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

장마가 든 뒤로 그 집에는 소리가 늘었다. 함석 처마를 때리는 비, 불어난 도랑이 돌을 굴리는 소리, 안방에서 두 시간마다 우는 알람. 알람이 울면 아들은 어머니를 모로 눕혔다. 이불과 몸이 한꺼번에 밀리는 소리가 났다.

집은 골짜기 끝에 있었다. 아랫마을에서 마당까지 돌계단이 가팔랐고, 슬레이트 지붕 아래 방 둘과 마루 하나가 붙어 있었다. 어머니는 봄부터 안방 요양 침대를 떠나지 못했다. 아들은 건넌방에서 옷도 벗지 않고 잤다. 몇 년째 그런 살림이었다.

저녁이면 안방에서 말소리가 났다. 갈라진 목소리가 밥은 먹었냐고 물으면 낮은 목소리가 먹었다고 했다. 잠깐 조용했다가 같은 문답이 또 났다. 전기밥솥은 오래전에 보온 기능이 망가져, 아들은 남은 밥을 작은 냄비에 옮겨 두었다. 밤중에 죽을 데울 때마다 냄비 바닥이 눋었다.

부엌 서랍에는 요양원 안내지와 입소 신청서가 들어 있었다. 읍내 요양원에서 빈자리가 났다고 전화한 날, 아들은 장마만 지나고 생각하겠다고 했다. 오늘 안에 답을 줘야 한다는 말을 듣고도 같은 대답을 했다. 신청서의 보호자 서명 칸은 비어 있었다. 아들은 그 종이 위에 고무장갑을 올려 두고 서랍을 닫았다.

지난봄에는 주간보호차가 이틀 왔다. 어머니를 보낸 첫날, 아들은 알람이 울릴 때마다 빈 안방 문을 열었다. 두 번째 날에는 차가 계단 아래서 기다리는 동안 어머니 옷을 갈아입히지 않았다. 기사는 한참 뒤에 그냥 돌아갔다.

발소리는 장마 중턱의 어느 새벽에 처음 났다. 4시가 못 된 시각이었다. 빗소리 사이로 누가 돌계단을 올라왔다. 느린 걸음이 두 번 나고, 딱딱한 것이 돌을 짚었다. 아들은 건넌방 문을 열었다. 소리는 계단 중간쯤에서 그쳤다. 손전등 불빛 아래에는 젖은 돌과 달팽이 한 마리뿐이었다.

아침에 갈라진 목소리가 말했다. 네 아버지가 마중을 왔다더라. 지팡이 소리를 듣고도 모르겠느냐.

아버지는 여러 해 전에 갔다. 가는 해까지 물푸레 지팡이를 짚었다. 아들은 죽 냄비의 눌어붙은 자리를 숟가락으로 오래 긁었다.

이틀에 한 번은 머리를 감겼다. 침대 머리맡에 양철 대야를 받치고 바가지로 미지근한 물을 부었다. 시원하냐고 갈라진 목소리가 물었다. 시원하다고 낮은 목소리가 대답했다. 아들은 성긴 머리카락을 마른 수건으로 감쌌다. 드라이기는 쓰지 않았다. 어머니가 그 소리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아들만 기억했다.

며칠 뒤에는 왼발을 끄는 걸음이 계단을 올랐다. 아들은 손전등을 들고 반쯤 내려갔다. 도랑물만 크게 울었다. 계단참에 빗물 먹은 비료 포대가 붙어 있었는데, 그는 그걸 마당까지 끌어올려 처마 밑에 세웠다. 아침에는 중풍으로 먼저 간 외삼촌이 왔다는 말이 났다.

그다음 날 밤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대신 처마 밑 고양이가 빈 사료 그릇을 밀었다. 아들은 그릇에 사료를 붓다가 반을 마루에 쏟았다. 날이 밝아도 치우지 않았다.

세 번째 발소리는 물 댄 논에서 장화가 빠지는 것처럼 질척거렸다. 아들은 나가 보지 않았다. 아침의 목소리는 아랫마을 물꼬 노인 이야기를 했다. 3년 전 도랑에서 발견된 사람이었다.

아들은 면 소재지 보건지소에서 어머니 약을 받아 왔다. 그 무렵부터 약봉지는 두 몫이었다. 아들 것도 혈압약이었다. 돌계단을 오를 때 두 번 쉬었고, 한 번은 코피가 죽그릇에 떨어졌다. 그는 위에 뜬 붉은 점을 숟가락으로 떠내고 새 그릇을 쓰지 않았다. 설거짓거리를 늘리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가 가래를 삼키지 못한 밤이 있었다. 아들은 등을 두드리다 고개를 벽에 기대었다. 기침이 잦아든 뒤에도 한동안 손을 떼지 못했다. 아침에 물을 끓이지 않는 집을 생각했다. 부엌에 가서는 빈 주전자를 불에 올렸다. 타는 냄새가 난 뒤에야 물을 부었다. 물이 끓는 동안 요양원 신청서를 꺼냈다가, 젖은 손가락 자국만 남기고 도로 넣었다.

장마 끝물에는 젊은 걸음이 왔다. 두 단씩 오르는 급한 발이었다. 계단을 반 넘게 올라와 멎었다. 아침의 말소리는 재작년에 오토바이로 간 친구가 왔다고 했다. 그 친구는 이 집에 온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얼굴도 이름도 몰랐다.

아들은 죽을 식히던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안방을 한 번 보고 마당을 한 번 보았다. 처마에서 떨어진 빗물이 사료 그릇을 채우고 있었다. 그는 그 물만 버리고 빈 그릇은 그대로 두었다.

골짜기 노인들은 마중이 처음에는 사립문 밖에서 서성인다고 했다. 기척이 문턱까지 오면 사흘을 못 넘긴다고도 했다. 옛사람들은 팥을 뿌리고 밤을 새웠다. 아들은 방앗간 옆 가게에서 팥 한 되를 샀다. 어머니 죽에 넣을 거라고, 주인이 묻기 전에 말했다.

팥 자루는 문턱 옆에 세워 두었다. 뿌리자니 우스웠고 치우자니 손이 가지 않았다.

월요일에 보건지소 간호사가 올라왔다. 혈압을 재고 욕창 자리를 살핀 뒤, 수첩에 몇 줄 적었다. 어머니 팔에서 혈압계를 푼 간호사는 아들의 팔도 내놓으라고 했다. 숫자를 다시 잰 뒤에는 요양원에서 연락이 왔느냐고 물었다.

아들은 빈자리가 다른 집으로 갔다고 했다.

“보내실 생각이 없으신 거예요?”

그는 대답 대신 안방의 죽그릇을 들었다. 간호사는 이러다 보호자가 먼저 상한다고 했다. 신을 신다 말고 밤에 잠을 자느냐고도 물었다.

“어머니가 말 많은 밤에는 좀 설칩니다.”

간호사가 신 뒤축을 밟은 채 돌아보았다.

“어머님, 봄부터 발성이 안 되시잖아요.”

혀와 목 넘김이 같이 굳어서 죽을 묽게 쑤라고 설명하지 않았느냐는 말이 뒤따랐다. 아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간호사는 한참 서 있다가 다음 주에는 요양보호사 시간부터 다시 알아보자고 했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비에 금방 묻혔다.

그날 저녁에도 문답은 났다. 밥은 먹었냐. 먹었다. 안방 문은 열려 있었고 침대에서는 숨소리만 오르내렸다. 마루의 밥상 앞에 앉은 아들 입에서 두 목소리가 번갈아 나왔다. 낮은 대답을 할 때는 입술이 움직이는 줄 알았다. 갈라진 질문이 시작되자 그는 손등으로 입을 눌렀다. 질문은 끝까지 이어졌다. 죽은 식어 갔다. 다음 대답은 한참 뒤에 나왔다.

새벽에 발소리가 다시 왔다. 처음에는 지팡이가 돌을 짚었다. 다음 걸음은 한쪽 발을 끌었고, 그 뒤에는 젖은 장화가 붙었다 떨어졌다. 그러다 두 계단을 한꺼번에 밟는 소리가 났다. 발소리가 겹치지는 않았는데 걸음새는 디딜 때마다 바뀌었다.

마당 자갈이 눌렸다. 섬돌이 한 번 울렸다. 발소리는 열린 안방 앞을 지나 건넌방으로 향했다. 문턱 옆의 팥 자루는 뜯기지 않은 채였다.

아들은 문 안쪽에 앉아 알람을 쥐었다. 안방에서는 어머니가 숨을 쉬고 있었다. 문밖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이 집에서 여러 해 동안 아무도 부르지 않은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알람이 울렸다. 아들은 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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