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거래
이삿날을 한 달 앞두고, 나는 집 안의 물건들을 하나씩 내다 팔기 시작했다.
서울살이 11년 치 살림이었다. 스물넷에 보증금 500만 원을 들고 올라와 반지하와 옥탑을 거치는 동안, 나는 물건 하나를 사는 데도 오래 뜸을 들이는 사람이 되었다. 원목 서랍장은 석 달을 재고 샀고 가습기는 겨울마다 목이 붓고서야 샀다. 그런 물건이라 내놓는 데도 품이 들었다. 먼지를 닦고, 흠집을 고백하고, 나중에 트집 잡힐 만한 구석이 없는지 사진을 확대해서 다시 봤다.
앱은 동네를 인증하고 이웃끼리 직거래하는 흔한 중고 거래 앱이었다. 내 계정에는 배지가 많았다. 친절해요. 시간 약속을 잘 지켜요. 응답이 빨라요. 어떤 구매자는 후기에 이렇게 썼다.
쿨거래였습니다. 이보다 쿨할 수 없음.
후기 아래에 ‘감사합니다’라고 답글을 달았다.
내가 살던 샛별빌은 여섯 층짜리 원룸 건물이었다. 낡은 계단통을 타고 1층 철문 소리가 4층까지 올라왔다. 처음에는 밤마다 깼지만 5년을 살고 나니 발소리만으로도 대강 구별했다. 두 계단씩 뛰면 택배였고, 구두 소리가 3층에서 멎으면 301호 여자였다. 밤늦게 발소리가 4층까지 올라오면 도어뷰를 확인했다.
가습기는 3만 원에 올렸다. 직장인이라 밤에만 시간이 된다는 남자가 연락해 와 문고리 거래로 정했다. 결제를 확인한 뒤 물건을 봉투에 담아 문고리에 걸어 두는 방식이었다. 얼굴을 안 봐도 되고 시간을 맞출 필요도 없어서 혼자 사는 사람들끼리 흔히 썼다.
밤 10시쯤 송금 알림이 왔다. 나는 동과 호수,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보냈다. 샛별빌 402호예요. 582401 누르고 올라오시면 돼요. 한 시간 뒤 봉투는 사라졌고, 그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겼다. 거래는 깔끔하게 끝났다.
사흘 뒤 그 채팅방이 다시 열렸다.
작동이 안 되는데요.
필터 방향과 물탱크 잠금법을 알려 줬지만 해 봐도 안 된다고 했다. 나는 3만 원을 돌려주겠으니 계좌를 달라고 했다. 물건도 가지시라고 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고요. 저는 물건 상태보다 판매 이력을 보고 거래하는 편이라서요.
곧 한 줄이 더 왔다.
오늘 우산 안 가져가셨던데요. 비 맞으셨겠어요.
그날 아침 나는 현관에서 우산을 들었다가 도로 놓고 나갔다. 회사 앞에서 비닐우산을 샀다. 현관 앞에서 나를 봤다면 우산이 없던 걸 알 수 있었다. 에어컨 바람 아래서 손바닥을 치마에 두 번 닦았다.
어떻게 아셨냐고 입력했다가 지웠다. 계좌를 보내 달라는 말만 다시 남기고 차단했다.
그 채팅방은 닫혔다. 커튼을 올리기 전까지는.
새집에는 치수가 맞지 않는 커튼 두 폭을 2만 원에 올렸다. 등록하고 보리차를 꺼내는 사이 폰이 울렸다. 거래 내역이 없는 새 계정이었다.
커튼을 내놓으셨네요. 이사 가시나 봐요.
마침표까지 같은 말투였다. 나는 계정을 차단하고 글을 내렸다. 보리차를 꺼낸 뒤 10분 넘게 냉장고 문을 열어 둔 채였고 경고음이 울렸다.
다음 계정은 남자 운동화 글에 나타났다.
운동화를 파시네요. 혼자 되셨나 봐요.
헤어진 사람의 신발이었다. 반년 동안 신발장 구석에 둔 걸 그가 알 리는 없었다. 나는 채팅창에 ‘무슨 뜻이죠’라고 썼다가 지우고 계정을 차단했다.
그날부터 판매 목록을 항목별로 적었다. 커튼은 곧 이사한다는 뜻이었고, 남자 운동화는 함께 살던 사람이 사라졌다는 뜻이었다. 1인용 밥솥은 혼자 먹는다고 말했고, 답장을 보낸 시각은 퇴근 시간을 알려 줬다. 사진 귀퉁이에는 콘센트와 창틀, 장판 무늬가 찍혀 있었다. 나는 판매 완료 글을 열어 사진을 지웠다. 지울 수 없는 글은 숨김 요청을 넣었다. 지운 사진은 일곱 장이었다.
그가 내 계정을 어떻게 따라오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앱에는 지정한 물건이 올라오면 알려 주는 기능이 있었고, 판매자 프로필에는 아직 파는 물건이 한꺼번에 보였다. 내 닉네임을 계속 검색하는지, 새 글 알림을 다른 방식으로 받아 보는지도 몰랐다. 등록 버튼을 누른 뒤 1분 안에 그가 왔다.
나는 앱을 지우지 않았다. 이사 비용표에는 서랍장 폐기 스티커 5천 원, 매트리스 9천 원, 용달 계단 작업비가 적혀 있었다. 팔기를 그만두는 대신 규칙을 만들었다. 문고리 거래는 하지 않는다. 대면은 낮에 편의점 앞에서 한다. 구매자 프로필을 친구에게 보낸다.
서랍장은 그렇게 팔았다. 신혼부부가 트럭을 몰고 왔고, 아내 쪽이 귤 한 봉지를 쥐여 주고 갔다. 나는 ‘괜히 번거롭게 해 드렸네요’라고 두 번 말했다. 여자는 트럭에 타기 전 나를 한 번 더 쳐다봤다.
밥솥을 사러 온 대학생은 편의점 앞에서 5분을 기다렸다. 약속 시간이 되자 현관 손잡이를 잡았다가 놓았다. 도어뷰로 복도를 보고 창문으로 골목을 본 뒤, 배가 아프다고 거짓말해 학생을 문 앞까지 올라오게 했다. 체인을 건 채 빈손인 것을 확인하고서야 밥솥을 내밀었다. 학생은 도망치듯 내려갔고, 채팅방에는 ‘물건 받았습니다 ㅋㅋ’만 남겼다.
신고도 순서대로 했다.
앱 고객센터는 해당 계정을 이용 제한했다고 답했다. 이틀 뒤 새 계정이 나타났다. 다시 신고하자 같은 답이 왔다. 세 번째 문의에는 ‘건강한 거래 문화를 함께 만들어 가요’라는 말을 빼 달라고 썼다가 지웠다. 해당 문장을 지운 뒤 캡처 파일만 첨부했다.
경찰서에서는 캡처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줬다. 반복 연락은 맞지만 계정들이 같은 사람 것이라는 자료가 부족하다고 했다. 가입 자료를 요청해 보고 순찰도 강화하겠다고 했다. 집 근처에 나타나면 바로 112로 전화하라고, 신고하면 몇 분 안에 간다고 했다.
귀가한 뒤 현관에서 공동현관까지 타이머를 켜고 뛰었다. 1분 32초가 찍혔다.
그날 밤 11시에 새 계정으로 채팅이 왔다.
멀리 다녀오셨네요. 버스로만 한 시간 반이던데.
담당 부서가 있는 경찰서는 집에서 버스로 한 시간 반 거리였다. 채팅방 설정에는 읽음 표시 기능이 없었다. 나는 차단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가 폰을 껐다.
관리업체에는 공동현관 CCTV와 비밀번호 변경을 요청했다. 내가 짚은 시간에는 택배 조끼를 입은 남자들만 찍혀 있었다. 관리인은 번호를 바꾸려면 세대마다 통보해야 하고, 반년에 한 번 바꾸는 게 규정이라고 했다. 지난번에 바꾼 지 석 달밖에 안 됐다는 말도 덧붙였다. 내가 채팅창에 보낸 582401은 앞으로 석 달 더 유지될 번호였다.
그의 새 계정에는 다른 거래도 쌓였다. 화분 받침과 아령을 사고 어느 할머니에게 상추를 샀다.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분이에요. 젊은 사람이 참 싹싹해요. 배지는 내 것보다 많았다. 나는 후기 열두 개를 캡처해 경찰 담당자에게 보냈다.
그가 이삿날까지 아는지 확인하려고 거짓말도 했다. 다음 주 화요일에 이사한다고 보냈다. 실제 이삿날은 금요일이었다. 한 시간 뒤 답이 왔다.
금요일이시잖아요.
나는 그가 금요일을 알 수 있는 경로를 종이에 적었다. 부동산 유리문 안쪽의 일정표, 관리인, 용달 기사, 분리수거장에 내놓은 박스, 회사에서 연차 날짜를 들은 사람들. 하나를 지우려면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내 사정을 설명해야 했다. 종이 아래가 모자랐고, 나는 결국 반으로 접어 싱크대 서랍에 넣었다.
친구가 사흘 동안 함께 자 줬다. 좁은 바닥에 요를 나란히 깔고 여고 때처럼 시시한 얘기를 했다. 그 사흘 동안 채팅은 한 통도 오지 않았다. 친구가 기차를 타러 간 날 저녁에 폰이 울렸다.
손님 가셨네요. 집이 다시 넓어지셨겠어요.
그 채팅은 친구에게 보내지 않았다. 채팅방 캡처 폴더에도 넣지 않았다. 그 뒤로 친구에게 오라는 연락을 하지 않았고, 잡혀 있던 약속 두 개를 취소했다. 문은 내가 잠갔다.
엄마 전화에는 잘 지낸다고 했다. 통화를 끊은 뒤 현관 보조잠금장치를 당겨 보고, 창문의 커튼 틈을 손가락 하나만큼 벌렸다가 다시 닫았다. 길 건너 창들은 모두 검었다. 그날부터 불을 켜는 시간을 날마다 바꾸었다.
나는 이사를 2주 앞당겼다. 새 주소는 회사 근처라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새집 중개사와 용달 기사만 주소를 알았다. 계약서 사진은 찍지 않았고 내비게이션 목적지도 기사 폰으로 입력하게 했다. 엄마에게는 이사한 뒤 알려 주겠다고 했다. 친구에게도 그때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짐은 낮에만 쌌다. 박스 겉에는 방 이름 대신 번호를 썼고, 새 주소가 적힌 서류는 회사 서랍에 넣어 두었다. 내가 보낸 채팅을 다시 확인했다. 그 안에는 샛별빌 402호와 금요일만 남아 있었다.
이사 전날 밤, 문고리에 검은 비닐봉투가 걸려 있었다. 안에는 보름 전에 팔았던 가습기가 있었다. 작동이 안 된다던 물건이었다. 물탱크에는 미지근한 물이 반쯤 남아 있었고, 뚜껑을 여니 눅눅한 냄새가 올라왔다. 봉투가 여기 있으려면 누군가 공동현관을 열고 4층까지 올라와야 했다.
112에 전화했다. 관리인이 CCTV를 확인해 줬다. 야구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봉투를 들고 들어왔다가 4분 뒤 빈손으로 나갔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경찰은 영상을 보관해 달라고 했고 관리인은 공동현관 번호를 바꾸겠다고 했다. 나는 가습기를 소형 폐가전 수거함에 넣었다. 손을 세 번 씻은 뒤 손톱 밑을 키친타월로 닦았다.
이삿날 아침, 박스를 현관 앞에 줄 세우고 나니 방이 훤했다. 부동산 사장님은 오전 계약을 마치고 11시 30분까지 오겠다고 했다. 용달은 오후 1시였다. 냉장고 하나가 남아 있었다. 새집은 빌트인이라 가져갈 수 없었고, 기사는 버리는 비용으로 12만 원을 불렀다.
나는 처음 살림을 내놓을 때 작성만 해 둔 냉장고 글을 열어 가격을 0원으로 바꿨다. 오늘 오전 11시 30분 이후, 오후 1시 전에 가져가실 분. 4층에서 직접 옮겨 가셔야 합니다. 주소 입력란은 비워 두었고 사장님 도착 뒤 거래 상대에게 보낼 예정이었다. 사진의 반사광을 지우고 위치 정보도 다시 확인했다.
공개 버튼 위에 11시 24분이 표시됐다. 전날 관리인은 공동현관 번호를 바꿨고, 냉장고 글에는 주소를 쓰지 않았다. 부동산 사장님은 6분 뒤 도착할 예정이었다.
11시 24분에 글을 공개했다. 사장님이 올 때까지 6분이었다. 58초 뒤 폰이 울렸다. 처음 보는 계정이었다.
냉장고는 두고 오셔도 돼요.
푸른빌 301호에서 기다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