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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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의 콘테스트2023 이야기 부문 금상
스페인의 동굴 안에서 발견된 벽화로, 약 40800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여겨진다.
그림에는 사냥감부터 적대적인 포식 동물, 열매와 식물 등이 묘사되어 있으며, 주로 공동체 안에서 생활 속 위협 요소를 공유하기 위해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맹금류가 그려진 구역에는 10개 이상의 다리와 정사면체 형태의 몸통을 가진 검은 개체가 묘사되어 있다. 처음에는 독충을 그린 것으로 여겨졌으나, 다른 그림들이 일관되게 대체로 같은 비율로 그려져 있다는 점을 바탕으로 크기를 추산하면, 이 개체는 일반적인 육식 동물의 약 3배 크기였을 것이다.
현재 주류 견해는 이것이 종교적 경외의 대상을 묘사한 것이라고 본다.
1999년.
귓속을 가득 메우는 고함과 발소리를 하나하나 스쳐 지나간 뒤에야, 당신은 경보가 울리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복도 저편에서 걸어온 완전 무장한 보안 부대원이 당신을 제지하려 하지만, 당신은 최고 등급 바로 아래의 권한을 가진 카드를 내보여 그를 물러나게 한다. 뒤에서 들려오는 “행운을 빕니다”라는 말에 당신은 돌아보지도 않고 가운뎃손가락을 세워 답한다. 기도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당신은 잘 알고 있다.
당신은 자신이 만든 시약의 성능을 확신하고 있다. 명목상으로는 시제품인 그 시약을 주입하는 기능을 갖춘 7.62밀리미터 구경 스마트 탄환 역시 당신이 깊이 신뢰하는 기술자가 제작했다. 당신은 그것들을 이용해, 구역질이 날 만큼 가증스러운 잠정 Apollyon 등급 신규 개체를 처분하는 계획이 성공하리라 확신하지만, 그 계획의 상신은 벌써 반년가량 미뤄지고 있었다.
손에 든 M1A 소총의 나무 개머리판에서 손바닥을 타고 당신의 체온과 같은 온기가 전해진다. 지난 반년 동안 당신은 연구자에게 허락된 얼마 안 되는 여가를 모두 전투 훈련에 쏟아부었고, 그 훈련은 이 말없고 시대에 뒤처진 소총을 당신의 세 번째 팔로 만들어 놓았다. 약실을 확인하고, 녹색 줄이 있는 특수 탄약과 눈을 맞춘다.
격리실에 도착하자 반사율이 낮은 거대한 한 덩어리의 방폭벽이 고대 이집트 석공들이 깎아 낸 거암을 연상시킨다. 허공에 카드를 들어 올리자 센서가 수십 가지 방식으로 진위를 확인한다. 마이크로파를 받은 카드가 진동하는 듯한 착각이 들고, 당신은 점점 더 긴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심박수는 120 정도. 최상의 기량을 발휘하기에는 조금 과하게 분비된 아드레날린 탓에 울리는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당신은 눈앞의 거암이 예상과 달리 고요한 가운데 매끄럽게 위로 올라가 열리는 모습을 바라본다.
강철 벽으로 둘러싸여 있어야 할 격리실 안에는 이미 별이 가득한 밤하늘이 펼쳐져 있다. 격리실 외곽에서 최대 출력으로 가동되고 있을 XACTS도 몇 분 뒤면 기능의 한계에 도달하겠지. 예방적 처분 조치의 지연. 그 대가는 이번 준K급 시나리오의 발생이다. ‘세계 역전’ 현상 속에서, 당신은 그 중심에 놓인 침대에서 잠든 소녀를 바라본다.
자신이 계속 꾸는 밤하늘의 꿈으로 현실을 뒤덮는 이능. 가증스러운 인류의 적. 당신은 이제 하루빨리 처분해야 할 Apollyon 소녀에게 총구를 겨누고, 진부한 트롤리 딜레마를 떠올리면서도 첫 탄환이 명중하리라 확신하며 방아쇠를 당기겠지.
밤을 끝내라. 오직 당신만이 넘어설 수 있다.
1915년.
털을 손질해 주지 않은 염소처럼 둔해 보일 만큼 껴입어도 옷 아래로 아프리카 모래땅의 냉기가 스며드는 한밤중. 당신은 회중시계의 시침이 똑바로 위를 가리키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옆에서 몸을 웅크리고 잠든 동료는 푸르고 차가운 달빛을 받아 붉은 땅 위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교대까지 꼬박 한 시간이나 남았다는 사실에 지겨움을 느낀 당신은 뚜껑을 조금만 벌려 놓은 통조림의 틈으로 건포도 몇 알을 꺼내 천천히 씹으며, 입안에서 과일의 빛깔을 떠올려 보려 한다.
이 전쟁이 시작된 이래 이미 지긋지긋하게 익숙해진, 철조망이라는 자재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 전염병과 기이한 종교를 합쳐 놓은 듯한 변칙적 존재가 그곳을 멸망시켰다고 하며, 그 존재 때문에 미군 연락관이라는 직함을 지닌 당신은 바다 건너 이세계 같은 대륙의 끝자락까지 불려 왔다. 감염성을 띤 살덩어리가 마을을 벗어나려 하면 기관총으로 쏜다. 그것이 당신의 일이다.
협상국과 동맹국 사이의 소규모 충돌도 근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영국군과 접촉하면 계획대로 미군 인식표와 미국 확보 격리 구상회의 식별표를 제시해야 하는데, 아마 전자가 당신의 목숨을 구해 줄 것이다. 독일군과 접촉한다면 아마 둘 다 쓸모없겠지만, 당신 앞에 양각대를 펼친 최첨단 기관총이 잠깐이나마 더 살게 해 줄지도 모른다.
루이스 경기관총이라고 불리는 이 최신 기관총은 위에 프라이팬을 얹어 놓은 듯 기묘하게 생겼지만, 적어도 떼 지어 몰려나오는 오염된 살덩어리의 이동 능력만큼은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이 윗선의 판단인 모양이다. 이 영리해 보이는 판단은 모래 먼지가 날리는 사막에서 정밀 장비를 다뤄야 하는 고충을 현장의 요원들에게 떠넘겼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세계적 전쟁이라고 불리는 이 전쟁. 퍼져 나가고 있다는 소문이 도는 비변칙성 질병. 전장을 휩쓰는 새롭고 가증스러운 무기들. 세계는 크게 변하려 하고 있다. 그 속에서 당신은 변칙적 존재로부터 세계 자체를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다.
회중시계를 본다. 몇 분도 지나지 않았고, 당신은 한숨을 쉬기 시작한다.
세계는 요동치고, 시대의 앞날은 한 치도 보이지 않으며, 통조림 속 건포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밤에서 눈을 돌리지 마라. 오직 당신만이 지켜볼 수 있다.
어느 밤.
모두가 모닥불 곁에 모여 있다. 멀리 동굴 입구가 보이고, 그 바깥으로 보랏빛 밤하늘이 펼쳐져 있다. 동굴 안에 있는 ‘어른 남자’의 수는 평소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리 몇 번을 찾아봐도 그들 가운데 당신의 아버지는 없다.
“다들 알다시피, 우리는 오늘 오랫동안 금지되어 있던 ‘밤 사냥’을 나갔다.”
그 일은 당신도 알고 있다. 사냥을 하는 것도, 익숙하지 않은 곳에 가는 것도 모두 ‘어른 남자’의 일이다. 그리고 그런 일은 ‘밝은 시간’에 끝내야 한다.
“우리 일족은 번성했고, 사람 수도 늘어났다. 식량을 계속 늘려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는 밤에 나타나는 물고기도, 밤이면 움직임이 느려지는 사냥감도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일족의 규칙과 일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사람이 평소처럼 어려운 말을 쓰면서도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 간다.
“내가 결정했다. 규칙을 어기고 밤 사냥을 나가기로 결정했다. 그때 나는 ‘어른 남자’의 절반만 평소 사냥터에 다녀오는 정도라면 괜찮을 거라고 판단했다.”
모인 사람들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틀렸다. ‘규칙’에는 뜻이 있었다. 우리는 밤에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아버지를 잃은 아이들아. 미안하다. 그리고 부디 잊지 말아 다오.”
당신은 할아버지 뒤쪽 벽에 펼쳐진 그림을 올려다본다. 날카로운 이빨이 난 생물. 크고 위험한 생물. 먹으면 몸이 이상해지는 열매와 들풀. 모두에게 ‘위험한 것’을 알려 주기 위해 그린 그림. 그 맨 가장자리에 새로 더해진 ‘위험한 것’. 그림 속 그것은 지금껏 알려진 ‘위험한 것’ 가운데 어느 것보다도 크고, 다리가 많으며, 울고 싶어질 만큼 검다.
“규칙을 어기지 마라. 불을 꺼뜨리지 마라. 가족을 지켜라.”
할아버지가 그것에 붙인 이름을 입에 올리고, 당신은 그 이름을 기억 속에 깊이 새긴다.
밤을 잊지 마라. 오직 당신만이 전할 수 있다.
스페인의 동굴 안에서 발견된 벽화로, 약 40800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여겨진다.
그림에는 사냥감부터 적대적인 포식 동물, 열매와 식물 등이 묘사되어 있으며, 주로 공동체 안에서 생활 속 위협 요소를 공유하기 위해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맹금류가 그려진 구역에는 10개 이상의 다리와 정사면체 형태의 몸통을 가진 검은 개체가 묘사되어 있다. 처음에는 독충을 그린 것으로 여겨졌으나, 다른 그림들이 일관되게 대체로 같은 비율로 그려져 있다는 점을 바탕으로 크기를 추산하면, 이 개체는 일반적인 육식 동물의 약 3배 크기였을 것이다.
현재 정상 사회의 주류 견해는 이것이 종교적 경외의 대상을 묘사한 것이라고 본다.
개체의 형태 등 특징이 SCP-█████와 일치한다는 점은 당시 인류가 SCP-█████와 접촉했음을 시사한다. 현재 연구가 진행 중이다.
오늘 밤.
당신은 밤길을 걷고 있다. 가로등 하나 없이 곧게 뻗은 낡은 길에는 좁은 차도와, 그보다 더 좁고 자갈투성이인 변변찮은 인도만 있다.
다행히 달이 많이 차서, 보름달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걷기에 충분한 빛을 드리운다. 돌멩이가 발을 찌르는 감각과 서늘한 밤바람이 뒤섞이자 어쩐지 꿈속 같은 기분이 든 당신은, 문득 길가에 펼쳐진 덤불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곳에는 밤이 있다. 그것은 어둠과 외적과 죽음의 세계이며, 불을 피우는 기술을 터득하기 전까지 인류라는 종은 그저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던 세계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 당신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쓸 만한 것을 찾는다. 다행히 손가락에 단단하고 차가운, 도구 같은 것이 닿는다. 조금의 안도감과 커다란 용기를 품고 당신은 어떤 도구를 꺼내겠지.
그것은 작은 칼일 수도, 38구경 권총일 수도 있다. 혹은 건포도가 든 통조림일 수도 있고, 어쩌면 흑요석으로 만든 석기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당신의 손에는 도구가 있고, 수단이 있으며,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서 얻은 지혜와 의지가 있다. 당신은 무력하다. 당신은 무능하지 않다. 밤은 당신을 죽이려 들겠지. 하지만 당신은 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당신은 무의식적으로 바스락거리는 바람 소리를 시선으로 좇는다. 밤길을 스쳐 가는 바람에서 덤불 속 어둠으로 시선을 되돌렸을 때, 아까 나무 사이로 이쪽을 엿보던 칠흑은 아주 옅어져 있다.
당신은 다시 밤길을 걷기 시작한다. 길옆 덤불 속에는 여전히 밤이 있고, 하늘에서는 달빛이 내려온다.
밤 속을 나아가라.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글
Sky_Arcl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