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전

스탠드는 3년째 같은 자리에 있었다. 갓이 눌어붙어 빛이 누렇게 나왔다. 그 누런 빛이 벽지에 둥근 얼룩을 만들었고, 얼룩 안에 침대가 있었고, 침대 위에 어머니가 있었다.

은주는 미음 그릇을 무릎에 받쳤다. 숟가락을 저었다. 미음이 엉기지 않게, 천천히. 김이 올라오다 누런 갓 밑에서 흩어졌다. 어머니의 입술은 다물려 있었다. 숟가락을 대면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세 번을 대고 한 번 들어가면 좋은 저녁이었다.

방에서는 냄새가 났다. 소독약과 지린내와 파스가 섞인 냄새. 처음엔 견디기 어려웠고, 이제는 은주 자신에게서도 같은 냄새가 났다. 옷에 배고 머리카락에 배어, 마트에 가면 사람들이 반 걸음씩 물러섰다. 은주는 그 냄새를 코로 맡지 못하게 된 지 오래였다. 냄새는 이제 눈에 보였다. 누런 스탠드 불빛처럼, 방 안 어디에나 고여 있었다.

어머니는 은주를 몰랐다. 몇 년째 몰랐다. 딸을 낯선 여자로 보고, 낯선 여자의 손을 뿌리치고, 밤이면 낯선 여자가 자기 물건을 훔치러 왔다고 벽을 향해 일렀다. 은주는 그 벽 뒤에서 잠을 잤다. 두 시간짜리 잠이었다.

숟가락이 그릇 바닥을 긁었다. 반이 남았다. 은주는 남은 미음을 개수대에 부었다. 누런 거품이 배수구로 천천히 빨려 들어갔다.

은주의 하루는 두 시간 단위로 끊겨 있었다. 두 시간마다 알람이 울면 어머니의 몸을 모로 돌려 눕혔다. 등이 한자리에 오래 눌리면 살이 헐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몸은 가벼웠는데도, 한 번 돌려 눕히고 나면 은주의 손목이 시큰거렸다. 기저귀를 갈고, 마른 수건으로 등을 닦고, 자세를 바꾸고 나면 어느새 다음 두 시간이 와 있었다. 밤과 낮의 구분은 오래전에 없어졌다. 두 시간과 두 시간 사이가 있을 뿐이었다.

계절이 몇 번 바뀌는 동안 은주의 세상은 이 방 하나로 줄었다. 은주는 어머니 말고 다른 사람과 길게 말을 섞은 적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텔레비전은 소리를 죽여 두었다. 어머니가 소리를 무서워했기 때문이다. 소리 없는 화면 속에서 사람들이 웃고 떠들었고, 은주는 그 화면을 등지고 앉아 미음을 저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발신] 어르신의 장기요양 인정 유효기간이 8월 6일 만료됩니다. 갱신을 신청하신 건에 대해 방문조사를 실시합니다. 조사일: 8월 3일(월) 오전 10시. 조사원이 자택으로 방문하여 어르신의 심신 상태를 확인합니다. 보호자께서는 최근 진료기록 및 투약 내역을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갱신을 신청한 것은 은주였다.

6월의 어느 낮, 요양보호사가 와 있던 세 시간에 은주는 공단 지사에 갔다. 어머니의 인정 유효기간이 끝나 간다는 안내를 받고서였다. 창구 직원은 친절했다. 갱신 신청서를 내밀며, 여기 보호자 성함과 서명이요, 하고 칸을 짚어 주었다. 은주는 볼펜을 들어 이름 석 자를 썼다. 어머니를 계속 요양보호사에게 맡기려면, 그 칸에 은주의 이름이 있어야 했다.

직원이 다음 절차를 일러 주었다. 갱신을 신청하면 조사원이 다시 자택을 방문해 어르신 상태를 조사하고, 그 결과로 등급이 다시 매겨진다고 했다. 상태가 좋아지셨으면 등급이 조정될 수 있다는 말도 보탰다. 좋아지셨으면. 직원은 그 말을 좋은 소식처럼 했다. 웃으면서 했다. 은주도 영문 모르고 따라 웃었다.

집에 돌아와서야 은주는 그 말을 다시 씹어 보았고, 그제야 뒷맛이 이상했다. 좋아지면 등급이 조정된다. 조정된다는 건 대개 내려간다는 뜻이었다. 등급이 내려가 등급외로 밀려나면 방문요양도 주간보호도 끊겼다. 요양보호사가 오는 하루 세 시간이 끊긴다는 뜻이었다. 은주가 마트에 다녀오고, 병원에 가고, 30분 눈을 붙이던 그 세 시간이. 어머니가 나아지면, 은주가 무너졌다.

나아진다는 건 그러니까, 이 집에서는 다른 뜻이었다. 은주는 그 뜻을 입 밖에 낸 적이 없다. 낸 적이 없으니 생각한 적도 없는 셈이라고, 스스로에게 그렇게 정리해 두었다.

간병일지. 은주의 노트. 날짜만 적힌 줄들.

7월 28일. 미음 반. 대변 없음. 밤에 벽에 대고 말함. 나를 모름. 7월 29일. 미음 반의반. 물 조금. 종일 잠. 나를 모름. 7월 30일. 안 드심. 눈만 뜸. 나를 모름. 8월 1일. 안 드심. 손이 참. 나를 모름.

은주는 매일 마지막에 같은 말을 적었다. 나를 모름. 적고 나면 하루가 끝났다.

가족 단톡방은 조용했다. 은주가 사진을 하나 올렸다. 어머니의 손등, 누렇게 뜬 살가죽. 오빠가 한참 뒤에 답했다.

— 고생이 많다. 이번 달은 좀 빠듯해서 다음 달에 보낼게. — 요양원 알아보라니까 왜 자꾸 끼고 있냐. 너도 살아야지. — 조사 그거 그냥 하는 거야. 신경 쓰지 마.

언니는 읽고 답하지 않았다. 숫자 1이 오래 남아 있다가, 다음 날 사라졌다.

끼고 있는 게 아니었다. 요양원은 어머니 연금으로 모자랐고, 모자란 만큼을 셋이 나눠 낼 형편이 아니었다. 남은 사람이 은주였다. 막내딸은 원래 그런 자리라고, 어머니가 성했을 적에 늘 그렇게 말했다. 은주는 그 말을 들으며 자랐다.

요양보호사가 오는 세 시간을, 은주는 늘 같은 데 썼다. 병원에 가고, 마트에 가고, 은행에 갔다. 밀린 일들을 세 시간 안에 욱여넣었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은주는 차를 아무 데나 세웠다. 마트 지하 주차장이거나, 하천변 공영주차장이거나. 시동을 끄고 그냥 앉아 있었다. 아무도 은주를 부르지 않는 시간이었다. 두 시간마다 우는 알람이 없는 시간, 어머니가 없는 시간. 은주는 그 시간에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남에게 들킬까 봐, 창문을 다 올리고 앉아 있었다.

한번은 그렇게 앉아 있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세 시간이 다 가 있었다. 은주는 놀라서 집으로 차를 몰았다. 요양보호사는 이미 가고 없었고, 어머니는 혼자 벽을 보고 있었다. 그날 밤 은주는 오래 뒤척였다. 어머니가 없는 세 시간이 그렇게 달았다는 게 무서웠다. 이 세 시간을 지키려고 은주는 그 서류에 이름을 썼다. 어머니가 나아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쩌면 그 주차장의 올린 창문 안에서부터 자라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조사 전날 밤이었다.

8시가 조금 넘어, 은주가 미음을 데우고 있는데 안방에서 소리가 났다. 밥. 그 한 글자였다. 은주는 국자를 든 채로 돌아봤다.

어머니가 침대에서 상반신을 일으키고 있었다. 혼자, 몇 달 만이었다. 뜬 눈이 흐리지 않았다. 어머니가 은주를 봤다. 낯선 여자를 보는 눈이 아니었다.

"밥 안 주나. 배고파 죽겠구먼."

은주는 국자를 놓쳤다. 국자가 개수대에 부딪는 소리가 났다.

어머니는 미음을 세 그릇 찾았다. 숟가락을 뺏어 혼자 떴다. 흘리지 않았다. 다 먹고 나서 물을 찾았고, 물을 마시고 나서 옛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또렷했다. 큰집 제사 때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은주 아버지가 어느 해 겨울에 뭘 사 왔는지, 40년 전의 일들이 방금 겪은 일처럼 나왔다. 어머니의 눈자위에 누런 기운이 돌았다.

그리고 어머니가 은주를 불렀다.

"주야."

은주의 어릴 적 이름이었다. 호적에 오르기 전, 갓난쟁이 적에 어머니만 부르던 이름. 은주가 마흔이 넘도록 다시 듣지 못한 이름. 부엌에서 어머니가 그 이름을 부르면, 어린 은주가 마당에서 뛰어 들어오곤 했다. 그 부엌에는 냄새가 있었다. 아궁이 연기와 갓 지은 밥과 어머니의 살 냄새가 섞인 냄새. 지금 이 방에서, 소독약 냄새 사이로 그 오래된 부엌 냄새가 났다.

"주야. 어디 갔다 왔노. 손 시립다. 이리 와 봐라."

은주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손이 따뜻했다. 몇 달 만에 따뜻했다.

은주는 울었다. 어머니의 손등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울었다.

울음이 잦아들 무렵 벽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9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내일 10시에 조사원이 온다.

조사원이 이 방에 앉는다. 오늘이 며칠입니까. 여기가 어디입니까. 따님 이름을 아십니까. 지금의 어머니라면, 밥을 세 그릇 찾고 40년 전을 또렷이 말하는 이 어머니라면, 그 물음에 다 답할 것이다. 또렷이. 혼자 일어나 앉은 것을, 혼자 밥을 먹는 것을 조사원이 볼 것이다.

그러면 조사표의 점수가 떨어진다.

은주는 어머니의 손을 잡은 채로 그 셈을 했다. 하지 않으려 했으나 손보다 머리가 빨랐다. 기억 항목, 좋아짐. 식사 항목, 좋아짐. 자립도 항목, 좋아짐. 화살표는 전부 아래를 향했다. 점수가 내려가고 등급이 내려가고, 등급외라는 세 글자가 8월의 어느 날 우편함에 꽂히고, 요양보호사가 오는 세 시간이 사라지고, 은주의 남은 하루가 사라졌다.

은주는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 알면서 멈추지 못했다.

내일 아침까지 어머니가 다시 흐려지기를. 다시 나를 모르기를. 다시 밥을 뱉기를.

은주는 손을 놓지 않았다. 놓으면 그 생각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오히려 더 꼭 쥐었다. 어머니의 따뜻한 손을, 나아지지 말라고 기도하면서 쥐었다.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은주는 그렇게 생각했다. 셈을 시킨 건 은주가 아니었다. 은주는 그저 그 셈 안에 갇힌 사람일 뿐이었다.

어머니의 손은 여전히 따뜻했다.

인정조사표. 공단 양식. 누렇게 인쇄된 종이.

식사하기 — 완전 자립 / 부분 도움 / 완전 도움 오늘 날짜 알기 — 예 / 아니오 가족·자녀 알아보기 — 예 / 아니오

칸마다 동그라미를 치면 되었다. 왼쪽에 칠수록 어머니는 성했고, 그만큼 은주의 세 시간은 사라졌다. 오늘 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어머니는 왼쪽이었다.

밤이 깊었다.

어머니는 자지 않았다. 은주도 자지 않았다. 두 사람은 스탠드 밑에서 오래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가 묻고 은주가 답했다. 시집은 갔냐고, 애는 낳았냐고, 요새 뭐 먹고 사냐고. 은주는 다 대답했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잘 산다고, 걱정 말라고 대답했다.

이야기는 은주의 어린 시절로 흘러갔다. 어머니가 하나하나 꺼냈다. 은주가 학교에서 상장을 받아 와 부엌 벽에 붙여 놓고 아버지한테 몇 번이고 자랑한 일. 은주가 첫 월급으로 사 온 내복이 한 치수 작았는데도 몇 해를 입은 일. 더러는 은주도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었고, 더러는 은주가 기억하는 것과 달랐다. 벽에 상장을 붙이고 몇 번이고 들여다본 건 은주가 아니라 어머니였다. 은주는 바로잡지 않았다.

새벽 1시쯤, 어머니가 창을 봤다. 커튼이 반쯤 열려 있었다. 창밖은 어두웠다. 어머니가 말했다.

"주야, 나 집에 가고 싶다."

"여기가 집이잖아, 엄마."

"아니. 우리 집. 감나무 있는 집."

감나무 있는 집은 어머니가 시집오기 훨씬 전, 아주 어릴 적에 살던 집이었다. 은주는 가 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의 고향, 이제는 지도에서 이름도 바뀐 어느 면 소재지. 어머니가 여섯 살 무렵까지 살다 떠났다는 그 집을, 어머니는 새벽 1시에 가고 싶어 했다. 감나무가 마당에 있고, 그 밑에서 어머니의 어머니가 콩을 널었다는 집. 어머니는 그 마당의 냄새를 말했다. 마른 콩과 감꽃과 흙 냄새. 은주는 맡아 본 적 없는 냄새였는데, 어머니가 말하자 방 안에 그 냄새가 도는 것 같았다.

"데려다줄까, 엄마. 날 밝으면."

"밝으면 늦어. 지금 가야 돼."

은주는 웃었다. 밤에 어딜 가느냐고, 택시도 없다고 했다. 어머니는 더 조르지 않았다. 조금 있다 어머니가 은주의 손등을 만졌다. 손등에 오래된 흉터가 있었다. 은주가 다섯 살에 아궁이 옆에서 덴 자리였다. 어머니가 그 흉터를 손끝으로 문질렀다.

"이거, 내가 한눈파는 새에."

은주는 그 흉터를 어머니가 기억하는 줄 몰랐다. 아니, 어머니가 무엇이든 기억하는 줄 몰랐다. 은주는 다시 울 뻔했고, 이번에는 왜 우는지 알 수 없었다.

새벽 3시가 넘어, 어머니가 잠들었다.

은주는 건넌방에 눕지 않았다. 어머니 곁에 앉아 그 숨을 들었다. 숨이 고르다가, 얕아지다가, 다시 고르게 이어졌다.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했다. 어머니가 아침에도 맑을까 봐, 아침에 다시 흐려질까 봐. 두 가지가 서로 반대인데도 나란히 앉아 있었다. 세 번째는 은주도 이름을 붙이지 못했다.

예전에 요양보호사 하나가, 가방을 챙겨 나가면서 지나가듯 한 말이 있었다. 오래 못 드시던 분이 갑자기 밥을 찾고 정신이 또렷해지면, 다들 좋아하는데 그때가 제일 조심할 때라고. 등불이 꺼지기 전에 한 번 확 밝아지는 거라고. 그 사람은 그 말을 하면서 은주를 보지 않았다. 신발을 신고 있었다.

은주는 어머니의 얼굴을 봤다. 누런 불빛 아래 어머니의 얼굴이 편안했다. 몇 년 만에 편안했다.

은주는 스탠드를 껐다.

동이 트기 전에 어머니가 다시 꺼졌다.

은주는 그 순간을 보지 못했다. 잠깐 벽에 기대 눈을 감았다가 떴을 뿐인데, 그사이에 어머니가 돌아가 있었다. 눈이 반쯤 떠 있었고, 초점이 없었다. 은주가 손을 잡았다. 손은 다시 차가웠다. 어머니가 은주를 봤다. 낯선 여자를 보는 눈이었다.

"누구요."

어머니가 물었다. 은주는 대답하지 못했다.

밖이 희끄무레하게 밝아 오고 있었다. 창으로 든 새벽빛이 방 안의 누런 것들을 지웠다. 스탠드도 꺼져 있으니 방은 이제 누렇지 않았다. 회색이었다. 은주는 그 회색이 낯설었다.

은주는 숨을 뱉었다. 길게, 몸이 먼저 뱉었다. 뱉고 나서야 그게 무엇이었는지 알았고, 이미 늦어 있었다. 되돌릴 수 없었다. 은주는 어머니의 차가운 손을 잡고, 조사원이 오기를 기다렸다.

10시 정각에 초인종이 울렸다.

조사원은 젊은 여자였다. 목에 공단 신분증을 걸고, 손에 태블릿을 들고 있었다. 예의 바르고 지쳐 보였다. 하루에 몇 집을 도는 얼굴이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와, 손 소독을 하고, 침대 옆에 앉았다. 방의 냄새에 잠깐 표정이 흔들렸으나 곧 지웠다. 익숙한 사람이었다.

조사원이 어머니에게 물었다. 큰 소리로, 또박또박.

"어르신, 오늘이 며칠인지 아세요?"

어머니는 천장을 봤다.

"어르신, 여기가 어디예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입술이 조금 움직였을 뿐이었다. 조사원이 태블릿에 뭔가를 표시했다. 은주는 그 화면을 보지 못했지만 무엇이 표시되는지 알았다. 오른쪽 칸이었다. 완전 도움. 아니오. 아니오.

조사원은 어머니의 팔을 가만히 들어 보았다. 팔꿈치를 굽혔다 펴 보고 손을 놓자, 팔은 힘없이 침대로 떨어졌다. 혼자 돌아눕거나 일어나 앉을 수 있느냐는 물음에는 은주가 대신 답했다. 못 하신다고, 다 받쳐 드려야 한다고. 지난밤 혼자 상반신을 일으켜 밥을 세 그릇 찾던 어머니는, 이 아침에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 밤이 있었다는 증거는 은주의 기억 말고 어디에도 없었다.

조사원이 은주를 돌아봤다.

"보호자분, 최근에 좀 어떠셨어요? 혹시 요즘 들어 정신이 좀 맑아지시거나, 예전보다 나아지신 것 같은 날이 있었나요?"

방이 조용했다.

은주는 조사원의 지친 얼굴을 봤다. 어머니의 초점 없는 눈을 봤다. 자기 손에 쥔 어머니의 차가운 손을 봤다. 지난밤 그 손이 따뜻했던 것을, 어머니가 밥을 세 그릇 찾고 은주를 어릴 적 이름으로 부른 것을, 감나무 있는 집에 가고 싶다고 한 것을. 은주는 다 알고 있었다. 조사원은 아무것도 몰랐다.

은주가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 은주는 나중에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 나았다. 다만 조사원이 고개를 끄덕이고, 태블릿의 한 칸에 표시를 하고, 조사표를 닫았다는 것만 기억했다. 마지막 칸이었다. 그 칸에 무엇이 들어갔는지, 은주는 봤으면서 보지 않았다.

조사원은 15분 만에 일어섰다. 고생 많으시다고, 결과는 우편으로 간다고 했다. 문이 닫혔다. 방에는 다시 냄새와 은주와 어머니만 남았다.

어머니는 그로부터 나흘 뒤에 돌아가셨다.

요양보호사가 오던 세 시간에, 마침 은주가 병원에 가 있던 그 시간에, 혼자 가셨다. 은주가 돌아왔을 때 방은 조용했다. 스탠드는 켜져 있었다. 누런 불빛이 여전히 벽지에 둥근 얼룩을 만들고 있었고, 얼룩 안에 침대가 있었고, 침대 위에 어머니가 있었다. 다만 숨이 없었다.

장례식장에는 오빠도 왔고 언니도 왔다. 오빠는 조문객에게 인사를 했고, 언니는 부의금 봉투를 셌다. 두 사람 다 은주에게 고생 많았다고 말했다. 은주는 고맙다고 했다. 어머니가 몇 년 만에 은주를 알아본 그 밤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그 밤은 은주 혼자만의 것이었다.

공단에서 우편이 온 것은 장례를 치르고 나서였다. 봉투를 뜯을 필요는 없었다. 은주는 뜯지 않고 서랍에 넣었다.

서랍을 정리하다가, 은주는 그 밤을 다시 떠올렸다. 어머니가 감나무 있는 집에 가고 싶다고 한 밤. 밤에 어딜 가느냐고, 택시도 없다고 자기가 웃으며 미룬 밤.

은주는 어머니의 고향을 찾아봤다. 어머니가 여섯 살까지 살았다는 면. 오래전 그 일대에 댐이 들어서면서 저수지 아래로 잠긴 마을이었다. 감나무가 섰다는 마당도, 그 밑에서 콩을 널었다는 어머니의 어머니도, 이제는 물 아래 있었다. 어머니가 마지막 밤에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 한 집은, 오십 년 전에 이미 없어진 집이었다.

은주는 서랍을 닫았다. 방에서는 아직 냄새가 났다. 소독약과 지린내와 파스가 아니라, 이번에는 마른 콩과 감꽃과 흙 냄새 같은 것이. 은주가 한 번도 맡아 본 적 없는 냄새였다. 은주는 그 냄새가 언제 사라질지 몰라서, 오래 방 안에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