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do를 위한 꽃
플로리다의 도로는 로버트 미첼의 새 차와 더없이 잘 어울렸다. 얼마 전 그는 영업사원, 그야말로 영업사원인 남자와 한참 동안 친한 척을 한 끝에 충동적으로 그 차를 샀다. 상대는 제네시스 G70을 권하면서도 자신은 그저 일을 하는 것이라고 정중히 일러주어야 했다. 로버트는 열에 들뜬 듯 차의 모든 제원을 외웠고, 눈에 안 띌 수가 없는 새 차에 관해 누군가 물을 때마다 줄줄 읊어주었지만,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자기 대학의 주차장에서는 그 차가 영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해야 했다. 역설적이게도 크롬으로 치장한 핏빛 자동차는 이곳, 파스텔빛 야자수가 늘어선 도로 위에 더 잘 어울렸다. 모든 색을 바래게 하는 태양 아래 비현실적으로 푸르게 빛나는 물결도 멀지 않았다. 그에게 익숙하지 않은 세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별로 부럽지도 않으면서, 끝내는 끈질기고 한결같고 부적절하고 비이성적인 작은 질투를 부추길 만큼은 미워하는 세계였다. 마음속 가장 깊은 곳보다도 더 밑바닥에서, 그 질투에는 아주 명확한 대상이 있었고, 그는 시속 백사십 킬로미터로 그 대상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는 시내에 들어서며 속도를 줄이고, 자신을 여기까지 오게 만든 일련의 사건들을 곱씹었다. 그러다 더 자세히 되짚는 것은 그만두었다. 벌써부터 두려운 질문과 한마디 한마디로 형제가 대신 그 일을 해줄 테니까. 길을 찾느라 애를 먹고 있을 때 핸즈프리 장치에 연결된 전화기로 메시지가 들어왔다.
대니얼
아까부터 지도에서 너 빙빙 도는거 보이는대 도움 피료하니
내가 보인다니 무슨 말이야? 너 어디야?
해커의 기술임 (아니 농담이고 sns에 니 위치가 떠서 보여)
"무슨 sns"냐고 할꺼지?
그거 얘기가 긴대 나중에 해주께
주소나 줘, 대니얼.
나 운전 중이야.
중앙에 동상 나오면 타투샾 쪽으 로 꺾어서 바다까지 쭉 가구 오른쪽으로 꺾어서 자갈 나올때까지 쭉 간담에 왼쪽에 바짝 붙어서 길따라 주차장까지 와
너 취했어, 대니얼?
됐다, 이따 보자.
응 미안 글을 잘 못써 니가 와서 기뻐.
로버트에게는 몹시 유감스럽게도 대니얼의 길 안내는 놀랄 만큼 명확했다. 자동차 바퀴가 먼지투성이의 누르스름한 흰 자갈 위에서 불쾌하게 자그락거렸다. 볼품없는 자갈에서 일어난 먼지가 이내 공기 중으로 흩어지자, 허허벌판에 길게 늘어선 상점들이 따분한 모습을 온전히 드러냈다. 아마 주차장을 꾸미려고 갖다 놓은 모양이었다. 챙이 지나치게 긴 못생긴 모자 같은 기와지붕 아래에는 멕시코계 미국인을 희화화한 듯한 사내가 서 있었다. 샌들을 신고, 분명 옆의 허름한 가게 중 하나에서 찍어냈을 부족 문양이 마구 휘갈겨진 베이지색과 초록색의 거대한 셔츠에 똑같이 헐렁한 카고 반바지를 입고, 행복한 얼굴로 털북숭이 팔을 흔들고 있었다. 로버트는 차에서 천천히 내리려 했지만, 그마저 대니얼 때문에 오래 걸리지 못했다. 더는 참지 못한 대니얼이 샌들로 자갈을 철퍼덕철퍼덕 자그락자그락 밟으며 전속력으로 달려와 그를 덥석 끌어안았고, 그 기세에 차 문이 쾅 닫히는 바람에 로버트는 손가락 두 마디를 잃을 뻔했다.
— 브로! 보니까 진짜 좋다! 에와!
— 안녕, 대니얼.
— 브로! 브로! 브로! 플로리다에 온 걸 환영해! 얼마나 기쁜지 넌 모를 거야! 위대한 화학자 선생께서는 잘 지내셨나? 안에 들어가서 다 얘기해줘. 짐 있어?
— 응, 하지만 잠은 호텔에서 잘 거야. 방을 잡아놨어, 그–
— 오르티스네? 27호?
— …네가 어떻게–
— 그런 건 신경 쓰지 마, 브로! 오르티스는 내가 알아. 얘기 다 해놨어. 돈은 내가 다시 보내줄 테니까 오늘 밤은 우리 집에서 자! 내 브로가 내 구역구역에 와서 숙박비를 내게 할 순 없지! 에와, 우리 집으로 와!
— 뭐– 그런 짓을 할 때는 적어도 나한테 말은 해줘야지.
— 문제없어, 브로! 브로끼리는 서로 돕는 거야, 에와.
— 정말 그럴 필요는… 그 "에와"라는 건 어디서 주워들은 거야?
— 말레이어야. 감탄사인데, 이런 거지. 에에에에와!
— 다른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언제부터 말레이인이 된 거야?
— 긴장한 것 같은데, 브로. 안으로 들어와. 이렇게 더울 땐 뭘 마셔야 해. 나 끝내주는 소다스트림 있어. 자, 들어와!
달리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던 로버트는 기와 모자를 쓴 기다란 콘크리트 소시지의 끝으로 떠밀려 갔고, 마침내 '대니얼의 세탁소 & 태닝'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인쇄한 방수포를 판자에 씌워놓은 간판이었다. 대니얼은 놀라울 만큼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해냈다. 온갖 환대를 담아 문을 잡아주면서 다른 팔로는 계속 그를 밀었다. 문에 달린 종이 좁은 로비에 울렸다. 바닥에는 까슬까슬한 흰색 타일이 깔려 있었고 벽은 사과 초록색이었다. 매끈한 합판으로 만든 카운터가 접수대 노릇을 했는데, 전화기와 체인 달린 펜꽂이, 투명한 PVC 재질의 작은 전단지 꽂이가 장식처럼 놓여 있었다. 전단지 꽂이에는 인근의 온갖 전단지가 넘쳐나서 일부는 그 밑에 부채꼴로 흩어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로버트에게는 카운터 가장자리에 쌓인 작은 명함들이 재단기로 다소 부정확하게 잘린 것처럼 보였다.
— 그래서 브로, 얘기 좀 해봐! 캐롤라이나네서 사는 건 어때?
로버트는 대답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최선을 다해야 했고, 거기에 더해 억지로라도 대답을 만들어내야 했다. "캐롤라이나네"라니? 누가 그런 말을 하지?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 점만은 그도 인정했다. 대니얼은 어떤 주제에서는 제법 예의를 지킬 줄 알아서 "캐롤라이나 속에서"라는 말까지 하지는 않았다…
— 네가 아는 대로지. 무슨 얘기를 해? 대학에서 연구비를 받았어. 정확히는 주 정부에서 준 거지만, 어쨌든 내가 받았지. 연구하는 건, 어… 향정신성 약물이라고 해두자. 그러니까 기분에 작용하는 약이지.
— 오! 알겠다. 우울증을 낫게 하고, 기분을 좋게 하거나 용기를 주는 약.
— 그것보다는 조금 복잡하지만 그렇다고 해두자.
— 브로, 너 합법적인 마약을 만드는 거잖아! 좀 더 열정을 가져봐.
— 난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 걱정 마. 그래서 네가 여기 있고, 내가 여기 있고, 우리가 지금 여기 함께 있는 거잖아. 우리 큰일을 해낼 거야! 에와!
로버트는 아직 대화가 그쪽으로 넘어가는 게 내키지 않았고, 대니얼이라면 잡담을 길게 늘여 피할 수 없는 일을 미뤄주리라 믿을 수 있었다.
— 그쪽 동네는 어때?
— 덜… 덜…
— 햇볕이 덜 들어?
— 꼭 그렇진 않지만, 응, 대충 그런 느낌이지. 바다보다는 산이랄까.
— 좋아, 이제 진지한 얘기를 해보자.
대니얼은 연극이라도 하듯 다섯 걸음 만에 카운터 뒤로 돌아가더니 안쪽 문을 가리켰다.
— 마법이 일어나는 소굴로 가자!
로버트는 대니얼을 따라 가게 뒷방으로 이어지는 복도에 들어섰다. 조명이 몇 차례 움찔거리며 깨어나 뒤늦게 그를 맞았다. 놀랍게도 그곳은 전혀 인상적이지 않았다. 그는 좀 더 개성이 드러나는 공간을 예상했지만, 어쩌면 대니얼은 일터를 꾸미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그곳에서 일을 별로 하지 않는다는 뜻밖에 될 수 없었다.
— 여기가 뒷방이야. 난 거의 항상 여기 있어! 난 좋아. 내 소소한 일상이 있지. 내가 없으면 이 동네 옷 절반은 칙칙할 거고, 겨울에는 사람들 피부가 너무 하얄 거야. 사이트에 올린 광고랑 전단지도 전부 바꿔야 했어. 새 대통령 트럼프가 들어선 뒤로는 "거의 멕시코인 같은 피부색"이 영 안 먹히더라고.
그곳에는 데워진 싸구려 세제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오른쪽 세탁실로 이어지는 문 없는 좁은 복도에서 풍기는 냄새였다. 안쪽의 어둑한 공간에는 차고 비슷한 것이 있었는데, 어둠 속에서 삐죽삐죽 튀어나온 어지러운 형체들이 보여주듯 창고로 쓰이고 있었다. 방 자체는 단출했다. 탁자 위에는 알 수 없는 상표의 하드디스크가 적어도 네 개는 직렬로 연결되어 발목을 잡고 있는 Power Macintosh 8100이 놓여 있었고, 그 위로 Alcatel-Lucent 키보드와 정육면체 모양의 브라운관 모니터가 자리 잡고 있었다.
— 태닝 살롱은?
— 건물 반대편 끝에 있는 사람이 맡고 있어. 난 그런 건 몰라서, 말하자면 동업하는 거지.
— 무슨 소린지 분명하지 않은데.
— 분명할 필요 없어, 에와! 넌 너무 머리를 싸맨다니까. 마침 그 얘기나 하자.
대니얼은 달인처럼 무릎을 굽혀 바퀴 달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나치게 편안하면서도 동시에 몹시 진지한 모습이었다.
— 정확히 뭐가 문제야, 브로? 엄마가 전화로 설명해주려고 했는데, 엄마가 어떤지 알잖아.
— 응, 응… 말했잖아. 연구비를 받았어. 그런데 내가, 그러니까 연구실을 열고 싶은데 아무도 같이 하려고 하질 않아. 내가 충분히 설득을 못 하는 거지.
— 뭐, 기분을 고쳐주는 그 조그만 약들 말이야? 누가 같이 안 하겠어!
— 그게 아니라고 했… 아무튼 한동안 시도했는데 잘 안됐어. 그리고 엄마가 어떤지 너도 알잖아.
대니얼은 입을 살짝 벌린 채 허공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로버트는 그의 눈에서 기쁨도 슬픔도 읽을 수 없었지만, 적어도 둘 중 하나라는 건 알았다.
— 그래서 그랬구나. 엄마가 전화해서 널 도와주라고 하길래 놀랐어. 뭐, 꼭 그렇게 말한 건 아니지만. "네 형제가 좀 더 자신감을 갖고 자기주장을 펼칠 수 있게 네가 가르쳐주면 좋겠다"고 했어.
로버트는 어머니가 실제로는 조금 덜 점잖게 말했거나, 대니얼이 자기가 듣고 싶은 대로 들었으리라는 걸 알았다. 어머니가 대니얼을 두고 "자신감"이나 "자기주장"이라고 말할 때는 "생각 없음"이라는 뜻으로 알아들어야 했다.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게 하는 천진한 무분별함 말이다. 대니얼은 말을 이었다.
— 무슨 뜻이었는지 딱 알겠어. 연구실을 어떻게 차리고, 필요한 사람들을 어떻게 만나고, 네 아이디어를 어떻게 소개할지 내가 요령을 좀 알려주길 바라시는 거야.
— 그런데, 미안하지만 보아하니 네겐 딱히 직원도 없고, 네 사업이 잘된다고 해도 제약 연구소 규모는 아니잖아.
세탁기 한 대가 세탁이 끝났다는 신호와 함께 심기가 불편하다는 듯 연신 삑삑거리는 동안, 다니엘은 진심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 네 말이 맞아, 브로! 아, 그런데 이건 내 사업의 핵심도 아니야! 이것 좀 봐.
그는 몸을 돌리며 모니터 버튼을 거창하게 눌렀다. 화면이 절전 상태에서 깨어나면서, 켜져 있던 작업 화면의 누런 기운이 점점 옅어졌다. 로버트는 제대로 보려고 가까이 다가갔다. 화면에는 일종의 온라인 상점 화면이 떠 있었다. 성인들의 모습으로 장식된 유리 용기에 담긴 봉헌초와, 터무니없는 가격이 붙은 바로 그 성인들의 그림이 보였다.
— 난 예수 그리스도, 성 미카엘, 성 베드로, 그 밖의 모든 성인 모습을 담은 NFT를 팔아. 그리고 사람들은 내 상점에서 장식된 봉헌초를 살 수 있지. NFT를 산 사람들은 내 봉헌초 판매를 위탁받아서 NFT 사는 데 쓴 돈을 회수할 수 있어. 어차피 봉헌초를 사는 사람들은 해당 NFT의 권리자에게 사용료를 내야 하니까.
— 그거… 폰지 피라미드 사기 아니야?
— 스스로 굴러가는 거지! 무슨 생각 하는지 알아. 하지만 먹고는 살아야 하잖아. 사람들이 그만한 돈을 낼 만큼 원한다면, 나한테는 거절할 권리가 없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게 해 주지 않는 건 바보짓이지. 이런 장사를 하면서 사람들을 바보 취급하기까지 하는 놈들도 있다고. 우리 가게에서는 손님이 왕이야. 물론 할인까지 해 줄 생각은 없어. 사업에 해로우니까. 봐, 조만간 역사적 인물 시리즈도 내고, 그다음에는 이슬람 성인 시리즈도 낼 생각이야. 그리고 최고의 종교를 가리는 대회도 열 거야. 무신론자 대 기독교인 대 무슬림. 매출이 폭발할 거라고! 이이이와!
로버트는 경악했다. 이쪽 세계에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윤리적으로 의심스럽고 심하게는 거의 불법에 가까운 자유시장주의의 덫이라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다. 형제의 도움을 받은 일을 후회할 이유는 차고 넘쳤지만, 어머니가 그를 궁지에 몰아넣은 탓에 이제 와서 물러설 수도 없었다. 다니엘은 자신에게 책임이 맡겨졌다고 느끼면, 그 책임이란 것이 수화기 너머에서는 아무리 모호해지더라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로버트가 여기까지 오지 않았다면 다니엘이 노스캐롤라이나로 찾아왔을 터였다. 캠퍼스에서 형제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빌어먹을, 다니엘이 캠퍼스를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내버려 두는 것조차 안 될 일이었다. 이 인간은 눈부실 만큼 아무 생각이 없었고, 이즈라엘 카마카위워올레만큼 호감을 샀으며, 세상 모든 남자의 자신감을 합쳐 놓은 듯했고, 로버트가 여태 본 사람 가운데 가장 모호하고 뒤틀린 도덕관을 지녔다. 어쩌면 그저 단순하고 멍청한 도덕관인지도 몰랐다. 어떤 의미에서는, 로버트는 그런 생각을 조금이나마 떠올렸다는 사실에 자책했지만, 그는 완벽했다. 의자가 살짝 삐걱거리는 가운데 다니엘이 진지한 표정에 형제다운 미소를 띠고 돌아섰다.
— 자, 로버트. 짐작했겠지만 나한테 생각이 하나 있어. 와서 봐.
그는 일어나 로버트를 창고로도 쓰는 차고로 안내하고 불을 켰다. 안의 잡동사니는 제 존재를 부끄러워하지도, 어둠을 본받아 물러나지도 않았다. 바닥에는 비었거나 쓰다 만 페인트통들이 놓여 있었고, 그중 몇 개는 무심코 뚜껑을 열어 둔 탓에 말라 가고 있었다. 바닥에도 얼룩이 묻어 있었다. 서류 보관 상자와 기계 장비, 정비 도구로 가득 찬 선반이 있는 이 난장판 속에서도, 이런 광경은 평소와 다르다는 기색이 느껴졌다. 게다가 한가운데에는 받침대 두 개에 걸쳐 놓은 커다란 판이 방수포에 덮인 채 길을 막고 있었다. 다니엘은 극적인 효과를 노리더니, 무거운 방수포를 몇 번에 나눠 벗기느라 지나치게 긴 시간을 허비했다. 로버트는 도와주지 않고 그가 낑낑거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 이이와!
방수포 아래에는 나무판에 팽팽하게 당겨 못으로 고정한 또 다른 방수포가 있었다. 건물 입구 위에 걸린 것과 글자까지 똑같았다. 아니, 거의 똑같았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다니엘의 고급 약국, 세탁소 & 태닝". 로버트는 자신이 감당하기 벅찬 일에 발을 들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수습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형제의 예측 불가능성은 여전히 계산에 넣기 어려운 변수였다.
— 이게 뭐야, 다니엘?
— 보면 모르겠어?
— 그래도 설명해 줬으면 좋겠어.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확실히 이해하고 싶거든.
— 너랑 나랑 사업을 시작하는 거야. 넌 계속 약을 개발하고, 판매는 내가 맡을게. 장사가 잘되면 연구소를 차릴 만한 경험도 쌓이겠지. 혼자 하기 너무 힘들면 사람하고 투자금을 구하러 같이 다니면 되고.
완전히 무책임한 생각이었다. 향정신성 약물을 팔려면 별도의 허가가 필요했고, 이 실험 단계의 향정신성 약물을 판매할 수 있도록 승인받으려면 또 다른 허가와 시험이 필요했다. 게다가 수상쩍은 장사를 토대로 세운 연구소의 직원을 구하겠다고 두 사람이 기관들을 찾아다닌 뒤에는, 누구도 로버트와 손잡으려 들지 않을 터였다. 물론 실제로는 제품의 수익성이 좋으면, 그 과정에 윤리적 과속방지턱이 얼마나 있든 확실한 관심을 끌 수 있겠지만.
— 그리고 뒤를 봐. 내가 벌써 다 준비해 놨어!
실제로 위험하게 가로막힌 차고 문 앞에는 실험대가 하나 있었다. 처음부터 직접 만든 것인지, 사 온 다음 수도에 엉성하게 연결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여기 있어서는 안 될 물건처럼 보이는 것만은 확실했다. 필요한 장비가 모두 갖춰져 있어서 그 광경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다만 몇몇 핵심 장비의 기종과 일부 기구는 쓸모가 없거나 빠져 있거나 품질이 형편없었다. 로버트는 다니엘이 대체 어떻게 이걸 마련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 연구소에 전화해서 어떻게 일하는지 물어봤어. 그리고 《브레이킹 배드》를 다시 보면서 화면에 나오는 물건들의 모델을 인터넷으로 찾아봤지. 네 마음에 들면 좋겠네.
정말 나쁜 생각이었다. 잘못하면 두 사람을 끔찍한 수렁에 빠뜨릴 일이었다. 완벽했다. 이번에는 로버트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허락했다. 그는 형제에게 다가가 그를 끌어안았다.
— 고마워, 다니엘. 완벽해. 한두 가지만 더 갖추고 뭐 하나 정도는 바꿔야 할 수도 있겠지만, 네가 있어서 난 운이 좋아, 형제.
다니엘의 눈이 빛났고, 어쩌면 조금 촉촉해졌을지도 몰랐다. 타인의 감정을 빨아들이는 이 거대한 스펀지가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생각 없는 자본가와 한 몸에 공존할 수 있는지, 로버트에게는 여전히 수수께끼였다. 그는 다니엘이 십중팔구 "브로"와 "이와"를 사이사이 끼워 넣으며 감상적인 말을 늘어놓기 전에, 잊지 않도록 한마디를 덧붙였다.
— 그리고 기니피그 우리도.
완전히 정통적인 화학은 아니었다. 로버트 미첼은 실용화할 수 있기를 바라는 몇 가지 원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신경세포와 뇌세포의 조작을 수반하는 생화학 원리였고, 수많은 주의사항을 지켜야 하는 생화학이었다. 사실 이 생화학에는 수많은 주의사항이 따랐을 뿐 아니라, 최종적으로 상품화를 염두에 두었을 때 꽤나 성가신 윤리적 문제도 있었다. 나쁜 소문을 불러오는 종류의 문제였다.
미친 과학자나 멍청한 꼬마가 떠올릴 법한 생각이었지만, 로버트 미첼은 뇌의 특성을 섭취할 수 있는 자극제 형태로 추출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었다. 마케팅의 기초 구상도 이미 있었다. "사자의 자신감, 토끼의 성욕, 그리고…을 얻으세요." 하지만 햄스터에게서는 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적어도 당장은 거기에 만족해야 했다. 현재 그의 목표는 두 가지였다. 대상의 신경계와 호르몬계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하거나 변형하지 않을 방법을 찾는 것, 그리고 실험을 시작하는 것. 하나를 끝낸 뒤 다른 하나를 할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약간의 부수적 피해는 어쩔 수 없었다. 인간의 해부학적 지식을 얻는 일도 처음에는 병원 영안실을 털면서 시작하지 않았던가? 로버트에게는 이 비유의 한계를 따지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다니엘은 착각해서 기니피그 대신 햄스터를 사 왔다. 반쯤 정신병적이고 비사회적인 불안에 시달리던 로버트는, 햄스터를 기니피그로 바꿔 달라며 찾아가는 것은 수상해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니엘의 컴퓨터로 이 종의 특성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검색은 오래가지 못했다. 컴퓨터가 바이러스와 스팸에 감염되어,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글 읽기를 방해했다. 자기 맥으로 찾아보고 싶었지만, 외딴 이 구석 동네의 와이파이는 형편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아무 정보 없이 시작해서, 무엇이 전달되든 간에 그 화합물만으로 한 뇌에서 다른 뇌로 전달이 가능한지부터 살펴볼 생각이었다. 다른 종류의 동물도 구해야 할지 몰랐다…
— 잘돼 가?
— 네 컴퓨터 바이러스투성이야. 못 참겠어.
— 아, 그거! 광고야. 뜰 때마다 닫기 표시만 누르면 돼.
— 컴퓨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이러지 않아, 다니엘.
다니엘은 상자들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 알아. 그래도 그렇게 거슬리진 않잖아. 공짜 게임도 되고!
— 난 꽤 거슬리거든…
— 그럼 컴퓨터는 놔둬, 브로. 와서 이것 좀 봐.
그래도 닫기 표시를 누르는 것보다는 다니엘 쪽이 더 흥미로웠으므로 로버트는 따랐다. 그는 의자를 돌려 일어나더니, 쪼그려 앉아 커터칼로 상자에 붙은 절연테이프를 뜯고 있는 형제에게 다가갔다.
— 이것들은 오직 너만을 위해 제대로 된 인쇄소에 맡겨서 만든 거야!
그는 힘을 쓰느라 가볍게 끙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손에는 반듯하게 재단해 종이 띠로 묶은 종이 뭉치가 들려 있었다. 그가 뭉치에서 전단 한 장을 빼냈다. 거기에는 흑백으로—그렇다고 너무 무리할 수는 없으니까—“사자의 자신감을 얻으세요 - 다니엘의 자신감 알약”이라는 문구와 세탁소 주소가 적혀 있었다. 아직 상자 안에 있는 다른 인쇄물 묶음에서도 종이 띠에 가려진 “토끼의 성욕을 얻으세요 - 다니엘 비아그라”라는 문구를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다. 첫 번째 전단에는 아마 구글 이미지에서 검색 결과를 아래로 내리지도 않고 찾았을 법한 사자 조련사 사진이 있었고, 두 번째 전단에는 한창 교미 중인 토끼 두 마리의 그림이—다행히도 그림이었다—있었다. 나머지 상자 두 개에도 아마 비슷한 것이 들어 있을 터였다. 어쩌면 다니엘이 직접 만든 다른 디자인 네 가지일 수도 있었다.
— 네가 들어 준 예시에서 영감을 받아서 전단을 여러 가지 디자인으로 뽑아 봤어. 네가 알약을 만들면 바로 이 근방에 뿌릴 수 있을 거야. 다른 아이디어도 좀 떠올랐어. 전부 열어서 상자는 차고에 갖다 놓을게. 편하게 봐. 물론 꼭 같은 동물일 필요는 없어. 마케팅용이니까.
실험 면에서 로버트는 도움을 받지 못했다. 마케팅 면에서는 다니엘이 그를 한참 앞질렀다. 로버트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따지고 보면 답답했다. 단순히 능력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전반적인 태도의 문제이기도 했다. 물론 다니엘은 누구에게든 무슨 헛소리든 그럴듯하게 떠드는 데 능했다. 거의 뻔뻔할 만큼 순진하게 사람들에게 다가갔고, 그것이 눈부신 자신감처럼 보였다. 실은 그 두 가지 성격이 이미 공존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아무래도 좋아, 로버트는 그런 비합리적인 생각을 머릿속에서 떨쳐 내며 속으로 말했다. 그 안의 모순을 발견하지 않으려면 오래 붙들고 있지 않는 편이 현명했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좋아. 나는 배우러 왔어. 최대한 많이 배우러. 앞으로 나아가려면 실수가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내가 온 곳에서는 실수가 허용되지 않아. 여기서는 내가 실패하는 모습을 아무도 보지 못할 거야. 그리고 필요한 것을 전부 갖추고 돌아갈 거야. 성과와 자금, 내 연구실과 회사를 세우는 데 필요한 자신감과 지식을.
잘될 터였다. 잘되는 정도가 아닐 터였다. 로버트가 자신하는 것은 자신의 연구 말고는 없었다. 그것마저도 확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니엘의 열의는 두 사람 몫이었고, 어쩌면 그보다 조금 더할지도 몰랐다. 그 작은 차이가 결과를 바꿔 놓을 거라고 로버트는 생각했다. 그리고 어떤 생각들은 무의식 속에 남겨 두는 편이 나았다.
다니엘이 JBL에서 쏟아져 나오는, 디스 없는 디스곡에 몸을 맡기고 있는 동안—그런 전자음 리듬에 어떻게 몸을 움직여야 하는지는 그만이 알았다—로버트는 햄스터 사체를 어디에 버리는 게 좋을지 생각했다. 사체는 희열에 차 춤추는 남자에게서 충분히 떨어진 그늘 속 우리 안에 관절이 어긋난 채 널브러져 있었다.
— 이이야! 대단해! 봤지, 그냥 널 믿으면 되는 거였다니까, 브로!
로버트는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미묘한 비웃음을 지었다. 그에게 그런 문제는 애초에 없었다. 그를 믿지 않는 건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인정해야 했다. 사실이었고, 기분 좋은 일이었다. 다니엘을 뺀 다른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다니엘이 자존심을 세워 줄 때면 로버트는 다시 생각을 고쳐먹었다. 따지고 보면 다니엘은 돈벌이의 기회라는 형태로 제시되지 않는 것은 별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아마도—그것 하나였다. 자신의 성공이 돈으로 이어질 가망이 없었어도 저렇게 열광했을까?
그래도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했다. 죽은 햄스터에서 추출한 첫 번째 물질을 꼼꼼히 검증하고 아직 살아 있는 다른 햄스터에게 시험한 뒤, 인간 피험자를 자청한 그의 행동은…… 희생적이었다. 이타적이거나 멍청하거나. 하지만 효과는 있었고, 이제 그는 축하를 멈출 줄 몰랐다. 그동안 로버트는 창고 겸 차고의 금속 선반 한쪽 끝에 어색하게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다니엘은 햄스터를 품에 안고 춤췄다. 다행히 그에게는—아직—짝이 필요하지 않았다.
— 배고픔을 없애 주는 알약이라니! 게다가 효과도 오래가! 이렇게 조그만 게 사흘이나 간다니 대단하잖아.
로버트는 그가 알약을 두고 하는 말인 줄 알았지만, 다니엘은 햄스터의 주둥이에 입을 맞추기 시작했고 햄스터는 놀라서 그를 물었다. 다니엘은 아파서 비명을 지르며 하마터면 햄스터를 놓칠 뻔했다. 연신 욕을 내뱉으며 그는 두 팔을 쭉 뻗어 설치류를 몸에서 멀리 든 채 우리에 돌려놓으려고 다가갔다.
— 줘, 내가 할게.
— 아야, 고마워, 브로. 후우우, 화장실 가서 소독 좀 해야겠다. 아야, 역시 너만 믿는다.
로버트가 조금 다급하게 햄스터를 넘겨받은 것은 다니엘이 너무 가까이 다가와 다른 햄스터의 사체를 발견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었다. 어느 시점에서는 꾀를 부려야 할 터였다. 일부 동물의 크기 문제도 있었지만, 직접 동물을 사 오는—혹은 구해 오는, 어차피 결과적으로는 같은 일이었다—다니엘이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멍청하지는 않았으니까. 언젠가는 좀 더 혼자 일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거나, 실험 대상을 죽이지 않는 방법을 진척시켜야 할지도 몰랐다. 로버트는 두 번째 방향에 집중하게 될 터였다. 다만 다니엘에게도 나름의 계획이 있었고, 그것이 사태를 다른 방향으로 급히 몰아갈 터였다. 그는 코에 거즈를 댄 채 유령 열차의 판지 괴물처럼 문에서 갑자기 미끄러져 나와 복도에 모습을 드러냈다.
— 자, 내 차 타고 시내로 가자.
— 뭐?
— 알약 챙겨서 일모한테 가자고. 식료품상이자 약사야. 자기는 그렇게 부르는데 그냥 담배 파는 술집을 해.
— 그래, 뭐 드러그스토어네. 당장 이렇게 알약을 팔겠다고?
— 그렇지! 거의 아무거나 다 파니까, 한 병이랑 전단을 가져다주면 일주일 안에 다 팔아 치울 거야.
— 어. 확실히 잘될 것 같아?
— 그럼, 담배 사러 오는 노숙자 단골이 네다섯 명쯤 있을 거야. 그러면 월말에 먹을 게 모자라는 사람들한테까지 입소문이 퍼지겠지. 완벽한 장사야.
— 나도 가야 해?
로버트는 그 말을 하고 나서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다니엘은 눈썹을 찌푸리고 입을 삐죽였는데, 얼굴 근육이 수축하면서 다친 코를 양쪽에서 조이는 바람에 곧바로 통증을 느꼈다. 그가 짧게 아픈 소리를 내며 표정을 풀자 로버트는 즉시 말을 수습했다.
— 아니, 아니, 미안, 내 말은—
— 브로, 걱정 마, 알아들었어. 네 말이 맞아. 내가 또 앞서 나갈 뻔했네. 솔직히 아무 생각 없이 내가 다 처리해 버릴 수도 있지. 어쨌든 다 잘 아는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네 물건을 네가 팔 기회를 안 주면 널 돕는 게 아니잖아. 물론 내가 아는 사람들이니까 나랑 더 잘 통하긴 하겠지만. 있잖아, 이렇게 하자. 널 내 형제라고 소개할 테니까 나머지는 네가 해. 네 영역은 안 건드릴게. 내 형제라는 걸 알면 그 사람들도 네 말을 들어 줄 거야.
필요한 일이었지만, 상황은 더 나빠졌다. 로버트는 자신의 오만함이, 아니, 자신감이 전부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핑계를 찾았고 자신의 비겁함에 짓눌려 죽을 것 같았다.
— 알약을 더 팔면 햄스터도 더 필요할 거야.
그 방어는 한심하고 위험했다. 다니엘은 모르고 있었으니까…… 깨달음이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반드시, 그리고 빨리 실험 대상을 죽이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할 터였다. 그러지 않으면 사체가 쌓이고, 아직 정하지도 않은 공터로 밤마다 나가는 일도 늘어날 터였다.
— 브로, 브로, 브로! 쓸데없는 걱정이야. 그건 문제도 아니지. 진정하고, 자, 전단 한 뭉치 집고 알약 챙겨서 가자. 아, 미안하지만 내 차로 갈 거야. 네 차는 좀 너무, 어, 뭐랄까, 번쩍번쩍하잖아. 사람들한테 친근한 인상을 줘야지. 너무 이방인처럼 보이면 안 돼.
다니엘의 픽업트럭을 타고 가는 길은 끝이 없었다. 운전하는 대로 차가 덜컹거리는 통에 박자를 따라가지 못하는 훌라 댄서 인형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로버트는 벌써 낯선 땅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자신에게 익숙한 것들과는 전혀 다른 차 안이었다. 좌석은 너무 높았고, 재질은 정체를 알 수 없었으며, 형언하기 힘든 인공적인 냄새가 났고, 엔진은 낯선 기계의 언어로 혼잣말을 했다…… 그러다 갑자기 입을 다물고 동승자의 대답을 기다렸다. 운전자에게는 기다릴 생각이 없어서 이미 차 문을 닫고 있었고, 로버트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땅에 발을 디디자 이제는 햇볕이 거슬렸다. 조금 너무 눈부시고, 조금 너무 뜨거웠다. 동네 가게들과 벤치가 늘어선 거리는 거의 유럽풍이라 할 만큼 조금 너무 정겨웠다. 다행히 눈에 들어오는 곳에는 그를 쳐다볼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 자신이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오전이 끝나고 정오가 시작되는 무렵의 이 정적도 딱히 마음을 놓이게 하지는 않았다. 다니엘은 말이 없어졌지만, 그의 몸짓과 표정이 모든 말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 역시 따뜻하게 활짝 웃으며 로버트를 기다렸다. 이제 남은 말은 그들이 전혀 연습하지 않은, 전형적인 판매원의 치밀한 대본밖에 없었다.
유리문이 딸랑 소리를 내며 열리자 플라스틱 물고기의 일그러진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드러그스토어는 결국 정말로 담배 파는 술집에 더 가까웠다. 관광지로 내세울 만한 특색이 없는 동네의 관광객 상대 상점을 겸한 곳이었다. 주인은 흥겨운 가락을 끙끙거리며 뽑아내는 그 장난감을 계산대 위쪽에 걸고 있었다. 다니엘이 말을 걸었다.
— 안녕, 일모!
— 오! 안녕, 다니엘. 이 입 큰 강꼬치고기 빌리만 마저 걸고 바로 갈게.
일모는 다시 카운터에 자리를 잡고 다니엘 못지않은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카운터 위에 짚었다. 그사이 빌리는 다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툭 튀어나온 눈에 멍청하고 차가운 기색을 띠고 로버트를 바라보았다.
— 내 형제 로버트야. 엄청나게 재능 있는 화학자지. 너한테 제안할 게 있어서 왔어.
그의 차례였다. 언제나 헤벌어진 빌리의 입을 제외하면 시선과 미소가 모두 그에게 향했다. 한 손에는 전단지 뭉치를 들고 있었는데, 손의 습기 때문에 벌써 종이가 변형되기 시작해 최대한 적게 닿도록 잡으려 애쓰고 있었고, 다른 손에는 알약 통을 들고 있었다.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가 나중에 꺼냈어야 했지만, 지금 주머니에 넣었다가 일 분도 안 돼 다시 꺼낼 수는 없었다.
— 아, 안녕하세요, 선생님, 어, 그러니까……
침묵이 조금 길어졌다. 일모는 도와줘야겠다는 걸 알아차렸다.
— 일모예요.
— 일모, 안녕하세요, 일모. 제가, 어, 저희가, 혹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세요, 그러니까…… 죄송해요, 제 말은, 이게 뭔지 아세요?
그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수사적 질문을 던진다고 생각하며, 당혹스러울 만큼 고요한 침묵 속에서 알약 병을 들어 올렸다.
— 아뇨, 우리 가게에서는 그런 거 안 팔아요. 그게 뭔데요, 마약이에요?
그가 해낸 일이라고는 일모에게 오해를 산 것밖에 없었다. 일모는 사복 경찰에게 심문이라도 받는 듯한 표정으로 그에게서 몸을 돌리며 다니엘 쪽으로 시선을 보내 답을 구하기 시작했다. 다니엘도 일이 틀어지기 직전임을 느끼고 다시 나설 수밖에 없었다.
— 전혀 아니야, 일모, 전혀! 배고픔을 없애 주는 알약이야. 한 알 먹으면 사흘 동안 배가 안 고파! 얘가 직접 만든 건데, 너나 네 손님들이 관심을 가질 것 같아서.
일모는 긴장을 풀었고, 얼굴에 드러났던 의아한 기색도 옅어졌다.
— 아! 알겠어. 위험하진 않고?
— 내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는 게 증거잖아! 전단지를 카운터에 놓아 주면 이 병은 공짜로 두고 갈게.
— 뭐, 안 될 것도 없지. 내가 크게 위험을 감수하는 건 아니니까. 무슨 마약 같은 거면 네가 책임지는 거야.
— 그건 걱정 마! 곧 네 진열대에도 자리를 잡을 테고, 네가 제일 먼저 팔 수 있게 될 거야.
대화는 계속되었지만 이제 아무 상관도 없었다. 로버트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고, 일모가 병과 전단지를 카운터에 놓으라는 말도 듣지 못한 채 몸이 기계적으로 따르게 내버려 두었다. 자신의 무능함, 어울리지 못하는 처지, 오만하고 한심한 형제 옆에서 보잘것없는 점원과 나눈 그 처량한 대화가 가장 어두운 생각들을 휩쓸어 담으며 끈적하고 검은 마요네즈처럼 뒤엉켜 부풀었다. 불공평했다. 형제에게는 넘치도록 있는 것, 아니, 세상의 행복한 멍청이들이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 자신에게는 하나도 없었다. 자신감은 너무나 많은 한심한 남녀에게 돌아가도록 터무니없이 불균형하게 배분되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이 제 것인 양 돌아다녔고 어디를 가든 제집처럼 굴었지만, 그는 어디에도 자신의 자리가 없었고, 때로는 자기 자신 안에서조차 온전히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는 자기 자신을 훨씬 넘어서는 존재가 되기를 갈망했고, 그러는 동안 끊임없이 스스로를 지워 버릴 토대를 닦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았다면 자신을 너무 잘 이해하는 셈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생각은 그의 생각이 아니었고, 그의 잠재의식 깊은 곳을 뚫고 나오지도 못했다.
삽질 한 번, 겨우 생채기 하나. 그는 아직 최초의 용액을 안정화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다시 삽질 한 번, 먼지가 조금 일고 풀 한 포기가 어설프게 잘렸다. 아직도 불안정한 약품이 거의 사 리터나 있었고, 그는 왜 그냥 버리지 않는지 자문했다. 어리석은 질문에 어리석은 대답. 필요했으니까. 첫 주문들이 들어오고 있었고, 주로 다니엘이나 일모의 가게를 찾아오는 개인 고객들이었다. 다시 삽질 한 번, 삽날에 걸린 돌이 소리를 내며 뼛속까지 불쾌한 충격을 전했다. 그는 위험한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다니엘이 햄스터 수가 줄었다는 사실을 눈치채기 시작했고, 앤더슨 농장에서 데려온 발정기의 토끼들은 알아차리기 더 어려웠다 해도 뱀 한 쌍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로버트는 소비자에게 위험하지는 않다고 강조하면서 사고였다고 믿게 만들 수 있었다(어차피 소비자에게 돌아갈 위험은 전혀 없었지만, 겁먹은 문외한들은 그 차이를 구분하지 못할 터였다). 삽질 한 번, 삽질 한 번, 삽질 한 번, 삽질 한 번, 삽을 내던지기 한 번.
땅은 거의 파이지도 않았다. 구덩이를 파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단단히 봉해 둔 쓰레기봉투가 말없이 그를 조롱했고, 그는 울면서 땅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우는 자신이 지독하게 원망스러웠다. 부당했다. 이 모든 것이 부당했다. 학창 시절 내내, 일을 시작하고 나서도 그는 전략적인 관계 하나, 쓸모 있는 인맥 하나 만들지 못했다. 이루어야 할 위대한 일이 그토록 많은데 아무도 그를 알아주지 않았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고, 아무도—
그리고 다니엘, 다니엘, 그는 다시 삽을 집으며 생각했다. 그는 필사적으로 땅을 팠다. 유전이라는 게 그렇게 단순해서 형제가 지닌 그 따뜻한 오만함을 자신은 왜 조금도 물려받지 못했는지 그저 간단히 설명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흙은 초라할 만큼 작은 덩어리로 떨어져 나왔고, 그는 눈물을 흘리며 신음했다. 형제, 절대로 그 형제와 함께 천박한 돌팔이 노릇이나 하다가 생을 마칠 수는 없었다. 그는 이 굴욕적인 단계를 거쳐야 했지만 여기서 배우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형제에게서 배우는 것도 그를 견딜 수 없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렇게 불공평한 처지에서는 더욱 그랬다. 왜 저 사람들은 모두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걸까, 그들의 충동은 어째서 하나같이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걸까. 왜 자신은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을까. 구덩이는 겨우 필요보다 조금 넓어졌을 따름인데, 그는 더는 버틸 수 없었다. 이 구덩이를 팔 수 없었다. 이것마저도 힘에 부쳤다. 정신이 그에게 저항했고, 물질이 그에게 저항했고, 그 자신이 스스로에게 저항했다. 왜 이 고생을 하는가, 씨발, 왜 이 고생을 하는가.
공공 쓰레기통 하나에 봉투를 내던질 때까지도 그는 자신의 괴로움을 곱씹고 있었다. 거의 동시에 알림이 왔다. 그런 데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아무것도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그는 휴대전화를 뒷좌석에 던져 놓고 다시 운전하기 시작했다. 곧 밤이 될 터였다. 곧장 형제의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아까 들판에서 삽을 들고 있던 자신은 지독한 멍청이였다. 정신 상담이 필요했고, 이제는 그걸 인정하기로 했다. 그는 자신에게도, 모두에게도, 형제에게도 가혹했다. 세상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견딜 수 없다는 건 오로지 자기 자신의 문제였다. 우선 일모의 가게에 약이 좀 있을 터였다. 전문 치료사에게 상담받을 돈도 있었다. 이 외딴 동네에서는 당장 구하기 어렵겠지만, 근처에는 있을지도 몰랐고, 정 안 되면 화상으로 상담받거나 노스캐롤라이나로 돌아간 뒤에 받으면 되었다. 진동과 함께 벨이 울렸다. 그는 백미러를 보았다. 한숨을 내쉬고 차를 세운 다음 몸을 비틀어 팔을 뻗어 다니엘의 이름이 뜬 화면을 붙잡았다…… 바로 그 순간 전화가 끊겼다. 그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다니엘
일모한테 좀 들러줄수잇어 이상한걸 마셧는데 배아파
옥시콘틴 달라해 걱정ㄴㄴ 진짜 옥시콘틴은 아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는 다시 전화를 걸며 차를 출발시켰고, 처음 가려던 길에서 크게 방향을 틀었다. 전화는 한참 울렸지만 응답이 없었다. 그는 욕을 내뱉었다. 다니엘의 고급 약국, 세탁소 & 태닝숍으로 향했다. 차를 세우고, 내리고, 달려가, 해 질 녘의 어두운 주황빛에 물든, 아직 문이 열려 있는 가게로 들어갔다. 그는 어스름이 가득했지만 아직 움직일 만한 가게 뒷방으로 향했고, 마개가 열린 병 하나와 마주쳤다. 적어도 당분간은 소형 냉장고 안에 있어야 할 병이었고, 그가 위층의 냉장고를 문짝이 거의 경첩에서 떨어질 만큼 거칠게 열어 냉각 장치가 끼익거리게 하며 확인하니—정말로 그 병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그렇게 멍청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어리석을 수는, 그렇게 바보같이 얼빠질 수는 없었다. 병은 책상 위에 서 있었고, 십 센티리터쯤 줄어든 내용물은 탈수된 사람의 오줌 같은 노란색, 혹은 사과 주스 같은 황금빛 갈색이었다. 씨발.
다니엘을 오래 찾을 필요는 없었다. 차고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었다. 사람 모양의 검은 형체가 선반에 기대어 쓰러져 있었다.
— 다니엘?
사람의 형체는 움직이지 않았다. 벽 쪽으로 넘어진 선반에 기댄 채 이상한 자세로 굳어 있었다. 로버트는 불안이 차오르는 가운데 다급하게 전등 스위치를 찾았고, 찾아내 눌렀으며, 불안이 공포로 폭발하는 순간 곧바로 후회했다.
불빛이 어둠 속에서 다니엘의 굳고 팽팽하게 당겨진 얼굴을 끌어냈다. 지나치게 뒤집혀 올라간 입술과 그를 빤히 바라보는 두 눈은 밀랍 인형 같았고, 그 표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로버트에게는 얼굴이 다른 부분보다 먼저 나타나, 어둠에서 얼굴만 따로 떨어져 나온 뒤에야 선반에 부딪혀 쓰러진 몸이 모습을 드러낸 것 같았다. 그 광경에 몸이 마비된 로버트는 잠시 다니엘을 구하러 다가가기를 망설였다. 그러나 마침내, 삽질하다 무너졌던 일로 이미 손상된 정신의 요새를 안개 같은 물결로 덮치기 시작한 몽롱한 상태 속에서, 그는 미동도 없는 형제에게 달려들었다.
— 다니엘! 다니엘, 대답해.
.
— 씨발, 다니엘, 제발, 맥박 좀 잡혀 봐, 씨발, 제발.
.
— 젠장, 다니엘, 왜 손에 잡히는 걸 그렇게 마셔 버린 거야, 씨발! 어떻게 생겼는지 알잖아, 한번 의심해 볼 수도 있었잖아!
.
— 젠장, 다니엘, 아, 나 두고 가지 마, 다니엘, 다—
로버트가 응급 구조대에 전화하기로 마음먹는 순간, 물먹은 스펀지가 짓눌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거의 동시에 로버트는 다니엘의 얼굴에 있는 구멍들에서 잉크처럼 검은 액체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았다. 양은 적었지만 나오는 곳은 귀, 코, 입, 눈, 어디에나 있었다. 심지어 이 주 전 햄스터가 코에 낸 상처까지 다시 벌어진 듯했고, 거기서도 검은 액체가 배어 나왔다. 액체가 조금 로버트의 손 위로 흘렀다. 미지근하고 끈적했다.
몸이 굳은 로버트는 그를 놓아 버리고 싶었다. 그 물질을 분비하는 그에게서 멀어지고 싶었다. 로버트는 그 색을 잘 알았다. 그들이 만드는 약의 순수한 원물질이었다. 다니엘의 뇌가 액화되고 있었다.
구조대에 전화할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이 드러날 테고, 과실치사와 비윤리적으로 제조한 제품을 판매한 죄로 감옥에 갇힐 터였다. 아마 그럴 것이었다. 법은 잘 몰랐다. 하지만 과실치사는 확실했다. 그의 제품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준비만 되었더라면. 그러나 영원히 준비되지 않을 터였다. 무에서 무언가를 끌어낼 수는 없었다. 넘을 수 없는 보존 법칙이 있었다. 적어도 그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법칙이었다. 모든 것은 변환된다. 그가 해 온 모든 일이 그에게 칼끝을 돌렸고, 모든 것이 파괴되었으며, 그에게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방금 누구보다 멀리 나아가지 않았는가. 자신의 의지에 반해서, 심지어 자신의 이해마저 거슬러 가면서. 아직도 충분하지 않다는 말인가?
구조대에 전화해야 했다. 그의 형제가 죽어 가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무슨 수라도 써야 했다. 불행히도 무엇을 해야 할지 아는 사람은 그 자신뿐이었고 정작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몰랐지만, 문제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의 배합식이었고, 그의 제품이었다. 그래도 어쩌면 해독을 하면, 그래, 충분히 빨리 연락한다면… 하지만 그러려면 십오 분 안에 해독을 해야 했다. 가장 가까운 병원까지는 대략…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형제가 아닌가. 어머니께는 뭐라고 할 것인가. 자주 만나지 않았어도, 만나고 싶지 않았어도 그의 형제였다. 친구도 거의 없고 가족도 얼마 남지 않은 그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의 형제만은 안 됐다. 그의 형제만은. 다니엘만은.
그는 다니엘을 살릴 수 없었다. 누구도 다니엘을 살릴 수 없었다.
만약–
그것은 허공에 매달린 ‘만약’이었다. 로버트의 머릿속에서 끝을 맺기도 전에 멈춰 버렸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보다 나은 방도는 없었다. 보존하려 애쓰는 것, 사태가 계속 진행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것, 적어도 그것만은 해야 했다. 그러면 연구할 수 있을 터였다. 연구해서… 다니엘을 되살리는 건가? 그는 죽은 게 아닌가? 자신이, 로버트 미첼이, 과연…
그는 제대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행동하고 있었다. 새 간판을 칠할 때 썼던 페인트 통들이 가장 가까이 있는 용기였다. 몇몇 통에 생긴 페인트 껍질은 내용물을 다 쓰지 않았으며, 다니엘이 부주의하게 뚜껑을 닫지 않은 탓에 앞으로도 다 쓸 일이 없으리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 이는 격동을 아주 조금 누그러뜨리는 데밖에 도움이 되지 않는 편안한 자세로 형제를 눕히려 했다. 기록 보관용 상자들 위에 몸을 눕히고, 검고 끈적한 액체를 페인트 통에 받을 수 있도록 머리를 적당한 위치에 두었다.
이어서 그는 차근차근 가게 문을 닫기 시작했다. 그리 복잡한 일은 아니었고, 다니엘이 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기도 했다. 앞서 삽으로 하려던 일이 실패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거의 너무나 쉬울 지경이었다. 정면 셔터가 낡은 크랭크를 돌리는 박자에 맞춰 내려왔다. 마치 끔찍한 반어로 그가 이제 다니엘의 고급 약국, 세탁소 & 태닝숍의 새 주인이라고 알려 주는 듯했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이제 그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머릿속에 떠올린 어떤 시나리오도 좋게 끝나지 않았다.
그는 차고 안 양동이에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를 박자 삼아, 광기에 찬 열정으로 고물 컴퓨터 앞에서 밤새 작업했다. 차고의 불을 끌 엄두는 낼 수 없었고, 그쪽을 흘낏 볼 때마다 형제의 굳어 버린 얼굴을 반대쪽으로 돌려놓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났다. 그에게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 얼굴이었다. 눈을 뜬 채 일그러져 있는 그 끔찍한 얼굴이었다. 영원한 평화 속에 안식하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죽은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똑, 똑. 그는 뇌를 집어삼키고 눈꺼풀을 무겁게 짓누르는 잠과 싸워야 했다. 눈구멍 뒤, 머릿속에서 생겨나는 블랙홀이 눈꺼풀을 빨아들이는 듯했다. 액체가 흐르는 소리가 날 때마다 전기 충격처럼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잠을 깨웠다. 다니엘은 죽었다고, 밤의 매시간 블랙홀이 그에게 되풀이했고, 컴퓨터에 뜨는 팝업 하나하나가 그를 비웃었다. 다니엘은 죽었다. 완전히 끝난 일이었다. 감정들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는 그의 정신 건강이라는 요새를 마지막까지 집요하게 공격했다. 그는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실험대에서 작업했다. 생각과 기분이 뒤섞이고, 변성되고, 안정되기 시작하는 것처럼 용액들을 섞었다.
다니엘은 죽었다. 무슨 소용인가? 이제 와 그의 운명을 한탄한들 무슨 소용이며, 불가능한 일, 그를 되살리는 일을 시도한들 무슨 소용인가. 이제부터의 일을 생각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는가? 죄책감은 조금도 줄지 않았지만, 절망으로 위장한 일종의 강압적인 실용주의가 점점 더 큰 자리를 차지했다. 정확히 사고가 있었다고만 하면 될 터였다. 다니엘이 마셔서는 안 되는 것을 마셨다고. 그리고 어쩌면 성가신 수사를 피하기 위해, 먼저 자신의 제품을 가능한 만큼 제거한 다음 그에게 다시 독을 먹여야 할 터였다. 그럴 수 있다면, 새벽 두 시부터 네 시까지는 그럴 수 있을지 의심했지만, 어떻게든 지역 당국을 찾아갈 터였다. 제대로 손을 써 두면 그들은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할 것이고, 지나치게 자세한 부검도, 불리한 증거가 될 표본 채취도 피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면 어쩌면 나쁜 소문을 최소한으로 억제하면서 제품 개발을 계속할 수 있을 터였다.
그는 이런 마지막 생각들에조차 거의 충격을 받지 않는,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그리하여 다섯 시 사십 분 무렵, 자신의 손을 한참 벗어난 상황을 다시 통제하려 쌓아 올린 이 논리의 피라미드는 꼭대기에 도달했다. 다니엘이 만들어 낸 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인간의 뇌는 그의 제품에 노출되면 무엇을 만들어 내는가? 이제 다니엘 미첼의 굳어 버린 가면 위에 투박한 평행선을 그리는 이 끈적한 액체의 정체는 무엇인가?
한 시간이 흘렀다. 바깥 하늘이 분홍빛으로 물드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한 시간이었지만 로버트는 여전히 시간 바깥에 있는 이 안쪽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액체는 끊임없이 솟아 나왔다. 멈출 수 없이, 천천히, 그러나 비정상적인 양으로. 그 한 시간 동안 한 끔찍한 인간의 궁지에 몰린 사고가 펼쳐졌다. 그는 이전부터 그런 사람이었을까? 사건들이 그의 행동을 더 나쁘게 만들었을까? 그는 양동이를 다른 용기로 바꾸고, 액체를 더 적합하고 더 밀폐가 잘되는 용기들에 옮겨 담기 시작했다. 그렇게 결정이 내려졌다. 천재적인 형제가 대체 무엇을 만들어 냈는지 시험해 봐야 했다.
그는 일곱 시 십삼 분에 액체를 입술로 가져갔다.
로버트는 깨어나자마자 토했다. 그는 자신이 어떤 끔찍한 선택을 했는지 알고 있었다. 자신답지 않은 선택– 솔직하게 정정하자면, 제정신인 사람이 할 법한 행동과는 거리가 먼 선택이었다.
그는 여전히 다니엘의 고급 약국, 세탁소 & 태닝숍 안에 있었지만, 분명히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그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시간 자체는 그리 놀랍지 않았지만, 날짜를 표시해야 할 작은 사각형은 달랐다. 이십사 시간이 넘게 지나 있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안내 카운터 쪽으로 갔다. 철제 셔터는 닫혀 있었다. 아무도 오지 않았나? 아무도 걱정하지 않았나?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왜 그런 짓을 했을까? 왜 그걸 마셨을–
그는 다시 토했지만, 더는 나올 것이 없었다. 배가 고팠고, 기운이 없었고, 청소를 해야 했다. 어떤 순서로? 담즙 냄새가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명령했다.
대걸레로 바닥을 닦으며 무엇을 먹을지 생각하던 그는 셔터 바깥, 가게 앞에 놓인 상자 몇 개를 발견했다. 청소를 마치고 물을 조금 마신 뒤 소형 냉장고에 남아 있던 음식을 두서없이 집어 먹고 나서, 그는 셔터를 열어 상자들을 가져왔다. 아마존 프라임의 색상과 로고가 찍힌, ‘취급 주의’ 소포 세 개였다. 안에 든 물건들은 그를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도구부터 약품까지 갖가지 의료 및 화학 실험 용품이었고, 원심분리기까지 있었다. 사고가 나기 전에 다니엘이 주문한 물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고, 형제의 세심한 마음 앞에서 다시 정신적으로 무너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물품들은 너무나 구체적이고, 너무나 전문적이며, 너무나… 정확했다. 그에게 필요한 것과 너무나 정확하게 일치했다. 다니엘은 짐작하고 미리 내다보는 데 능했지만, 그렇다고 예언자는 아니었다.
그는 상자들을 차고에 내려놓았다. 다니엘과 시선을 마주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그 눈은 좀처럼 유리처럼 흐려지지 않았고, 일그러진 표정은 또다시 더 심해진 듯했다. 이제 그는 마담 투소에 있는 밀랍 인형 하나를 세부까지 고스란히 닮아 있었다. 액체의 흐름은 멎은 듯했지만, 착각해서는 안 됐다. 극히 적은 양이지만 끊임없이, 어김없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용기를 사야 할 터였다. 무엇이든. 어쩌면 저 얼굴에도 무슨 조치를 해야겠지만, 손을 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아직도 깨어 있는 듯한 모습은 참혹했지만, 당장은 완전히 죽은 모습을 보게 된다는 생각보다 견딜 만했다. 그는 문제없이 견뎌 낼 터였다.
그래서 그는 상자들을 차고에 내려놓고 컴퓨터에서 뭔가를 확인하러 갔다. 팝업 창들은 여전히 떠 있었지만, 뜻밖에도 좀 더… 덜 거슬리는 위치에 있었다고 해야 할까? 그는 조금 끈적거리는 키들을 눌러 인터넷 방문 기록을 열었다. 가장 최근 검색은 기억이 끊긴 동안에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래된 기록부터 보면 문제의 장비에 관한 검색이 있었고, 그다음에는 아마존 프라임 가입이 있었다. 연구소와 관련된 탭을 여러 개 열어본 흔적도 남아 있었다. 익숙한 곳도 있었고 전혀 들어본 적 없는 곳도 있었으며, 한 페이지가 다른 페이지로 이어지며 낯선 뿌리줄기처럼 뻗어 나간 수많은 페이지의 목록이었다. 알림이 떴다. 그제야 그는 메일이 쉰 통 가까이 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메일 앱을 열어 내용을 훑어보던 그는 경악했다. 서툰 문장으로 그 모든 연구소와 정체를 모르는 몇몇 기관에 직접 연락을 취한 메일들이었다. 전부 읽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두 통은 손상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미 도착한 답장들은 신랄하거나 무관심했다. 그는 낯빛이 하얗게 질렸고, 너무나 창백해진 나머지 또 토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런 답장은 받은 메일 가운데 스무 통 가까이에 불과했다. 다른 답장들도 있었는데, 내용은 다양했고 대체로 마을의 유력 인사들이 보낸 것과 NFT나 예수 또는 오바마 양초를 찾는 사람들이 보낸 것으로 나뉘었다. 가장 어처구니없는 것은 목록을 더 내려보니 그쪽에도 지난 하루 동안 작성된 답장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자동 교정 기능 같은 것이었을지도 몰랐다. 계속 살펴보던 로베르는 다니엘이 서너 가지 정형 문구를 돌려 쓰며 답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답장들의 오타는 분명한 증거였다. 모두 손으로 직접 입력한 것이었다. 지난 스물네 시간 동안 컴퓨터를 사용한 사람은 복사와 붙여넣기 기능을 모르는 것 같았다.
떠오르는 설명은 하나밖에 없었다. 끔찍하고 기이하며 불가능한 설명이었다. 하지만 차고로 돌아가려고 몸을 일으키는 동안, 그 불가능한 일이 폐허가 된 그의 정신에,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전쟁터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서류 보관 상자 위에 누운 다니엘의 몸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 모습은 피카소에게 잠식당한 피에타 같았다. 그는 얼굴 가까이 몸을 숙인 채 한참 동안 공포를 무릅쓰고 살펴보았다. 검은 액체는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해야 했다… 그는 자신을 기다리는 실험대로 잠깐 다녀와 유리 교반봉을 집어 들고, 다니엘의 피부에 난 검은 선 한가운데 조심스럽게 갖다 댔다. 탄력 있는 접촉감에 가슴 한구석이 무너졌다. 그는 다시는 형제의 몸에 손을 대지 못할 것이었다. 그럴 수 없었다. 이제는 그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어차피 그동안에도 그런 생각을 충분히 해본 적은 없었지만… 자신이 그것을 후회하는지 자문할 시간은 없었고, 그 생각은 사라져 버렸다. 그는 교반봉 윗면에 액체가 고이는 것을 보았다.
액체는 계속 흘러나왔다. 머릿속의 논리 속에서 무언가가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냄새. 냄새가 없었다. 액체에서는 분명 금속과 기름의 냄새가 조금 났고, 맛은 강하게 났다. 하지만 몸에서는 냄새가 나지 않았다. 평소보다 더 나지는 않았다. 시체가 썩는 데 얼마나 걸리더라? 하지만 그 답을 몰라도 자신의 미래나 다름없는 정신의 공간을 하나의 확신 주위로 다시 세울 수 있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천박한 발상이지만… 다니엘 즙이었다. 말의 가장 깊은 의미에서 그랬다. 그리고 그 즙을 삼킨 그는… 다니엘이 된 걸까?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의 기억을 지닌 다니엘이, 아니면 다니엘의 자신감과 능력을 지닌 자신이 된 걸까. 특정한 한 측면에 한정된 일일 수도 있었고, 어떤 의미에서는 실제로 그랬다. 햄스터들이 포만감의 즙을 만들어내듯, 토끼들도 어쩌면 성욕의 즙을 만들어낼 수 있듯, 다니엘은 어떤 의미에서 자신감의 즙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가 다니엘의 메일에 답할 수 있었으니까. 다만 어쩌면 먼저 그 ‘그’가 누구인지를 밝혀야 했다. 다니엘? 로베르? 둘 사이의 무언가?
그리고 지금으로서는 액체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직… ‘다니엘’이 남아 있었다. 그가 어떤 새로운 형태를 띠게 되었든 간에. 그를 죽음에서 되돌릴 희망이었다. 그리고…
알림이 왔다. 이번에는 휴대전화였다. 직장 동료에게서? 동료 두 명에게서? 학부 과정 초기에 같은 실험실에서 일했던 동료 한 명에게서? 대화창들을 넘겨보니 문법은 여전히 엉망이었지만, 답변은 호의적이고 밝았다. 함께 일하자는 제안들, 게다가 자신이… ‘자신’이 먼저 했던 제안들이었고, 상대들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감의 즙이었다. 액체가 된 환상이 그의 머릿속에서 곧바로 가능성으로 바뀌었다. 음침하고 병적이며 육체적인 이 상황에서 잠깐 떨어져 나온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만으로도 머릿속에 새로운 가능성들을 펼쳐놓기에는 충분했다.
그는 이 액체 자신감을 연구할 수 있었다. 그러기에 양은 충분했고, 다니엘의 몸은 여전히 그것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다니엘을 구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었다. 그는 여전히 거기 있었다. 그의 몸이 거기 있었고, 이 액체 안에는 그의 기억과 성격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래도 그는 이 현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연구가 손을 벗어나 이토록 초자연적인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것은 이해의 범위를 넘어섰고, 그러니 이 과정을 되돌리거나 더 정교하게 다듬기 위해, 적어도 그 작동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상당히 꺼림칙한 미지수가 하나 있었다. 기억이 끊긴 동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이 액체를 다시 마시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었다. 장기적으로 자신에게 원치 않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었다. 그는… 그는 혼자서 다니엘의 사업을 운영할 수 없었다. 이제 와서 도망친다고? 이 유사 시체를 떠안은 채로? 아니었다. 결정은 그가 액체를 마신 순간 이미 내려졌다. 그리고 이제 모든 일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줄 유일한 방법은 다니엘의 고급 약국·세탁소·태닝숍을 운영하고, 거기에 따르는 모든 일을 해내는 것이었다. 다니엘은 휴가 중일 수도 있었고 자리를 비운 상태일 수도 있었지만, 순조롭게 굴러가는 사업에는 아무도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그것은 두 사람이 속한 이 세계의 변하지 않는 규칙 가운데 하나였다. 화학 실험실에서도, 세탁소와 태닝숍에서도, 암호화폐에서도 통하는 규칙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굴러가게 하려면 다니엘이 필요했다.
그는 오전 동안 가게 문을 닫고 실험대에서 일하며 개미걸음 같은 진전을 거듭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나아가고 있었으니까. 아직 멀리 있고 전혀 확실하지도 않은 목표에는 집중하지 않으려 애썼다. 오후 두 시쯤 그는 시내로 햄버거를 먹으러 나갔고, 나간 김에 값싼 감시 카메라 두 대를 샀다. 한 대는 접수대에, 한 대는 가게 안쪽에 설치할 것이었다. 차고에도 한 대 살까 망설였지만, 다니엘이 당장 움직일 염려는 없었다. 그는 또 판매 대금을 나누려고 앤더슨 농장으로 돌아갈 참이던 우유 배달부에게서, 남는 유리병을 몇 개 샀다. 맙소사, 이 외진 동네에는 아직도 그런 직업이 있었다. 배달부는 일에 익숙해진 지 오래라 병을 깨뜨리는 일이 없었고, 여분의 병들은 먼지만 쌓이고 있었다. 돌아와서는 세 시간에 걸쳐 병을 씻고, 더 효율적으로 보관할 수 있도록 액체를 옮겨 담고, 카메라와 SD 카드의 내용을 해독할 소프트웨어를 설치했다. 카드들은 스물네 시간 분량까지만 녹화한 뒤 기존 내용을 덮어쓰게 되어 있었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았다.
앞으로는 다니엘의 고급 약국·세탁소·태닝숍을 이렇게 오래 닫아두어서는 안 됐다. 한 번뿐인 비상 수단을 이미 써버렸다. 오늘은 다시 문을 열어봤자 소용이 없었으므로, 그는 고된 화학 작업을 재개했고 밤 아홉 시가 되자 더는 서 있을 수 없었다. 다니엘의 아파트에서 자야 할지 망설여졌다. 잠에서 깬 뒤 불투명하고 아린 자신감의 즙을 부어 시리얼 한 그릇을 만들어 먹을 기력이 있을까?
그는 아파트로 돌아가 잠을 잤고, 일곱 시쯤 그 물질을 한 잔 마셨다.
안녕 로베르 나 뇌 더 필요 우리 나너 쓰면 돼 걱정 ㄴㄴ
나 살라면 너 필요 너도 나 마찬가지
나 장 바써
포스트잇은 당혹스러웠지만, 다니엘이 아직 검은 액체 속 어딘가에 있다는 분명한 증거였다. 액체를 더 많이 마실수록 다니엘이 더 많이 복원되는 걸까? 그의 머릿속에 두 사람이 들어갈 자리는 아마 없을 테지만, 지금은 편두통도 없었고 자신의 인격을 잃어가는 느낌도 없었다. 사실 어떤 증상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추측만 할 수 있었다. 그가 겪는 일은 모든 면에서 전례가 없었다. 아마 전례가 없을 것이었다. 그래도 그 쪽지는 조금… 아니, 꽤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뇌 더 필요’라고?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 뇌를 나눠 써야 한다는 생각을 좋아할 사람은 없었다.
그는 컴퓨터에 붙어 있던 포스트잇을 떼어냈고, 거기에는 제법 큰 접착제 자국이 남았다. 사실 컴퓨터 전체가 조금 끈적거렸다. 자판을 두드리는 일이 불쾌해질 정도였고, 로베르는 키보드를 청소하거나 바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파트로 돌아온 그는 가짜 다니엘이 사 온 스테이크가 프라이팬에서 지글거리며 익는 동안 감시 카메라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것은 없었다. 마침 그는 아무도 없는 구간을 빨리 돌려 보고 있었는데, 아마 지금 냉장고를 채우고 있는 식료품을 사러 나갔을 때인 듯했다. 그보다 앞선 영상에서는 꿈이나 평행 세계 속에서처럼, 기억에 없는 일을 다소 어색한 걸음걸이와 팔다리가 잘 맞지 않는 동작으로 해내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제법 굼떠 보였다. 절뚝거리는 걸음과 팔을 흔드는 모습이 묘하게 인간을 흉내 내려는 원숭이를 떠올리게 하는데, 어떻게 저런 모습으로 성공을 더 잘 끌어당길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그는 스테이크를 접시로 밀어 옮겼다. 옆에는 별로 식욕을 돋우지 않는 샐러드가 있었다. 적어도 스테이크보다는 덜했다. 원래 고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으니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배가 고팠고, 노트북 두 대로 가게 뒷방과 안내 데스크 영상을 동시에 빨리 돌려 보며 접시를 깨끗이 비웠다. 빨리 돌려도 늘 너무 느렸지만, 무엇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뒷방 문 너머 차고의 어둠 속에 아주 일부만 보이는 다니엘의 시신 윤곽에는 영상 속 시간에 꼼짝도 하지 않는 실체를 부여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는 단 한 순간도, 단 1초도 건너뛸 수 없었다. 여전히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시신이 조금씩, 점차 굳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그 변화는 지나치게 생생하던 죽은 자의 표정에도 서서히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그는 영상을 보면서도 다니엘이 일어나리라는 예상을 떨치지 못했다. 이제는 형제를 덮쳐 서서히 변형시키는 비정상적으로 느린 건조가 원망스러웠다. 그것도 그 자체로는 일종의 움직임이었지만, 전혀 바라지 않던 움직임이었다.
그는 이따금 두 화면에서 눈을 돌려 세 번째 화면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동료들과의 대화는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었지만, 자신이…… 자신이 자신감 주스를 마시지 않은 상태에서는 답하기가 망설여졌다. 형제를 닮은 자신의 분신만큼 능숙하지는 못할 테니,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그런데 분신이 보낸 메시지들은 그의 생각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았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무시해도 될 만한 사소한 차이에 불과했다. 분신은 연구실보다는 일종의 독립 제약 회사를 제안하고 있었다. 그와 다니엘, 그러니까 로버트와 다니엘이 다니엘의 고급 약국, 세탁소 & 태닝숍에서 하려던 일의 연장선이었다. 바로잡을 시간은 있을 것이다. 아직 그럴 마음이 들지는 않— 아니, 일단은 자신보다 확신에 찬 이 자신이 아마 뭘 하는지 알고 있으리라 믿어 보기로 했다고 해 두자.
드디어 영상 속 자신이 가게로 돌아왔다. 아마 아파트에 잠깐 들러 장 본 것을 내려놓고 온 모양이었다. 그는 들어오는 길에 안내 데스크 뒤로 상자 몇 개를 내려놓고, 서류 몇 장을 정리한 다음, 몸통을 좌우로 흔들며 뒷방으로 들어가 컴퓨터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컴퓨터를 켜고 여러 메시지에 답하면서 다니엘의 컴퓨터 관련 업무를 처리했다. 지루한 장면을 보던 로버트는 화면을 들여다보는 자신의 모습을 화면으로 보고 있다는 묘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 재귀적인 생각은 잠시 그 자신을 향해 되돌아왔다. 이제 두 번이나 입술에 댄 그 검은 액체의 심연이 자신을 마주 보고 있는 듯했다.
그러자 그에게 응답하기라도 하듯, 영상 속에서 등을 보이고 있던 로버트가 컴퓨터로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의자 양옆으로 팔을 천천히 늘어뜨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더는 움직임이 없었다. 아니, 있기는 했다.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의 흔들림이었다. 로버트는 속이 좋지 않았다. 분신의 거짓된 정지가 끝없이 이어지는 동안, 아파트의 어둠과 크기, 노트북 두 대의 팬 소리가 간신히 흐트러뜨리고 있는 정적을 의식했다. 팬이 멈추면 안 됐다. 그 정적 뒤에는 무언가 숨어 있었고, 그것이 어디선가 다가오는 동안 팬 소리가 그것을 감춰 주고 있었다. 하지만 팬이 멈추면 그 소리를 듣게 될 것이고, 그러면 그것은 더 빠르게 자신에게 달려들 것이다. 그런 비이성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그는 고정된 듯 보이는 영상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일어섰다. 그 안에 있는 또 다른 자신의 얼굴은 가려져 있었고, 그 윤곽은 이 아파트에 있는 자신처럼 화면의 빛에 도드라져 있었다. 그는 뒷걸음질로 천장등 스위치를 찾으러 갔다. 빈 프라이팬 위 환풍 후드의 조명으로는 두려움을 몰아내기에 부족했다. 이제 그는 시야 밖에서 그 두려움이 물리적인 형체를 얻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는 벽에 닿았고, 이어 스위치를 찾아 서둘러 눌렀다. 방 안에 빛이 가득 찼다. 컴퓨터 속 자신의 모습에 여전히 고정되어 있던 눈의 홍채가 조명 아래에서 수축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눈이 빛에 거의 익숙해질 무렵, 화면 속 그의 몸이 키보드 위로 검고 형체 없는 담즙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는 즉시 공포에 사로잡혔다. 더 잘 보려고 화면 앞으로 달려갈까 망설였지만, 편집증에 휩싸여 아파트 구석구석으로 재빨리 시선을 쏘아 댔다. 이상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화면으로 눈을 돌리자, 자신의 몸이 경련하는 모습이 소리 없이 비쳤다. 로버트는 아파트에서 다시 앉았고, 이어 뒷방에서 일어섰다. 한쪽은 다른 한쪽이 수수께끼 같은 일을 다시 시작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가장 놀라운 것은 뒷방의 컴퓨터가…… 아니, 화질 때문에…… 하지만 그는 검은 담즙이 키보드 위로 흘러내리고, 화면에 튀고, 케이블 위로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더는 그 액체가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는 되감을까 망설였지만, 그 장면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메스꺼웠다. 다니엘을 죽인 것, 거의 죽인 것은 전염성이 있는 걸까? 자신도 그처럼 되고 마는 걸까? 자신이 부주의했던 걸까?
아니었다. 배합식에서 이룬 진전은 상당했고,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확신했다. 다니엘이 만든 "자신감 주스"를 조작하고 안정화하는 방법을 이해하기까지 한 걸음만 남아 있었다. 유익한 성질을 다루는 데에도, 어쩌면 다니엘을 되찾는 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무엇을 해야 할지 거의 알고 있었다.
그는 되감지 않았다. 예방 차원에서 키보드를 바꾸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몇 단계만 더 거치면—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면서 그는 온갖 형태와 어조로 그 말을 되뇌고 곱씹었다.
안녕 로버트 미첼 나는 어.
뭐라고? 로버트는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거 이해 못 하는 거 로버트 미첼 혼자 아님.
그는 여전히 아파트에 있었고, 날이 밝아 있었다. 목소리는 머릿속에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그렇게 느껴졌다. 붙잡을 수 없는 생각 하나가 계속 이어지는 듯하기도 했다. 그는 그 목소리 역시 자신과 소통하기 전에 자신의 뇌를 이용해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이해했다.
— 다니엘?
잘 모르겠음 머리 아픔 머리 아픈 약 만들어야 함 너 좋은 제조법 있음 근데 이런 식이면 별로 효과 없을지도 다니엘은 고급 약국 세탁소 태닝숍에 있고 다니엘 여기 있는데 여기 다니엘 아님 고급 약국, 세탁소 & 태닝숍 다니엘도 아님 이거 전부 아주 이상함 근데 전부 중요하지 않음 너무 복잡함 응 응
— 넌 다니엘이 아니야?
너무 복잡함 너무 복잡함 로버트 미첼 자심감 주스 원했고 다니엘로 자심감 주스 만들었고 로버트 미첼 뇌에 자심감 주스 있다고 다니엘 다시 되는 거 아님
그건…… 말이 되는 소리였나? 기묘하기는 해도 어떤 면에서는 그랬다. 하지만 그의 뇌를 사용하는 이 침입자가 자기 말이 이치에 맞는다는 생각을 그 안에 심어 놓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 넌 어떻게 여기 들어왔어?
이해 못 했음
— 좋아, 어, 네 이름은 뭐야? 전에는 안 들렸는데 왜 지금은 네 목소리가 들리지?
다니엘 아님 로버트 미첼 아님 그러니까 다도 응 응 다도 아주 좋음
— ……다도?
응 맞음 다도는 다도고 다도 해커 스테이크 썼음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너무 복잡해지고 있었다. 로버트는 뭔가 먹으려고 부엌으로 향하면서 그…… 스테이크를 생각했다. 어제 산 다진 고기 스테이크?
응 맞음 해커 기술 로버트 미첼 아주 예리한 아버지임 다도 로버트 미첼 네 뇌랑 얘기하려고 해커 스테이크 샀음 이제 나눠 쓸 필요 없음
비현실적인 일이었다. 계속 커피를 마시는 동안, 지독한 커피 맛처럼 생각도 머릿속에서 길을 잃었다. 어떤 식으로든 그…… 스테이크가 뇌의 정신화학에 영향을 미친 걸까? 붉은 고기가 현재 상태에 어떤 영향을 미친 걸까?
로버트 미첼 너무 머리 싸맴 잘 들으셈 다도 공정한 거래 하고 싶음 공평한 거래 말하고는 상관없음 진짜 사어브가 하는 일임 다도 진짜 사어브가 되려면 로버트 미첼 도움 필요하고 로버트 기적의 약 만들고 다니엘 도우려면 다도 필요함
— 뭐가…… 된다고?
진짜 자본주의 사어브가 응 좋은 고객한테 제품 팔고 약국 세탁소 태닝숍에서 좋은 행사 함
그는 다니엘이었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다니엘의…… 특이한 일부분. 불완전했지만 목표는 같았고, 말하는 방식도 거의 같았다.
다니엘 할인 안 했음 다도 할인함 다니엘하고 아무 상관없음
— 좋아, 다시 해 보자. 뭘…… 내가 뭘 해야 하지?
로버트 미첼 아주 놀라움 자심감 주스 만들고 다도한테 뭘 할지 물음 근데 문제없음 다도 너 위해 여기 있음 다도 미더 다도 너 예리한 아버지 로버트 미첼에서 예리한 할아버지로 만들어 주고 싶음 응 응
— 내가 협력자들과 연구실을 꾸리도록 그 메시지들을 전부 보낸 게 너야?
네 네 아주 통찰한 부모가 되어 가는 로버트 미첼, 다도 미안해 다도는 실험실이 뭔지 잘 몰라서 다도는 전통적인 기업가적 채용 했어, 하지만 이제 로버트 미첼도 보답으로 다도 도와줘야 해 다도는 로버트 미첼 필요해
—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는데, 뭐든 자신 있는 건 너지 내가 아니잖아.
로버트 미첼은 다도 몸이고 눈이고 귀고 입이야, 다도는 로버트 미첼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고 로버트 미첼은 다도 없으면 법의 심판 받을 수도 있어, 다도 도와줘야 해
다니엘은 다시 일어서고 싶어 했다. 이제 그는 그것만큼은 확신했다. 가능성이, 희망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 그럼 이제는 더 이상… 내 몸을 공동 양육할 필요는 없는 거야?
더는 필요 없어 하지만 로버트 미첼은 다도한테 통제권 넘길 수 있어, 걱정 마 아주 안전해 다도는 로버트 미첼 신뢰해
— 좋아, 그럼 세탁소로 돌아가야겠네.
그래도 그는 아직 조금 얼떨떨했고, 행동하기 전에 자신이 할 일을 소리 내어 말할 필요가 있었다. 어쩌면 무의식중에, 통제할 수 없는 목소리가 머릿속에 있으면 자신의 의도와 주의력이 흐트러지리라는 본능적인 느낌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이렇게 말로 옮기고 나니 너무나 당연한 소리 같았지만.
그래, 다도는 좋은 약학적 아이디어 있고 로버트 미첼 기술 필요해, 다도는 로버트 미첼을 기업가 동업자라고 부를 수 있어서 자랑스러워
로버트는 긴장한 기색으로 작게 웃었다. 머릿속에 있는 죽은 형제의 모조품과 ‘동업자’라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 발상은 사고 실험이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고약한 장난이자 최악의 악몽으로 들렸을 것이다. 최근의 사건들은 너무나 고되고 비현실적인 방식으로 연달아 벌어졌고, 이제 그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쨌든, 따지고 보면 끔찍한 불편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여전히 자신감 주스였다. 그의 꿈이 이루어지고, 인생의 계획들이 실현되고 있었다. 편법을 썼다고는 해도, 그것도 어쩌다 보니 온갖 달갑지 않은 부작용을 떠안으며 쓰게 된 편법이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의 이상이 그 자신을 뛰어넘었고, 그의 경력도 마침내 궤도에 올랐다. 그 대가로 자신의 개별성을 치러야 한다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엿 같은 인생을 온전히 통제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다도는 로버트 미첼이 동업자라서 아주 기뻐, 다도는 로버트 미첼이랑 자본주의 많이 배울 수 있겠네 그래
다음 주, 로버트는 다도가 대개 조용히 지내다가 필요할 때만 나서며, 마지막으로 ‘자신감 주스’를 마신 뒤 시간이 좀 지나면 더욱 잠잠해지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간 안도했다. 그 대신 로버트는 그 주스에 점점 더 갈증을 느꼈다.
솔직히 말하면 그는 다도가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는 일이 많았다. 다도는… 제 몸과 다시 합쳐지는 일, 그러니까 다시 다니엘이 되는 일에는 별로 집중하지 않는 것 같았다. 다도가 이메일에 답하고 가게 뒤편의 전자 창문으로 인터넷 세상을 알아가는 동안, 로버트는 해결책을 생각할 여유가 있었다. 다니엘의 몸에서는 자신감 주스가 끊임없이 진물처럼 배어 나왔고, 보관할 공간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으며, 그 양은 비정상적이었다. 사실 이 모든 것이 극도로 비정상적이었다. 실험을 하다가 다도에게 맡겨 두면, 다도는 대개… 정석에서 벗어난 기묘한 방법을 썼고, 그 결과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다도가 그에게 배우듯 그도 다도에게 배웠다. 그렇게 배우는 것들이 화학의 모든 상식에 어긋나기는 했지만.
얼마 전, 그가 이런 새로운 비정상적 지식으로 다니엘의 부활을 얼마나 진전시킬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따져 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다도는 처음으로 혼자 주문에 응했다. 다도는 인터넷의 어두운 구석들을 돌아다닌 뒤 이틀에 걸쳐 여러 메시지 서비스의 경로를 바꿔 놓았고, 자신에게 온 것이 아닌 개인 메시지들을 받고 있었다. 로버트는 걱정했지만, 어쩌면 그의 형제보다도 더 심할 다도의 터무니없는 오만함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게 되었다. 다도는 자기를 믿으라고 했다 맞아 다도 신뢰해 그리고 그렇게 그들은 어떻게든 해 나갔다.
하지만 어쨌든 다도는 휴대전화로 혼자 주문에 응했고, 어마어마한 양의 바나나 씨앗과 작은 증류소에나 어울릴 법한 장비를 샀다. 다도의 세련된 집 세탁 및 태닝의 확장 공간을 마련하려고 옆 가게도 사들였다는 점을 덧붙여야겠다. 조리 도구와 주방용 그릇을 전문으로 팔던 낡은 가게였는데, 이제는 매출이 나지 않는 곳이었다. 그들은 아직 이름을 확정하지 못했고 간판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목표가 다니엘을 되찾는 것이니 더더욱 그랬다. 로버트는 다도가 장기 계획을 포기하도록 설득해야 하기도 했다. 주차장에 늘어선 상가 전체를 가게 하나씩 사들이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랬다가는 머지않아 마을에서 눈에 띄지 않게 지내기가 어려워졌을 것이다.
그렇게 다도는 증류소를 차렸고, 로버트로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방사화학에서나 보던 장비도 구입했다. 그들은 바나나 씨앗으로 알약을 만들었고, 아마존 프라임으로 고객에게 그 알약을 보냈다. 로버트는 딱히 질문하지 않았다. 이제는 물을 것도 없었다. 아마존 프라임은 배송비가 없었다.
왜 네 머리 못 쓰게 해 로버트 미첼 다도 도와주고 싶은데 로버트 미첼 없으면 다도 제품 안 좋아 아니 아니 로버트 미첼이 다도 약 만드는 거 안 도와주면 약 못 팔아
— … 뭐라고?
다도는 고객들 만족하게 제일 좋은 약 원하고 전문까 동업자 통찰 아빠는 로버트 미첼이야, 하지만 다도 불만 있는 고객 메시지 많이 받았고 다시 연락 안 하는 고객도 있어, 고객 유지에 안 좋아
로버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제 비겁함에 정신이 흐려진 채 자동 조종으로 넘어가 버렸지만, 그래도 어떻게 보면 여전히 전문가는 그였다. 다도가 끌어다 쓰는 놀라운 지식은 그의 것이기도 했다.
— 네가 나보다 더 똑똑한 것 같아서 그래, 다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도와줄 마음은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 줘야지.
…
— 다도?
다도는 로버트 미첼 이해해 문제는 다도가 로버트 미첼 이해 못 한다는 거지만, 로버트 미첼 걱정 말고 다도 신뢰해
아무런 조짐도 없이 로버트 미첼은 뇌를 집어삼키는 허기를 느꼈고, 몸이 휘청거리는 것 같았다 다도도 기분 안 좋아, 불쾌한 시간 지나가야 해
— 이게 무슨…?
자신감 주스 더 마셔야 해 로버트 미첼
로버트는 저항하려 했다. 영 내키지 않았다. 그는 원하지 않았다 아니 아니 로버트 미첼 이해 못 해 다도 신뢰해야 해, 불쾌하겠지만 다도가 로버트 미첼 통찰 아빠 되게 하려는 거야, 다도는 로버트 미첼 해치고 싶지 않아 다도는 로버트 미첼 필요해
— 어떻게 널 믿을 수 있겠어?
… 다도 이해 못 해
당연히 다도는 이해하지 못했고, 로버트는 자신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다도는 자신감의 화신이자 자신감 주스가 빚어낸 결과였고, 그 자신은 도저히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었으며 여전히 그럴 수 없는 마음가짐과 감정 상태였다. 그렇다면 다도는 자신감이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신뢰한다는 뜻일까?
그는 소형 냉장고로 가서 검은 액체를 한 병씩 꺼냈다. 그는 그것들을 마시기 시작했고, 멈출 수 없었으며, 그러자 더없이 기묘한 현상이 일어났다. 마실수록 자신감이 생겼고, 자신감 주스는 본래 그래야 하는 대로 작용했으며, 그는 다도를 더 잘 이해했고, 다도도 그를 더 잘 이해했으며, 이미 시작된 일을 계속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의도를 알 수 없는 선로 전환 기술자 다도가 그의 꿈과 상당히 비슷한 궤도에 올려놓은 인생을 다시 제 손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마시고 또 마셨고, 그의 생각과 미래에 대한 소망을 실은 열차는 점점 속도를 높이는 듯했다. 너무 많이 마셔 배가 팽팽하게 부풀고 다시 속이 나빠질 때까지. 모든 것이 치밀어 올랐지만, 액체가 뇌를 거쳐 간 것만 같았다. 수영장의 염소 섞인 물을 코로 들이마시거나 고추가 든 커다란 얼음 덩어리를 먹은 듯한 끔찍한 느낌이었다. 두개골 전체가 얼어붙는 냉기 속에서 뒤틀렸고, 그 냉기는 척수를 따라 오르내리며, 숨 막히게 꼬인 미로 같은 소화기관까지 이르렀다. 소화기관이 저절로 수축하기 시작했다.
다만 그는 화장실로 달려가는 대신 컴퓨터로 돌아가야만 할 것 같았다.
그는 컴퓨터를 액체로 흠뻑 적셨다. 키보드와 어두워지는 화면에 창자까지 쏟아 낼 듯 토했고, 이제 가게 뒤편의 지친 전구와 소형 냉장고에서 새어 나오는 빛만이 방을 밝혔다. 정말 역겨웠고, 머리가 박살 나는 것 같았고, 하— 아니, 자신감이 차츰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토해야 했다. 멈출 수 없었다. 탁자 양옆을 짚은 두 손에 미지근한 담즙 웅덩이가 닿기 시작했다. 웅덩이는 퍼져 나가 연필꽂이와 마우스 패드를 지나더니 책상 전체를 어둠의 호수에 잠기게 했다. 화면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감 주스가 남긴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주스는 덩어리들과 함께 천천히 흘러내렸지만, 어차피 로버트에게는 그 덩어리들이 무엇인지 생각할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그는 콜록거리며 몸을 추슬렀다. 몸이 진정되고 메스꺼움이 가라앉자, 세상에 어울리지 못한다는 불안한 공허함만 남았다. 아주 잠깐이나마 그는 불안이 없는 상태를,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절대적인 무관심을, 제 안의 우스꽝스러운 악귀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악귀들은 전조등을 환하게 켠 차량이 지나갈 때 잠시 작아지고 짓눌렸다가 되살아나는 그림자처럼 기세를 되찾고 돌아왔다. 어서, 빨리, 그 감각을 되찾아야 했다.
그는 다시 병들을 향해 달려들어 마실 수 있는 만큼 마셨다. 조심하지 않고 잘못 삼킨 탓에 명치가 아팠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감각이 돌아오고 있었다. 그래, 더 필요했다. 그러다 다시, 거꾸로 치미는 메스꺼움이 찾아왔다. 술에 취하는 경험에도 그에 못지않게 해로운 정반대의 경험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꿀꺽거리는 신음과 함께 또다시 컴퓨터 장비에 토사물을 끼얹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장비는 꺼지지도, 오작동하지도 않았다. 자신감 주스가 케이블을 타고 바닥까지 흘러내리기 시작했는데도 그랬다.
그는 같은 짓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배와 머릿속의 상처가 늘어나고, 식도 전체가 타들어 가며 제 기능을 잃고, 입이 바싹 마르고, 양 볼 안쪽이 갈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거듭 채웠다 비우기를 반복한 탓에 머리가 죽을 듯 아팠고, 붙잡아 둘 수 없는 그 자신감에 온몸이 소진되고 있었다. 그는 이를 악문 채 여전히, 끝없이 그 액체를 마셨다. 액체는 말라붙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침샘과, 스스로를 소화하는 듯한 혀와, 까슬까슬해지는 입천장을 긁으며 넘어갔다. 그는 검게 물든 이 사이로 계속 토했고, 소형 냉장고로 돌아갔다가—비어 있었다—창고 선반으로 향했다. 미끄러지고, 나자빠지고, 다시 일어났고, 식탁에서 넘쳐흐른 것으로 뒤덮여 가는 바닥에 흔적을 끌고 다녔다. 그런데도 몇 차례, 메스꺼움과 고통, 전능한 도취감이 번갈아 몰려올 때마다 뒤집히는 눈을 고통스러운 수축으로 붙들고 있던 미친 듯 떨리는 눈꺼풀 사이로, 키보드가 액체를 흡수하는 듯 보였다. 액체가 냉각팬의 격자 안에 머무르고, 케이블을 휘감고, 포트와 소켓 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반시간이 지나자 액체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로베르는 다시 마시려고 식탁 위의 액체를 긁고, 밀고, 그러모으려 했다. 액체는 손가락 사이로 더욱 잘 빠져나갔다. 두 손을 모아 달아나는 샘물을 받아 보려 했지만 아무것도 건져 낼 수 없었다. 필사적인 시도 끝에 식탁에는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았고, 그를 만족시킬 만한 것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바닥에 몸을 던져 웅덩이에 무릎과 손을 적시고 더럽힌 채, 콘크리트 바탕 위에 깔린 얇고 청소도 제대로 되지 않은 리놀륨에 이가 딱딱 부딪힐 만큼 바닥을 핥기로 했다. 먼지와 털과 찌꺼기가 혀 위에서 검은 액체와 뒤섞였다. 그는 이 사이에 때를 끼워 가며 삼킬 수 있는 만큼 삼키다가, 지독한 맛이 나는 액체를 다시 뱉었다. 처음 마셨을 때보다 훨씬 더 지독한 맛이었다. 성대와 식도에 달라붙은 머리카락 두 올을 떼어 내 보겠다는 헛된 바람으로 기침도 했다. 그래도 다시 시도했지만 이제는 효과가 없었다. 검은 액체는 처음 들어갈 때의 자신감 주스와는 달랐다. 역겨웠고, 유곽유두를 지나기도 전에 구역질이 났다.
아직 한 가지 방법이 남아 있었다.
아직 다니엘이 남아 있었다.
로베르는 흠뻑 젖어 역한 냄새를 풍기는 바지를 입고 손과 무릎으로 기어 다니엘의 시체까지 갔다. 시체는 일주일 내내 썩지 않은 채 계속 변해 왔다. 피부는 탄력을 잃었고, 장기와 근육은 뻣뻣해졌으며, 무게도 어느 정도 줄었다. 플라스틱 마네킹처럼 굳어 있던 얼굴은 이제 웃음에 사로잡힌 미라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그 웃음이 입가를 끌어 올려 입술까지 뒤집어 놓았고, 도와 달라고 소리치는 광대뼈 위로 흐릿하고 움푹 꺼진 눈이 자리했다—말이 되지 않았다. 그저 눈에서 여전히 흘러나오는 자신감 주스, 다니엘, 다도가 그런 인상을 주었을 따름이다. 눈 말고 다른 구멍에서도 흘러나왔다.
그는 나쁜 액체와 좋은 액체가 섞이지 않도록 셔츠에 미친 듯이 손을 닦고는 형제의 시체 가슴을 짚었다. 시체가 뻣뻣하게 한 번 들썩였다.
— 다니엘… 제발…
.
로베르는 한심한 박자로 시체에 심장 마사지를 하기 시작했다. 시체는 여전히 그저 시체다운 반응만 보였지만, 로베르는 늘어진 피부 밑에서 둔한 움직임을—우두둑거림을—느꼈다.
— 날 버리지 마, 다니엘. 네가 필요해.
.
— 넌 할 수 있어. 부탁이야, 다니엘.
.
그리고 의식을 치르듯, 기도문을 되뇌듯 오랫동안 거듭 눌러 대자, 눈물샘에서 자신감 주스가 조금 더 뿜어져 나왔다. 시체의 미소 속 이 사이에도 액체가 조금 더 고였다.
— 그래! 그래! 다니엘, 바로 그거야!
.
— 쓸모 있는 짓 좀 해 봐. 지금이야.
..
로베르가 속도를 높이자 우두둑 소리가 났다. 주스가 흘렀다. 더 많은 양이 흘렀고, 로베르는 하던 일을 내팽개친 채 다니엘의 몸통 위로 쓰러져 기어 올라갔다. 미친 듯이 셔츠를 움켜쥐어 솔기를 몇 군데 터뜨리며, 일그러진 얼굴의 눈가에 입을 대고 마셨다. 액체는 계속 흘러나왔고, 로베르는 빨아들이고 핥기 시작했다. 그러다 안구에 닿아, 해면 같은 것이 어긋나는 소리를 내며 눈알이 조금 위로 밀려 올라가도 개의치 않았다.
………………….
그는 한 방울도 놓치지 않으려고 거의 물어뜯다시피 피부를 핥고 살을 긁어 댔다. 다니엘의 입에 입을 대고 마시며, 신성하고 검은 음료로 흥건한 이와 잇몸을 핥았다. 거기서도 액체가 조금이라도 묻어 있는 곳을 찾아 제 이로 잇몸을 긁는 것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
그는 움직이지 않는 가슴을 두들겼고, 얼굴에서는 더 많은 액체가 나왔다. 눈과 콧구멍, 입과 귀 언저리를 핥고, 긁고, 빨아 대는 동안 자신감이 다시 그를 채웠다.
— 아직 더 있잖아, 다니엘. 아직 더 있는 거 알아.
………………………………………………………………………………………………………………………………………………………………………………………………………………………………………………….
— 어차피 너한텐 이제 아무 쓸모도 없잖아, 이 모자란 등신아.
……………………………………………………………………………………………………………………………………………………………………………………………………………………………………………..
로베르는 자세를 고쳐 잡다가 실수로 다니엘의 목을 눌렀다. 상상도 못 할 양의 액체가 구멍들에서 뿜어져 나왔다. 이치를 깨달은 로베르는 목을 움켜잡고 온 힘을 다해 조였다. 그러자 악마 같으면서도 고문당하는 듯한 다니엘의 일그러진 웃음에서 기대도 못 했던 양의 자신감 주스가 눈물처럼 쏟아졌다. 쓸모없어진 폐에서 빠져나온 탁한 공기가 액체에 거품을 일으켰고, 다니엘은 그 액체 속에서 숨이 막히는 듯했으며, 코에서는 검은 피가 흘렀다. 로베르는 핥고, 삼키고, 빨아들이며 점점 더 세게 목을 졸랐다. 그의 손가락 마디가, 연달아 삼키느라 요동치는 자신의 울대뼈와 부딪혔다.
…………………………………………………
그리고 자신감은 흘렀다. 그것은 절대적이고, 완전하며, 모든 것 위에 군림했다. 스스로의 메스꺼움을 예고하는, 절대적이고 도덕과 무관한 억제였다.
….
액체는 서서히 나오지 않게 되었다. 로베르는 다급해졌고, 그의 시냅스들은 이제 자신이 지닌 영원한 자신감을 간직하려는 바람으로 순간들의 흐름을 필사적으로 늦추려 했다. 그러나 다시금 그의 온몸이 토하라고 명령했다.
.
그는 형제를 때렸지만 샘은 말라 버렸다. 결국 옆으로 쓰러져 기어야 했다. 탈진한 그는 자신이 죄를 짓고, 이제 프로메테우스처럼 얻어 낸 발견을 기계에 돌려주어야 하는 하나의 신성한 소화관이 된 듯했다. 뒤집힌 한쪽 눈은 문 너머 화면의 푸르스름한 빛을 곁눈질했고, 다른 쪽 눈은 고통과, 방금 벌어진 일을 아직 너무도 아득하게만 깨닫는 탓에 접혀 버린 눈꺼풀 아래 가려져 있었다.
— 미– 미안해, 다– 다– 다–
그는 토하며 쓰러졌고, 토사물은 문틀까지 닿지 못했다.
로베르는 어느 때보다 비참한 상태로 의식을 되찾았다. 몸을 일으키자 얼굴 왼쪽의 피부가 당겨지는 것이 느껴졌다—바닥에서 더 굳고 끈적하고 걸쭉해진 자신감 주스가 잡아당기고 있었다. 그는 거기서 몸을 떼어 내고, 검은 때에 일부 가려진 문을 지나려고 다시 기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을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피부가 갈라지는 것을 보았고, 뼈가 부러지는 것을 느꼈다. 그뿐이었으면 좋으련만. 그 모든 짓이 헛수고였고, 이제 그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사람들이 줄지어 양동이를 전달하듯, 구원의 담즙을 쏟아부었던 컴퓨터로 가는 것 말고는. 흘러내린 자국이 딱딱하게 엉겨 붙고 그 위로 갈라진 골이 나 있었지만 화면은 읽을 수 있었다. SMS 애플리케이션이 열려 있었다—로베르는 그런 게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그 자신의 번호가 열린 채였다. 그가 식탁에 오른손을 얹자 주머니가 진동했고, 이제 화면에 표시되는 메시지가 메아리처럼 머릿속에서 들렸다.
다도 로베르 미첼에게 고백할 것 있다
로베르는 녹초가 된 채 안락의자에 앉았다. 의자는 이제 아주 묽은 캐러멜이나 제법 끈끈한 엔진오일에 담갔던 스펀지처럼 불쾌하고 축축한 감촉이었다. 그래도 그 물질이 옷에 스며들어 피부를 긁어 대는 와중에도, 그는 바닥보다 여기가 낫다고 느꼈다. 휴대전화로 메시지를 보내 답해야 할지, 컴퓨터 키보드로 답해야 할지, 아니면… 알 수 없었다. 그는 가장 비논리적인 방법을 골랐다.
— 씨발, 무슨 짓을 한 거야?
답변은 컴퓨터에 표시되는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서 울렸고, 휴대전화의 진동이 거기에 마침표를 찍었다.
다도 로베르 미첼에게 질문 돌려줘야 한다, 다도 로베르 미첼 자심감 주스 그렇게 많이 필요한 줄 몰랐다
— 네가 그걸 마시고 싶게 만들었잖…
로베르에게는 말을 끝맺을 힘이 없었다.
응 근데 그렇게 많은 주스 필요 없어, 다도는 여섯 병만큼만 목마르게 했어, 로버트 그렇게 많은 병도 그렇게 많은 자신깜도 필요 없어, 로버트 안 될 줄 알면서 달렸어, 다도 로버트 때문에 조금 슬퍼
— 그게 아니… 난 그런…
다도 이제 로버트가 다니엘 되찾는 거 도울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근데 다도한테 더 중요한 거 있어 로버트 미첼 너의 통 찰력 평가 동업자 업무 징계위원회 얘기하자
— 좆… 좆까.
화면은 침묵을 지켰고 전화기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다도가 다시 말을 걸었다.
왜 다도한테 사어업가를 사업가라고 한다고 안 알려줬어
— 뭐라고?
왜 다도한테 사어업가를 사업가라고 한다고 안 알려줬어
그 질문은… 그가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던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봐 로버트 미첼 바로 그게 문제야 서로 믿어야 했어 너한테 다도 머리가 전부 있는 게 아니고 다도한테 로버트 미첼 머리가 전부 있는 게 아니니까, 근데 너 좋은 동업자 자본주의 사업가답게 다도 말 고쳐주지 않았어 그래서 다도 생각이 많아 응 응
— 그게 뭐… 중요하다고, 씨발 그게 뭔 상관인데!
그는 마지막 말을 미친 듯한 짐승의 기세로 신음하며 고함쳤다.
로버트 미첼 못 믿겠어
— 그럼 다도는 믿을 만하고?
또다시 대답이 지체되었다.
너 다도한테 거짓말했어 너 말했어 "다도 안 똑똑해 아니 나 로버트 미첼 다도보다 똑똑해" 그건 사실이야 근데 다도가 존재하는 건 로버트 미첼이 자신감을 원했기 때문인데 정작 다도를 안 믿어, 맞지?
사실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다도는 근육이고 그는 두뇌였다 로버트 미첼 다 헷갈려, 다도와 로버트 미첼 둘 다 두뇌고 자신감 주스가 근육이야 근데 그건 안 중요해
— 씨발 그냥 좀 닥치면 안 돼?
안 돼, 로버트 미첼 다도 안 똑똑하다고 생각해, 로버트 미첼 다도 무시해 다니엘도 똑같이 무시해, 근데 다도 다니엘처럼 죽을 생각 없어 아니 아니
— 넌 똑똑하지 않아, 나 없으면 넌…
다도 로버트 미첼이 다도한테 인터넷 준 거 고마워, 다도 dictionary.com에서 로버트 미첼 거짓말 확인할 수 있었어
자신깜은 ㄱ 하나로 쓰는 거래 근데 그것도 안 중요해
중요한 건 다도 말 알아듣는 거고 다도 더 조은 서비스 위해 고객한테 빨리 대답해
— 날 버리면 안 돼… 자신감을 돌려줘, 다… 다니엘을 돌려줘! 널 만든 건 나야, 넌 내 거야, 넌…
로버트 미첼 안심해 다도 너 안 버려, 로버트 미첼 여전히 동업자
하지만
너 자신감 주스 만들었는데 자신감 없어 주스 있어도 없어 다도 너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 난… 난 널 믿어, 다도.
다도 의심스러워 다도 너 생각하는 거 못 들었어 다도 로버트 미첼 너 진 시민지 궁금해.
혹시 그가…
다도 생각엔 로버트 미첼 인종차별주의자고 자기가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해 근데 괜찮아, 인종차별주의자 자본가 많아
근데 다도 이렇게 계속 동업하기 못 해 노사관계와 다양성 정책에 안 좋아
로버트는 더 할 말이 없었다. 공허한 눈물이 차올랐다가 밖으로 흐르지 못하고 자신의 텅 빈 껍데기 안으로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다도 안 버린다고 했어 다도 약속 지켜
그러더니 화면에 천천히 지시 사항이 나타났고, 동시에 로버트 미첼의 단기 기억에도 완벽하게 선명히 새겨졌다. 그는 확신할 수 없었다… 명령인가? 지침인가? 시험인가? 아직 저항할 수 있었다… 아니,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그에게는 더 이상 자신감도 정체성도 없었다. 그는 이제… 아직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자신이 되고자 했던 이상적인 모습을 놓쳐버렸기에 이제 아무도 아니었다. 기껏해야 다도의 동업자일지도 몰랐다. 동업자의 지시를 따라야 했다. 마지막 지시가 나타났다.
너 다도 안 믿어 다도 믿어야 해
그 뒤로는 흐릿하고 길고, 아주 길었다. 로버트는 차를 타고 공터까지 운전해 가서 손가락이 찢어지도록 맨손으로 땅을 파 유일한 햄스터의 썩어가는 사체를 꺼내 봉지에 넣은 것을 기억했다. 그런 다음 아파트에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샤워를 하고 시내에서 서둘러 몇 가지 물건을 샀다. 그는 끈적한 어둠으로 더럽혀진 세탁소에 그것들을 전부 가져와 실험대와 화학 증류 장치 사이를 오가며 작업에 들어갔다. 작업을 할수록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 것 같았지만, 절반만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변칙적인 공정은 답만큼이나 많은 의문을 안겨주었다. 알약이 완성되자 그는 컴퓨터의 다도에게 돌아갔다. 다도는 계속 침묵하고 있었다. 그는 끈적한 진창에 발을 담근 채 화면을 마주 보고 섰다.
다도 자본주의가 다도보다 크다는 거 이해했어, 근데 다도 고객 만족시키는 좋은 자본주의 사업가 되고 싶어
사연이 길어 나중에 얘기할게
근데 다도 큰 딜레마
로버트는 손에 알약을 들고 우두커니 서 있는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그는 알약을 바라보았다. 다도의 말을 듣는 데 화면을 볼 필요는 없었다.
다도 더 조은 고객 서비스 원해 근데 고객 자본주의한테 착취당해, 그래서 다도 결정 내려, 짠, 다도 더 조은 제품 줘서 모든 고객한테 더 조은 고객 서비스 줘야 해
다도 기뻐 다도 기술과 노하우 쓰는 사업가 별로 없어, 그리고 다도 로버트 미첼 있어서 운 좋아
근데 자본주의 여전히 다도보다 커
로버트가 먼저 나서야 했지만, 이제 그는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두려웠다. 로버트에게는 두 손으로 끌어모을 용기가 없었지만, 그래도 손은 힘겹게 입으로 올라갔다. 그는 기계적으로 꿀꺽 삼켰고, 가슴 전체가 떨렸다.
다도 4갈래 길로 안 돌아가고 1갈래 길로 가, 다도 자본주의보다는 조금 작아져야 하지만 자본주의 사업가들보다는 커야 해
문제는 큰 사업가들 기업이랑 직원이랑 큰 건물 잔뜩 있어서 아주 아주 복잡해
다도 세탁소 약국 태닝숍 있어
로버트는 온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굵은 땀방울이 맺히더니 아예 증기를 내뿜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장기들이 하나씩 수축하는 것이 느껴졌다. 몸 안에서 빨아들이는 힘이 생겨 피부가 움푹 들어갔다. 통증은 둔하고 이상했으며, 그를 엄습하는 것은 오히려 공포와 불편함이었다.
근데 고마워 네 덕분에 로버트 미첼 다도 인터넷 직접 접속해, 다도 자본주의의 중요한 일부 되는 데 아주 유용해, 곧 블랙록 제프페소스랑 머스크 씨보다 중요해
근데 다도 여전히 조수랑 로버트 미첼 두뇌의 전문 지식 필요해
그다음은 뼈 차례였다. 뼈들이 뚝뚝 소리를 내며 뒤틀리고 줄어드는 동시에 피부가 당기기 시작했다. 마치 세탁 중에 빠른 속도로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그 경험은 묘사할 수 없었다. 그는, 그 누구도 이 증기 구름 속에서 스스로 재편되는 몸의 반응을 묘사할 수 없었다. 로버트 미첼은 책상 위로 거세게 무너졌다.
다도 조심해 로버트 미첼
아
너 시프트 키 망가뜨렸어
두개골이 줄어들고 있었고, 뇌와 그 안에 담긴 모든 것이 변형되고 가벼워지며 다른 무언가로, 무로, 혹은 증기로 바뀌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죽은 정체성 전체가 무너져내려, 그가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로 생물학적으로 재구성되고 있었다. 얼굴은 그 변화를 따라가지 않는 듯했다. 코와 턱 전체가 이제 방추형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다도가 말했듯이
로버트 미첼 여전히 아주 유용해 다도와 로버트 미첼 자본주의와 주스의 성스러운 인연으로 연결돼 있으니까, 살 때나 죽을 때나 응 응
바닥의 형체는 계속 줄어들었고, 이어 털이 돋아났다. 그것은 신음했다. 처음부터 변해버린 성대 사이로 공기가 쌕쌕거리며 빠져나왔고, 그 성대 탓에 비명도 지를 수 없고 아무것도 표현할 수 없었다.
근데 말이야, 인간 로버트 미첼 다도 안 믿어, 절대로
그래서 다도 로버트 미첼 도와줄 거야, 다도 믿도록
증기 구름 속에서, 끈적하게 엉겨붙고 검게 물든 옷더미를 헤치며 기니피그 한 마리가 나타났다.
햄스ㅌ
햄스ㅌ 동업자 로버트 미첼
다도 좋은 자본가야
햄스ㅌ 차 별적이고 못돼먹지 않아, 이제 위계질서나 인종차별 걱정 없어
그리고 무엇보다 햄스ㅌ 자신을 믿어, 햄스ㅌ 그냥 햄스ㅌ
너와 나 자본주의의 위대하고 경이로운 모험 로버트 미첼
너 다도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