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아래

인호는 밤이면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켜지는 않았다. 꺼진 화면은 검고 조금 볼록해서 등 뒤 창문을 통째로 담았다. 골목과 블록 담과 담 너머 최 씨네 마당까지 그 안에 들어왔다. 창가에 서면 최 씨가 고개를 들 때마다 눈이 마주쳤다. 화면으로 보면 마주치지 않았다.

그 골목에서 밤에 남의 집을 보는 사람은 인호뿐이 아니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은 자기가 본 것을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백열등 아래에서 최 씨가 삽을 들면 창문을 닫았고, 냄새가 심한 날에는 아침까지도 열지 않았다. 모른 척하는 일은 함께 살기 위해 익힌 예의였다. 인호에게는 그 예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인호가 자기 눈을 그대로 믿는 것은 아니었다. 약국에서 받아 온 알약의 색이 달라졌을 때도 그는 밤새 봉지를 들여다보다 신고했다. 같은 약을 다른 회사에서 만든 것뿐이었다. 우체부가 편지를 뜯었다던 날에는 봉투 풀칠이 습기에 벌어진 것이었고, 연탄가게 김 씨가 조카를 광에 가뒀다던 일은 그 조카가 휴가를 나와 집에 돌아오면서 끝났다. 세 번 다 인호는 순경보다 먼저 고개를 숙였다. 사람들은 그가 그 일을 잊었다고 생각했다.

신고가 거듭될수록 순경들은 조금씩 덜 움직였다. 처음에는 둘이 왔다. 그다음에는 담 밖에서 얘기만 들었다. 요즘은 인호의 이름을 먼저 확인했다.

“아, 그 집.”

수화기 너머에서 누가 말하는 것도 들었다. 말한 순경은 인호가 듣지 못했기를 바랐지만 목소리를 낮추지는 않았다.

최 씨는 밤에만 마당을 팠다. 한여름 낮에 거름 자리를 뒤집으면 골목이 뒤집어진다고 했다. 밤 10시쯤 백열등이 켜지고 삽이 흙에 박히면 집집마다 창문이 닫혔다. 누구는 저 집 사정도 딱하다고 했고, 누구는 아내 없이 밭이라도 가꿔야 견디는 모양이라고 했다. 최 씨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서인지 웃음을 감추려는 것인지는 그를 빼고는 알 수 없었다.

최 씨네 밭은 2년 전 겨울에 생겼다. 그전까지 마당은 시멘트 반 흙 반이었다. 흙 쪽에는 고무 대야와 연탄재가 쌓여 있었다.

그전 가을 최 씨의 아내가 집을 나갔다. 부산 식당에 갔다는 사람도 있었고 친정에 있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 집에서 밤마다 돈 얘기가 담을 넘었으므로 동네 사람들은 돈 벌러 갔다는 쪽을 믿었다. 그 이야기는 이듬해 봄까지 골목을 돌았고, 아무도 부산의 어느 식당인지는 묻지 않았다.

밭이 생긴 겨울 어느 새벽, 인호는 텔레비전 화면으로 최 씨를 보았다. 최 씨는 손수레에 비료 포대와 마른 대나무를 싣고 마당을 가로질렀다. 맨 아래에는 이불을 두툼하게 말아 노끈으로 묶은 것이 있었다. 물을 먹었는지 한쪽이 처져 바닥에 끌렸다. 최 씨는 짐을 흙 쪽에 내려놓고 날이 밝을 때까지 마당에 있었다.

인호는 아침이 되자 파출소로 갔다.

그때는 순경 둘이 왔다. 최 씨는 곰팡이 난 이불과 대나무를 묻은 거라고 했다. 아내한테서 왔다는 엽서도 내왔다. 부산 소인이 찍혀 있었고, 소인 날짜는 이불을 묻기 전이었다. 순경은 엽서를 앞뒤로 보고 돌려줬다. 글씨가 아내 것인지는 묻지 않았다. 인호도 아내의 글씨를 몰랐다.

최 씨가 내온 요구르트를 마시며 한 순경이 이불솜도 썩으면 거름이 되느냐고 물었다. 최 씨는 오래 걸릴 뿐이라고 했다. 순경은 대답을 믿었다기보다 더 물을 말이 없었다. 그는 파출소에 돌아가 신고 처리 기록에 엽서가 있었다는 사실만 적었다. 무엇이 적혀 있었는지는 적지 않았다.

인호는 114에 전화해 최 씨의 아내가 일한다는 부산 식당을 찾아 달라고 했다. 안내원은 상호와 동 이름을 차례로 물었다. 둘 다 모르면 찾을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 안내원은 전화를 끊고 다음 번호를 받았고, 인호는 수화기를 내려놓은 뒤에도 빈칸 두 개를 오래 생각했다. 상호. 동 이름. 모르는 것이 둘뿐인데 사람 하나가 없던 일이 되었다.

봄에 최 씨는 밭 한가운데 구덩이를 파고 음식 찌꺼기를 부었다. 그 둘레에는 상추를 심었다. 여름이 되자 단내가 섞인 썩는 냄새가 담을 넘었다. 인호는 냄새가 올라오는 밤이면 텔레비전 앞으로 갔다.

보름 전에는 순경 둘과 통장까지 왔다. 최 씨는 삽을 두 자루 들고 나와 한 자루를 순경에게 내밀었다.

“파 봅시다. 속 시원하게.”

최 씨는 구덩이 둘레의 상추를 뽑아 소쿠리에 담았다. 담 쪽에 붙은 작은 두 포기만 남겼다.

“그건 씨 받을 거요.”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두 포기는 구덩이의 젖은 테두리에서 한 뼘쯤 벗어나 있었다. 최 씨는 두 포기와 삽날 사이의 거리를 보았다. 한 번 보고는 다시 보지 않았다.

순경은 상추를 뽑은 자리에 삽을 넣었다. 수박 껍질과 생선 뼈와 배춧잎과 연탄재가 나왔다. 통장은 코를 막은 채 장독대 쪽으로 물러났다. 최 씨는 흙 속에서 나온 소주병 두 개를 담 밑에 세워 두었다. 한 병에는 뚜껑이 남아 있었다.

“거름 자리는 겨울에 뒤집는 건데, 이 양반 성화에 생고생이네.”

최 씨가 웃었다. 순경도 따라 웃었다. 최 씨가 먼저 흙을 도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순경이 삽을 보탰고 인호는 담 쪽의 두 포기 앞에 서 있었다. 그쪽은 아무도 파지 않았다.

수요일에 누나가 반찬통을 들고 왔다. 찬장을 열자 지난번 반찬이 그대로 있었다. 누나는 뚜껑을 하나씩 열어 보고 도로 닫았다. 상한 것은 검은 봉지에 넣고 약봉지를 세어 식탁 한쪽에 줄을 맞췄다. 그러는 동안 인호를 한 번도 보지 않았다. 손에서 할 일이 떨어진 뒤에야 입을 열었다.

“다음 주 화요일에 차가 와. 산 밑이고 밥도 잘 나온대.”

인호는 약봉지 하나를 서랍에 밀어 넣었다. 누나는 보았지만 다시 꺼내 놓지 않았다.

“며칠만 가 있으면 돼.”

둘 다 며칠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누나는 방바닥을 보았고 인호는 병원 이름을 묻지 않았다. 화요일까지 엿새였다.

누나는 돌아가기 전에 달력의 화요일에 동그라미를 쳤다. 냉장고에는 삶은 달걀 네 개를 넣어 두었다. 인호는 현관까지 따라 나오지 않았다. 누나는 문밖에 선 채 손잡이를 두 번 눌러 보았다.

그날부터 인호는 매일 파출소에 전화했다. 마지막 전화를 받은 순경은 목소리가 젊었다. 그는 부드럽게 말하면 친절한 처리가 된다고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박인호 씨, 사람 하나 말만 듣고 남의 밭을 전부 엎을 수는 없잖아요. 지난번에도 같이 확인했고요.”

인호는 수화기 선을 손가락에 감았다.

“누님한테 화요일에 병원 가신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가서 좀 쉬세요. 밭은 그만 보시고요.”

순경은 자기가 인호를 달랬다고 생각했다. 인호는 엽서가 진짜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의심을 끝내기 위해 같은 전화를 끊었다.

인호는 서랍에서 손전등을 꺼내 건전지를 새것으로 갈았다.

월요일 밤에 최 씨네 불이 일찍 꺼졌다. 차가 오기까지 하룻밤도 남지 않았다.

화요일 새벽 1시에 인호는 담을 넘었다. 손전등을 켜 허리띠 사이에 꽂자 빛이 발치만 비쳤다. 헛간 벽에 기대 둔 삽을 집어 들었다. 담 쪽의 작은 상추 두 포기를 뽑자 뿌리에 흙이 얼마 붙어 있지 않았다.

위쪽 흙은 푸석하고 미지근했다. 음식 찌꺼기도 거의 없었다. 조금 내려가자 흙이 단단하고 차가워졌다. 병 조각을 긁는 소리가 나면 멈춰 최 씨네 창을 보았다. 불은 꺼져 있었다. 그 시각 골목 사람들은 거의 모두 잠들어 있었고, 잠들지 못한 사람도 자기 집 밖의 소리는 듣지 않으려 했다.

두 뼘쯤 파자 삽날이 비닐을 밀어 올렸다. 인호는 삽을 놓고 무릎을 꿇었다. 손으로 흙을 걷고 비닐을 젖히자 노끈과 젖은 이불깃이 나왔다. 이불깃에는 긴 머리카락이 엉겨 있었다.

인호는 머리카락을 이불깃에서 떼어 내려 했다. 젖은 몇 가닥이 손가락에 붙었다.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더 파지 말고 신고해야 했다. 이번에는 흙을 덮기 전에 사람들을 데려와야 했다. 그런데 틀린 세 번의 신고가 그 순간에도 그의 손을 붙들었다.

마당 안쪽에서 나무문이 한 번 울렸다.

화요일 아침 흰 승합차가 골목에 들어왔다. 차는 30분을 기다리다 돌아갔다. 인호의 집에는 사람이 없었다. 신발과 낡은 점퍼도 보이지 않았다. 약봉지는 식탁 위에 그대로 있었다.

누나는 파출소에 갔다. 순경은 제 발로 나간 것 같다고 했다. 입원 날짜를 앞두고 사라지는 사람이 있다고도 했다. 누나는 그 설명을 믿고 싶었다. 믿으면 동생은 어딘가 걷고 있는 사람이 되었다.

순경은 정류소 매표소와 시장 경비실에 연락해 보겠다고 했다. 인호가 입던 점퍼 색을 묻고 수첩에 갈색이라고 적었다.

최 씨는 슬리퍼를 끌고 나와 누나와 함께 골목 끝까지 걸었다.

“멀리는 못 갔을 거요. 몸도 성한 사람이 아닌데.”

누나는 고맙다고 했다. 최 씨는 두 손을 등 뒤로 모으고 그 인사를 받았다.

거름 구덩이는 메워져 있었다. 담 쪽에는 작은 상추 두 포기가 다시 심겨 있었다. 누나는 보지 못했고 순경도 보지 못했다. 두 포기만 잎이 젖어 있었다.

2.5 · 2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