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나간 사람
보증금을 받았다는 문자를 보내 주신 날, 저는 답장 칸에 ‘다행입니다’라고 썼다가 지웠습니다. 선생님은 아이와 처가에 있었고, 저는 부동산 사무실에서 다음 부부의 계약서 사본을 받아 들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나가는 날과 다음 부부가 들어오는 날을 같게 잡았습니다.
그때는 이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했더라면 선생님 돈을 돌려드릴 수 없었을 겁니다.
처음 집을 보러 오신 날은 2월이었습니다. 현관에 들어선 선생님 아내가 잠깐 코를 찡그리더니 새집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 부동산 사장은 신축이라 그렇다며 창문을 열었고, 저는 싱크대 보호 비닐의 들뜬 모서리만 눌렀습니다. 아내분은 만삭이었지요. 붙박이장 안쪽을 손으로 재 보면서 아기 이불을 넣고도 자리가 남겠다고 했고, 선생님은 제게 좋은 집을 내줘 고맙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집에서 하루도 산 적이 없습니다.
8년 전, 출근길 버스에서 분양 당첨 문자를 받았습니다. 운강신도시 B-3블록.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둘 다 한동안 말을 못 했습니다. 여섯 살이던 연우는 모델하우스 침대에 올라갔다가 직원에게 혼났고, 구름 무늬 벽지를 골랐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셋이 김밥집에 들어가 메뉴를 네 개 시켰습니다. 남은 김밥은 포장해 와서 다음 날 아침에 먹었습니다.
계약금 5,400만 원은 살던 전셋집을 빼서 냈습니다. 입주할 때까지 2년 반만 버티자며 반지하로 옮겼고, 거실 벽에는 분양 안내 책자에서 뜯은 평면도를 붙였습니다. 연우는 자기 방에 침대와 책상을 그려 넣었다가, 피아노를 놓을 자리가 없다며 몇 번이나 지웠습니다. 중도금 3억 2,400만 원은 은행이 시행사로 보냈습니다. 중도금이 여섯 차례 나가는 동안 집은 골조에서 외벽까지 올라갔습니다.
입주를 앞둔 여름에 대출 규정이 바뀌었습니다. 옆 블록까지 2,000세대가 한꺼번에 입주했고, 부동산 유리창에는 분양가보다 5,000만 원 낮은 매물, 8,000만 원 낮은 매물이 붙었습니다. 은행에서는 잔금 대출을 현재 시세로 계산한다고 했습니다. 시행사에서는 중도금 대출이 실행된 계약은 돌릴 수 없다고 했고요. 계약금을 포기하겠다고 해도 중도금과 이자는 남았습니다.
아내는 밤마다 식탁에서 계산기를 두드렸습니다. 계산기 뒤쪽 건전지 덮개가 헐거워 손가락으로 누르고 있어야 숫자가 들어갔습니다. 어느 날은 합계가 나오기도 전에 화면이 꺼지자, 건전지를 빼서 서랍에 넣고 설거지를 했습니다. 제가 다시 끼워 놓았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도 계산기를 쓰지 않았습니다.
입주 기간이 지나자 연체이자가 붙었습니다. 관리비 고지서도 왔습니다. 열쇠를 받지 못한 집의 승강기와 복도 전기료였습니다. 새벽에 눈이 떠지면 은행 앱을 열었다가 잔액은 보지 않고 닫기도 했습니다. 다음 날 출근해서는 거래처 불량 수량을 하나 잘못 적어 반장에게 불려 갔고, 점심시간에 창고로 돌아가 상자를 다시 세었습니다.
팔아 보려고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3,000만 원, 나중에는 5,000만 원까지 손해 보는 가격으로 내놓았는데 전화가 없었습니다. 한 번은 분양권을 사겠다는 남자가 연락해 와서, 명의를 넘기면 나머지는 알아서 한다고 했습니다. 부동산 사장은 그런 데에 넘기면 큰일 난다며 번호를 지우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하면서 학원에 있는 아들을 데리러 가야 한다고 자꾸 시계를 봤습니다. 저는 전화를 끊었지만 번호는 남겨 두었습니다.
1월에 사장이 전세를 놓자고 했습니다. 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르고 중도금 대출을 갚은 다음 소유권을 넘겨받는 방식이었습니다. 입주 단지에서 흔히 하는 일이라 했지만 같은 생각을 한 집이 너무 많아 세입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지방에서 발령받아 올라온 부부가 급하게 집을 구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선생님 부부였습니다.
계약서를 쓰던 날 아내분이 보증보험을 물었습니다. 사장은 신축은 가격 자료가 늦게 잡히니 입주하고 알아보면 된다고 했습니다. 아내분이 언제쯤 가능하냐고 다시 묻자 등기 일정부터 설명했습니다. 보증금 3억 8,000만 원이 당시 전세 매물 가운데 높은 편이라는 사실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사장은 탁자 밑으로 제 신발을 한 번 건드렸습니다. 저는 물을 가지러 일어났다가 종이컵을 두 개 겹쳐 뽑았습니다. 하나를 도로 넣으려다 구겨져 외투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날 저녁 아내가 계약서 봉투를 장롱 위에 올려 두며 세입자도 보증보험에 들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신축은 등기가 난 뒤에 알아보는 거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내는 부동산에서 그렇게 말했느냐고 한 번 더 물었고, 저는 그렇다고 했습니다. 연우가 거실 바닥에 엎드려 모델하우스에서 가져온 색연필로 아파트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계약서 봉투를 다시 내려 서랍 안에 넣었습니다.
선생님 부부가 들어오던 날 아기 침대가 상자째 사다리차에 올라갔습니다. 보증금은 제 통장에 20분 남짓 있었습니다. 중도금과 이자가 빠져나가고 모자란 돈을 신용대출과 처가에서 빌린 3,000만 원으로 채웠습니다.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뒤 발급한 등기부에는 은행 근저당권이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몇 번이나 종이를 확인했고, 저는 창구 직원이 찍어 준 형광펜 자국만 보고 있었습니다.
2년이 거의 되어 갈 무렵, 만기를 석 달 남기고 선생님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발령이 끝나 가족이 내려가게 되었으니 날짜에 맞춰 보증금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때 집 시세는 3억 6,000만 원이었습니다. 집을 팔아도 2,000만 원이 모자랐고, 거래가 되려면 거기서 더 내려야 했습니다. 신용대출과 처가 돈은 그대로였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집을 팔겠다고 말했습니다. 아내는 한참 있다가 얼마가 남느냐고 물었고, 저는 모자라는 돈을 말하지 않은 채 시세가 조금만 오르면 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날 연우가 학교 준비물로 8절 색지를 사 와야 했는데, 저희 둘 다 잊었습니다. 아이는 다음 날 아침 편의점에서 낱장으로 사면 비싸다며 울었고, 아내는 출근길에 문구점이 열 때까지 기다렸다가 회사에 늦었습니다.
부동산 사장은 다음 세입자를 받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저는 다음 사람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사장은 매물 사진이 어둡게 나왔다며 휴대전화 화면만 계속 눌렀습니다.
선생님은 아이 어린이집 때문에 짐을 한 달 먼저 뺐습니다. 올라갈 때 상자였던 아기 침대는 조립된 채 내려갔고, 침대 난간에는 스티커가 여러 장 붙어 있었습니다. 집이 빈 뒤 저는 도배를 새로 했습니다. 업자에게 맡길 돈이 아깝기도 했지만, 살림 자국을 지우면 계약이 빨리 될 거라고 사장이 말했습니다. 북쪽 방 벽지를 뜯자 손바닥만 한 곰팡이가 나왔습니다. 락스를 뿌리고 마른 뒤 그 위에 새 벽지를 붙였습니다.
도배 사흘째, 집을 보러 온 젊은 부부가 현관에서 새집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 아내 쪽은 냉동식품 포장 공장에서 일했고, 남편은 주말마다 배달을 뛰었습니다. 둘은 결혼사진을 어디에 걸지를 두고 한참 이야기했습니다. 여자가 보험 가입이 되느냐고 물었을 때 사장은 가격 자료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북쪽 방 창문을 닫았습니다. 락스 냄새가 다시 올라오는 것 같아서였습니다. 실제로 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부부가 보낸 3억 8,000만 원으로 선생님께 3억 8,000만 원을 보냈습니다. 이체 한도 때문에 은행 창구에 갔고, 직원이 용도를 묻자 임대차보증금 반환이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고맙다는 문자 뒤에 아이가 새 어린이집 가방을 멘 사진을 보내 주었습니다. 저는 사진을 확대해 보다가 답장 칸을 닫았습니다.
그 부부가 전입신고를 하기 전인 그날 오전, 사장이 소개한 대부업체 직원이 부동산으로 왔습니다. 저는 채권최고액 3,600만 원인 근저당권 설정 서류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직원은 등기 접수번호를 확인한 뒤 3,000만 원을 보냈고, 저는 처가에서 빌린 돈부터 갚았습니다. 아내에게는 집을 팔고 남은 돈이라고 했습니다.
그 부부가 들어간 첫겨울, 보일러에서 소리가 난다는 연락을 받고 집에 간 적이 있습니다. 남편은 야간 근무를 마치고 작은방에서 자고 있었고, 여자는 냉장고 위에 공장 작업모를 말리고 있었습니다. 기사 방문비 3만 원은 제가 냈습니다. 여자가 영수증 사진을 보내오자 저는 그 대화를 휴대전화의 ‘처리 완료’ 보관함으로 옮겼습니다.
두 번째 부부가 사는 동안 시세는 3억 2,000만 원에서 3억 원 아래로 더 떨어졌습니다. 아내는 명절마다 친정에 가지 않겠다고 했고 저는 차가 막힌다는 핑계를 댔습니다. 연우는 중학생이 되어 방문을 잠그기 시작했습니다.
만기 넉 달 전부터 두 번째 세입자가 전화를 했습니다. 이번에는 돌려막을 다음 사람이 없었습니다. 보증금은 집값을 훨씬 넘었고, 보험 가입도 되지 않았습니다. 부동산은 이미 문을 닫은 뒤였습니다. 셔터에 붙은 임대 문의 종이가 비에 불어 가장자리부터 말려 있었습니다.
서랍에 남겨 둔 번호로 제가 먼저 전화했습니다.
간판 없는 상가 2층에서 남자는 매매계약서와 위임장을 내밀었습니다. 집은 고시원에 주소를 둔 일흔네 살 남자에게 넘어가고, 임대차보증금 반환 의무도 새 소유자가 맡는다고 했습니다. 세입자가 살고 있으니 그 사람 동의는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집값을 받지 못했고, 오히려 컨설팅비 300만 원을 냈습니다. 그래도 제 이름은 빠진다고 했습니다.
도장을 찍기 전에 화장실에 다녀왔습니다. 세면대 아래에는 편의점 칫솔과 일회용 면도기가 비닐봉지에 들어 있었습니다. 누군가 그 사무실에서 잔다는 뜻인지, 고시원에 산다는 노인이 쓰는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돌아와 보니 남자는 제 도장을 인주 옆에 가지런히 놓아 두었습니다.
소유권을 넘긴 뒤로 대부업체 이자는 내지 않았습니다.
아내에게는 집을 손해 보고 팔았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이제 끝난 거냐고 물었고 저는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날 저녁 아내가 고기를 샀습니다. 구울 때 연기가 많이 나서 반지하 창을 열었는데, 밖에서 담배를 피우던 사람이 안을 들여다봐 아내가 블라인드를 내렸습니다. 연우는 평소보다 밥을 많이 먹었습니다.
만기 두 달 전, 세입자 여자가 전화해 날짜를 확인했습니다. 저는 등기부를 떼어 보라고 했습니다. 이제 임대인은 제가 아니라고도 했습니다. 여자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더니 남편이 야간 근무 중이라며 자기가 잘못 들었을 수 있으니 다시 말해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같은 문장을 천천히 반복했습니다.
그 뒤로 전화는 받지 않았습니다. 만기가 지나자 여자는 고시원으로 보낸 내용증명이 반송됐다는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며칠 뒤 제가 등기부를 떼어 보니 임차권등기가 올라가 있었습니다. 여자는 몇 달에 한 번씩 문자를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법 조항을 보냈고, 다음에는 아이가 생겼다고 썼으며, 나중에는 ‘연락 바랍니다’라는 말만 남겼습니다. 아내가 화면을 볼까 봐 문자 알림만 꺼 두었습니다.
경매가 끝난 뒤 여자가 배당표 사진을 보냈습니다. 선순위 대부업체와 집행비용이 먼저 빠져 그 부부가 3억 8,000만 원 가운데 돌려받은 돈은 2억 6,000만 원이었습니다. 저는 사진을 출력해 1억 2,000만 원에 밑줄을 두 번 그었습니다. 선생님께 송금한 내역도 뽑았지만 두 종이는 맞춰 보지 않았습니다. 배당표만 접어서 공구함 밑에 넣었습니다.
그 부부가 짐을 뺄 날짜를 문자로 보내왔습니다. 답장은 하지 않았지만 날짜는 기억해 두었다가 퇴근길에 버스를 갈아탔습니다. 남편은 결혼사진을 포장하지 않고 트럭 바닥에 세워 두었습니다. 북쪽 방 벽에서 사진이 걸렸던 자리에는 곰팡이가 없었고 그 둘레가 더 검었습니다. 여자가 한 번 길 건너를 봤고, 저는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트럭이 떠날 때까지 나오지 않았습니다.
집을 낙찰받은 곳은 자산관리 회사였습니다. 등기부에 적힌 주소는 제가 도장을 찍은 상가 2층과 같았습니다.
지난주 도장을 찍게 했던 남자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자산관리 회사가 다음 세입자를 받기 전에 북쪽 방을 손봐야 하는데, 제가 전에 직접 도배했다는 말을 기억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흘에 45만 원을 준다고 했습니다. 연우 학원비가 두 달 밀려 있었습니다. 아내에게는 야간 설비 점검이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벽지를 뜯자 결혼사진 둘레로 보이던 검은 자국이 벽 안쪽까지 번져 있었습니다. 벽이 마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싱크대 문짝을 맞추고, 전에 선생님 아내가 재 보던 붙박이장 안쪽의 먼지를 닦았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현관 센서등이 자꾸 꺼져 종이 상자를 들고 몇 번 오갔습니다. 회사 직원은 다음 날 집을 보러 오는 부부가 있다며 불을 전부 켜 두고 가라고 했습니다.
편지를 다 쓴 뒤 봉투 앞면에 선생님 이름을 적었습니다. 주소는 쓰지 않았습니다.
저는 종이를 비닐봉투에 넣고 싱크대 맨 아래 서랍을 뺐습니다. 배관 옆 틈으로 봉투를 밀어 넣은 다음 서랍을 다시 끼우고 두 번 당겨 보았습니다. 서랍은 평소처럼 끝에서 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