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
면접은 지하상가 커피집에서 봤다. 남자는 나보다 서너 살 위로 보였고, 내 신분증을 사진으로 찍은 다음 돌려주면서 일을 설명했다. 채권 회수라고 했다. 돈을 못 갚은 사람 집에 가서 봉투를 받아 지정된 사물함에 넣으면 그날 일은 끝이고, 하루 세 건이면 15만 원이라고 했다.
"열어보면 안 됩니다."
"왜요."
"열어서 좋을 게 없으니까."
남자는 그 말을 하고 얼음을 씹었다. 나는 계약서를 쓰지 않았고, 그날 저녁에 첫 주소를 문자로 받았다.
봉투는 늘 갈색이었다. 두께는 제각각이었고, 어떤 집은 서류봉투에 넣어 스테이플러로 세 번을 찍어 주었으며, 어떤 집은 검은 비닐봉지째로 내밀었다. 나는 받은 자리에서 세지 않았다. 지하철역 물품보관함 3번 칸에 넣고 문을 닫으면 20분쯤 뒤에 입금 문자가 왔다.
우묵골 그 집에 처음 간 것은 일을 시작하고 여섯 번째 주였다.
버스 종점에서 내려 언덕을 5분쯤 오르면 슬라브 2층 단독이 나왔다. 대문에는 도시가스 점검 스티커가 세 장 겹쳐 붙어 있었고, 마당에 세워 둔 자전거는 바퀴가 삭아서 테만 남아 있었다. 초인종은 눌러도 소리가 나지 않아 문을 두드렸다.
노인이 나왔다. 일흔은 넘어 보였고, 앞치마를 두른 채였다. 나를 확인하려고 얼굴을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현관 신발장 위에 미리 올려 둔 봉투를 집어 두 손으로 내밀었다.
"세어 볼래요."
"아니요."
"세어 보라고 했는데."
"안 셉니다."
봉투는 두 손으로 받아야 할 만큼 묵직했다. 옆구리가 눌린 자국으로 보아 신문지에 싸서 넣은 돈이었다. 나는 인사를 하고 나왔고, 대문을 닫기 전에 뒤를 돌아보았을 때 노인은 아직 현관에 서서 마당을 보고 있었다.
두 번째는 열흘 뒤였고, 문자에는 같은 주소가 떴다.
그날 봉투는 처음 것의 절반쯤 되었다. 노인은 문을 열자마자 봉투부터 내밀었고, 내가 받아 드는 동안 손을 놓지 않아서 잠깐 둘이 같이 들고 있는 모양이 되었다.
"이번에는 좀 모자라요."
"저는 세지 않습니다."
"그럼 누가 세요."
"모르겠습니다."
노인은 손을 놓았다. 나는 봉투를 겨드랑이에 끼고 언덕을 내려왔다.
세 번째는 나흘 만이었는데, 봉투는 A4 용지 열 장쯤의 무게여서 손바닥에 얹으면 종이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나는 그것을 3번 칸에 넣었고, 입금 문자는 평소처럼 왔다. 액수도 같았다.
네 번째 주소를 받았을 때 나는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번 집 말인데요. 봉투가 비었을 수도 있어요."
"비었으면 비었다고 저쪽에서 말합니다."
"안 했어요?"
"안 했어요."
"그럼 든 게 있는 겁니다."
남자는 통화를 끊었다. 나는 그 집으로 갔다.
노인은 마루에 상을 펴 놓고 앉아 있었다. 상 위에는 봉투 하나와, 흰 사기그릇에 담긴 소금이 있었다. 그릇 옆에는 마른 수건이 접혀 있었고, 수건 가장자리에 녹슨 색 얼룩이 손가락 두 마디만큼 번져 있었다.
"들어와서 받아 가요. 문턱에서 주면 자꾸 흘려요."
나는 신발을 신은 채 마루 끝에 걸터앉아 봉투를 집었다. 무게는 지난번과 비슷했는데, 안에서 무언가가 한쪽으로 쏠렸다.
"이거 뭡니까."
"세지 말라면서요."
"세는 게 아니라."
"그럼 열지도 말아요."
노인은 소금 그릇을 상 가운데로 밀었다. 부엌 쪽에서 냉장고가 돌기 시작했고, 마루 유리문이 그 진동에 맞춰 아주 조금씩 떨렸다.
나는 봉투를 들고 나왔다. 언덕 중턱 가로등 아래에서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신문지로 싼 것이 하나 들어 있었다. 신문지는 두 겹이었고, 안쪽 겹에 물기가 배어 갈색으로 번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벗겼다. 마르다 만 것이 손바닥 위로 굴러 나왔다. 크기는 엄지손가락 첫 마디만 했고, 가장자리 살이 안쪽으로 말려 있었다.
나는 신문지를 다시 감아 3번 칸에 넣었다. 20분 뒤에 입금 문자가 왔고, 액수는 15만 원이었다.
다음 주소도 같은 집이었다.
그다음도 같은 집이었다.
그다음 주에 다시 갔을 때는 대문이 열려 있었다. 마당에는 앞치마가 빨랫줄에 널려 있었고, 물이 덜 빠져서 아래쪽으로 방울이 맺혀 떨어졌다. 나는 마루로 올라갔다.
노인은 상 앞에 앉아 있었다. 앞으로 숙인 자세로 무릎에 손을 얹고 있었는데, 왼손은 손바닥이 위로 향해 있었고 손가락 세 개가 붕대에 감겨 있었다. 붕대는 여러 번 감았다 푼 자국으로 보풀이 일어 있었다.
상 위에는 봉투가 있었다. 그 옆에 공책이 펴져 있었다.
"오늘은 세어 봐요."
"저는."
"오늘은 세어 보라고요."
나는 봉투를 열지 않고 공책을 봤다. 볼펜으로 그은 표였다. 왼쪽 칸은 날짜였고, 오른쪽 칸 위에는 미납 조치라고 적혀 있었다. 원금이나 잔액을 적는 칸은 없었다.
4월 2일 · 반지 두 개 4월 19일 · 금니 세 개 5월 6일 · 머리카락 5월 21일 · 왼손 새끼 6월 4일 · 왼손 약지 6월 20일 · 왼손 가운데
여섯 줄 아래로 한 줄이 더 있었다. 날짜는 7월 9일이었고, 미납 조치 칸에는 오른쪽 귀라고 적혀 있었다.
노인은 공책을 덮으려고 오른손을 뻗었다. 몸이 기울면서 오른쪽으로 넘어간 머리카락이 흘러내렸고, 그 아래는 비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