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쪽

민석의 시신을 찾은 것은 두 번째 수색의 엿새째였다.

눈이 그친 뒤에도 사면은 한동안 움직였다. 흰 가루가 비탈을 따라 흘러내리다가 어느 지점에서 멎었고, 그 아래로 얼음에 박힌 파란 천이 손가락 한 마디쯤 드러났다. 민석의 다운슈트와 같은 색이었다.

현지 구조대장이 무릎으로 눈을 다져 가며 내 앞을 막았다. 내가 삽을 들겠다고 세 번 말한 뒤였다.

“확인만 하십시오. 손대지는 말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막상 파란 다운슈트의 어깨가 나타나자 장갑을 벗었다. 지퍼 고리에 낀 얼음을 맨손으로 긁었다. 구조대장이 내 손목을 잡았다. 손끝 감각이 먼저 죽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그 손을 뿌리쳤다.

후드 안쪽은 보지 않았다. 볼 필요가 없었다. 왼쪽 가슴의 찢어진 천을 검은 테이프로 두 번 감은 자리, 허리띠에 매단 납작한 호루라기, 주머니 안에서 굳어 버린 빨간 사탕 세 알. 민석은 고도가 높아지면 입이 마른다며 늘 그 사탕을 씹었다. 나는 그것들을 하나씩 확인하고도 구조대장에게 신원 확인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내 말을 못 들은 척 무전기를 들었다.

민석을 산 아래로 데려오는 데 사흘이 더 걸렸다. 살아 있는 사람은 곧장 내려갈 곳도 죽은 사람을 묶은 썰매는 몇 번씩 돌아가야 했다. 경사가 급한 구간에서는 앞사람 둘이 줄을 당기고 뒤의 둘이 제동했는데, 나는 맨 뒤 제동줄을 필요 이상으로 짧게 잡았다. 구조대장이 두 번이나 힘을 빼라고 했다. 알았다고 대답하고도 썰매가 턱을 넘을 때마다 다시 줄을 감아 쥐었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지고 있었다. 노란 식당 천막 안에서 누군가 수프를 데웠고, 발전기 소리가 마른 바람에 끊겨 들렸다. 민석은 의료 천막 옆 운반 상자 안에 누워 있었다. 상자 뚜껑을 닫지 않은 것은 내가 밤에 한 번 더 보겠다고 고집했기 때문이다.

대원들은 내게 수프와 술 중 무엇을 마시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뜨거운 물만 달라고 했다. 종이컵을 두 손으로 잡고 있으니 오른손 엄지가 자꾸 떨렸다. 지난해 동상으로 발톱 두 개를 잃었지만 손은 멀쩡했다. 의사는 퇴원할 때 그렇게 말했다. 손을 보존한 것은 운이 좋았다고.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도 이런 컵을 쥐여 줬어요.”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내가 말했다.

구조대장은 맞은편에서 장비 목록을 적고 있었다. 연필 끝이 멎었다. 다른 대원들은 수색 얘기를 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지난해 눈사태 뒤의 일을 이미 여러 번 설명했다. 민석과 내가 3캠프 위쪽에서 하산하다가 화이트아웃을 만났고, 길을 잃었고, 로프 고정 장비가 빠지며 둘이 함께 사면 아래로 떨어졌다는 것. 내가 정신을 잃었다가 수색대에게 발견되었고 민석은 찾지 못했다는 것. 그 대목까지만 말하면 나는 질문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설명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날 나는 보고서에 없는 이야기를 처음 꺼냈다.

“여자가 왔었습니다.”

종이컵 가장자리가 찌그러졌다. 손에 힘을 준 줄도 몰랐다.

눈 속에 반쯤 묻힌 채로 나는 민석의 숨을 들었다.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줄이 우리 하네스를 잇고 있었고, 그 줄이 가끔 당겨졌다. 한 번 당기고 오래 쉬었다가 또 한 번. 살아 있다는 신호인지 경련인지 구별하지 못했다. 나도 왼쪽 다리가 바위 틈에 끼여 움직일 수 없었다. 바람이 눈을 실어 와 고글과 입술 사이를 메웠다. 몸이 떨리지 않기 시작한 뒤부터는 오히려 편했다. 손목시계의 액정에서 4시 17분 28초가 29초로 넘어갔다.

그때 누가 내 오른쪽에 누웠다.

발소리도 없이, 눈을 누르는 무게도 없이 얼굴만 가까이 왔다. 산소마스크도 고글도 쓰지 않은 여자였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았다.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귀에 닿은 입술만 차가웠다.

민석은 포기해.

그 여자가 말했다.

너 하나는 살려 줄게. 대신 어디 가서도 내 이야기는 하지 마.

나는 알았다고 했다. 혀가 굳어 입이 움직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히 내 목소리를 들었다. 알았어요. 그렇게 말한 순간 병원 천장의 형광등이 켜졌다.

정말로 불이 켜진 것처럼 한순간이었다. 바람도 눈도 없이 나는 흰 침대에 누워 있었다. 간호사가 이름과 생년월일을 물었다. 구조대가 나를 발견했을 때 민석과 연결된 줄은 끊겨 있었다고 했다. 칼로 자른 것처럼 단면이 반듯했지만, 구조 과정에서 잘랐을 수도 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했다.

나는 여자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환각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약속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거기까지 말했을 때 구조대장이 연필을 내려놓았다.

“고산에서는 없는 사람도 봅니다.”

그는 내 체면을 살려 주려는 듯 낮게 말했다.

“산소가 모자라면 목소리도 듣고요. 살아 돌아온 분들에게 드문 일은 아닙니다.”

나는 웃으려 했다. 그래요, 나도 안다고 말하려 했다. 그때 의료 천막 쪽에서 상자 뚜껑 닫히는 소리가 났다.

쾅.

바람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무거운 소리였다. 식당 천막 안의 사람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구조대장이 먼저 일어났고 나도 뒤를 따랐다. 밖은 어두웠다. 헤드랜턴 불빛들이 땅 위에서 흔들렸다. 의료 천막의 입구는 열려 있었고 운반 상자의 뚜껑은 닫혀 있었다.

내가 걸쇠에 손을 대자 안에서 한 번 두드렸다.

손등으로 조심스럽게 치는 소리였다. 민석은 텐트에 먼저 들어가면 늘 그렇게 침낭 자리를 두드려 내게 알려 주었다. 여기 네 자리라고, 두 번. 그 소리가 한 번 더 났다.

톡. 톡.

구조대장이 내 어깨를 붙잡았지만 나는 걸쇠를 올렸다. 뚜껑을 열자 눈이 얼굴로 쏟아졌다.

나는 다시 사면에 누워 있었다.

왼쪽 다리는 바위 틈에 끼어 있었고 고글 안쪽에는 언 피가 붙어 있었다. 오른쪽 귀에 여자의 숨이 닿았다. 이번에는 얼굴을 돌릴 수 있었다. 눈썹에도 머리카락에도 눈 한 점 없었다. 여자는 내 뒤쪽을 보면서 말했다.

약속했잖아.

“미안합니다.”

내가 이를 부딪치며 말했다.

어디 가서도 말하지 않겠다고 했잖아.

“다시는 안 할게요.”

민석과 이어진 줄이 팽팽해졌다. 나는 장갑 낀 손으로 줄을 찾았다. 놓치지 않으려고 손목에 한 번 감았다. 줄 저편에서 금속이 눈을 긁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일어나려는 것 같았다.

여자가 처음으로 나를 보았다.

그 말을 네가 했니?

나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바람이 갑자기 세졌고 눈이 입 안으로 들어왔다. 눈을 감았다 뜨니 누군가 내 뺨을 때리고 있었다.

“교수님. 교수님, 일어나세요.”

구조대장이었다. 나는 베이스캠프의 내 텐트 안에 누워 있었다. 침낭 지퍼가 목까지 올라와 있었고, 머리맡에는 엎어진 종이컵이 있었다. 뜨거운 물이 흘러 침낭 겉감만 축축했다. 식당 천막에서 여자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어지럽다며 먼저 나와 잠들었다고 했다.

“의료 천막은요?”

“아무 일 없습니다.”

밖으로 나가 확인했다. 상자의 걸쇠에는 봉인 끈이 그대로 묶여 있었다. 눈 위에 내 발자국도 없었다. 대원들은 발전기 곁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고, 누구도 나와 여자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나는 운반 상자 옆에 앉아 날이 밝을 때까지 민석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두드리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민석의 장례는 고향의 작은 장례식장에서 치렀다.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아들을 데려와 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 말 앞에서 나는 팔을 뺄 수 없었다. 영정 속 민석은 출발 전날 여권사진을 찍고 와서, 귀가 보이게 머리를 눌러 놓은 게 우습다며 한참 투덜거리던 모습 그대로였다. 관이 화장로 안으로 들어갈 때 나는 벽의 전광판만 보았다. 붉은 숫자가 하나씩 줄었다.

그 뒤 나는 산에 오르지 않았다. 대학으로 돌아가 빙하와 적설을 가르쳤고, 로프 고정 장비 파손이나 저체온을 설명할 때도 그 사고는 사례로 쓰지 않았다. 자료는 얼마든지 다른 데서 구할 수 있었다. 그래도 오래된 강의동의 난방관이 식으며 두 번씩 울 때면 하던 말을 잊고, 아무도 보지 않는 동안 오른쪽 귀를 손바닥으로 막았다.

정년을 한 달 앞두고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다. 오래된 조난 사고를 다루는 토크쇼였다. 제작진은 구조 기록과 당시 신문을 이미 확보했고, 민석의 유족에게도 동의를 받았다고 했다. 나는 세 번 거절했다. 네 번째 통화에서 작가가 말했다.

“교수님이 직접 말씀해 주시면 무모한 등반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말이 비겁하게 마음에 들었다. 내가 침묵한 세월을 이제는 교육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자만 빼면 되었다. 나는 그날 밤 제작진이 보내온 질문지에 답을 적었다. 사고 경위, 구조 과정, 동료의 시신을 되찾으러 간 이유. 마지막 질문은 ‘살아남은 사람에게 그 산은 어떤 곳인가’였다. 그 칸만 비워 두었다.

생방송 날 스튜디오는 생각보다 추웠다. 조명 열 때문에 냉방을 세게 한다고 했다. 분장사가 귀 뒤까지 분을 바르려 하자 나는 손을 들어 막았다. 오른쪽 귀에는 진행자의 질문을 들려주는 작은 이어폰을 끼웠다. 기사가 이어폰을 밀어 넣자 차가운 플라스틱이 귓속을 긁었다. 나는 크기가 안 맞는다고 했다. 기사는 원래 그 정도는 불편하다고 대답했다.

방송은 준비한 대로 흘러갔다. 진행자는 내가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의 기분을 물었고, 나는 기분 대신 구조대원들의 이름을 아직 기억한다고 답했다. 민석을 찾으러 다시 간 일을 말할 때 방청석에서 누군가 훌쩍였다. 화면에 장례식장 사진이 나왔지만 나는 보지 않았다.

마지막 광고가 끝난 뒤 진행자가 몸을 내 쪽으로 돌렸다.

“교수님께서는 그때 기적적으로 혼자 살아 돌아오셨습니다. 지금도 설명하기 어려운 기억이 남아 있습니까?”

질문지에 없던 문장이었다. 나는 진행자를 보았다. 그는 입을 다문 채 다음 카드만 넘기고 있었다. 질문은 이어폰에서 다시 들렸다.

설명하기 어려운 기억이 남아 있습니까?

나는 음향 사고라고 생각했다. 손을 들어 이어폰을 빼야 했다. 그런데 오른손이 탁자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손가락 끝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스튜디오 조명 탓이라고, 나는 속으로 말했다.

진행자가 이번에는 실제로 물었다.

“병원에서 깨어나기 직전,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게 무엇입니까?”

나는 준비한 답을 알고 있었다. 눈보라 소리라고 하면 되었다. 민석의 이름을 불렀다고 하면 되었다. 방청석과 카메라의 붉은 불이 나를 기다렸다.

그런데 입에서 다른 말이 나왔다.

“여자가 있었습니다.”

스튜디오가 조용해졌다. 누구도 재촉하지 않았는데 나는 계속 말했다.

“제 귀에 대고 민석을 포기하면 저만 살려 주겠다고 했습니다. 대신 자기 이야기를 어디서도 하지 말라고 했어요. 저는 알았다고 했습니다.”

진행자의 얼굴에서 방송용 미소가 천천히 사라졌다. 그는 큐카드를 내려다봤다.

이어폰 속에서 여자가 한숨을 쉬었다.

또 네가 대답했다고 말하네.

탁자 아래에서 무언가 당겨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두 손을 내렸다. 허리에 감긴 등반용 로프가 무대 뒤편으로 뻗어 있었다. 조명이 꺼지자 방청객의 박수 사이로 금속이 얼음을 긁는 소리가 났다.

나는 베이스캠프에서 꿈을 꾼 것이라고 생각했다. 눈을 뜨면 민석의 운반 상자가 옆에 있고, 아직 장례도 교수 생활도 방송도 오지 않은 때일 거라고 믿었다. 그 믿음에 매달려 눈을 감았다가 떴다.

눈앞에 민석의 등산화가 있었다.

새것이어서 밑창의 노란 상표가 남아 있던 신발. 출발 전에 내가 너무 뻣뻣하다고 놀렸던 신발이었다. 민석은 눈 속에 웅크린 나를 등지고 서 있었다. 파란 다운슈트의 왼쪽 가슴은 아직 찢어지지 않았고, 호루라기는 그의 허리에서 흔들렸다. 그는 살아 있었다.

나는 사면 아래에 누워 있었다. 왼쪽 다리는 바위 틈에 끼어 있었고 장갑 속 손가락은 부어 굽혀지지 않았다. 민석과 나를 잇던 로프는 내 앞에서 반듯하게 잘려 있었다. 잘린 끝의 주황색 심이 눈 위에 드러나 있었다.

민석은 칼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내 배낭에서 산소통을 꺼내 자기 것 옆에 묶었다. 손이 떨려 버클을 두 번 놓쳤다. 그는 한 번도 내 얼굴을 보지 않았다.

여자는 내 오른쪽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번에는 얼굴을 볼 수 있었지만 눈썹에도 입술에도 성에 한 점 없었다. 여자는 나를 향해 몸을 숙인 게 아니었다. 내 위를 가로질러 민석의 귀에 입을 대고 있었다.

그 애는 포기해. 너 하나는 살려 줄게. 대신 어디 가서도 내 이야기를 하지 마.

“알았습니다.”

민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잘린 로프를 눈으로 덮고 사면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름을 부르려고 했다.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혀는 딱딱했고 가슴에서는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났다. 손을 뻗자 장갑이 눈 위를 손가락 한 마디만큼 긁었다. 민석은 그 작은 소리를 들었는지 잠깐 멈췄다.

제발 돌아봐.

민석은 어깨 너머로 나를 보았다.

고글 때문에 눈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계속 내려갔다. 파란 등이 눈발 속에서 작아졌다.

여자는 그가 능선 아래로 사라지는 모습을 나와 함께 보았다. 방금 29초를 넘긴 손목시계의 액정은 31초를 가리켰다. 그 사이에 병원과 장례식과 강의실이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민석의 발자국은 아래로 한 줄만 이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