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 2번

민규의 안경원은 강변 상가 2층에 있었다. 아래층 편의점 냉장고가 돌아가면 검안실 바닥까지 가늘게 울렸다. 손님은 대개 코받침이 빠졌다거나 렌즈 세척액이 급하다며 들어왔다. 민규는 그런 일도 접수증을 끊어 처리했다. 15년 동안 혼자 가게를 하다 보니, 기억보다 종이를 믿는 편이 나았다.

검안의 끝에는 늘 같은 질문이 있었다.

"1번이 잘 보이세요, 2번이 잘 보이세요?"

민규가 다이얼을 돌리면 검안기 안에서 렌즈 조합이 바뀌었다. 어느 쪽이 나은지는 손님만 알았다. 망설이는 사람에게는 1번을 다시 보여 주고, 그래도 모르겠다고 하면 2번으로 돌아갔다. 대답이 나올 때까지 그 일을 반복했다.

처음 이상한 대답을 들은 날은 비가 왔다. 젖은 운동화를 신은 여자가 폐점 직전에 들어와, 닦지도 않은 우산을 출입문 옆에 세워 두었다. 검사 내내 평범했다. 마지막 두 조합만 남았을 때 민규가 물었다.

"1번이 나으세요, 2번이 나으세요?"

여자는 검안기에서 얼굴을 떼지 않았다.

"둘을 같이 보여 주세요."

민규는 그런 선택지는 없다고 했다. 1번과 2번은 안경 두 벌의 이름이 아니라 비교를 위한 조합이었다. 여자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같은 말을 했다.

"겹치면 보여요."

무엇이 보이느냐고 묻자 여자의 눈동자가 검안기 너머에서 움직였다. 시력표가 있는 정면이 아니었다. 민규가 검안기 옆에서 쓰는 낮은 조작 의자 쪽이었다. 그때 민규는 렌즈 상자를 가지러 일어나 있었고, 의자는 비어 있었다.

여자는 결국 같은 테로 안경 두 벌을 주문했다. 하나는 1번 조합, 하나는 2번 조합. 둘을 포개 쓸 거라고 했다. 민규는 어지럼과 낙상 위험을 설명한 뒤 주문서 여백에 ‘고객 요청’을 적었다. 여자는 제작비를 전부 현금으로 냈다. 우산은 두고 갔다.

완성 안내 문자를 두 번 보냈지만 답은 없었다. 전화번호는 없는 번호였다. 그것도 드문 일은 아니었다. 우산에서는 마른 흙이 떨어져 민규가 편의점 봉투를 씌워 놓았다.

그 뒤 이틀은 별일이 없었다. 옆 휴대폰 가게 직원이 휘어진 안경다리를 펴 달라며 왔고, 단골 택시 기사는 1번과 2번을 세 번 번갈아 본 끝에 2번을 골랐다. 택시 기사는 새 안경보다 건물 뒤 불법 주차 단속 이야기를 오래 했다. 민규는 렌즈를 주문하면서 비 오는 날의 여자를 떠올렸다가, 주문서에 적힌 전화번호가 틀렸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가끔 손님들은 자기 번호도 틀리게 썼다.

며칠 뒤 양복 입은 남자가 왔다. 그다음에는 교복 차림의 학생이 왔다. 셋은 서로 다른 도수였고 주소도 달랐다. 주문은 같았다.

1번 한 벌. 2번 한 벌. 같은 테. 전액 선불.

"두 분 다 그렇게 말씀하시던데요."

민규가 학생에게 떠보듯 말하자 학생은 검안기 안에서 눈을 깜박였다.

"두 분이요?"

"아닙니다. 어느 쪽이 더 잘 보이나 해서요."

"같이요."

학생은 대답하고 나서 자기 말에 놀란 얼굴을 했다. 민규가 누구에게 들었느냐고 묻자 입술만 만지다가, 교통카드를 두고 나갔다.

학생의 어머니는 그날 저녁 전화를 걸어 주문을 취소해 달라고 했다. 아이가 안경원에 간 기억이 없다는 것이었다. 두 학원 사이에 40분이 비어 있었다고 민규가 접수 시각을 읽어 주자, 수화기 너머에서 학생이 짜증을 냈다. 안경 안 쓴다니까. 내 카드 거기 없어.

민규는 교통카드를 카운터 위에 놓고 CCTV를 돌려 봤다. 화면 속 학생은 혼자 들어왔다. 검사도 받았고 주문서에도 직접 서명했다. 민규가 카운터로 나가 전화번호를 확인하는 동안, 학생은 검안실에 남아 있었다.

학생은 시력표를 보지 않았다. 시험테에 렌즈 두 장을 겹쳐 끼운 채 빈 조작 의자를 보고 있었다.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는 없었지만 짧은 문장이 두 번 반복됐다.

민규는 앞선 날짜의 영상도 찾았다. 여자는 빈 조작 의자에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양복 입은 남자는 누군가 말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듯 손을 무릎에 올려놓았다. 세 사람 모두 검안실을 나설 때는 의자 쪽으로 몸을 비켜 주었다.

주문품 여섯 벌은 서랍 하나를 다 차지했다. 손님별로 상자가 하나씩이었고, 같은 테 두 벌이 나란히 들어 있었다. 이름과 도수를 붙여 놓았지만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민규는 가끔 서랍을 열어 상자 수를 세었다. 세 개였다. 다음 날도 세 개였다.

어느 밤에는 네 개가 들어 있었다.

네 번째 상자에는 민규가 쓰는 검은 뿔테 두 벌이 들어 있었다. 안경다리 안쪽에 그의 이름까지 인쇄돼 있었다. 렌즈 봉투에는 도수 대신 볼펜으로 ‘1번’과 ‘2번’만 적혀 있었다. 글씨는 민규 것이었다. 그는 주문 장부와 카드 단말기 내역을 확인했다. 상자에 해당하는 주문은 없었다.

민규는 상자와 서랍을 휴대폰으로 찍고 CCTV 영상을 USB에 복사했다. 그날 가게에 들어온 사람은 민규뿐이었다. 영상에는 그가 서랍을 여는 모습이 세 번 남아 있었다. 두 번째까지 상자는 세 개였고, 세 번째로 열었을 때 네 개가 됐다. 카메라 각도에서는 서랍 안쪽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기록된 시각을 접수증 뒷면에 옮겨 USB와 함께 봉투에 넣었다.

민규는 검은 뿔테 두 개를 꺼냈다. 렌즈는 그의 눈에 맞았다. 한 벌씩 쓰면 오래 쓰던 안경과 다를 것이 없었다. 겹쳐 쓸 때만 귀 뒤에서 안경다리가 엇갈리고 시야가 둘로 벌어졌다.

그는 두 벌을 벗어 상자에 넣고 셔터를 절반쯤 올렸다. 복도로 나가지는 않았다. 다시 셔터를 내리고 출입문을 잠갔다. 검안실 선반에 휴대폰을 세워 조작 의자와 검안 의자가 한 화면에 들어오게 했다. 녹화 버튼을 누른 뒤, 검은 안경 두 벌을 들고 검안 의자에 앉았다.

검은 안경 두 벌을 차례로 썼다. 시력표와 기계가 좌우로 갈라졌다. 겹쳐진 상이 천천히 가까워졌다. 빈 조작 의자는 끝까지 하나가 되지 않았다. 한쪽에는 아무도 없었고, 다른 쪽에는 안경원 앞치마를 입은 민규가 앉아 있었다.

의자에 앉은 민규가 손을 뻗어 검안기 다이얼을 잡았다.

딸깍. 렌즈 한 장이 움직이자 조작 의자 쪽 민규의 얼굴만 또렷해졌다. 민규가 안경을 벗으려고 손을 들었다. 맞은편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 그쪽 민규는 입을 다문 채였는데, 질문은 검안 의자에 앉은 민규의 목 안에서 울렸다.

"1번이 잘 보이세요, 2번이 잘 보이세요?"

2 · 1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