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번째 밤

※ 폐업한 시골 고시원이 있던 부지를 정리하기 전, 실사팀이 뒷마당에서 휴대용 카세트 녹음기 한 대를 발견했다. 다음은 안에 든 테이프 A면의 녹취다. 화자의 목소리는 선명하지만 수화기 너머 음성은 판독되지 않는다.

─ 냄새부터 말하라고요?

예, 제 쪽에서도 녹음기를 켰습니다. 전화로만 말씀드리면 안 믿으실 것 같아서요.

비 온 뒤 흙냄새가 먼저 납니다. 마당 쪽에서요. 여기 사람들은 그걸 탄내라고 했어요. 논두렁 태우는 냄새하고는 달라요. 살이 눋는 냄새는 한 번 맡으면 콧속에 붙습니다. 밥을 먹어도 나고, 코를 풀어도 나고.

오늘도 그 냄새가 나서 연락드렸습니다.

─ 예. 그날 이야기를 할게요.

이 골짜기에 방 열두 칸짜리 고시원이 있었습니다. 끝방은 제가 썼고, 나머지 방에는 열한 명이 살았어요. 공사판 다니는 형제, 요양병원 야간 일을 하는 아주머니, 읍내에서 붕어빵을 굽던 노인. 이름을 다 대야 합니까? 잠깐만요. 적어 둔 장부가 있었는데.

형제 중 동생은 새벽마다 알람을 세 번 울렸고, 아주머니는 근무표가 바뀔 때마다 달력에 동그라미를 쳤습니다. 노인은 월세를 늘 동전까지 맞춰 냈어요. 그런 걸 적은 장부였습니다.

아니, 됐습니다. 순서가 자꾸 틀리니까.

사장은 밤마다 현관 쇠문을 잠그라고 했습니다. 도둑 때문이라고 했지만 방세 밀린 사람이 달아나는 걸 더 무서워했지요. 열쇠는 저한테만 있었어요. 자정이면 마지막으로 밖에 나와 문을 잠그고, 건물 옆을 돌아 뒷마당 평상에서 술을 마셨습니다. 늦게 오는 사람이 두드리면 열어 줬고요. 술을 많이 마신 날에는 오래 기다리게 했습니다.

불은 붕어빵 노인 방 쪽에서 먼저 번졌습니다. 새벽이었어요. 저는 뒷마당 평상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쇠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뛰어갔어요. 연기가 문틈으로 밀려 나오고 있었습니다.

쇠문 위쪽 망입유리 너머로 신발 열한 켤레가 보였어요. 다들 급해서 신을 생각도 못 한 겁니다. 검정 고무신, 흰 운동화, 앞코가 벌어진 작업화. 신발은 그대로인데 문 안쪽에서 사람들이 제 이름을 불렀습니다.

열쇠를 꽂기만 하면 됐어요.

손에서 한 번 떨어뜨렸습니다. 주워서 다시 문 앞에 섰고요. 열쇠를 잃어버린 게 아닙니다. 이 말은 지금 처음 합니다.

저는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불길이 문 위로 올라오는 걸 보고 뒷걸음질 쳤어요. 문을 열면 불이 저한테도 붙을 것 같았습니다. 첫걸음은 연기 때문에 물러났습니다. 그다음부터는 제가 갔어요. 정신을 차리니 마당 끝 평상 옆이었고, 열쇠는 아직 손에 있었습니다. 문 두드리는 소리는 잘 안 들렸어요.

기침을 하다가 토했습니다. 숨을 쉬려고 흙바닥에 엎드렸는데도 목 안쪽이 계속 뜨거웠어요.

그 뒤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 예. 열한 명이 죽었습니다. 신발도 못 신고.

어릴 때 노인들이 맨발로 죽으면 길이 험하다고 했어요. 그래서 관에도 신발을 넣어야 한다고. 이 동네에는 그런 말이 있었습니다. 전에는 웃었어요.

불난 뒤 사장이 같은 자리에 건물을 다시 올렸습니다. 방도 똑같이 열두 칸으로 만들었어요. 저더러 다시 총무를 보라고 했고요. 갈 데 없는 건 저도 마찬가지라서 돌아왔습니다.

─ 이상하다고요? 뭐가요?

아, 그 사장이요. 연락은 안 됩니다. 공사한 사람들도 본 적 없고요. 제가 돌아왔을 때 건물이 다 지어져 있었습니다. 시골에서는 그런 일도 있습니다. 주인이 돈을 어디서 끌어왔는지 총무가 어떻게 압니까.

─ 신발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열하루 전부터 현관에 신발이 돌아오기 시작했어요. 첫날에는 검정 고무신 한 켤레였습니다. 다음 날은 흰 운동화. 그다음은 앞코가 벌어진 작업화였고요. 새벽에는 없다가 아침이면 한 켤레씩 놓여 있었습니다.

제가 알아봤어요. 다 그날 현관에 있던 신발입니다. 탄 자국도 그대로예요. 버렸는데 어떻게 돌아오느냐고 묻지 마세요. 그때는 신발까지 챙길 정신이 없었습니다. 건물을 정리하면서 누가 치웠는지도 몰라요.

어제까지 열한 켤레가 왔습니다. 죽은 사람 수하고 같지요.

그래서 끝난 줄 알았습니다. 다들 자기 신발을 찾았으니까. 오늘 아침에는 현관이 비어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대로였습니다. 열한 켤레가 나란히 놓여 있었어요. 맨 끝에 한 자리만 비워 두고.

누가 줄을 맞춘 것처럼요.

혹시 몰라서 오늘은 아침부터 구두를 신고 있었습니다. 내 신발까지 빼앗기면 안 될 것 같았어요. 방 안에서도 벗지 않았습니다.

─ 왜 열두 번째가 있다고 생각하느냐고요?

방이 열두 칸이니까. 여기 살던 사람도 저까지 열둘이었으니까.

그 말이 그렇게 이상합니까?

잠깐만요. 지금 현관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톡, 하고 한 번. 잠시 뒤에 또 한 번. 발로 벗어 던질 때보다 작은 소리예요.

녹음기는 주머니에 넣고 나가 볼게요. 전화는 끊지 마세요.

…왔습니다.

내 신발이에요.

갈색 구두. 오른쪽 뒤축이 비스듬히 닳은 것까지 같습니다. 그런데 저 신발은 제가 신고 있어야 해요. 오늘 아침부터 한 번도 벗지 않았습니다.

아니. 잠깐.

제가 지금 뭘 신고 있습니까?

발바닥에 흙이 묻어 있어요. 젖은 흙. 발가락 사이에도 들어갔습니다. 방 안 바닥은 마른 장판인데.

─ 열쇠요?

왜 자꾸 열쇠를 묻습니까.

손에 있습니다. 여태 쥐고 있었어요. 이빨 사이가 검게 그을었고, 손바닥에 눌린 자국도 있습니다.

두드리는 소리가 납니다.

그날하고 똑같아요. 열한 사람이 안에서 제 이름을 부릅니다. 소리는 쇠문 안쪽에서 나는 게 아니에요. 복도 양쪽 벽에서 납니다. 장판 아래에서도 나고요.

나는 문을 열 수 있었어요.

잃어버린 게 아니었습니다. 떨어뜨렸다가 다시 주웠어요. 내가 들고 물러났습니다. 저 사람들이 못 나온 게 아니라, 내가 안 열어 준 겁니다.

신발 열두 켤레가 전부 현관에 있습니다.

내 것만 타지 않았어요.

그러면 열두 번째는 누굴 데리러 온 게 아니네요.

※ 마지막 발화 뒤 17초간 녹음이 계속되지만 추가 음성은 없다. B면은 미녹음 상태다. 해당 주소에는 화재 뒤 재건축이나 사용승인 기록이 없으며, 화재 당시 사망자는 건물 안의 열한 명과 뒷마당에서 발견된 한 명을 합쳐 열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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