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발 대행
나는 이 기록을 남긴다. 누가 읽을지는 모른다. 읽을 사람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남긴다. 남기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1993년부터 두 해 동안, 나는 오사카의 한 운송회사에서 일했다. 간판에는 이사, 화물이라고 적혀 있었다. 하는 일은 달랐다. 우리는 사람을 옮겼다. 밤에, 소리 없이, 아무도 모르게.
일본에는 밤에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다. 빚쟁이에게 쫓기는 남자, 남편에게 맞는 여자, 사채가 현관까지 들어온 가족. 그런 사람들은 낮에 못 떠난다. 낮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다. 우리는 그 눈이 감긴 시간에 움직였다. 새벽 3시가 되면 골목 어귀에 트럭을 붙이고, 엔진은 언덕에서 굴러 내려온 것처럼 미리 꺼 두고, 창에는 신문지를 발라 안에서 새어 나갈 불빛까지 막고, 발에는 반드시 운동화를 신었다. 구두는 계단에서 소리가 난다. 짐은 한 번에 빼는 법이 없다. 사흘이고 나흘이고 조금씩, 이웃이 이사인지 도둑인지 끝내 헷갈리도록 나눠서 뺀다. 한 집을 비우는 데 일주일이 걸려도 상관없었다. 소리만 나지 않으면 되었다.
나는 이 일이 좋았다. 도망칠 데도 없는 사람들에게 뒷문을 열어 주는 일이라고 여겼다. 일본어가 서툴러도 상관없었다. 이 일에는 애초에 말이 필요 없었다. 묻지 않는 게 규칙이었으니까. 어디로 가는지, 왜 도망치는지, 짐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나는 묻지 않았다. 규칙을 지켰다. 짐만 날랐다.
나 역시 도망쳐 온 축이었다. 비자가 끝난 지 오래였고, 한국에는 갚을 빚과 다시 안 볼 얼굴들만 남아 있었다. 신원을 묻지 않는 일자리는 이 도시에서 흔하지 않았다. 이 일이 그중 하나였다. 나는 놓을 수 없었다.
내가 처음 나간 의뢰를 기억한다. 젊은 여자였다. 여자는 짐 옆에 붙어 서서 자기 삶이 상자에 담겨 트럭으로 실려 나가는 걸 내내 지켜봤고, 손목에는 오래된 멍이 있었고, 마지막 상자를 실었을 때 처음으로 숨을 크게 뱉었다. 살았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 얼굴 때문에 이 일을 계속했다. 도망치는 사람은 늘 그렇게 현장에 있었다. 떨면서, 짐 곁에서, 자기가 사라지는 걸 자기 눈으로 확인하면서.
그 의뢰가 오기 전까지는.
지난겨울이었다. 의뢰가 들어왔고, 사장은 나만 데리고 갔다. 주소는 변두리의 낡은 연립이었다. 여느 때와 같았다. 창을 가렸다. 짐을 뺐다. 다른 게 하나 있었다. 당사자가 없었다.
그 집에는, 늘 짐 옆에 서 있어야 할 그 사람이 없었다. 의뢰인은 남편이라는 남자였다. 아내가 집을 나갔다고 했다. 아내의 물건을 원래 그런 사람이 없었던 것처럼 지워 달라고 했다. 옷, 화장품, 편지, 사진, 여자의 흔적만 골라서.
베란다에 빨래가 널려 있었다. 속옷과 블라우스가 빨랫줄에 거꾸로 걸려 있었다. 소매가 위로 가고 어깨가 아래로 처진 채, 누가 한 번 걷었다가 아무렇게나 도로 넌 것처럼, 오래 얼었다 마르기를 되풀이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새벽바람이 지날 때마다 그것들이 서로 부딪쳐 마른 나뭇조각 두드리는 소리를 냈다.
떠나는 사람은 빨래를 걷는다. 아무리 급해도 자기 속옷은 걷어 간다. 그 여자는 안 걷었다. 나는 그 생각을 그날 밤에는 하지 않았다. 짐을 실었다. 요금을 받았다. 야간 할증까지. 집으로 왔다.
며칠 뒤부터 그 빨래가 자꾸 떠올랐다. 거꾸로 매달린 소매. 서로 부딪치던 소리. 나는 세기 시작했다.
사무실 장부를 폈다. 두 해 동안의 의뢰가 빠짐없이 적혀 있었다. 사장은 꼼꼼한 사람이었다. 날짜, 주소, 요금, 품목, 결행 시각까지. 나는 그것을 첫 장부터 넘기며 내가 나간 의뢰마다 표를 하고, 그 옆에 다른 표를 하나 더 했다. 당사자를 내 눈으로 본 의뢰에만.
두 해 동안 나간 의뢰는 63건이었다. 그중 사람을 본 건 40건이었다.
처음 한 해는 얼추 맞았다. 짐을 뺀 집마다 사람이 있었다. 갈수록 달라졌다. 당사자가 없는 의뢰가 늘었다. 남편이, 아들이, 형이 대신 부른 의뢰. 지워 달라는 대상만 있고 그 대상은 늘 없었다. 짐만 있었다. 나는 그 짐만 날랐다. 23번. 사람 없는 집에서, 23번.
숫자를 다시 셌다. 두 번, 세 번, 틀리기를 바라면서. 안 틀렸다.
성인이 제 발로 집을 나가면 경찰은 찾지 않는다. 사건이 아니니까. 자기 발로 사라진 어른은 일반행방불명자다. 서류 한 장에 이름이 오르고, 그걸로 끝이다. 가족이 아무리 애원해도 은행 기록 하나 못 본다. 나라가 그렇게 정해 두었다. 제 발로 사라지려는 사람을 위한 배려. 그 배려에는 구멍이 있었다. 남을 사라지게 하려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열린 문.
누군가 그 문을 알고 있었다. 그 문으로 사람을 밀어 넣고 있었다. 나가지도 않은 사람을 나갔다고 신고하면, 나라가 알아서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남은 일은 흔적을 치우는 것뿐이다. 옷, 편지, 사진, 그리고 방 한 칸을 채운 짐. 그 짐을 사나흘에 걸쳐 조용히 실어 내는 사람이 필요하다.
나였다. 나는 그 짐을 날랐다. 도망친 적 없는 사람들의 짐을. 거꾸로 매달린 빨래를 두고 온 사람들의.
나는 사장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물었어야 했는데 못 물었다. 묻지 않는 게 규칙이었다. 나는 규칙을 지켰다. 나는 몰랐다. 몰랐다고 지금도 나는 쓴다. 이 문장을 쓰는 나조차 그 말을 안 믿는다.
그만두기로 했다. 짐을 싸기로 했다. 이번에는 내 짐을. 나는 이 나라에 서류가 없다. 비자는 오래전에 끝났다. 경찰서에는 못 간다. 경찰서에 가는 순간 내가 먼저 사라진다. 다른 방식으로. 그러니 조용히 떠나면 된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내가 나르던 사람들처럼.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안심했다. 안심한 게 잘못이었다.
오늘 밤 사무실에 마지막으로 들렀다. 밀린 일당을 받으러. 사장은 없었다. 장부가 책상에 펼쳐져 있었다. 이번 달 장이었다. 나는 안 보려다 봤다.
다음 주에 잡힌 의뢰가 하나 있었다. 새벽 결행. 분할 반출. 주소가 적혀 있었다. 나는 그 주소를 안다. 다다미 넉 장짜리 방. 창이 골목으로 난 간이숙소. 내가 사는 방이다.
품목 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당사자 없음. 한국인 남자. 가족 연락처 없음.
바깥에서 셔터 올라가는 소리가 났다. 트럭이 언덕을 굴러 내려오듯 조용히 골목으로 들어왔다. 엔진이 꺼졌다. 발소리가 계단을 올라온다. 운동화 소리다. 구두가 아니다.
나는 이 기록을 남긴다. 누가 읽을지는 모른다. 나를 찾을 사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