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구 아래
모든 모순은 총으로 모인다
Intercedent
나탈리아 피조프스카(Natalia Pyzowska), 17세. 1943년 12월 11일. 스탈린그라드, 라이고로드 방어선 부근. 폭격으로 무너진 트랙터 공장의 검게 그을린 처마 아래 무릎을 꿇고 있다. 머리 위에는 녹슨 쇠사슬의 숲 사이로 미완성 엔진 십여 대가 매달려 있고, 찬 바람이 부러진 서까래 사이로 불어와 엔진들을 달그락거리게 한다.
그녀의 손에는 총이 한 자루 있다. 삼선식 M1891/30 소총. 모신1의 소총. 모신카.
이것은 그녀의 총이다. 이런 총은 많지만, 이 한 자루는 그녀의 것이다.
그녀의 시야 한가운데에는 볼이 야윈 금발 소년 하나가 회색 외투 속에 웅크린 채 오들오들 떨고 있다. 소년도 그녀만큼이나 바싹 말랐고, 손마디에는 상처가 가득하며, 두 눈은 축축하게 충혈되어 있다. 그 소년은——정말이지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하다——쓰러진 기둥 뒤에 쪼그려 앉아 흠뻑 젖은 털양말 속으로 손을 넣어 발목을 긁는다. 손마디에는 짙은 갈색 피딱지가 앉아 있다. 갑자기 격렬한 기침이 터지자 소년은 입을 가리고, 정면에서 날아오는 눈송이를 피하려고 몸을 웅크려 얼굴을 가린다.
표적을 겨누며 나탈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섬광. 비명.
총의 이념은 이곳에 존재한다.
요한 크루거(Johan Kruger), 33세. 1977년 5월 29일2. 모잠비크, 마발라네, 세차게 흐르는 림포포강 기슭. 무릎 꿇은 남자 열여섯 명 앞에 꼿꼿이 서 있다. 그의 눈이 빠르게 움직이며 미세한 이분법적 차이들을 구별하고, 피부와 육체 표면의 미묘한 움직임을 포착한다. 갈색, 검은색, 탄자니아인, 잠비아인, 짐바브웨인, 쿠바인.
그의 눈이 쉴 새 없이 움직인다. 그의 시선은 날카롭고 정확하다. 그는 그들 하나하나를 구별할 수 있다. 저마다의 인종을. 저마다의 혈통을. 그는 언제나 구별할 수 있다.
그의 손에는 총이 한 자루 있다. 남아프리카산 Vektor R1, 벨기에 FN FAL 자동소총의 개량형. 부시 전쟁에 눈부시게 등장한 우아한 미인. 무광의 녹색과 회색이 어우러져 있고, 투박하며, 엄정하고, 믿음직하다. 로디지아의 소총.
그것——이 총의 뒤에는 꿈이 하나 있다. 연기를 내뿜는 황동이 매번 가하는 충격은 그 아름답고 사나운 맥박을 이룬다. 전설은 이미 쓰였으며, 아직 끝나지 않았다.
수십 년 뒤, 텍사스와 아이다호와 뉴멕시코의 백인들은 이 총들이 가득 든 나무 상자를 열고, 군침을 흘리며 감탄할 것이다. 그들은 요한이 입은 이 제복의 조잡한 모조품을 걸칠 것이다. 그런 다음 사막의 뙤약볕 아래서 땀을 뻘뻘 흘리며 꼿꼿이 서서, 강철 표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며 그 자랑스러운 옛 꿈을 되살릴 것이다. 몇 번이고.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기를3, 하느님, 여왕을 지켜 주소서. 하느님은 국가와 함께하신다. 하느님은 인종과 함께하신다.
하지만 요한은 지금 이곳에 있고, 살육도 지금 이곳에 있다. 바로 오늘, 바로 이 순간에.
그의 눈이 다시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섬광. 비명.
총의 이념은 이곳에 존재한다.
티머시 윤(Timothy Yoon), 55세. 1992년 5월 1일4. 윤 베이커리 카페, 101번 국도에서 빠져나와 서쪽으로 3분 거리. 자기 가게 옥상에 엎드려 멀리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를 듣고 있다. 호흡——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진정하자. 입안에서 연기 맛이 난다.
호흡——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진정하자. 그 AR-15를 옆구리 쪽으로 조금 더 바싹 붙인다.
만져라. 장갑 낀 두 손가락으로 총몸을 쓰다듬고, 무겁고 차갑고 매끄러운 강철이 땀에 젖은 네 옆구리에 닿는 감촉을 느껴라.
이것은 네 총이다. 이런 총은 많지만, 이 한 자루는 네 것이다.
이것은 네 가게다. 이런 가게는 많지만, 이 한 곳은 네 것이다.
이것은 네 나라다. 너는 이미 이 나라를 네 것으로 만들었다.
이 세 가지 사이에, 네가 가진 모든 것과 네 현재와 네 모든 미래가 있다.
사방에 연기와 소란과 부서진 건물들이 있다. 아래쪽 거리에서는 누군가 달리고, 누군가 웃고, 숱한 장화가 뒤집힌 쓰레기통에서 쏟아진 쓰레기를 서걱서걱 밟는다.
멀리서 사이렌이 울부짖는다. 네 입안에서는 연기 맛이 난다. 개머리판을 어깨에 받쳐라. 뺨에 밀착시켜라. 호흡의 박자에 맞춰 가늠쇠를 조정해라. 맨 앞에 선 사람에게 가늠쇠를 고정해라. 그는 열다섯 살도 넘어 보이지 않는다.
섬광. 비명.
총의 이념은 이곳에 존재한다.
조이(Joey), 六살. 二월 산일. 一九九九九년.
손에 드니 너무 무겁다. 이 검은 물건, 차갑고 검은 금속, 만지면 안 되는 물건.
아이는 광고판에서 이것과 비슷한 물건들을 본 적이 있다. 텔레비전에서도. 밤이 깊으면 그런 흑백 화면이 나오곤 했고, 아이는 복도에서 몰래 들여다보며 카우보이와 인디언들이 밀가루 같은 연기 덩어리 속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곤 했다. 곁의 안락의자에서는 아버지가 코를 골았다.
아이는 거리낌 없이 히히 웃다가 숨이 찼다. 짧고 통통한 손으로 손잡이를 움켜쥐고 또 웃었다. 크면 카우보이가 될 거야, 아이는 생각했다. 카우보이야, 엄마 봐, 나 좀 봐! 아이는 큰 소리로 떠들며 비틀비틀 복도로 들어섰고, 작은 검지가 방아쇠울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부엌으로 뛰어들었다. 어머니는 아이를 보자 비명을 질렀고, 손에 들고 있던 접시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 아이는 깜짝 놀랐고, 손가락이 미끄러졌다.
섬광. 아이가 비명을 지른다.
총의 이념은 이곳에 존재한다.
엘레아닐 타마리스(Eleanil Tamarith), 221세. 2001년 10월 31일. 폼비, 우드베일 왕립공군 기지 부근. 아기자기한 연립주택 술집의 정원에 앉아 노스라이딩 흑맥주 한 파인트를 손에 들고 있다. 타이타닉5의 자두 포터다. 눈앞으로 사람들이 천천히 오간다. 핼러윈 전야를 즐기는 사람들이 주황색 낙엽을 밟으며 이 집 문에서 저 집 문으로 향한다.
그의 머릿속에는 총이 한 자루 있다. 매끄럽고 번쩍이며, 총열에는 잠수함의 사령탑처럼 온갖 지느러미판과 원뿔과 원반이 돌출해 있다. 손잡이는 빨간 플라스틱이고, 한데 엉킨 전선이 앞손잡이에서 늘어져 무한히 먼 곳까지 뻗어 있다.
그는 자기 총을 만드는 데 십오 년을 들였다. 삼예 사원에서 닝마파의 대종사 파드마삼바바의 지도 아래 십오 년 동안 구현 기법을 수련했다. 그 총에는 상표도, 모델명도, 일련번호도 없다. 이름이 있다면 분명 자신의 이름일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이것은 그의 총이다. 이런 총은 세상에 단 하나뿐이지만, 그래도 이 한 자루는 그의 것이다.
군중 속에 마녀가 하나 있다. 우스꽝스러운 어린 년이다. 몸에 달라붙는 검은 원피스를 입었는데, 등은 통째로 드러나 있고 가슴에는 레이스가 가득 달려 있다. 마녀는 마녀다. 달빛 아래 오래된 마법진에서가 아니라 무균 지하실에서 현미경을 써서 마법을 부린다는 것을 그도 알지만. 가장 적절한 순간, 그는 맥주잔에서 고개를 든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다.
섬광은 없다. 비명도 없다. 마녀는 계속 걸어간다. 엘레아닐은 살짝 웃고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신다.
총의 이념은 이곳에 존재한다.
카우보이가 불타는 종이로 이루어진 말을 타고 주와 주 사이를 누빈다. 그는 웃고, 웃고, 끝없이 웃는다. 챙 넓은 모자가 성조기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는 웃으며 허리춤의 육연발 리볼버를 쏜다. 그는 웃으며 팔에 끼운 소총을 쏜다. 그는 웃으며 총을 쏜다. 몇 번이고.
해마다 42,348발의 총알을 쏜다.
그에게는 총이 한 자루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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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ahshow
각주
1. 역주: 세르게이 이바노비치 모신. 이 소총의 설계자.
2. 역주: 아프리카 남부의 국가 로디지아(현재의 짐바브웨)에서는 1964년부터 1979년까지 백인 중심의 정부와 흑인 민족주의자들 사이에 내전이 벌어졌다. 역사적으로 ‘부시 전쟁’이라 불린다. 1977년 5월 28일부터 6월 2일까지 로디지아 정부군은 모잠비크 영내로 진입해 적대 세력 중 하나인 아프리카 민족해방군의 집결지를 공격했다. 작전명은 ‘아즈텍 작전’이었으며, 정부군은 이 작전에서 아프리카 민족해방군 60여 명과 쿠바계 군사 고문 십여 명을 사살했다.
3. 역주: 로디지아 국장에 적힌 라틴어 격언으로,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기를’이라는 뜻이다.
4. 역주: 1992년 4월 29일부터 5월 2일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대규모 사회 소요가 발생했다. 아프리카계 남성 로드니 킹을 구타한 백인 경찰관 네 명에게 무죄가 선고되면서 촉발된 사건으로, 53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에서 한국계 미국인들의 상점은 특히 심각한 피해를 입었으며, 한국계 공동체는 자발적으로 자경단을 조직해 옥상에서 총을 들고 치안을 지켰다.
5. 역주: 영국의 맥주 제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