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없는 호이치 이야기

귀 없는 호이치 이야기

귀 없는 호이치 이야기
칠백여 년 전, 시모노세키 해협의 단노우라에서 헤이케, 곧 다이라 일족과 겐지, 곧 미나모토 일족 사이에 오랫동안 이어져 온 싸움의 마지막 전투가 벌어졌다. 그곳에서 헤이케는 여인들과 아이들까지 모두 몰살당했으며, 지금은 안토쿠 천황으로 기억되는 어린 황제도 함께 죽었다. 그 뒤로 칠백 년 동안 그 바다와 해안에는 유령들이 출몰해 왔다. . . . 나는 다른 글에서 그곳에 사는 기이한 게, 헤이케 게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등에 사람의 얼굴이 있는 이 게들은 헤이케 무사들의 혼이라고 전해진다.[1] 그러나 그 해안을 따라 보고 들을 수 있는 기이한 일은 그 밖에도 많다. 어두운 밤이면 수천 개의 유령 같은 불빛이 해변을 맴돌거나 파도 위를 날아다닌다. 어부들이 오니비, 곧 도깨비불이라 부르는 창백한 빛이다. 그리고 바람이 거세질 때마다 그 바다에서는 전투의 아우성 같은 커다란 함성이 들려온다.
옛날의 헤이케 망령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잠잠하지 못했다. 밤에 지나가는 배 둘레로 솟아올라 배를 가라앉히려 했으며, 언제나 헤엄치는 사람들을 지켜보다가 물속으로 끌어내리려 했다. 아카마가세키에 불교 사찰 아미다지를 세운 것은 바로 그 죽은 이들을 달래기 위해서였다.[2] 가까운 바닷가에는 묘지도 마련되었고, 그 안에는 물에 빠져 죽은 황제와 그의 중신들 이름을 새긴 비석들이 세워졌다. 그들의 혼을 위한 불교 의식도 그곳에서 정기적으로 거행되었다. 절이 세워지고 무덤들이 마련된 뒤로 헤이케 망령들은 전보다 말썽을 덜 부렸다. 그러나 이따금 기이한 짓을 계속하여, 아직 완전한 안식을 얻지 못했음을 드러냈다.
몇 세기 전, 아카마가세키에는 호이치라는 눈먼 사내가 살았는데, 이야기를 읊고 비파를 연주하는 솜씨로 이름이 높았다.[3] 그는 어린 시절부터 구연과 연주를 배웠고, 아직 소년이었을 때 이미 스승들을 능가했다. 전문 비파 법사가 된 그는 주로 헤이케와 겐지의 역사를 읊어 명성을 얻었다. 그가 단노우라 전투의 노래를 부르면 “귀신들[기진]조차 눈물을 참지 못했다”고 한다.
처음 그 일을 시작했을 때 호이치는 몹시 가난했다. 그러나 자신을 도와줄 좋은 벗을 만났다. 아미다지의 주지 스님은 시와 음악을 좋아하여, 호이치를 절로 자주 초대해 비파를 연주하고 이야기를 읊게 했다. 훗날 소년의 놀라운 솜씨에 깊이 감탄한 스님은 호이치에게 절에서 함께 살자고 제안했고, 호이치는 고맙게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호이치에게는 절 안에 방 하나가 주어졌다. 먹을 것과 잠자리를 얻는 대신 그가 해야 할 일은, 달리 일이 없는 저녁에 이따금 연주하여 스님을 즐겁게 해 주는 것뿐이었다.
어느 여름밤, 스님은 죽은 신도의 집에서 불교 의식을 치러 달라는 청을 받고 동자승과 함께 그곳으로 갔다. 절에는 호이치만 홀로 남았다. 무더운 밤이었으므로 눈먼 사내는 더위를 식히려고 자기 침실 앞 툇마루로 나왔다. 툇마루에서는 아미다지 뒤편의 작은 정원이 내려다보였다. 호이치는 그곳에서 스님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비파를 연습하여 외로움을 달래려 했다. 자정이 지났으나 스님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방 안에서 편히 지내기에는 여전히 너무 더웠으므로 호이치는 밖에 그대로 있었다. 마침내 뒷문 쪽에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정원을 가로질러 툇마루로 다가오더니 그의 바로 앞에 멈춰 섰다. 그러나 스님은 아니었다. 굵직한 목소리가 눈먼 사내의 이름을 불렀다. 사무라이가 아랫사람을 부르듯, 느닷없고 거리낌 없는 말투였다.
“호이치!”
호이치는 너무 놀라 잠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그 목소리가 거친 명령조로 다시 불렀다.
“호이치!”
“예!” 목소리에 담긴 위협에 겁이 난 눈먼 사내가 대답했다. “저는 앞을 못 봅니다! 누가 부르시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두려워할 것 없다.” 낯선 이가 좀 더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나는 이 절 가까이에 머무는 사람으로, 전할 말씀이 있어 너에게 왔다. 내가 지금 모시는 주군께서는 지위가 지극히 높으신 분으로, 고귀한 시종 여럿을 거느리고 아카마가세키에 머물고 계신다. 단노우라 전투가 벌어진 곳을 보고자 하시어 오늘 그곳을 다녀오셨다. 네가 그 전투의 이야기를 읊는 솜씨를 들으시고 이제 네 연주를 듣고자 하시니, 비파를 들고 곧장 나를 따라 귀하신 분들이 모여 기다리시는 저택으로 가자.”
그 시절에는 사무라이의 명령을 함부로 거역할 수 없었다. 호이치는 짚신을 신고 비파를 챙겨 낯선 이를 따라나섰다. 낯선 이는 능숙하게 길을 이끌었지만, 호이치에게 무척 빠르게 걷도록 했다. 그를 이끄는 손은 쇠처럼 단단했다. 무사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철컥거리는 소리로 보아 완전히 무장한 것이 분명했으니, 아마 근무 중인 궁궐 경비병일 터였다. 호이치의 처음 놀람은 가라앉았다. 그는 자신에게 행운이 찾아왔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가신이 확언한 ‘지위가 지극히 높으신 분’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자신의 구연을 듣고 싶어 하는 주군은 적어도 최상위 다이묘일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윽고 사무라이가 멈춰 섰다. 호이치는 두 사람이 커다란 대문 앞에 이르렀음을 알아차리고 의아해했다. 마을의 이쪽 구역에는 아미다지 정문 말고는 큰 문이 있다는 기억이 없었다. “문을 열어라!”[4] 사무라이가 외쳤다. 빗장을 벗기는 소리가 나더니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갔다. 정원 한 구역을 가로지른 뒤 두 사람은 어느 입구 앞에서 다시 멈춰 섰다. 가신이 큰 소리로 외쳤다. “안에 누구 있느냐! 호이치를 데려왔다.” 그러자 서둘러 움직이는 발소리와 미닫이가 밀리는 소리, 덧문이 열리는 소리, 여자들이 서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들의 말씨를 듣고 호이치는 그들이 어느 귀족 집안의 하녀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자신이 어디로 이끌려 왔는지는 짐작할 수 없었다. 추측할 시간은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그는 부축을 받으며 돌계단 몇 개를 올라갔고, 맨 위 계단에서 짚신을 벗어 두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고는 여자의 손에 이끌려 윤이 나는 마룻바닥을 끝없이 지나고,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기둥 모퉁이를 돌아, 놀라울 만큼 넓게 다다미가 깔린 바닥을 건너 어느 거대한 방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그는 그곳에 높은 분들이 많이 모여 있다고 생각했다. 비단이 스치는 소리가 숲속의 나뭇잎 소리 같았다. 나직하게 말을 나누는 수많은 목소리의 웅성거림도 들렸다. 그 말씨는 궁정의 말씨였다.
호이치는 편히 앉으라는 말을 들었고, 자신을 위해 방석이 준비되어 있음을 알았다. 그 위에 자리를 잡고 악기를 조율하자 한 여자의 목소리가 그에게 말을 건넸다. 호이치는 그 여자가 로조, 곧 여인들의 시중을 총괄하는 연장자 여인이라고 짐작했다.
“이제 비파 반주에 맞추어 헤이케의 역사를 읊도록 하여라.”
그런데 이야기를 전부 읊으려면 여러 날 밤이 걸릴 터였다. 그래서 호이치는 조심스럽게 여쭈었다.
“이야기 전부를 짧은 시간에 아뢸 수는 없사오니, 지금 어느 대목을 읊어 드리기를 원하시는지요?”
여자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단노우라 전투 이야기를 읊어라. 그 대목이 가장 애달프니라.”[5]
그러자 호이치는 목소리를 높여 쓰라린 바다 위 싸움의 노래를 읊었다. 그의 비파는 힘껏 젓는 노 소리와 내달리는 배 소리, 화살이 윙윙거리며 쉭쉭 날아가는 소리, 사내들이 외치며 발을 구르는 소리, 쇠붙이가 투구에 부딪치는 소리, 죽임을 당한 이들이 물결 속으로 떨어지는 소리를 놀랍도록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연주가 잠시 끊길 때마다 그의 좌우에서는 칭찬을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참으로 놀라운 재주로다!” “우리 고장에서도 이런 연주는 들어 본 적이 없구나!” “온 제국을 통틀어도 호이치 같은 가객은 또 없을 것이다!” 그러자 그는 새로 용기를 얻어 전보다 더욱 훌륭하게 연주하고 노래했다. 주위에는 경탄의 정적이 한층 깊어졌다. 그러나 마침내 아름답고 힘없는 이들의 운명, 여인들과 아이들이 가련하게 죽어 간 일, 니이노아마가 어린 황제를 품에 안고 죽음의 바다로 뛰어든 일을 이야기하는 대목에 이르자, 듣던 이들 모두가 한꺼번에 고통으로 떨리는 비명을 길고도 길게 내질렀다. 그리고 그 뒤로 너무나 크고 격렬하게 울며 통곡했으므로, 눈먼 사내는 자신이 불러일으킨 슬픔의 격렬함에 겁이 났다. 흐느낌과 통곡은 오래도록 이어졌다. 그러나 차츰 애통해하는 소리가 잦아들었고, 뒤이어 찾아온 깊은 고요 속에서 호이치는 로조라고 짐작했던 여자의 목소리를 다시 들었다.
그녀가 말했다.
“네가 비파 연주에 매우 뛰어나며 구연에는 견줄 이가 없다고 익히 들었지만, 오늘 밤 네가 보여 준 만큼 뛰어난 솜씨를 지닌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주군께서도 흡족해하시며 네게 합당한 상을 내리겠다고 말씀하셨다. 다만 앞으로 엿새 동안 매일 밤 한 번씩 어전에서 연주하기를 바라신다. 그 뒤에는 아마 돌아가실 것이다. 그러니 내일 밤에도 같은 시각에 이곳으로 오너라. 오늘 밤 너를 데려온 가신을 보내 너를 맞이하도록 하겠다. . . 네게 전하라는 분부를 받은 일이 또 하나 있다. 주군께서 아카마가세키에 머무시는 동안에는 이곳에 오는 일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신분을 감추고 여행 중이시므로,[6] 이 일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명이시다. . . . 이제 네 절로 돌아가도 좋다.”
호이치가 예를 갖추어 감사를 표한 뒤, 여자의 손이 그를 저택 입구로 이끌었다. 그곳에서는 앞서 그를 안내했던 가신이 집으로 데려다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가신은 그를 절 뒤편의 툇마루까지 데려다주고 그곳에서 작별을 고했다.
호이치가 돌아왔을 때는 동이 틀 무렵이었다. 그러나 그가 절을 비웠다는 사실을 알아챈 사람은 없었다. 아주 늦은 시각에 돌아온 주지 스님은 그가 잠들어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호이치는 낮 동안 얼마간 쉴 수 있었고, 자신이 겪은 기이한 일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튿날 한밤중에 사무라이가 다시 그를 데리러 와서 그 고귀한 모임으로 이끌었고, 그는 지난번 공연 때와 똑같은 호응을 얻으며 다시 이야기를 읊었다. 그러나 두 번째로 그곳을 찾아간 동안에는 그가 절에 없다는 사실이 우연히 드러났다. 아침에 돌아온 그는 주지 스님 앞으로 불려 갔고, 스님은 부드럽게 나무라는 말투로 그에게 말했다.
“호이치, 우리는 자네 때문에 몹시 걱정했네. 눈도 보이지 않는데 그토록 늦은 시각에 혼자 나가는 건 위험한 일이야. 왜 우리에게 말도 없이 나갔나? 하인에게 자네를 따라가라고 시킬 수도 있었을 텐데. 대체 어디에 다녀온 건가?”
호이치는 말을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용서해 주십시오, 스님! 개인적으로 처리할 일이 좀 있었습니다. 다른 시각에는 그 일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주지 스님은 호이치가 말을 아끼는 데 마음이 상했다기보다는 놀랐다. 평소답지 않은 태도라고 느꼈고,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의심했다. 그는 이 눈먼 젊은이가 어떤 악령에게 홀리거나 속은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더는 캐묻지 않았지만, 절의 하인들에게 은밀히 일러 호이치의 동태를 살피고, 어두워진 뒤 그가 다시 절을 나서면 뒤를 밟도록 했다.
바로 다음 날 밤, 호이치가 절을 나서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하인들은 곧장 등불을 켜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러나 비가 내리는 몹시 어두운 밤이었고, 절 사람들이 길에 이르기도 전에 호이치는 사라지고 없었다. 분명 아주 빨리 걸어간 모양이었다. 길 상태가 나빴으므로 앞을 보지 못하는 그로서는 이상한 일이었다. 하인들은 거리를 서둘러 돌아다니며 호이치가 평소 드나들던 집마다 들러 물었지만, 아무도 그의 소식을 알려 주지 못했다. 그러다 마침내 해안을 따라 절로 돌아오던 중, 아미다지 묘지에서 비파를 격렬하게 뜯는 소리가 들려와 그들은 깜짝 놀랐다. 그쪽은 어두운 밤이면 으레 나풀거리던 도깨비불 몇 점을 빼고는 온통 캄캄했다. 그러나 하인들은 곧바로 묘지로 달려갔고, 등불에 의지해 호이치를 찾아냈다. 그는 안토쿠 천황의 능 앞에 홀로 비를 맞으며 앉아, 비파를 울리면서 단노우라 전투의 이야기를 큰 소리로 읊고 있었다. 그의 뒤에도, 주위에도, 무덤 위 곳곳에도 망자들의 불이 촛불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그토록 많은 도깨비불이 산 사람의 눈앞에 나타난 적은 일찍이 없었다. . . .
“호이치 씨! 호이치 씨!” 하인들이 외쳤다. “귀신에게 홀린 거예요! . . . 호이치 씨!”
그러나 눈먼 사내는 듣지 못하는 듯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비파를 달그락거리며 울리고 쨍쨍 소리 내게 했다. 단노우라 전투의 이야기를 읊는 소리도 갈수록 더욱 격렬해졌다. 하인들은 그를 붙잡고 귓전에 대고 외쳤다.
“호이치 씨! 호이치 씨! 당장 우리와 함께 돌아가요!”
그는 그들을 꾸짖으며 말했다.
“이 고귀한 분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런 식으로 나를 방해하다니, 용납할 수 없소.”
그 말을 듣자 하인들은 이 기괴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가 귀신에게 홀렸다고 확신한 그들은 이제 그를 붙잡아 일으켜 세우고, 완력으로 서둘러 절에 데려왔다. 절에서는 주지 스님의 분부에 따라 곧바로 젖은 옷을 벗기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힌 뒤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었다. 그런 다음 스님은 벗의 이 놀라운 행동에 관해 빠짐없이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호이치는 오랫동안 말하기를 망설였다. 그러나 자신의 행동이 선량한 주지 스님을 정말로 놀라게 하고 화나게 했다는 것을 알고는, 마침내 더 숨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사무라이가 처음 찾아왔을 때부터 일어난 일을 모두 이야기했다.
주지 스님이 말했다.
“호이치, 가엾은 내 벗이여, 자네는 지금 큰 위험에 처해 있네! 이 모든 일을 진작 내게 말해 주지 않았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야! 자네의 뛰어난 음악 솜씨가 실로 기이한 화를 불러왔군. 이제 자네도 알겠지만, 자네는 어느 집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묘지의 헤이케 무덤들 사이에서 밤을 보낸 걸세. 오늘 밤 우리 사람들이 비를 맞으며 앉아 있는 자네를 찾아낸 곳도 안토쿠 천황의 능 앞이었네. 자네가 머릿속에 그려 온 것은 모두 환상이었어. 망자들이 자네를 불렀다는 것만 빼고 말이야. 한 번 그들의 말에 따름으로써 자네는 그들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말았네. 이미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도 다시 그들에게 복종한다면, 그들은 자네를 갈기갈기 찢어 놓을 걸세. 하지만 어차피 그들은 조만간 자네를 죽였을 테지. . . . 오늘 밤에는 내가 자네 곁에 있어 줄 수가 없네. 다른 법회를 치르러 와 달라는 청을 받았거든. 하지만 떠나기 전에 자네 몸에 거룩한 경문을 써서 보호해야겠네.”
해가 지기 전에 주지 스님과 시중드는 어린 승려는 호이치의 옷을 벗겼다. 그리고 붓으로 그의 가슴과 등, 머리와 얼굴과 목, 팔다리와 손발에, 심지어 발바닥을 비롯한 몸 구석구석에 반야심경[7]이라는 거룩한 경전의 글귀를 써 넣었다. 이 일을 마치자 주지 스님은 호이치에게 이렇게 일렀다.
“오늘 밤 내가 떠나거든 곧바로 툇마루에 앉아 기다리게. 자네를 부를 걸세.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대답하지 말고, 움직이지도 말게. 참선하듯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 있게. 몸을 움직이거나 무슨 소리든 내면 갈기갈기 찢기고 말 테니. 겁내지 말고, 도움을 청할 생각도 하지 말게. 어떤 도움도 자네를 구할 수 없으니 말이야.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위험은 지나가고, 더는 두려워할 일이 없을 걸세.”
날이 어두워진 뒤 주지 스님과 어린 승려는 떠났고, 호이치는 지시받은 대로 툇마루에 앉았다. 그는 곁의 마룻바닥에 비파를 내려놓고 참선하는 자세를 취한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기침을 하거나 숨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였다. 그는 몇 시간이고 그렇게 있었다.
그러다 길 쪽에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는 문을 지나고, 뜰을 가로질러, 툇마루로 다가오더니 바로 그의 앞에서 멈추었다.
“호이치!” 굵은 목소리가 불렀다. 그러나 눈먼 사내는 숨을 죽인 채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호이치!” 목소리가 험악하게 두 번째로 불렀다. 그리고 세 번째에는 사납게 외쳤다.
“호이치!”
호이치는 돌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 목소리가 투덜거렸다.
“대답이 없군! 이래서는 안 되지! . . . 이자가 어디 있는지 찾아봐야겠어.” . . .
무거운 발이 툇마루로 올라오는 소리가 났다. 발소리는 천천히 다가와 그의 곁에서 멎었다. 그 뒤로 길게 느껴지는 몇 분 동안 죽은 듯한 침묵이 이어졌다. 그동안 호이치는 심장이 뛸 때마다 온몸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마침내 바로 곁에서 거친 목소리가 중얼거렸다.
“비파는 여기 있는데, 비파 타는 자는 귀 두 쪽밖에 보이지 않는군! . . . 그래서 대답을 하지 않았구나. 대답할 입이 없었던 거야. 귀 말고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으니. . . . 이제 이 귀를 주군께 가져가야겠다. 받들 수 있는 데까지는 지엄한 명을 받들었다는 증거로.” . . .
그 순간 호이치는 쇠 같은 손가락이 자신의 귀를 움켜쥐고 뜯어내는 것을 느꼈다! 고통은 엄청났지만 그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무거운 발소리가 툇마루를 따라 멀어지고, 뜰로 내려가고, 길로 나가더니, 끊어졌다. 눈먼 사내는 머리 양옆에서 끈끈하고 따뜻한 것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감히 손을 들지는 못했다. . . .
해가 뜨기 전에 주지 스님이 돌아왔다. 그는 곧장 뒤쪽 툇마루로 서둘러 갔다가 축축하고 끈적한 것을 밟고 미끄러져, 공포에 질린 외마디 소리를 냈다. 등불에 비친 그 끈적한 것은 피였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 참선하는 자세로 앉아 있는 호이치를 발견했다. 상처에서는 여전히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가엾은 호이치!” 놀란 주지 스님이 외쳤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 . . 다친 건가?” . . .
벗의 목소리를 듣자 눈먼 사내는 이제 안전하다고 느꼈다. 그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고, 눈물을 흘리며 밤사이에 겪은 일을 이야기했다.
“가엾고 가엾은 호이치!” 주지 스님이 탄식했다. “모두 내 잘못이네! 내 크나큰 잘못이야! . . . 자네 몸의 모든 곳에 거룩한 경문을 써 놓았건만, 귀만 빠뜨렸구나! 그 부분은 어린 제자에게 맡겼는데, 제대로 했는지 확인하지 않은 내 잘못이 참으로 크네! . . . 이제 와서는 돌이킬 수가 없구나. 그저 자네 상처가 하루빨리 낫도록 힘쓸 수밖에. . . . 기운을 내게, 벗이여! 이제 위험은 완전히 지나갔네. 그 방문객들이 다시 자네를 괴롭히는 일은 없을 걸세.”
용한 의원의 도움으로 호이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상처가 나았다. 그가 겪은 기이한 일에 관한 이야기가 널리 퍼져, 그는 이내 유명해졌다. 많은 귀인이 그의 낭송을 들으러 아카마가세키로 찾아왔고, 그에게 큰돈을 선물로 주었다. 덕분에 그는 부자가 되었다. . . . 그러나 그 일을 겪은 뒤로 그는 오직 미미나시호이치, 곧 ‘귀 없는 호이치’라는 이름으로만 알려졌다.
• ↑ 이 기묘한 게에 관한 설명은 졸저 『골동』을 참조하기 바란다.
• ↑ 시모노세키라고도 한다. 이 도시는 바칸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 ↑ 비파는 네 줄로 된 류트의 일종으로, 주로 이야기를 가락에 맞추어 읊는 데 쓰인다. 옛날에는 『헤이케 이야기』와 그 밖의 비극적인 역사 이야기를 읊던 전문 음유시인들을 비와호시, 곧 ‘비파 법사’라고 불렀다. 이 명칭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지만, ‘비파 법사’들이 맹인 안마사들과 마찬가지로 불교 승려처럼 머리를 밀었다는 데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비파는 보통 뿔로 만드는 바치라는 일종의 발목으로 연주한다.
• ↑ 문을 열어 달라는 뜻의 공손한 말이다. 사무라이가 영주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들에게 들여보내 달라고 부를 때 사용했다.
• ↑ 또는 이 구절은 “그 대목이 가장 애달프기 때문입니다”라고 옮길 수도 있다. 원문에서 애달픔을 뜻하는 일본어는 ‘아와레’다.
• ↑ 적어도 원래 구절의 뜻은 ‘신분을 감추고 여행함’이다. 곧 ‘신분을 숨기고 하시는 고귀한 행차’라는 뜻이다(시노비노 고료코).
• ↑ 소본 『반야바라밀다심경』은 일본어로 이렇게 불린다. 『반야바라밀다』(“초월적 지혜”)라는 이름의 소본과 대본 경전은 모두 고 막스 뮐러 교수가 번역했으며, 『동방성서』 제xlix권(『대승불교 경전』)에 수록되어 있다.—이 이야기에서 묘사된 경문의 주술적 사용과 관련하여, 이 경전의 주제가 형상의 공성에 관한 가르침, 즉 모든 현상이나 본체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가르침임을 언급할 만하다. . . . “형상은 공이며, 공은 형상이다. 공은 형상과 다르지 않으며, 형상은 공과 다르지 않다. 형상인 것은 곧 공이다. 공인 것은 곧 형상이다. . . . 지각, 이름, 개념, 지식 또한 공이다. . . . 눈도, 귀도, 코도, 혀도, 몸도, 마음도 없다. . . . 그러나 의식을 덮은 장막이 소멸하면, 그[구도자]는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 변화가 미치지 못하는 경지에 이르러 궁극의 열반을 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