있으니까. 냉장고를 열면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 늘 앞줄에 있었다. 어릴 때부터 이 애는 남 챙기는 걸 자기 챙기는 것보다 잘했다.
앞집 아주머니를 복도에서 마주쳤다. 오래 산 이웃이라 늘 살갑던 사람인데, 그날은 나를 보더니 흠칫했다. 눈이 잠깐 커졌다가, 뭔가 삼키듯 목젖이 움직였다.
"…이제, 출근해요?"
"네, 이번 주부터요."
"그래요. 잘했어요. 잘…"
아주머니는 말끝을 흐리며 서둘러 문을 닫았다. 조금 서운했지만, 다들 내 사정을 어렴풋이 아니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다.
현관 앞에 내가 시킨 적 없는 택배가 하나 와 있었다. 송장에 동생 이름이 찍혀 있었다. 얘는 요즘도 이런 걸 시키는구나, 하고 상자를 들이니 겨울 수면양말 두 켤레가 들어 있었다. 똑같은 걸로 두 개. 얘는 뭘 사도 꼭 두 개씩 산다.
밤에 라디오를 틀었다. 회사 다니기 전부터 든 버릇이다. 요즘 심야방송은 사람이 진행하지 않는다. 사람 같은 목소리로 밤새 청취자 사연을 읽어주는 건 기계여서, 억양이 너무 고르고 숨을 안 쉰다. 나는 그 숨 안 쉬는 목소리가 오히려 편했다. 위로하려 들지 않아서.
그날 사연 중에 이런 게 있었다.
*여름밤에 남매가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났습니다. 둘 다 그 자리에서.*
나는 잠깐 손을 멈췄지만 채널을 돌리지는 않았다. 그런 사연은 세상에 많으니까. 라디오는 다음 사연으로 넘어갔고, 나는 잠들었다.
—
동생이랑 오래 얘기한 밤.
무슨 얘기였는지 다 기억나진 않지만, 어릴 때 얘기였던 것 같다. 셋이 한방에서 자던 시절. 나는 벽 쪽, 얘네는 가운데. 겨울이면 발이 시려서 서로 발을 포갰다.
"언니 발은 늘 차가웠잖아."
동생이 웃었다. 맞아, 나는 손발이 차. 근데 이상하지. 그날 얘기하는 내내 나는 얘 손을 한 번도 못 잡았는데, 잡으려고 하면 얘가 먼저 장난처럼 몸을 뺐다.
자기 전에 오래된 것부터 요즘 것까지 사진첩을 넘겼다. 그런데 아무리 넘겨도 동생이 나온 사진이 없었다. 최근 것일수록 없었고, 나 혼자 찍힌 것과 풍경뿐이었다. 내가 얘를 안 찍었나 보다, 늘 옆에 있으니까 굳이.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사진첩을 덮었다.
주말엔 같이 시장에 갔다. 나는 장을 잔뜩 봤다. 두부도 두 모, 계란도 두 판, 얘가 좋아하는 어묵도 넉넉히.
"혼자서 뭘 이렇게 많이 사?"
단골 반찬가게 아주머니가 물었다. 나는 웃으면서 동생 쪽을 돌아봤는데, 동생은 저만치 앞서 걷고 있었다.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얘는 늘 나보다 몇 걸음 앞에 있었다. 뒤돌아보지 않고.
"동생이랑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아주머니의 얼굴에서 웃음이 천천히 걷혔다. 손에 든 봉지를 나한테 건네는 손이 조금 떨렸다. 나는 그걸 못 본 척했다.
—
라디오에서 그 사연이 또 나왔다.
여름밤, 차, 남매, 둘 다 그 자리에서.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읽는 목소리가 달랐다. 저번엔 낮은 여자 목소리였는데 이번엔 조금 더 젊은 목소리였다. 기계는 사연마다 목소리를 바꿔 읽으니까 그럴 수 있다.
이상한 건 그다음이었다.
그 사연이 끝나자마자, 바로 다음 사연으로 똑같은 게 또 나왔다. 여름밤, 차, 남매, 둘 다 그 자리에서. 이번엔 처음 그 낮은 목소리로. 같은 밤에, 같은 사연이, 두 번. 두 사람이 각자 보낸 것처럼.
나는 밴드를 봤다. 심박수가 올라가 있었다. 화면에 또 그 글씨가 떴다.
*혼자 계신가요? 괜찮지 않다면 상담을 연결할 수 있습니다.*
방에서 동생이 물었다.
"언니, 뭐 들어?"
"…라디오. 어떤 사연이 두 번 나와서."
"그런 거 원래 신청 많이 들어오면 겹쳐서 나와. 별거 아니야."
동생 목소리가 하도 태연해서 나도 그런가 보다 했다. 라디오를 끄고 누웠다. 그런데 불을 끄고 나서도 그 문장이 자꾸 돌았다. 둘 다 그 자리에서. 둘 다. 그 자리에서.
—
회사 상담사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것도 기계다. 요즘은 상담도 처음엔 기계가 받는데, 다정하게 설계된 목소리가 사람보다 더 사람 같다.
"복귀는 어떠세요? 밴드 기록을 보니 밤에 잠을 잘 못 주무시는 것 같아요."
"동생이 챙겨줘서 괜찮아요."
전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했다. 기계는 원래 뜸을 안 들이는데, 그 침묵이 부자연스럽게 길었다.
"…동생분이요."
"네. 저녁마다 밥도 해놓고, 저 오면 반겨주고."
"…그렇군요."
상담사는 다음 일정을 잡자고 했고, 나는 알겠다고 하고 끊었다. 끊고 나서 이상하게 손이 떨렸는데, 왜 떨리는지 나는 몰랐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이상한 걸 눈치챘다.
동생이 방에 있는데, 부엌에서도 소리가 났다. 도마질 소리. 나는 방에 대고 물었다. "너 지금 방에 있어?" "응, 왜?" 그런데 부엌에서도 도마질이 이어졌다. 나는 방문을 열지도, 부엌으로 가지도 않았다. 그냥, 쌍둥이니까 그렇지, 하고 넘겼다.
쌍둥이.
그 단어를 쓰고 나서 나는 좀 멍했다. 맞다. 얘네는 둘이었지. 왜 자꾸 하나로만 생각했을까. 방에 있는 애가 있고, 부엌에 있는 애가 있고. 둘인데. 나는 한 번도 둘을 같이 본 적이 없었다.
한 번도.
—
앞집 아주머니가 반찬을 두고 갔다.
문 앞에 락앤락 통이 쌓여 있었다. 그 위에 쪽지 한 장.
*혼자 지내느라 얼마나 힘드니. 밥 잘 챙겨 먹어. 아줌마가 늘 마음 쓰고 있어.*
나는 그 쪽지를 오래 봤다. 혼자라니, 나는 혼자가 아닌데. 순간 화가 치밀었다. 다들 왜 나를 혼자라고 하지. 동생이 매일 밥을 해주는데, 오늘도 부엌에서 도마질을 하고 있는데.
밴드가 울었다. 심박 이상. 나는 밴드를 풀어서 서랍에 넣어버렸다.
그날 밤 라디오를 다시 틀었다. 그 사연이 또 나올까 봐 무서우면서도 궁금했다. 자정이 지나고, 그 낮은 목소리가 사연 하나를 읽기 시작했다.
*여름밤에 남매가 차를 타고 가다가—*
그리고 방송이 끊겼다. 잡음. 몇 초. 다시 이어졌을 땐 다른 사연이었다. 나는 라디오를 껐다. 어둠 속에서 방문 틈으로 동생의 규칙적이고 따뜻한 숨소리가 들렸고,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겨우 잠들었다.
자기 전에 동생이 문틈으로 말했다.
"언니, 요새 얼굴 좋아졌다. 이제 진짜 괜찮아 보여."
나는 그 말이 참 좋았다. 정말로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
그리고 어젯밤.
퇴근하고 집에 오니 여느 때처럼 따뜻했다. 방에 동생이 있었다. 팀장이 오늘은 나한테 웃어줬다고, 이제 좀 사람들이 편해진 것 같다고, 나는 신이 나서 떠들었고, 동생은 방문을 반쯤 열고 침대에 앉아 그걸 다 들어줬다.
얘기하다 보니 목이 말라, 나는 혼자 부엌에 가서 컵에 물을 받아 마셨다. 차가운 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는 게 선명했다.
그때 부엌 안쪽, 베란다 문이 열렸다.
거기서 동생이 걸어 나왔다.
방금 방에 두고 온 동생이, 부엌 베란다에서.
나는 컵을 떨어뜨렸다. 그 소리에 방에 있던 동생이 소리쳤다.
"언니! 무슨 일이야?"
내 앞에, 부엌에 서 있는 동생도 동시에 소리쳤다.
"언니, 저 방에 있는 건 뭐야?"
둘 다 소리쳤다. 방에서, 부엌에서. 똑같은 목소리로. 그런데 아무도 서로에게 가지 않았다. 방에 있는 애는 방문을 열고 나오지 않았고, 부엌에 있는 애는 방으로 달려가지 않았다. 둘 다 그 자리에 선 채로, 저쪽에 있는 게 뭐냐고 나한테만 물었다. 둘 다 표정이 이상했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뭔가를 참는 얼굴.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무서웠다. 이게 뭔지 몰라서. 왜 둘이 서로를 보지 않는지 몰라서. 나는 바닥에 웅크려 울었다. 오래.
한참을 그러다 눈물을 닦고 고개를 들었다.
둘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부엌 애랑 방 애가, 어느새 나란히 서서. 똑같은 얼굴로. 똑같이 웃으면서. 그 웃음이 어찌나 따뜻하던지, 나는 순간 안심이 됐다. 아, 하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너희 쌍둥이였지."
그래, 쌍둥이. 얼굴이 똑같아서 늘 하나로만 봤던 거야. 방에도 부엌에도 있었던 게 당연하지, 둘이니까. 나는 웃었다. 왜 그 간단한 걸, 어떻게 이렇게 오래 못 깨달았을까.
그렇게 웃다가.
둘이 동시에 손을 뻗어 내 뺨을 감쌌다. 네 손이 내 얼굴을 덮었다. 네 손 다.
차가웠다.
한여름인데도, 보일러를 아무리 올려도 이 집이 왜 늘 어딘가 서늘했는지, 내 발이 왜 늘 시렸는지, 그 손이 왜 늘 나를 피했는지. 얼음처럼 차가운 네 손이 내 얼굴에 닿는 순간 전부 알았다.
작년 여름이었다. 둘이 같이 탄 차였다. 그 자리에서, 둘 다.
라디오의 그 사연은 내가 보낸 거였다. 장례를 치르고 나서 아무한테도 말 못 하고 방송에만, 그것도 두 번 보냈다. 한 번은 이 애 몫으로, 한 번은 저 애 몫으로. 둘을 한꺼번에 잃는 걸 견딜 수가 없어서, 나는 저녁마다 한 명씩만 불러다 앉혀놓고 하루에 한 명씩만 잃어온 거였다. 한 번도 둘을 같이 두지 않으면서.
오늘까지는.
네 개의 차가운 손이 내 얼굴을 감싼 채 두 얼굴이 나를 들여다보며 똑같이 웃는 동안, 서랍 속에서는 밴드가 계속 울었고 그 화면이 어둠 속에서 혼자 깜빡였다.
동거인이 확인되지 않습니다. 혼자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