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틈
Burnin_A_GoGo
Bar_3882 2024/03/21 (화) 03:10:11 #17765409
누구나 학창시절의 불쾌한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제가 파라워치를 만나고 몇 년이 흐르는 사이, 여러 사람들이 그런 기억을 술회하는 것을 많이 봐 왔습니다. 오늘은 잠을 이룰 수 없어서, 제가 가진 기억에 관해서 서툴지만 써 보고 싶습니다. 삼가 잘 부탁드립니다.
Bar_3882 2024/03/21 (화) 03:15:29 #17765409
여러분은 소학교 시절 비상근 선생님이 계셨는가요? 제 모교에서는 소학교 5학년 때 산수 수업만 전담하는 선생이 계셨습니다. 아마 제 학년 이외에는 담당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Bar_3882 2024/03/21 (화) 03:18:12 #17765409
분명히 말씀드리는 건데, 어린이들에게 호감을 살 만한 요소는 무엇 하나 가지고 있지 않은 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녀도 그것을 기대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평소에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고, 이따금 날뛰는 아이에게도 의연한 태도로 대응하는. 호의적으로 표현하면 구김살 없고, 나쁘게 표현하면 독선적 혹은 제멋대로 행동하는 아동들이 다수를 점하는 모교에서 이질분자처럼 취급되고 있었습니다. 가끔 허공에 대고 말을 하는 이상한 동급생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아무튼 자유로운 환경이었던 점은 틀림없습니다.
Bar_3882 2024/03/21 (화) 03:28:15 #17765409
그럼 저는 어땠느냐, 교사가 방치해놓은 지도안(학습지도계획서)을 훔쳐보는 터무니없는 아이였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우스갯소리도 되지 못합니다만, 어딘가 다루기 힘든 성품이 멋지다고 느끼는 아픔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 저였기에 그녀가 갖고 있는 서류도 당연하다는 듯이 제 시야에 넣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쓴 지도안은 시대를 따르지 않고 수기로 쓴 것이었는데, 다른 교사와 비교해서도 분명한 면밀함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좋든 나쁘든 수업만은 잘 하는 선생이었기에, 못되어먹은 저로서도 꽤 도움이 되었다는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Bar_3882 2024/03/21 (화) 03:33:09 #17765409
솔직히 표현하자면, 예의 지도안에는 어린이에 대해 사용해서는 안 될 표현이 많이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교사도 인간이니까, 말을 듣지 않고 시끄러운 아이들에게 질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신경쓰인 것이, 교사가 자주 「타카마사 군」이라는 이름을 거론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반에 그런 이름의 아동은 재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세히 보니, 우리 반은 36명인데 37명이라고 기술되어 있었습니다.
Bar_3882 2024/03/21 (화) 03:40:32 #17765409
하지만 당시의 저는 그녀에게 품은 그런 의심을 해소할 수 없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서류를 훔쳐본 것에 대한 죄악감을 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다른 아이가 그 선생의 노여움을 샀을 때 화가 가라앉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례를 보았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만을 위해 자백하는 것은 피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Bar_3882 2024/03/21 (화) 03:48:00 #17765409
그 날 귀갓길에, 저는 어렴풋이 훔쳐본 서류와 「타카마사 군」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타카마사 군이 조용히 하질 않는다」, 「아직도 연필 깨무는 버릇이 고쳐지지 않는다」, 「그 아이는 언제나 내 골칫거리」, 「타카마사 군 따위 차라리 없어지면 좋겠다」 교사가 양식 여백에 늘어놓은 말들은 죄다 타카마사 군에 대한 증오의 발로였습니다.
Bar_3882 2024/03/21 (화) 03:54:43 #17765409
그녀가 육성으로 「타카마사 군」을 언급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항상 아이들에게 경고를 하거나 해서 부를 때면 딱딱하게 「성씨 + 군/양」 형식을 유지했었고, 우리의 일상에 「타카마사 군」이 간섭할 여지는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괴리가 한층 더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것 같았고, 생각할수록 혼란스러워지는 그 감각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Bar_3882 2024/03/21 (화) 04:06:19 #17765409
어느덧 저는 그녀의 서류를 훔쳐보는 것이 일과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고압적으로 대하는 것 치고는 허술한 면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서류 중에는 명백히 아이들이 봐서는 안 될 것들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제 목표는 항상 지도안이 적힌 A4용지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도 어딘가 이상하리만큼 강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타카마사 군이 자를 던졌다, 폭력적인 단어로 대답했다. 짐을 내팽개치고 치우지 않았다, 배포받은 프린트를 찢어버렸다, 그렇게 기록하는 필적은 언제나 거칠었던 기억입니다. 「타카마사 군」의 동향은 언제나 달리 취급되고 있었습니다.
Bar_3882 2024/03/21 (화) 04:18:38 #17765409
아마 2학기 말쯤, 폭우가 내려 방과후 활동이 제한되었던 날로 기억합니다. 그 날도 저는 서류가 쌓인 교탁을 익숙한 동작으로 뒤지고 있었습니다. 타카마사 군의 행동은 소학생 어린이에게 흔한 경향이었지만, 그래도 어린 시선에 진열되어 있는 아동문학보다 훨씬 흥미진진하게 임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교시간이 지나 사람 없는 교실에서 서류를 뒤져보는 아이의 모습이란 어째 섬뜩하게 느껴졌을 법도 합니다.
그 와중, 익숙한 챠임벨 소리와 함께 방송이 흘러나왔습니다. 오늘은 방과후 교정을 사용할 수 없다. 아직 학교에 남아 있는 아동은 속히 귀가하라. 방과 후 직전에 담임이 전달했던 내용이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류를 읽던 저는 완전히 넋이 나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 당황한 나는 어리석게도 서류를 내팽개친 채 귀가해 버렸던 것입니다. 묘하게 광택이 강한 서류 케이스 뚜껑도 열린 채였습니다. 베이지색 마룻바닥에 방치되어 있던 가방을 밟아 몸의 균형이 무너진 기억은 묘한 선명함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Bar_3882 2024/03/21 (화) 04:34:40 #17765409
그 후의 전말은 여러분도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평소보다 한층 더 엄한 태도를 연출하며 교단에 버티고 선 그녀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도도히 늘어놓으며 교사가 가진 정보를 뒤지는 아이란 얼마나 못돼먹은 것인지 형용했습니다. 다른 교사가 손댔다거나, 자신이 관리를 게을리했다거나, 그런 선택지는 그녀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때만큼은 저도 바지 끝단을 꽉 움켜쥐고, 평온한 분위기를 자아내려고 한껏 노력했던 기억이 납니다. 누가 떨어뜨렸는지 알 수 없는 이빨자국 남은 연필에 시선을 보내다가, 장장 20분에 걸친 연설이 끝났을 때 남몰래 숨을 내쉬었습니다.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종업식을 맞았고, 짧은 방학을 거쳐 신학기를 맞이했습니다. 나는 정신을 못 차리고 「타카마사 군」의 행동을 살피기 위해 그녀의 교탁 주위를 뒤졌습니다만, 어디를 찾아도 그 서류 케이스는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함정수사를 당할 리스크를 생각지도 못하던 저는 역시 어린아이였던 것입니다.
Bar_3882 2024/03/21 (화) 04:45:03 #17765409
아무리 호기심이 강하고 자제심이 부족한 소학생이라 해도, 보름 정도 소득이 없으면 기대감이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결국 포기하고 만 나는 학교에 다니는 즐거움 하나를 상실했습니다.
제 기억 속의 「타카마사 군」은 분수를 계산하는 수업 중에 기괴한 고함을 질렀다는 상태로 정지해 있었습니다. 검푸른 수성잉크가 작은 원형 얼룩을 형성하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Bar_3882 2024/03/21 (화) 05:05:32 #17765409
3학기 말쯤, 그녀가 학교를 떠난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원래 임기가 1년만 정해져 있었다고 했습니다만, 지금 와서야 진실인지 알 길 없습니다. 그 해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특별한 인사도 없이 떠나는 등 뒤로 아무런 위화감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급우 36명 전원 진급을 마쳤고, 다음 학년이 시작될 무렵에는 제 나쁜 버릇도 거의 사라졌습니다. 떠올려 봐도 특별한 기억이 없는 걸 보면, 분명 평화로운 한 해였을 것입니다. 비교적 대규모이지만 평화로운 모교는 지역 내에서도 드물게 한가로운 환경이었습니다. 유일하게 옆자리 아이를 향해 요즘 조용해졌네, 농담을 던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Bar_3882 2024/03/21 (화) 05:38:49 #17765409
실례합니다. 거의 다 써서 마무리할 예정이었는데 한 가지만 더.
최근 교육현장은 소위 말하는 이지메 문제에 민감하지요. 매일 보도되는 처참한 폭행이나 귀를 막고 싶은 호소들도 제3자에 의한 조사능력이 발달했을 뿐, 발생 건수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동이 없다는 의견도 들려옵니다. 그래도 한가로운 학창생활을 보내는 제게는 아무래도 실감이 나지 않는 화제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급활동, 소위 말하는 조례 시간에 담임이 신묘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아이들에게 실없는 농담이나 흉내를 내서 어린이들 사이에 인기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던 양반이었는데, 당시 저는 담임의 얼굴이 부자연스럽게 딱딱한 표정으로 변모하는 것에서 형용할 수 없는 긴장감을 느꼈습니다.
Bar_3882 2024/03/21 (화) 05:44:19 #17765409
그는 학급 전체를 향해서 「특정한 사람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모두들 사이좋게 지내길 바란다」, 그런 내용으로 말했습니다. 실제로는 그 언사가 몹시도 모호해서 어딘가 핵심을 언급하는 것은 피했던 것처럼 느껴집니다. 당시 저는 그 분위기에 겁을 먹으면서도, 시한이 끝난 뒤 배포된 설문지에는 모두와 문제없이 잘 사귀고 있다는 취지로 적었습니다.
다시 한번 적어 보자면, 그는 우리 학급이 어떤 가해를 했다고 의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혹은 확신이 결여된 채 배경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온당한 생활을 하고 있떤 저로서는 아무런 짐작도 가지 않았지만, 좀전에 이야기한 여교사의 존재와 시기가 겹쳐서인지, 소학교 시절에 유일하게 불온한 연도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누구 이야기인지,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명확히 말해주지 않는 담임에게, 어린 마음에도 불신을 느꼈습니다.
Bar_3882 2024/03/21 (화) 05:58:22 #17765409
이상이 소학생 시절 조우했던 체험입니다. 비상근 선생이라고 불가사의한 사람들이 묘하게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실 그 밖에도 쓰고 싶은 이야기가 산적해 있습니다만, 오늘은 이쯤에서 맺겠습니다. 쓰다 보니 제 자신의 기억에 위화감이 생겼고, 슬슬 출근 준비도 시작해야 하니까요.
by
Salamander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