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쿠로쿠비


로쿠로쿠비
거의 오백 년 전, 규슈의 영주 기쿠지를 섬기는 이소가이 헤이다자에몬 다케쓰라라는 사무라이가 있었다. 이소가이는 무예에 뛰어난 여러 선조로부터 타고난 무예의 소질과 비범한 힘을 물려받았다. 아직 소년이었을 때부터 검술과 궁술, 창술에서 스승들을 능가했으며, 대담하고 능숙한 무사가 갖추어야 할 모든 자질을 드러냈다. 훗날 에이쿄[1]의 전란 때에는 크게 공을 세워 높은 영예를 받았다. 그러나

기쿠지 가문이 몰락하자 이소가이는 주군을 잃었다. 다른 다이묘를 섬기는 일은 얼마든지 쉽게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명예를 추구한 적이 없었고, 마음속에는 여전히 옛 주군을 향한 충성이 남아 있었으므로 속세를 버리는 쪽을 택했다. 그리하여 머리를 깎고 가이료라는 법명을 받아 떠돌이 승려가 되었다.
그러나 가이료는 승려의 고로모[2] 아래에 언제나 사무라이의 뜨거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예전에 위태로운 일을 웃어넘겼듯, 이제도 위험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날씨와 계절을 가리지 않고, 다른 승려라면 감히 가지 못할 곳까지 찾아가 바른 불법을 전했다. 그 시대는 폭력과 혼란의 시대였으며, 큰길에서조차 홀로 여행하는 사람은 승려라 해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긴 여행 도중, 가이료는 가이 지방에 들르게 되었다. 어느 날 저녁, 그 지방의 산속을 지나던 그는 어느 마을에서도 몇 리그씩이나 떨어진 몹시 외딴 곳에서 어둠을 맞았다. 그는 별 아래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마음먹고, 길가에서 알맞은 풀밭을 찾아 그곳에 누워 잠잘 채비를 했다. 그는 언제나 불편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더 나은 잠자리를 구할 수 없을 때면 맨바위도 그에게는 좋은 침상이었으며, 소나무 뿌리는 훌륭한 베개였다. 그의 몸은 무쇠 같았고, 이슬이나 비, 서리나 눈 따위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그가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도끼와 커다란 장작 묶음을 짊어진 남자가 길을 따라 걸어왔다. 나무꾼은 누워 있는 가이료를 보고 멈춰 서더니, 잠시 말없이 살펴본 뒤 몹시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어떤 분이시기에 이런 곳에 감히 혼자 누우십니까? . . . 이 근방에는 출몰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아주 많지요. 털 난 것들이 무섭지도 않으십니까?”
“여보게.” 가이료가 명랑하게 대답했다. “나는 그저 떠도는 승려일세. 사람들이 부르는 대로라면 ‘구름과 물의 나그네’, 곧 운수의 여객이지. 그리고 털 난 것들이라면 조금도 무섭지 않네. 요괴 여우나 요괴 오소리, 또는 그와 비슷한 것들을 말하는 거라면 말일세. 외딴 곳은 오히려 좋아하네. 참선하기에 알맞으니까. 한데서 자는 데도 익숙하고, 내 목숨을 두고 근심하지 않는 법도 배웠지.”
“스님께서는 참으로 담대한 분이시군요.” 시골 사내가 대꾸했다. “이런 곳에 누우시다니요! 여기는 평판이 좋지 않습니다. 아주 좋지 않지요. 하지만 속담에도 군자는 위태로운 곳에 가까이 가지 않는다[‘군자는 공연히 자신을 위험에 내맡기지 않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주무시는 건 정말 위험하다고 말씀드려야겠습니다. 그러니 제 집이 비록 누추한 초가일 뿐이지만, 부디 지금 저와 함께 가 주십시오. 먹을 것은 대접할 만한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만, 적어도 지붕은 있으니 그 아래서 위험 없이 주무실 수는 있습니다.”
그의 말은 진지했다. 가이료는 사내의 친절한 말투가 마음에 들어 그 소박한 청을 받아들였다. 나무꾼은 큰길에서 벗어나 산속 숲으로 올라가는 좁은 길로 그를 안내했다. 길은 험하고 위험했다. 때로는 벼랑 가장자리를 끼고 돌았고, 때로는 미끄러운 뿌리가 그물처럼 얽힌 곳 말고는 발 디딜 곳이 없었으며, 때로는 들쭉날쭉한 바위 더미 위나 그 사이를 굽이쳐 갔다. 그러나 마침내 가이료는 보름달이 머리 위에서 빛나는 언덕 꼭대기의 터진 곳에 이르렀다. 눈앞에는 안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정겨운 작은 초가집이 보였다. 나무꾼은 그를 집 뒤의 헛간으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근처 개울에서 대나무 관을 통해 물을 끌어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발을 씻었다. 헛간 너머에는 채소밭과 삼나무와 대나무 숲이 있었고, 나무들 너머로는 더 높은 곳에서 쏟아지는 폭포가 희미하게 빛났다. 폭포는 달빛 속에서 긴 흰 옷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가이료는 길을 안내한 사내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서면서, 중심이 되는 방의 로 [3]에 피운 작은 불에 손을 쬐고 있는 남녀 네 사람을 보았다. 그들은 승려에게 깊이 머리를 숙이고 더없이 공손하게 인사했다. 가이료는 이토록 가난하고 외딴 곳에 사는 사람들이 예의 바른 인사법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좋은 사람들이구나.’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예법에 정통한 누군가에게 배웠음이 틀림없어.’ 그러고는 집주인, 곧 다른 사람들이 아루지라고 부르는 주인을 향해 몸을 돌려 말했다.
“말씀하시는 태도가 친절하고 댁의 식구들도 이토록 예의 바르게 맞아 주는 것을 보니, 줄곧 나무꾼으로 살아오신 분은 아닌 듯하오. 혹시 전에는 높은 신분에 속하지 않으셨소?”
나무꾼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스님, 잘못 보신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보시다시피 이렇게 살고 있지만, 한때는 저도 제법 지체가 있었습니다. 제 이야기는 망가진 삶의 이야기입니다. 제 잘못으로 망가진 삶이지요. 저는 한 다이묘를 섬겼고, 그 아래에서 맡은 지위도 결코 낮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자와 술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욕정에 휘둘려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저의 이기심이 우리 가문을 몰락시켰고, 많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응보가 저를 뒤쫓았고, 저는 오랫동안 이 나라에서 도망자로 지냈습니다. 지금은 제가 저지른 악행을 조금이나마 속죄하고 조상 대대로 이어 온 집안을 다시 일으킬 수 있기를 자주 기도합니다. 하지만 그럴 방도를 끝내 찾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그래도 진심으로 뉘우치고, 불행한 사람들을 힘닿는 데까지 도우며 제 잘못으로 지은 업을 이겨 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가이료는 선하게 살겠다는 이 다짐을 듣고 기뻐하며 집주인에게 말했다.
“여보게, 젊어서 어리석은 짓을 일삼던 사람이 나이 들어서는 바르게 사는 데 아주 진지해지는 모습을 나도 본 적이 있네. 성스러운 경전에는 올바른 행실에 가장 굳센 이들이라고 적혀 있지. 자네가 선한 마음을 지녔다는 것은 의심하지 않네. 앞으로는 더 좋은 운이 찾아오기를 바라네. 오늘 밤에는 자네를 위해 경전을 읽고, 지난 잘못으로 지은 업을 이겨 낼 힘을 얻도록 기도하겠네.”
가이료는 이렇게 말해 주고 집주인에게 밤 인사를 건넸다. 집주인은 잠자리가 마련된 아주 작은 곁방으로 그를 안내했다. 그러자 모두 잠자리에 들었고, 승려만 종이등 불빛 아래서 경전을 읽기 시작했다. 그는 밤늦도록 경전을 읽고 기도했다. 그러고는 눕기 전에 바깥 경치를 마지막으로 한번 보려고 작은 침실의 조그만 창문을 열었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고 바람도 없었다. 밝은 달빛은 나뭇잎의 검은 그림자를 선명하게 드리웠으며, 정원에 맺힌 이슬 위에서 반짝였다. 귀뚜라미와 방울벌레의 울음이 음악처럼 요란하게 어우러졌고, 가까운 폭포 소리는 밤이 깊을수록 더욱 깊어졌다. 물소리를 듣던 가이료는 목이 말랐다. 집 뒤의 대나무 수로가 생각나, 잠든 식구들을 깨우지 않고 그곳에 가서 물을 마실 수 있겠다고 여겼다. 그는 자기 방과 큰방 사이를 가르는 미닫이문을 아주 살며시 밀어 열었다. 그리고 등불에 비친, 머리 없이 누워 있는 몸뚱이 다섯을 보았다!
그는 순간 멍하니 서서 범죄가 일어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곧 피가 없으며, 머리가 없는 목도 잘린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러자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것은 요괴가 만들어 낸 환영이거나, 아니면 내가 로쿠로쿠비의 집으로 꾀임을 당해 들어온 것이구나. . . . 《수신기》에는 머리가 없는 로쿠로쿠비의 몸을 발견했을 때 그 몸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 머리는 다시는 목에 붙을 수 없다고 적혀 있지. 또 그 책에는 머리가 돌아와 제 몸이 옮겨진 것을 알게 되면, 공처럼 튀어 오르며 바닥에 세 번 부딪치고, 몹시 겁먹은 듯 헐떡이다가 곧 죽는다고 했어. 이것들이 로쿠로쿠비라면 내게 좋은 뜻을 품고 있지는 않을 테니, 책에 적힌 지시를 따르는 것도 정당하겠지.’ . . .
그는 집주인의 두 발을 붙잡아 몸을 창문까지 끌고 가서 밖으로 밀어냈다. 그러고는 뒷문으로 갔으나 빗장이 걸려 있었다. 그는 머리들이 지붕에 열려 있는 연기 구멍으로 빠져나갔으리라 짐작했다. 살며시 빗장을 벗기고 정원으로 나간 그는 최대한 조심하며 그 너머의 숲으로 향했다. 숲속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그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그림자에서 그림자로 숨어 옮겨 가며 마침내 몸을 감추기 좋은 곳에 이르렀다. 그러고는 나무줄기 뒤에서 머리들을 보았다. 다섯 머리가 모두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머리들은 땅바닥이나 나무 사이에서 찾아낸 벌레와 곤충을 먹고 있었다. 이윽고 집주인의 머리가 먹기를 멈추고 말했다.
“아, 오늘 밤 찾아온 그 떠돌이 중!—온몸에 살이 어찌나 쪘던지! 저놈을 먹고 나면 우리 배가 든든히 차겠어. . . . 내가 그놈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어리석었지.—괜히 내 영혼을 위해 경을 외우게만 만들었으니! 경을 외우는 동안에는 가까이 가기가 어려울 테고, 기도를 하는 한 손을 댈 수도 없어. 하지만 이제 아침이 다 되었으니, 어쩌면 잠들었을지도 모르지. . . . 너희 중 하나가 집에 가서 그놈이 뭘 하는지 보고 와라.”
또 다른 머리—젊은 여자의 머리—가 곧바로 솟아올라 박쥐처럼 가볍게 집으로 날아갔다. 몇 분 뒤 돌아온 머리는 몹시 놀란 기색으로 목이 쉰 듯 외쳤다.—
“그 떠돌이 중이 집에 없어요.—가 버렸어요! 하지만 더 큰일이 있어요. 주인님의 몸을 가져갔는데,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어요.”
이 말을 듣자 달빛 아래 뚜렷이 보이는 주인의 머리가 무시무시한 형상으로 변했다. 눈은 흉측할 만큼 크게 벌어지고, 머리카락은 곤두섰으며, 이는 으드득 갈렸다. 그러더니 입술 사이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분노의 눈물을 흘리며 외쳤다.—
“내 몸이 옮겨졌으니 다시 붙을 수가 없다! 그럼 나는 죽어야 한단 말이냐!. . . 모두 그 중놈 짓이야! 죽기 전에 그놈을 잡고야 말겠다!—갈기갈기 찢어 놓겠다!—먹어 치우겠다!. . . . 저기 있다—저 나무 뒤에!—저 나무 뒤에 숨어 있어! 저놈을 봐라!—저 살찐 겁쟁이를!” . . .
그 순간 주인의 머리가 다른 네 머리를 거느리고 가이료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힘센 승려는 이미 어린 나무 한 그루를 뽑아 무기로 삼고 있었다. 그는 머리들이 달려오는 대로 그 나무를 휘둘러, 엄청난 타격으로 멀리 쳐냈다. 그중 넷은 달아났다. 하지만 주인의 머리는 거듭 얻어맞으면서도 필사적으로 승려에게 덤벼들었고, 마침내 법의의 왼쪽 소매를 물었다. 그러나 가이료도 재빨리 그 머리의 상투를 움켜쥐고 거듭 후려쳤다. 머리는 물고 있던 것을 놓지 않았지만, 긴 신음을 토하고는 더 이상 버둥거리지 않았다. 죽은 것이다. 그러나 이빨은 여전히 소매를 물고 있었고, 가이료는 그토록 힘이 센데도 턱을 억지로 벌릴 수 없었다.
그는 머리가 여전히 소매에 매달린 채로 집에 돌아갔다. 그곳에는 다른 네 로쿠로쿠비가 멍들고 피 흘리는 머리를 몸에 다시 붙인 채 한데 모여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러나 뒷문에 선 그를 알아보자 모두 “중이다! 중이야!” 하고 비명을 지르며 다른 문으로 뛰쳐나가 숲속으로 달아났다.
동쪽 하늘이 밝아 오고 있었다. 동이 틀 참이었고, 가이료는 요괴들의 힘이 어둠이 깔린 시간에만 미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소매에 매달린 머리를 바라보았다. 얼굴은 온통 피와 거품과 진흙으로 더럽혀져 있었다. 그는 속으로 ‘참 굉장한 기념품[4]이로군!—요괴의 머리라니!’ 하고 생각하며 큰 소리로 웃었다. 그러고는 몇 안 되는 소지품을 모아 챙긴 뒤, 여행을 계속하려고 느긋하게 산을 내려갔다.
그는 줄곧 길을 가다가 시나노의 스와에 이르렀다. 그리고 팔꿈치께에 머리를 달랑거리며 스와의 큰길로 엄숙하게 걸어 들어갔다. 그러자 여자들이 기절하고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큰 소란이 일었고, 마침내 도리테, 곧 당시의 경찰이 승려를 붙잡아 감옥으로 데려갔다. 그들은 그 머리가 살해당한 사람의 것으로, 죽임을 당하는 순간 살인자의 소매를 이로 물었으리라고 생각했다. 가이료는 심문을 받아도 그저 미소를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감옥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그는 그 고을의 재판관들 앞에 끌려갔다. 그곳에서 그는 승려인 자신이 어째서 사람의 머리를 소매에 매단 채 발견되었으며, 어째서 감히 그토록 뻔뻔하게 사람들 앞에서 제 범죄를 드러내며 돌아다녔는지 설명하라는 명을 받았다.
가이료는 이 질문을 듣고 한참 동안 큰 소리로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리들, 제가 머리를 소매에 붙인 것이 아닙니다. 제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저 머리가 스스로 달라붙은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아무 죄도 짓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머리가 아니라 요괴의 머리이기 때문입니다.—설령 제가 그 요괴를 죽게 했더라도, 피를 흘리게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저 제 안전을 지키는 데 필요한 조처를 했을 따름입니다.” . . . 그리고 그는 겪은 일의 전말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다섯 머리와 맞닥뜨린 대목에 이르자 다시 한번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재판관들은 웃지 않았다. 그들은 그가 죄를 짓고도 뉘우칠 줄 모르는 범죄자이며, 그의 이야기는 자신들의 지성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더는 심문하지 않고 즉시 처형하도록 명하기로 했다. 다만 나이가 아주 많은 한 사람만은 예외였다. 이 늙은 관리는 재판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동료들의 의견을 듣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우선 그 머리를 자세히 살펴봅시다. 아직 그러지 않은 것 같으니 말이오. 승려가 진실을 말했다면 머리 자체가 그를 위해 증언해 줄 것이오. . . 머리를 이리 가져오시오!”
그리하여 가이료의 어깨에서 벗겨 낸 고로모를 여전히 이로 물고 있는 머리가 재판관들 앞에 놓였다. 노인은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 가며 자세히 살피다가 목덜미에서 이상한 붉은 글자 몇 개를 발견했다. 그는 동료들에게 그 글자들을 보게 하고, 목의 가장자리 어디에도 무기로 잘린 듯한 흔적이 없다는 점도 살펴보라고 했다. 오히려 떨어지는 잎이 줄기에서 분리되는 자리처럼, 떨어져 나간 경계가 매끄러웠다. . . 그러고 나서 노인이 말했다.—
“이 승려가 우리에게 오직 진실만을 말했다고 확신하오. 이것은 로쿠로쿠비의 머리요. 『남방이물지』라는 책에는 진짜 로쿠로쿠비의 목덜미에서 반드시 어떤 붉은 글자들을 찾아볼 수 있다고 적혀 있소. 여기 그 글자들이 있소. 그려 넣은 것이 아니라는 점은 여러분도 직접 보면 알 수 있을 것이오. 게다가 이 같은 요괴들이 아주 먼 옛날부터 가이 지방의 산속에 살아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오. . . . 그런데 스님,” 하고 그는 가이료를 돌아보며 외쳤다.—“스님은 대체 어떤 분이기에 이토록 강건하시오? 승려 중에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용기를 분명히 보여 주셨소. 그리고 풍채도 승려보다는 무사에 가깝구려. 혹시 한때 사무라이 신분이셨소?”
“제대로 짐작하셨습니다, 나리.” 가이료가 대답했다. “승려가 되기 전에는 오랫동안 무사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사람도 귀신도 두려워하지 않았지요. 당시 제 이름은 규슈의 이소가이 헤이다자에몬 다케쓰라였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그 이름을 기억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 이름이 나오자 재판정에는 감탄하는 웅성거림이 가득 찼다. 그곳에 모인 사람 가운데 그 이름을 기억하는 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가이료를 둘러싼 이들은 곧 재판관이 아니라 벗이 되었다. 형제 같은 친절을 베풀어 존경을 나타내고 싶어 하는 벗들이었다. 그들은 예를 다해 그를 다이묘의 거처로 모셨고, 다이묘는 그를 환영하여 잔치를 베풀고 후한 선물까지 내린 뒤에야 떠나게 해 주었다. 스와를 떠날 때 가이료는 이 덧없는 세상에서 승려에게 허락될 수 있는 만큼 더없이 행복했다. 머리는 그가 그대로 가지고 갔다. 기념품으로 삼을 작정이라며 익살스럽게 고집을 부린 것이다.
이제 그 머리가 어떻게 되었는지만 이야기하면 된다.
스와를 떠난 지 하루 이틀 뒤, 가이료는 인적 없는 곳에서 길을 가로막고 옷을 벗으라는 강도를 만났다. 가이료는 곧바로 고로모를 벗어 강도에게 내밀었다. 강도는 그제야 소매에 매달린 것을 알아보았다. 담이 큰 노상강도였지만 그는 깜짝 놀라 옷을 떨어뜨리고 뒤로 펄쩍 물러섰다. 그러고는 외쳤다.—“너!—대체 어떤 중이냐? 아니, 나보다 더한 놈이잖아! 나도 사람을 죽인 건 사실이지만, 누구의 머리를 소매에 붙이고 돌아다닌 적은 없어. . . . 자, 스님, 보아하니 우리 둘은 같은 일을 하는 모양이군. 탄복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겠어! . . . 그런데 그 머리는 내게 쓸모가 있겠어. 그걸로 사람들을 겁줄 수 있겠지. 팔겠나? 네 고로모 대신 내 옷을 주고, 머리 값으로 다섯 료를 주지.”
가이료가 대답했다.—
“정 그리 원한다면 머리와 옷을 주겠소. 하지만 이것은 사람의 머리가 아니라는 말을 해 두어야겠구려. 요괴의 머리요. 그러니 이것을 샀다가 무슨 곤란한 일을 겪더라도, 내가 당신을 속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 주시오.”
“참 재미있는 중이로군!” 강도가 외쳤다. “사람을 죽이고는 그걸 두고 농담을 하다니! . . . 하지만 나는 정말 진심이야. 여기 내 옷이 있고, 여기 돈도 있어.—그러니 머리를 넘겨줘. . . . 농담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나?”
“가져가시오.” 가이료가 말했다. “나는 농담한 것이 아니오. 우스운 일이 있다면 딱 하나, 요괴의 머리에 생돈을 치를 만큼 당신이 어리석다는 것이겠지.” 그러고는 가이료가 큰 소리로 웃으며 제 갈 길을 갔다.
이렇게 강도는 머리와 고로모를 손에 넣었고, 얼마 동안 큰길에서 요괴 승려 노릇을 했다. 그러나 스와 근처에 이르러 그 머리의 진짜 내력을 알게 되자, 로쿠로쿠비의 혼령이 자신에게 해를 끼칠까 두려워졌다. 그래서 머리를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 몸과 함께 묻어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가이의 산속에 외따로 떨어진 오두막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고, 몸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오두막 뒤 숲에 머리만 따로 묻고, 무덤 위에 비석을 세웠으며, 로쿠로쿠비의 혼령을 위해 시아귀 법회를 열게 했다. 그리고 로쿠로쿠비의 묘비라고 알려진 그 비석은 지금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적어도 이 이야기를 전하는 일본인은 그렇게 단언한다.
• ↑ 에이쿄 연간은 1429년부터 1441년까지였다.
• ↑ 불교 승려가 입는 겉옷을 이렇게 부른다.
• ↑ 방바닥에 만들어 놓은 작은 화덕 같은 것을 이렇게 일컫는다. 로는 보통 네모지고 얕게 파인 곳으로, 안쪽에 금속을 대고 재를 반쯤 채워 그 안에서 숯불을 피운다.
• ↑ 여행에서 돌아와 친구들이나 집안 식구들에게 주는 선물을 이렇게 부른다. 물론 보통 미야게는 여행한 지방에서 생산되는 물건인데, 콰이료의 농담은 바로 이 점을 두고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