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코피
앤드루 코피

내 할아버지 앤드루 코피는 남작령 전체에 조용하고 반듯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남작령 사람들이 모두 할아버지를 알았듯이, 할아버지도 남작령 전체를, 언덕과 골짜기며 늪과 목초지며 들판과 덤불까지 구석구석 훤히 알고 있었다. 그러니 어느 날 저녁, 영지 안에서 도무지 알아보지 못할 곳에 들어섰을 때 얼마나 놀랐을지 생각해 보라. 할아버지와 그 듬직한 말은 자꾸만 웬 나무에 부딪히거나, 분명 거기 있을 리 없는 늪 구덩이에 발을 헛디뎠다. 설상가상으로 나무가 없는 곳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고, 차가운 3월 바람이 나무 사이로 몰아쳤다. 그러다 멀리서 불빛을 보았으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가까이 가 보니 오두막이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거기에 오두막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할아버지는 말을 매어 놓고 안으로 들어갔고, 난로에서 활활 타오르는 섶불이 참으로 반가웠다. 거기에는 튼튼하고 반듯한 의자까지 놓여 있어, 마치 “이리 와서 내 위에 앉으세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방 안에는 다른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그래, 할아버지는 앉았고, 흠뻑 젖었던 몸이 조금 따뜻해지자 기운도 났다. 하지만 그러는 내내 이상하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앤드루 코피! 앤드루 코피!”
맙소사! 눈에 보이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데, 누가 할아버지를 부르는 걸까? 집 안팎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두 발 달린 것이든 네 발 달린 것이든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말마저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앤드루 코피! 앤드루 코피! 이야기 하나 해 다오.”
이번에는 목소리가 더 컸고, 더 가까웠다. 게다가 하필 그런 걸 요구하다니! 불가에 앉아 몸도 말리지 못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성가신데, 이야기까지 해 달라고 귀찮게 굴다니.
“앤드루 코피! 앤드루 코피! 이야기 하나 해 다오. 안 그러면 좋지 못한 일을 당할 테다.”
가엾은 내 할아버지는 너무나 어리둥절한 나머지 그저 서서 멀뚱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앤드루 코피! 앤드루 코피! 좋지 못한 일을 당할 거라고 했지.”
그 말과 함께, 앤드루 코피가 그때까지 눈치채지 못했던 찬장 안에서 남자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 남자는 노발대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은 아니었다. 남자의 손에는 사람 머리통을 후려갈기기에 더없이 좋을 만한 가시자두나무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도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그 남자를 보자마자 패트릭 루니라는 것을 알아보았는데, 그가 오래전 어느 날 밤 고기를 잡다가 배 밖으로 떨어졌다는 사실은 온 세상이 다 알고 있었다.
앤드루 코피는 멈추지도 머무르지도 않고 냅다 줄행랑을 놓아 있는 힘껏 집 밖으로 달아났다. 앞에 무엇이 있는지 살필 겨를도 없이 달리고 또 달리다가, 마침내 커다란 나무에 부딪혔다. 그러고는 쉬려고 주저앉았다.
앉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말소리가 들렸다.
“이 떠돌이 녀석, 무겁기도 하군.” “자, 조심해. 저기 큰 나무 밑에 가면 쉬자고.” 공교롭게도 그 나무는 앤드루 코피가 앉아 있던 나무였다. 적어도 할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손이 닿는 곳에 가지가 보이자 그것을 붙잡고 몸을 끌어 올려, 금세 감쪽같이 숨어 버렸으니 말이다. 남의 눈에 띄느니 내가 지켜보는 편이 낫지, 하고 할아버지는 생각했다.
비는 그치고 바람도 잦아들었다. 밤은 아까보다도 더 캄캄했지만, 앤드루 코피의 눈에는 남자 넷이 보였고, 그들은 기다란 상자 하나를 함께 들고 있었다. 그들은 나무 아래로 와서 상자를 내려놓고 뚜껑을 열더니, 그 안에서 누구를 꺼냈겠는가. 바로 패트릭 루니였다.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묵은 눈처럼 창백해 보였다.
그러더니 한 사람은 섶을 모으고, 또 한 사람은 부싯깃과 부싯돌을 꺼냈다. 곧 커다란 불이 맹렬하게 타올랐고, 할아버지는 패트릭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전에도 가만히 있었다면, 이제는 그보다도 더 꼼짝하지 않았다. 이윽고 그들은 장대 네 개를 세우고 그 위에 장대 하나를 가로질러, 불 바로 위에 영락없는 통구이 꼬챙이 모양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장대에 패트릭 루니를 매달았다.
“이 녀석이면 충분하겠어.” 한 사람이 말했다. “그런데 우리가 없는 동안 누가 지켜보지? 누가 불을 뒤적이고, 타지 않게 살펴볼 거냐고?”
그러자 패트릭이 입술을 벌렸다. “앤드루 코피.” 그가 말했다.
“앤드루 코피! 앤드루 코피! 앤드루 코피! 앤드루 코피!”
“여러분, 참 고마운 말씀이지만,” 앤드루 코피가 말했다. “저는 정말이지 그런 일은 통 모릅니다.”
“내려오는 게 좋을 거야, 앤드루 코피.” 패트릭이 말했다. 그가 입을 연 것은 두 번째였고, 앤드루 코피는 내려가기로 했다. 네 남자는 떠났고, 할아버지는 패트릭과 단둘이 남았다.
그러고는 앉아서 불이 고르게 타도록 살피며 꼬챙이를 계속 돌렸고, 그동안 패트릭은 줄곧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가엾은 앤드루 코피는 이 모든 일을 도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패트릭을 바라보고 불을 바라보고 숲속의 작은 집을 생각하다 보니 머리가 온통 멍해졌다.
“아니, 지금 날 태우고 있잖아!” 패트릭이 아주 짤막하고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그런데 한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비뚤어진 대답을 듣고 싶다면야.” 패트릭이 말했다. “계속 돌려. 안 그러면 좋지 못한 일을 당할 테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떨칠 수가 없었다.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누구나 패트릭이 배 밖으로 떨어졌다고 하지 않았던가. 생각할 거리는 넘쳤고, 할아버지는 생각에 잠겼다.
“앤드루 코피! 앤드루 코피! 지금 날 태우고 있잖아.”
할아버지는 몹시 미안해하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안 그러는 게 좋을 거야.” 패트릭이 말하더니 눈을 치켜뜨고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는데, 그 모습에 앤드루 코피의 등골로 오싹한 전율이 흘렀다. 그래, 한 번도 본 적 없는 울창한 숲속에서 패트릭 루니를 꼬챙이에 매단 채 돌리고 있다니, 이상한 일이기는 했다. 할아버지가 자꾸만 생각에 빠져 불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앤드루 코피, 앤드루 코피, 내가 널 죽이고 말겠다.”
그 말과 함께 할아버지의 눈앞에 무엇이 보였겠는가. 패트릭이 꼬챙이에서 제 몸을 풀어 내리고 있었고, 그의 눈은 사납게 번뜩이고 이빨은 번들거렸다.

할아버지는 멈추지도 머무르지도 않고 밤의 숲속으로 뛰쳐나갔다. 돌이란 돌은 모조리 발을 걸고, 가지란 가지는 모조리 얼굴을 후려치고, 가시덤불이란 가시덤불은 모조리 살갗을 찢는 것만 같았다. 나무가 없는 곳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고, 차가운 3월 바람이 울부짖으며 몰아쳤다.
불빛을 보자 할아버지는 몹시 반가웠고, 잠시 뒤에는 정신이 얼떨떨하고 온몸이 흠뻑 젖어 후줄근한 꼴로 난롯가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섶은 활활 타올랐고, 섶은 타닥타닥 소리를 냈으며, 곧 할아버지의 몸도 조금 따뜻해지고 물기가 마르면서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앤드루 코피! 앤드루 코피!”
할아버지처럼 온갖 일을 겪고 나면 펄쩍 뛸 힘도 없으련만, 할아버지는 펄쩍 뛰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그곳이 어디였겠는가. 처음 패트릭을 만났던 바로 그 오두막이었다.
“앤드루 코피, 앤드루 코피, 이야기 하나 해 다오.”
“이야기가 듣고 싶은 거요?” 할아버지는 더없이 대담하게 말했다. 하도 겁을 먹어서 이제는 겁먹는 데도 진력이 났던 것이다. “그럼 내가 하는 이야기의 영문을 좀 밝혀 주면 고맙겠소.”
그리고 그날 밤 자신이 겪은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했다. 이야기는 길었고, 앤드루 코피는 지쳤는지도 모른다. 분명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눈을 떴을 때 할아버지는 탁 트인 하늘 아래 언덕 비탈에 누워 있었고, 곁에서는 말이 풀을 뜯고 있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