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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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야전병원 안에 드물게 음악이 흘렀다. 경쾌한 교향곡이었다. 그 사이로 여자의 노랫소리가 유려하게 울려 퍼졌고, 선율은 가볍고 즐거웠다. 수간호사는 병실 한가운데 앉아 부상병들에게 오늘의 뉴스를 천천히 읽어 주었다.
1918년 11월 11일
독일 대표 에르츠베르거와 협상국 연합군 총사령관 포슈가 파리 북쪽, 프랑스 북동부 콩피에뉴 숲의 레통드역에 있는 포슈의 객차에서 「콩피에뉴 숲 휴전 협정」에 서명했다.
오전 11시에 정식으로 교전을 중지할 예정이며, 유럽의 전쟁은 곧 끝나게 된다.
거의 모든 사람이 약속이라도 한 듯 움직임을 멈췄다. 소수의 전쟁 지지자들은 얼굴을 감싸 쥐고 통곡하며 위대한 조국의 패배에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은 기뻐하며 환호했고, 마침내 전쟁이 멈춘 것을 축하했다. 그 소식은 한 줄기 빛처럼 이 어두운 병원을 비추었다. 은은한 음악은 한 줄기 바람처럼 소식을 전하는 빛을 흩날려, 전쟁 때문에 어두워진 사람들의 마음 하나하나에 스며들게 했다. 마침내 그 빛줄기가 한 금발 남자의 침대 머리맡 탁자 앞에 천천히 내려앉았다. 길게 곱슬거리는 그의 머리카락은 마구 엉킨 채 뺨 위로 늘어져 있었고, 그 사이로 너무 지쳐 오랫동안 깎지 못한 수염이 드러났다. 햇빛 한 자락이 위로 뻗은 그의 속눈썹에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속눈썹은 눈의 움직임을 따라 몸부림쳤고, 눈은 마치 접착제로 붙여 놓은 것처럼 끊임없이 경련했다. 그는 몸을 웅크린 채 거듭 경련을 일으켰다. 온몸이 떨리면서 튼튼하지 못한 나무 병상이 덜컹덜컹 흔들렸다. 간호사 한 명이 그의 소매를 천천히 걷어 올렸다. 주사를 놓기 편하도록, 그녀는 그의 어깨에 천천히 손을 얹었다.
오도는 어둠 속을 더듬었다. 눈을 뜨고 싶었다. 그러다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그 소리를 향해 힘껏 헤엄쳤고, 이어 무언가를 붙잡은 듯 벌떡 일어나 앉았다.
“오도, 정신 차려.” 슈타이너의 목소리였다.
귓가에는 여전히 유려한 노랫소리가 흐르고 있었다. 그가 번쩍 눈을 뜨자 슈타이너는 그가 제대로 몸을 가눌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고 곧장 끌어 일으켰다. 그는 방금 포탄의 충격파에 날아갔던 것이다. 돌격 호각이 울리자 수많은 협상국 병사가 밀려왔다. 오도는 멍해졌다. 그는 수만 명의 사람이 개미 떼처럼 꿈틀거리며 돌격하는 모습을 떨면서 바라보았다. 이마에는 차츰 식은땀이 배어 나왔고, 긴 금발 몇 가닥이 그 위에 달라붙었다. 사신은 기관총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호명했다. 앞사람이 쓰러져도 뒤에서는 여전히 밀물처럼 몰려왔다.
“씨발, 과열됐어.” 기관총 사수는 그 말을 끝내자마자 멀리 있던 저격수의 총 한 발에 머리가 터졌다. 후방 독전대의 돌격 호각이 울리자 오도 일행도 즉시 참호에서 쏟아져 나왔다. 기세 드높은 두 줄기 거대한 파도가 눈앞의 자그마한 평지에 한꺼번에 부딪쳤다.
포격에 튀어 오른 흙먼지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람들 모두의 몸 위로 쏟아졌다. 협상국 병사 하나가 야전삽을 들고 독일군 병사를 세차게 쳐 넘어뜨리자, 다른 독일군 병사가 갑자기 그를 껴안았다. 그는 몸을 비틀어 그 독일군 병사를 걷어찼다. 그때 먼저 쓰러졌던 독일군 병사가 돌덩이를 들고 눈 깜짝할 사이에 그를 내리쳤다. 협상국 병사의 머리는 순식간에 축제의 폭죽 한 발로 변했다. 그 독일군 병사의 운도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머리가 피투성이였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등에 총검이 꽂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참호 깊숙한 곳에 고꾸라졌다. 백병전을 벌이는 병사들은 맹수처럼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휘둘러 눈앞의 생면부지인 사람을 후려쳤다. 그들은 진흙탕에서 뒹굴며 자신과 똑같이 일그러진 눈앞의 인간 형상에 주먹을 세차게 꽂았다. 어느 한쪽이 쓰러질 때까지.
총검 하나가 갑자기 찔러 들어왔다. 오도는 몸을 틀어 피한 다음 그 사람의 목을 움켜쥐고 거세게 땅에 쓰러뜨렸다. 이어 작은 칼을 집어 들어 적의 가슴에 힘껏 꽂았다. 피가 오도의 눈에 튀었다. 그가 고개를 숙여 눈을 닦을 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덩치 큰 병사 하나가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오도를 덮쳐 쓰러뜨리고, 머리를 붙잡아 질척한 땅바닥에 세차게 내리찧었다. 오도는 몸을 돌려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덩치 큰 병사는 오도를 껴안더니 허리를 잡아 번쩍 들어 땅에 메다꽂았다. 그러고는 그의 몸 위에 엎드려 목을 꽉 졸랐다. 오도는 손으로 그의 머리를 밀어내며 빠져나오려 했으나, 통나무처럼 단단한 허벅지에 가슴이 짓눌렸다. 얻어맞아 벌겋게 부은 오도의 눈에 자줏빛 핏점이 배어 나왔다. 시야가 차츰 흐려지고 검어졌다.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손목을 붙잡고 있던 손도 이제는 힘없이 축 늘어졌다.
갑자기 그의 뺨에 피가 떨어졌다. 총검 하나가 그 병사의 가슴을 세차게 꿰뚫었다. 덩치 큰 병사는 여전히 오도의 목을 꽉 조르고 있었다. 총검이 빠져나갔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몇 번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찌르고 나서야 그 굵고 커다란 두 손이 서서히 힘을 잃고 한쪽으로 늘어졌다. 오도는 진흙 바닥에 누워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얼굴에는 피와 흙탕물, 그리고 저도 모르게 흘러나온 생리적인 눈물이 가득했다. 손으로 한 번 훔치자, 붉게 부은 눈으로 마찬가지로 진흙투성이인 두 손이 자신을 향해 뻗어 오는 것이 보였다. 틀림없이 슈타이너였다.
그는 일어서서 슈타이너와 함께 운 좋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대열에 섞여 들었다.
그것은 극도로 남루한 대열이었다. 모두의 옷에 크고 작게 진흙과 구멍이 나 있었다. 고참병들은 무감각하게 담배를 피우며 고개를 숙인 채 빠르게 앞으로 걸었다. 이따금 길가에 사인을 알 수 없는 시체 몇 구가 나타나면, 앞서 걷던 고참병들이 걸음을 멈추고 한바탕 뒤진 뒤 익숙하게 발로 걷어차 치웠다. 반면 신병들은 연일 이어진 포화로 회색으로 물들어 두꺼운 납이 입혀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릴 때부터 베를린에서 살며 옅푸른 하늘을 보아 온 그들에게 그것은 틀림없이 고통스러운 색이었다. 오도는 신병 중 한 명이었다. 그의 금빛 눈은 지휘관이 가리키는 적진을 응시했다. 그들과 적군의 참호 사이는 고작 10~20미터였지만, 선홍빛은 이미 그물처럼 얽혀 본래 검었던 이 땅을 뒤덮고 있었다. 피와 살이 꽃과 푸른 풀을 대신했고, 신선한 공기로 가득해야 할 허공에는 녹색 겨자가스가 떠돌았다. 가끔 오도는 전장에서 선명한 장미 몇 송이를 보곤 했다. 그것들은 이 어두운 지역이 피로 길러 낸, 유일하게 남은 생기였다. 때로는 그 꽃들을 꺾고 싶어지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다시 주머니 속으로 손을 거두었다.
오도는 눈앞의 듬성듬성한 대열을 바라보았다. 원래는 자신과 같은 젊은이가 십수 명은 있었을 텐데, 이제는 요제프와 파울, 그리고 슈타이너 등 몇 사람만 남았다. 문화 우월론자인 한스도 있었다. 그도 지난 전투에서 살아남았다. 요제프 일행은 그를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오도가 지켜본 바에 따르면, 그는 돌격할 때 힘껏 소리를 지르다가 뒤에 있는 독전대의 감시에서 벗어나고, 동료들이 다 죽으면 다시 달아나 돌아와, 끝으로 상관에게 뇌물을 바쳐 관직 한자리 얻는 겁쟁이에 지나지 않았다.
“오도? 오도!” 한스가 큰 소리로 불렀다. 오도는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그의 앞에 섰다. “오도, 지금 상부에서 임무가 하나 내려왔다.” 그는 헛기침을 하고는 눈을 빛내며 오도를 응시했다. “아주 어려운 임무야. 나는 자네를 믿는다. 이렇게 하지. 내 부하 한 명을 붙여 줄 테니, 그리고…… 슈타이너도 데려가. 자네들 집이 가는 길에 있으니, 가는 김에 들러 봐도 좋아.” 한스는 살짝 웃고는 더 말하지 않고 돌아서서 떠났다.
“막 들어온 소식인데, 집에 돌아가는 영광을 누릴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오도는 팔꿈치로 슈타이너를 툭툭 쳤다.
오도는 그 낡은 봉투를 열었다.
오토 대위께
영국군이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켜 스헬더강과 뒤노르 운하 사이로 공격해 오고 있습니다. 캉브레가 심각한 위기에 처했으니 후방 지휘부의 화력 지원을 바랍니다.
한스 하사
“안 돼, 이건 불공평해!” 요제프가 소리치며 손으로 슈타이너의 어깨를 두드렸다. “적어도 이번 일은 한스가 꽤 잘했네.” 슈타이너는 웃고는 돌아서서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그는 맥주 두 캔과 군용 통조림 두 개, 그리고 많은 물을 챙겼다.
“가는 길에 먹을 식량이야.” 슈타이너가 손을 닦았다. “언제 떠나?”
“아마 내일이겠지.” 오도는 두 손을 펼쳐 보였다.
다음 날, 요제프 일행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도와 슈타이너, 한스의 부하는 함께 서부전선으로 이어지는 길에 올랐다. 길은 멀었다. 돌멩이에 발바닥이 찢겼고, 핏자국에서는 때때로 가려움이 번져 그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일깨웠다.
“이름이 뭐야?” 오도가 경멸하는 표정을 가득 띤 그 사람에게 물었다. “알브레히트.” 그는 이름을 말하자마자 거만한 수탉처럼 고개를 높이 쳐들었다. 오도와 슈타이너는 어색하게 눈길을 주고받았다. “그럼 알이라고 부를게.”
“알”은 그 말을 듣고 화가 나 눈이 붉어졌다. 하지만 이내 너그럽게 웃으며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국지전이 벌어졌다. 포탄은 귀가 먹먹할 만큼 포효하며, 대지에 벌어진 상처 위로 남김없이 쏟아져 내렸다. 그 더없이 귀를 찢는 포격 소리 속에서 오도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다.
“오도! 오도! 정신 차려!” 슈타이너는 오도를 끊임없이 흔들었다. 목소리는 희미하고 흐릿했으며, 마치 하늘 끝에서 들려오는 듯 아득했다.
새 몇 마리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아주 느리게, 시간이 그곳에 거의 멎어 버린 듯 느리게 날았다. 포탄은 화가의 붓처럼 그것들의 몸 윤곽을 그려 냈다. 한 발 한 발,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이어졌다. 동시에 그것들은 땅에 거세게 박혔고, 거대한 폭발을 일으켜 수많은 모래와 흙을 날려 올렸다. 마치 요사스러운 바람 같아서, 그 바람이 한 번 불 때마다 수많은 생생한 웃는 얼굴이 해골로 변했다. 뜨거운 폭풍의 물결이 모든 것을 뒤집어엎었다. 오도 일행이 머물던 집도 마찬가지였다. 집주인은 포격 뒤에 죽었다. 그는 침대 위에 몸을 단단히 웅크리고 있었고, 손이 사라져 있었다. 누군가 그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사람들은 화상으로 가득한 그 얼굴의 고통스러운 표정을 보고, 아마 폭발로 팔 하나가 잘린 뒤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서서히 죽었으리라 짐작했다.
슈타이너의 부축을 받아 일어난 오도는 피를 한 모금 토했다. 그는 입가의 핏물을 닦으며 눈앞의 슈타이너를 조금 놀란 눈으로 보았다. 교양 있는 대학생인 그가 몹시 아끼던 안경의 렌즈 한쪽이 깨져 있었다. 깨진 유리는 끊임없이 눈 주위를 베었고, 막 아문 상처가 다시 벌어졌다. 핏줄기가 먹물처럼 그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려 땅 위에 요염한 꽃송이들로 모였다. 오도는 자신과 슈타이너의 상처를 간단히 처치하고는 나머지 두 사람의 부상을 살폈다. 다행히 다른 두 사람은 크게 다치지 않았고, 알은 아주 가벼운 화상만 입었다. 그들은 곧바로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문을 나서기 직전, 오도가 미간을 찌푸린 채 침대 가장자리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그의 표정을 보고 말없이 집주인의 시신을 집 밖 공터에 있는 포탄 구덩이로 옮겨, 간단히 흙으로 묻어 주었다. 알은 이 선량한 집주인의 영혼을 위로하고자 말없이 가슴 앞에 성호를 그었다.
나무와 밧줄로 간단히 만든 십자가가 무덤 위에 서서 불에 탄 땅을 조용히 살펴보고 있었다.
“더 지체하면 저 영국 놈들이 따라잡겠어.” 슈타이너가 눈을 깜박였다. 알은 포격 때문에 사방에 흩어진 빵을 주워 모았고, 그들은 다시 목적지를 향해 길을 나섰다.
“슈타이너, 날 어떻게 찾았어?” 오도가 고개를 돌려 보니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시 눈을 비비자, 슈타이너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폭발에 날아가는 걸 봤어.” 슈타이너가 짧고 분명하게 말했다.
한밤의 시간이 물러가고, 지평선 저편에서 해가 떠올랐다. 오도는 하품을 했다. 그는 기대고 있던 나무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알은 지난밤 보초를 자청했다. 그의 곁에는 깨끗하게 닦아 놓은 훈장 몇 개도 있었다. 지금 그는 커다란 바위 위에 엎드려, 편안한 침대에 누운 듯 잠깐 눈을 붙이고 있었다. 슈타이너는 돌처럼 딱딱한 빵 한 덩이를 집어 땅에 세차게 내리친 다음, 작은 칼을 들어 서걱서걱 자르기 시작했다.
오도와 슈타이너는 빵을 먹었다. 알은 너무 지친 나머지 머리를 대자마자 잠들어 식사를 놓쳤다.
그 뒤 그들은 울창한 숲을 가로질러 곧장 숲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곳에는 독일과 프랑스의 국경에 자리한 작은 마을이 있었다. 주민 중에는 프랑스어를 쓰고 맛있는 프랑스 요리를 솜씨 좋게 만드는 사람도 있었고, 거리에는 맛있는 프랑스 음식점도 몇 군데 있었다. 밀의 정수가 담긴 정통 독일식 맥주를 빚는 사람도 있어서, 전쟁이 터졌는데도 거리에는 여전히 달콤하고 향긋한 맥주 냄새가 감돌았다. 가장 전형적인 유럽 건축물들이 들어선 이 작은 마을은 외진 곳에 있어 포화의 피해를 거의 받지 않았다. 기껏해야 큰길에 늘어난 탄흔 몇 개가 이곳에서도 전투가 벌어졌음을 증명할 뿐이었다. 독일군은 이 안전한 마을을 지휘 중심지로 삼았고, 오토 대위와 그의 경비대가 이곳에 주둔했다. 오도는 한때 서로 다른 언어를 쓰면서 함께 술에 취해 땅바닥에 쓰러졌던 술친구들이, 지금은 서로의 피를 마시며 죽고 죽이는 광경을 상상할 수 있었다.
“오도, 슈타이너, 빨리 와! 내가 뭘 찾았는지 봐!” 알은 깡충깡충 뛰며 두 사람을 끌고 가 독일어와 프랑스어가 함께 적힌 식당 앞에 멈췄다. 안에서는 무척 인자해 보이는 할머니가 먼지를 털고 있었다. 알은 할머니에게 맥주 세 잔을 달라고 했다. 촘촘한 거품이 순식간에 오도의 입안으로 밀려들었다. 맥주가 위장으로 흘러들자 오도도 더는 많은 것을 신경 쓰지 않고, 아주 만족스러운 트림을 천천히 내뱉었다. 정통 옛 베를린 풍미의 맥주였다. 아직 성숙한 턱선이 완전히 다듬어지지 않은 그의 뺨에 어린 소녀 같은 홍조가 조금 떠올랐다.
노부인이 갑자기 납작빵 몇 개를 내왔다. 잠에 빠져 있다가 몹시 배가 고파진 알이 막 손을 뻗어 빵을 집자, 슈타이너가 그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프랑스인이잖아. 독이 들었을지 모르니 조심해.” 슈타이너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이를 본 노부인은 즉시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이건 돈 안 받아요. 배가 고파 보여서 먹으라고 준 거예요.”
“하지만 저희는 독일인인데요.” 오도가 멍하니 말했다. 금빛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상대의 표정을 이리저리 살폈다.
오히려 알브레히트가 빵을 덥석 낚아챘다. “우리한테 주시겠다잖아. 그럼 우리 거지!” 빵을 든 그는 스스럼없이 작은 조각을 뜯어 오도에게 건넸다. 오도는 빵을 받았다. 그는 노부인을 바라볼 수 없었다. 노부인의 주름진 옷감도, 모든 것을 품어 줄 듯한 그 자애로운 눈빛도 감히 볼 수 없었다. 오도는 기가 죽은 채 한쪽에 서서, 얼굴이 붉어진 채 얼마 되지 않는 빵을 크게 베어 먹었다.
노부인은 그들이 모두 빵을 먹는 것을 보고 천천히 말했다. “여러분은 군인인가요? 내게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 애도 군인이 됐어요. 불과 며칠 전에 여기를 떠났지요. 다만 그 애 옷은 여러분 것과 조금 달랐던 것 같네요.”
슈타이너는 움직임을 멈추고 어색하게 오도를 바라보았다. 알은 그대로 고개를 돌려 계속 크게 입을 벌려 삼켰다.
“아마…… 부대가 조금 달라서 그럴 거예요……” 오도가 말했다.
“하느님께서 그 애를 지켜 주시기를.”
알은 노부인과 몹시 가까워졌다. 빵을 다 먹은 뒤에는 모든 값을 흔쾌히 치렀을 뿐 아니라, 먼지로 가득한 가게를 청소하는 일도 자진해서 도왔다. 할머니는 그가 이곳의 다른 군인들과 다르다고 말했다. 밥값을 낼 뿐 아니라 일도 도와주는 것이 자기 아들과 같다고 했다.
오도와 슈타이너는 편지를 들고 병영으로 들어갔다. 오토 대위는 종이 한 장을 들여다보다가 천천히 탁자 위에 던져 놓았다. 오도와 슈타이너를 보자 그들을 불러들였다.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펜을 들어 탁자 위 지도에 무언가를 그린 다음, 오도와 슈타이너에게 말했다. “한스 연대에 즉시 500미터 후퇴하라고 전해. 적의 공격을 발견하면 즉시 전서구로 신호를 보내도록.” 말을 마친 오토는 새장 하나를 가져왔다. 안에는 전서구 한 마리가 있었고, 그 깃털은 티 하나 없이 새하얬다.
“오늘은 여기서 쉬고, 내일 즉시 돌아가도록.”
한밤중, 달빛이 작은 마을 위로 살며시 쏟아졌고, 미풍이 숲을 부드럽게 지나며 사락사락 소리를 냈다. 서서히 먹구름이 달빛을 가려, 전쟁에 휩싸인 이 세계를 잠깐 어둠 속에 빠뜨렸다. 독일군 보초는 느긋하게 서 있었다. 이곳은 깊숙한 후방이었고, 전투가 벌어진 지도 아주 오래되어 무척 안전했다. 그는 수통을 들었다. 안에는 자신이 담아 놓은 맥주가 있었다. 한 모금 크게 마시니 기분이 좋았다. 바람이 점점 거세지면서 멀리 있는 관목을 흔들어 사락사락 소리를 냈다. 가만히 들어 보니 그 속에 어울리지 않는 다른 소리가 있었다. 보초는 이를 알아차리고 권총을 뽑아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은 채 천천히 관목 쪽으로 다가갔다. 관목 앞에 이르렀을 때 또 한 차례 큰 바람이 불어 모래와 돌을 휘말아 올렸다. 보초는 눈을 비볐다. 시야가 흐릿한 사이, 먹구름이 다시 바람에 흩어졌다. 날카로운 빛줄기가 번뜩이며 풀숲에서 섬광이 일었다. 미처 제대로 보기도 전에 총검 몇 자루가 순식간에 그의 몸을 꿰뚫었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은 줄곧 방아쇠를 꽉 잡고 있었다. 순간적인 통증의 자극에 그는 방아쇠를 당겼다.
죽음이 하늘을 가르며 깊이 잠든 사람들을 모두 깨웠다.
오도는 독일어 욕설에 잠에서 깼다. 슈타이너는 프랑스군이 야습해 왔다고 알려 주었다. 둘은 알을 찾으려 했지만, 끝내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혼전은 날이 밝을 때까지 이어졌다. 프랑스군은 시체 더미와 포로 몇 명을 남겼다.
알이 프랑스군 포로 한 명을 붙잡아 돌아왔다. 그는 오도와 슈타이너에게 이 사람이 그 노부인의 아들이라고 말했다. 어제 전투가 벌어졌을 때 걱정이 되어 노부인의 집으로 달려갔고, 그곳에서 노부인의 아들을 만났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둘은 계책을 하나 의논했다. 알이 노부인의 아들을 포로로 잡은 척해 포로수용소로 보내면, 그 아들은 전선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그냥 군복을 벗고 여기 남거나 도망치라고 하지 그랬어?” 슈타이너가 물었다. “생각 좀 해 봐. 여긴 독일과 프랑스의 국경이야. 베를린 학생들까지 하나둘 군대에 들어가고 있는데, 여기에 군인이 아닌 건장한 남자가 남아 있을 리가 없잖아. 프랑스군은 분명 탈영병으로 여기고 바로 쏴 죽일 거야.” 알이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그냥 도망치게 해 주는 게 어때? 그 한스의 상관인 오토도 별반 다를 것 같지 않은데.” 오도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인종차별이나 하는 개자식.”
알은 그래도 그를 포로수용소에 넘겼다. 뜻밖의 일을 막기 위해 그들은 저녁에 돌아가기로 했다. 점심때 그들은 다시 노부인의 식당에 가서 식사했다. 알은 앞으로 아들을 잘 돌봐 주고, 전쟁이 끝나면 함께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인자하게 웃었고, 슈타이너는 말없이 맥주를 마셨다. 오도만 줄곧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오후에 오토가 갑자기 부대를 비상 집합시켰다. 오도의 머리 위에 드리운 먹구름도 점점 무거워졌다. 그는 어떤 일들이 자신의 불길한 예감대로 흘러간다고 느꼈다. 오토는 전쟁이 나라에 어떤 이익을 가져다주는지, 왜 전쟁을 해야 하는지 큰 소리로 떠들었다. 그러더니 곧 말투를 바꾸어 프랑스인들을 욕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욕설을 퍼부은 그는, 즉시 모든 포로를 처형하겠다고 선언했다. 처형은 그들을 포로로 잡은 병사들이 맡는다고 했다.
오도는 점차 숨이 막혔다. 곁에 있던 알은 이미 강제로 단 위에 끌려 올라갔다. 다른 병사들이 한 명씩 차례로 총을 쏘았다. 알은 두 손을 떨었고, 손에 든 총은 하마터면 단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
“알브레히트!” 오토가 큰 소리로 외쳤다. “자네 성적이 아주 좋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사람을 죽이는 건 처음이지?” 오토는 천천히 그의 곁으로 걸어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총을 들어. 베를린에 계신 자네 아버지가 자네가 겁쟁이라는 걸 알게 하지 말고.” 알은 떨면서 총을 들었으나, 좀처럼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오토도 차츰 인내심을 잃고 허리춤에서 루거 권총을 뽑아 알의 머리에 겨누었다. “지금, 쏴.”
날카로운 소리가 한 번 울렸다. 검붉은 피가 총탄 구멍을 따라 쏟아져 나왔고, 노부인의 아들은 몇 번 휘청이다 땅에 쓰러졌다. 알은 총을 한쪽으로 내던졌다. 다리에 힘이 풀린 그는 핏자국으로 가득한 땅바닥에 엎드렸고, 이어 구토하기 시작했다. 오토는 손을 내저어 병사 두 명에게 그를 들고 나가게 했다.
오도는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이미 피로 얼룩진 긴 금발을 쥐어뜯었다. 노부인의 아들을 포로수용소에 보내지 않았더라면, 그는 살아남을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알은 병영에서 빠른 걸음으로 나와 그 시신을 노부인의 마당으로 옮겼다. 노부인은 시신의 얼굴에 총탄이 만든 커다란 구멍을 보았다. 그녀는 알을 탓하지 않았다. 그저 수건 한 장을 들고 머리에 남은 부분을 천천히 닦아 주고, 새 옷으로 갈아입혔다. 그들은 노부인을 도와 구덩이를 팠다. 노부인은 아들을 구덩이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묘비명에는 이렇게 적었다. “이곳에 효성스러운 사람이 있다. 그의 육체는 전쟁에 죽임당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노부인은 묵묵히 기도했다. 그 침묵은 어떤 책망보다 날카로웠다.
오도와 알, 슈타이너는 노부인의 집을 떠났다. 길 위의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가 끊임없이 그들의 코를 찌르며 강제로 몸속에 파고들었다. 알은 줄곧 말이 없었다. 슈타이너와 오도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는 말없이 한쪽으로 걸어갔다.
오도는 무심코 알이 있는 쪽을 보았다가 그가 총을 꺼내는 모습을 보았다. “알? 알!” 오도가 외치는 가운데 슈타이너가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총성이 한 번 울리고, 총알이 허공을 갈랐다.
독일 귀족의 자제, 알브레히트•플리머•엥겔. 한 천사, 잠깐 피었다 스러지면서도 선량함으로 빛나던 한 사람. 적 한 사람에게 속죄하기 위해, 그는 독일과 프랑스의 경계에 영원히 자신의 피를 뿌렸다.
오도는 무너져 내리듯 땅에 쓰러졌다. 손에는 여전히 노부인이 준 펜던트를 꽉 쥐고 있었다.
오도와 슈타이너는 알의 몸에서 군번줄을 떼어 내고 이 귀족을 묻었다. 초라한 나무 팻말에는 이렇게 새겼다. 이곳에 선량한 사람이 있다. 그의 정신은 전쟁에 죽임당했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서둘러 돌아갔고, 새벽녘 전선에 도착했다. 프랑스의 날씨는 이토록 나빴다. 진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까지 돌아왔을 때, 짙은 안개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오도가 고개를 들자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는 높은 벽이 보이는 듯했다.
“오도, 뭔가 좀 이상해.” 슈타이너가 말했다. “땅이 흔들리는 것 같아.”
“저쪽에서 포격하는 걸까? 신경 쓰지 마. 전투 대형을 유지하고 적을 맞을 준비를 해!” 말을 마치자 몇 사람은 곧바로 방독면을 썼다. 슈타이너는 즉시 쪼그려 앉아 낡은 G98을 들어 엄호했고, 오도는 몸을 일으켜 최대한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서서히 오도는 이상한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기계와 모래, 돌이 대규모로 부딪치며 서로 뒤얽히는 소리였다. 그의 마음속에 불길한 예감이 솟았다.
“슈타이너!” 오도가 입을 벌려 외쳤다. “빨리 도망쳐!”
슈타이너가 오도 쪽을 보았다. 오도는 총을 든 채 허둥지둥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갑자기 오도의 등 뒤에서 육중한 기계의 움직임이 전해졌다. 슈타이너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짙은 회흑색 마름모꼴 윤곽이 망망한 안개 속에 나타나고서야 알았다. 목숨을 재촉하는 유령 같았다.
기관총 소리가 울리자 슈타이너는 냅다 달렸다.
오도는 전차의 옆쪽으로 달렸다. 앞에 커다란 바위가 있어 그 뒤로 숨었다. 기계는 그를 거들떠보지 않고 슈타이너를 쫓았다. 갑자기 슈타이너가 땅에 쓰러졌다.
오도는 즉시 결단을 내렸다. 곧바로 기계의 측면 뒤쪽으로 돌아가 힘껏 문을 열고 수류탄 하나를 던져 넣었다. 이어 굉음이 울리며 기계 전체가 폭발했다. 안에 있던 사람들 중에는 죽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제 몸을 불태우며 숯으로 변하기 전 마지막 비명을 질렀다. 오도는 날아온 파편에 팔을 맞았다. 그들은 그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흙투성이 슈타이너를 부축해 일으켰다. 그는 허벅지에 총을 맞았다. 오도는 힘겹게 천 조각을 찢어 피가 흐르는 상처를 간단히 싸매 주었다.
짙은 안개가 서서히 걷히자 수십 대의 기계가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도 일행의 전우들은 그것들에게 집어삼켜지고 살해당했다. 그 뒤에는 수천수만의 영국군이 있었다. 다행히 그들이 마주친 기계는 대열에서 떨어져 있었고, 뒤따르는 병사도 없었다. 오도는 새장을 떠올렸다. 전투 중에도 전서구는 무사했기에 그는 곧바로 새를 날려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포탄이 그 느리게 움직이는 기계들을 세차게 두드렸고, 전장 전체가 불바다로 뒤덮였다. 오도는 슈타이너를 데리고 그 숲으로 뛰어들었다.
며칠 뒤, 한스 군단의 정찰병이 두 사람을 발견했다. 극도로 창백해진 슈타이너와 수척해진 오도가 어느 방향인지도 모를 곳에서 돌아왔다.
그 뒤 오도와 슈타이너는 병원에 들어갔다.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면 오도는 혼자 책을 안고 병원 공터를 거닐며 읽는 것을 좋아했다. 슈타이너는 그의 곁에 나타나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자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횃불을 밝혔다. 불빛은 깜박이며 하나로 이어졌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사방의 잔혹한 전장은 짙은 밤 속에서 하나의 죽은 듯한 적막으로 이어졌고, 겹겹이 얽힌 그 적막 한가운데 드러난 이 작은 땅에는 인간 세상의 기쁨을 담은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오도는 불빛에 환히 비친 이 땅 위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눈앞의 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벽돌담과 기와 잔해 사이로 손 몇 개가 뻗어 나와 있었다. 구조를 청하는 것 같았다. 오도는 몸을 굽혀 그 손들을 어루만지다가, 곧 감전된 듯 손을 거두었다. 그 손들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켜 시선을 내렸다. 하늘로 치솟는 불길 아래 그의 얼굴에 묻은 흙이 조금씩 말라 갈라졌다. 피가 얼굴에서 떨어져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무너진 벽 조각들이 불빛 속에서 하나둘 떨어져 나와 하늘에서 세차게 내리꽂혔고, 대지를 미세하게 흔들었다. 오도는 창공을 바라보며 불길에 끝없이 잠식되는 대지를 애써 머릿속에서 지웠다.
“하인리히•슈타이너 말인가?” 옆에 있던 군의관이 큰 소리로 물었다. “네, 맞습니다.” “젠장, 여긴 슈타이너가 한 무더기야.” 곁의 군의관이 중얼거렸다. “콧대가 높은 남자입니다.” 군의관의 얼굴에 연민이 떠올랐다. “전쟁 스트레스성 신경증에 걸린 것 같더군. 그 사람은…… 왼쪽 계단 입구에 있어. 가 보게.”
우리가 있는, 기대로 가득한 이 땅은 또다시 포화의 세례를 받고 있다. 그래서 그게 어떻다는 것인가? 우리의 기대는 썩은 피와 살, 뼛가루의 무게에 짓눌리면서도 힘겹게 자라난 꽃과 같다. 그렇게 우리는 한 번도 가져 본 적 없는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걸어간다. 영원히……
오도는 손에 든, 빛이 바래고 녹슨 인식표를 바라보았다. 그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프로이센의 거리를 거닐었다. 사람들은 여느 때처럼 움직이고 잡담했다. 오도의 눈에는 그들이 다음 순간 집 안으로 들어가 교미를 하거나, 아니면 곧장 큰길에 쓰러져 죽을 것처럼 보였다. 오도는 그 보잘것없는 삶들을 한 번 바라본 뒤 떠났다. 그들의 정해진 궤적을 따라, 그는 여전히 군대에서 하던 거위걸음으로 걸었다. 자신이 그 빌어먹을 병영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1914년을 떠올렸다. 그때 그는 위풍당당한 대열 안에 서 있었다. 긴 금발을 머리 뒤로 단정하게 묶고, 큰 걸음으로 행진하며 군가를 드높이 불렀다. 유럽 전체를 바꾸러 가던 그 기세는 어떠했던가? 그는 길가의 시위자 한 명을 보고 손을 한번 흔들고 지나갔다. 오도는 앞으로 더 나아가면 더욱 의미 있는 삶이 기다린다는 것을 알았다. 패전 때문에 괴로운가? 기껏해야 독일 귀족들이 아프지도 않으면서 신음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포화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생이별과 사별을 겪은 적도 없으면서, 그저 이래라저래라 지시하기만 했다. 저곳을 공격하고, 이곳을 방어하라고. 지도 위에 그렇게 선 하나를 그을 때마다 극장에서 날마다 대성황을 이루는 비극 한 편이 펼쳐진다는 것도 모르면서. 우리는 영원히 기대로 가득하고, 무엇이든 낙관적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끊임없이 시행착오를 겪고,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며, 끊임없이 상처 입은 자신을 찾아낸다. 오도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쩌면 그는 그저 한스 대령이 자신에게 무심하게 퍼붓는 욕을 한 번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요제프 일행의 비웃음이라도. 무엇이든 좋았다. 그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의 부대는 이미 며칠 전에 전멸했고, 그와 슈타이너만 남아 있었다. 오도의 눈물이 다시 떨어졌다. 프로이센의 남자는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되지만, 그는 이미 그 군율과 교리를 모조리 잊은 지 오래였다.
언제나 뜨거운 피를 품은 소년은 기대를 품고, 평화에 대한 소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여전히 분노에 잠겨 있었다. 남자들은 모두 가까이 모여들었고, 뒤편에서는 여자 몇 명이 이 처참하게 무너진 광경을 멀찍이 바라보고 있었다.
오도는 시끄러운 시가지를 지나 후방 병원에 이르렀다. 그의 친구 슈타이너는 군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의 정신은 이미 완전히 온전하지 못했다. 만나는 날에는 의사가 미리 슈타이너를 붙잡아 목욕을 시켰지만, 오도는 그래도 복도에 떠도는 소문 속에서 그가 자기 몸에 대변을 발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도는 꽉 쥐고 있어 조금 뜨거워진 금속 인식표를 탁자 위에 살며시 내려놓고 돌아서서 나갔다.
군병원을 나서면서 오도는 몇 년 전 병원에 났던 불을 떠올렸다. 그것은 지금 북적이는 사람들처럼 그의 심장을 태우며 밤새 잠들지 못하게 했다.
그리하여 메마르고 핏발이 가득한 오도의 눈에서, 뜻밖에도 짜고 떫은 눈물 두 줄기가 흘러내렸다. 그는 발을 내디뎌 앞으로 달렸다. 자신의 군번줄을 뜯어냈고, 군복을 벗었다. 그는 먼 곳을 향해 달려갔다. 만 리에 걸친 푸르고 흰 구름층이 드리우는 실처럼 가느다란 햇빛이 그의 뒤를 바짝 따라갔다.
오도는 한때 자신이 “죽음을 무릅쓰고 지키겠다”고 맹세했던 이 땅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뜨겁게 달아오른 도로를 따라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끊임없이 걸었다. 마음속에서 1917년을 걸어 나올 때까지…… 그는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그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의 눈물은 한낮의 찬바람과 어두운 밤의 눈밭 속에서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며, 땅속 깊은 곳에서 무수한 서리꽃으로 얼어붙었다.
오도 하사는 1919년 유월 이십팔일 실종되었다.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연락선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의심의 여지 있음).
슈타이너는 1918년에 죽었다. 그가 죽은 날, 유럽 전체는 누군가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고요했다.
전쟁이 가장 치열했던 서부전선 지휘소의 탁자 위에는 종이 한 장만 놓여 있었다. 거기에는 “휴전”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날은 비가 내렸다. 서부전선은 드물게 고요했다. 병사들은 진창으로 뒤덮인 참호에 앉아 톱밥이 든 빵과 물 같은 수프를 먹었다. 빵은 딱딱했고 수프는 싱거웠다. 모든 사람의 마음처럼, 지옥과도 같은 이 피와 살로 이루어진 강물 속에 희미하게 잠겨 들었다. 그들은 고개를 들어 새까만 하늘을 바라보며, 저 하늘에서 단 한 줄기라도 빛이 비쳐 나오기를 바랐다. 전쟁 바깥의 세계, 자신들이 닿을 수 없는 세계를 비추어 주기를.
전장에서 회색 하늘을 올려다볼 마음의 여유가 있는 병사는 드물었다. 하지만 몸 아래의 진흙은 그들이 비 한 번 한 번을 기억하게 했다. 비는 대지의 모든 상처 위에 내려앉아 슬픈 영혼 하나하나를 어루만지며, 그들을 운명으로 정해진 안식처로 데려갔다.
몇 달 뒤, 중국 서남부의 어느 안개비 자욱하고 운무가 피어오르는 구석에서, 체격은 크지만 피로를 감추지 못한 금발 남자가 비틀거리며 골목 하나로 들어섰다.
그가 고개를 들자, 웅장한 흰 건물 하나가 흩날리는 빗줄기 속에 우뚝 서서 초조하게 타들어 가는 그의 영혼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글
xqj-1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