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투자"
DrClef
"이건 바보짓이야." 스컹크보이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카멜레온 천 패드에 누인 몸을 들썩거렸다. 36시간째였다. 슬슬 팔꿈치며 무릎에 욕창이 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가장 큰 문제는 오줌 담는 주머니가 동나기 직전이라는 것에, 지사제와 MRE 땅콩버터를 그렇게 먹었어도 똥은 누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땐 들킬 위험을 무릅쓰고 건물로 숨어들어 가든지 아니면 다른 대안을 동원해 여기서 더 비참한 꼴이 되든지 양자택일해야만 했다.
요컨대 정찰 저격수가 보통 투입되는 임무와 별다를 것 없었다. 숲이나 사막 한가운데가 아니라 홍콩 마천루 옥상에 홀로 엎드려 있다 뿐이지. 다만 주변이 너무나 시끄러워 돌아 버릴 것 같았다. 양 귀에 마개를 꽂았는데도 건물 환기 장치의 윙윙대는 굉음 때문에 하관이 덜그럭댈 지경이었다.
스컹크보이는 눈을 깜박여 피로를 몰아낸 뒤 꾹 감았다 떠서 물건이 둘로 뵈는 흐릿한 시야를 바로잡고 다시 정찰 스코프를 들여다보았다. 그래도 홍콩의 야경은 제법 멋진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구경할 시간이 없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부둣가에 늘어진 물류 창고 볼 시간은 차고 넘쳤지만.
그때 깜박이는 불빛과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스컹크보이는 스코프를 조심조심 천천히 그리로 향한 뒤, 고개를 끄덕이고 여섯 시간 만에 처음으로 목 마이크를 켰다. "스파크플러그 투가 전원에게. 수신 양호한가? 이상."
"스파크플러그 원, 수신 양호하다."
"쓰리, 양호하다."
"포, 양호하다. 이상."
"알았다. 전원 수신 양호. 투다. 임무 보고한다. 예정대로 상대측이 부두로 접근 중. 차량은 총 네 대. 다음과 같다. 컨버터블 스포츠카 한 대, 빨간색, 상당히 개조됨. SUV 두 대, 모두 검은색. 밴 한 대, 검은색. VERITAS 스캔 중… 스포츠카에 두 명. SUV에 각각 네 명. 밴에 두 명… 밴 짐칸에 VERITAS 시그니처 없다. 모두 일반적인 인간으로 보이며 초상위협은 없다. 끝."
"어엄, 포다." 거미가 끼어들었다. "밴 짐칸에 VERITAS 시그니처가 정말 없는지? 최소 하나는 있어야 맞다. 이상."
"투다. 잠깐 기다려라." 스컹크보이는 VERITAS 스코프의 설정을 조절하고 다시 밴을 스캔했다. "응, 어림없다, 거미. 똑같다, 이상."
"말도 안 됩니다. 리스트엔 살아 있는 생물 최소 한 두라고… 이런 망할." 거미가 무어라 중얼중얼하는 소리가 들렸다. 같은 조의 이 기적사는 심란하면 서성거리는 버릇이 있는데 또 그러고 있을 게 뻔했다. "망할."
"임무 중단을 희망하나, 거미?" 황소개구리가 끼어들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거미가 말했다. "하지만 동태를 주의 깊게 살피는 것이 좋겠습니다. 상황이 좀 이상합니다."
"알겠다. 임무 계속한다. 총격전 발생 시 내가 신호한다. 이해했나?"
"투다. 원이 발포 혹은 명령할 때까지 대기한다. 이상."
"쓰리." 고양이가 말했다. "원이 먼저 발포한다. 이상."
"총격전이 벌어지면 저는 뭘 해야 합니까?" 거미가 물었다.
"냉큼 엎드려서 엄폐물을 찾아라." 황소개구리가 말했다. "그리고 총에 안 맞게 해달라고 빌도록."
"제 미래가 장밋빛은 아니군요." 거미가 냉소적으로 말했다.
"뭐 어쩌겠나. 잡담은 이쯤 하지. 교신 끝."
스컹크보이는 자세를 바로 하고 발끝을 살짝 뻗었다. 앞으로 조금이면 이 짓도 끝이다.
"과연 라오 펑이 이 일을 반기실까." 정이 중얼거렸다.
"알 게 뭐야." 양이 말했다. "그 영감탱이 믿는 미신은 걸림돌밖에 안 돼. 이러는 동안에도 은검 녀석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데… 이제 와선 여자로도 총으로도 약으로도 못 이겨. 우리도 초장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이건 매춘부나 헤로인은 물론이고 총 장사랑도 다르단 말이야." 정이 역설했다. "핵폭탄이나 화학 무기 거래에 엮이는 것에 가깝지… 난 별로야."
새삼스러운 말싸움도 아니었다. 두 사내는 며칠 동안 몇 번이고 대거리를 했었다. 그때마다 논쟁은 똑같이 끝났다.
"저우시왕이랑 그놈 부하들 때문에 우리 다 죽는 꼴 보고 싶어? 그 왼손잡이 개잡놈이 여동생들 주물럭거리는 꼴 보고 싶냐고?" 양이 으르렁대며 말했다. "은검이 시장을 점령하면 그렇게 될 거라니까."
"물론 나도 그건 싫지만… 씹. 뒤지게 무섭단 말이야."
"겉으로 드러내지만 마." 양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외국인들 앞에서 지리지 말고."
"난 언제나 형 편인 거 알잖아."
"잘 알지." 양이 말했다. "자, 진지하게 가자고, 아우야."
빨간 컨버터블이 물류 창고 앞에 멈추어 선 뒤 SUV 두 대와 물건을 실은 밴이 잇따라 정차했다. 어스름한 불빛 아래 휑한 창고 안을 보던 양이 미간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머릿수가 적군." 양이 말했다.
"콧대 높은 새끼들." 정이 맞장구쳤다.
양이 컨버터블에서 내려 종종걸음을 치며 첫 번째 SUV에 다가가 차창을 두드렸다. 선팅 처리된 창문이 내려가고, 얼굴 왼편을 흉하고 쭈글쭈글한 흉터가 가로지르는 냉소 띤 우람한 사내가 나타났다.
"뭡니까?"
"저쪽에 세 명뿐이다. 괜스레 겁주고 싶지 않으니 나머지는 밖에 대기시켜." 양이 말했다.
"씹, 진짜 괜찮겠어요? 일이 꼬이면 어쩌려고?"
"저치들이 우리가 뒤통수칠 거라고 생각하면 일이 꼬일 가능성만 더 높아지잖냐. 전부 밖에 있으라고 해." 양이 단호히 말했다. "하지만 경계는 늦추지 말고… 애들 똑바로 무장해 놔."
"나만 믿으십쇼."
양은 SUV에 비친 제 모습을 보며 잠시 옷깃을 매만진 뒤 컨버터블 옆에 선 정에게 돌아갔다. "준비됐어?" 그가 물었다.
"그래, 가자."
어슴푸레한 물류 창고 안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개중 두 명은 골 빈 건달 같았다. 하나는 큰 키에 근육질인 여자였는데, 두 눈은 지루해 보였고 머리는 짧았다. 다른 하나는 키가 작고 풍채가 좋아 뵈는 남자로, 수염이 풍성했고 몸에 맞지 않는 정장은 딱 바라진 가슴 때문에 팽팽했다. 양은 그 둘을 무력 담당으로 분류했다. 아마 그들의 경호 대상일 마지막 사람은 잘 빠진 맞춤 정장을 입은 동양인 여성으로, 꽤 젊었으며 골반이 넓어서 그런지 제법 매력적이었다. 애써 침착한 척하고 있지만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툭하면 안경을 밀어 올리고 값비싸 보이는 태블릿을 만지작대는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진짜 보스는 따로 있고 이 여자는 신입 보좌관일지도 몰랐다.
"늦었잖아." 여자가 창고로 걸어 들어오는 양에게 쏘아붙였다. "부하도 너무 많이 데려왔고."
"그쪽이 너무 안 데려온 건 아니고?" 양이 안심하라는 듯 씩 웃으며 말했다. "나한테 그만한 현금이 있다면 경호원을 둘만 데리고 오진 않을 텐데."
"둘 아닌데." 젊은 여자가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앞머리 한 가닥을 초조하게 만지작댔다. "밖에 있는 덩치한테 부하들 보내서 우리 옆을 칠 생각은 관두고 가슴팍이나 좀 내려다보라고 해."
양이 뒤로 돌아 문밖을 내다보더니, 입술을 감쳐물고 정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씹창면상." 정이 무전기에 대고 을렀다. "없는 대가리 그만 굴리고 애들 차 안으로 돌려보내."
"하지만…"
"가슴팍을 보라고, 등신 새끼야." 정이 사납게 말했다. "저 외국인들이 널 노리고 있잖냐."
한순간 무전기 너머로 욕설이 쏟아졌다. 얼굴에 흉터가 있는 조폭이 이제야 제 가슴에 떠오른 빨간 점을 본 것이었다. 이윽고 사내들이 쭈뼛쭈뼛 어둠 속에서 나와 종종대며 자동차로 돌아가면서 한차례 소란이 벌어졌다.
"저격수가 정말로 레이저 사이트를 쓰는 줄은 몰랐군." 양이 혼잣말했다. "그것도 설마 눈에 보이는 걸."
"잘 생각해 보고… 염두에 두라고." 여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방금 건 잘 해결됐으니 이제 거래 얘기로 넘어갈까?"
스컹크보이는 조용히 레이저 포인터를 끄고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얕은수지만 위협용으로는 꽤나 잘 먹혔다.
키가 더 크고 멋들어진 실크 셔츠를 입은 사내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그 친구가 무전기에 대고 몇 마디를 을렀다. 그러자 커다란 밴이 SUV 곁에서 물러나 물류 창고 문 쪽으로 다가갔다.
"아이 씨." 스컹크보이가 통신으로 속삭였다. "밴 안쪽은 조준선이 안 닿습니다만."
"바깥에 있는 새끼들이나 감시해." 황소개구리가 나직이 말했다. "밴은 나랑 고양이가 맡을 테니."
"대장, 밖에 있는 새끼만 여덟이에요." 스컹크보이가 징징댔다. "아무리 저라도 한 번에 여덟은 무리라고요."
"우두머리 잡고 나머지는 쭈그리게 하면 되잖아." 황소개구리가 말했다. "우리도 최대한 빨리 지원해 줄 테니까."
"그게 말처럼 쉽나." 스컹크보이는 그렇게 쭝얼거렸지만, 다시 고개를 내리고 소총 스코프로 물류 창고 밖을 훑어보았다.
그래도 만약을 위해, 약실에 한 발을 넣었는지 꼼꼼히 확인했다.
밴 문이 열리자 젊은 여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짐칸 안에 손을 뻗어 철사 케이지의 굵은 창살을 덜컹덜컹 흔들었다. "…죽었잖아." 여자가 말했다.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살아 있었어." 양이 딱 잘라 말했다.
"근데 지금은 죽었잖아." 여자가 쓰읍 소리를 내더니, 한 번 더 케이지 창살을 흔들고서 양팔을 펼쳤다. "죽은 걸 어디에 갖다 쓰라는 거야?"
"박제나 표본으로? 나야 모르지…"
"잠깐." 여자가 사납게 말했다. "케이지 창살이 강철인가?"
"문제가 되나?"
"당연하지! 이 녀석들은 철금속에 알레르기가 있단 말이야!" 여자가 버럭 화를 냈다. "그러니 오는 중에 죽어 버렸지! 반도 못 가서 쇼크 때문에 뒤졌을 거라고! 머리에 든 것도 없는 네 부하들은 그것도 눈치 못 챘단 말이야?"
"카이?" 양이 을렀다.
"…비명을 지르면서 몸부림치는 소리를 듣긴 했습니다!" 어린 사내가 시인했다. "그렇지만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이 멍청한 개잡놈이!" 양이 소리쳤다. "그런 일이 있으면 얘기해야 할 거 아니야!"
"하지만…" 카이가 멈칫하고 뒷말을 삼키고는 양에게 깍듯이 머리를 숙였다. "면목 없습니다."
"밴으로 기어들어 가서 짐이나 내려. 넌 나중에 보자." 양은 그렇게 소리치고 여자를 보며 최선을 다해 제일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이 일은 정식으로 사과…"
"돈은 다 못 줘." 여자가 끼어들었다. "이백만만 내지."
"그건 반값이잖아!" 정이 반발했다. "못생긴 짐승 하나 죽었다고 이러는 게 어딨어?"
"그 못생긴 짐승이 상품 중에 가장 귀한 거였어. 나머지는 다 장식이지. 이백만. 싫으면 돌아가."
"받지." 양이 딱 잘라 말했다. 그러고는 친구를 보며 나직이 말했다. "저 사람들이 우리 대신 은검이랑 거래해도 좋다, 이거야?"
"…이백만으론 턱도 없어. 그 돈으로 무장은 무리야. 못해도 삼백만은 있어야지." 정이 지적했다.
"지금은 이백만만 받고 넘어가자. 나중에 이 외국인들이랑 또 거래 트면 돼."
"그전에 은검이 나서면 어쩌려고."
"그렇게 안 되길 빌어 봐야지." 양이 말했다. "이백만 중에 얼마를 따로 떼서 제향이나 사 보든가."
그는 친구의 어깨를 팍 치고 도로 외국인들을 보았다. "이백만으로."
"어우 씨발, 천만다행이다." 스컹크보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지체했어도 창고 밖에 있는 저 못생긴 놈이 총 갈겼을 거라고요. 총집에서 빼 들기까지 했다니까요."
"뭐, 이제 다 끝났잖아." 황소개구리가 말했다. "이만 짐 싸고 어서 이 나라를 뜨자고."
"예, 그럼 이따… 잠깐만." 시야 구석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걸 본 스컹크보이가 멈칫하고는, 스코프를 왼쪽 아래로 향했다. "씨발!" 그가 외쳤다. "대장, 저 사고 쳤어요!"
양은 깜짝 놀랐다. 덩치 큰 외국인, 남자 쪽이 한 손을 귀에 얹고 고함쳤기 때문이었다. "상황 보고!" 영어로, 엄청 크게. 그 외국인 남자가 젊은 여자의 어깨를 붙잡고 밴에서 떨어뜨려 바닥에 내리꽂으며 다른 손은 외투 안쪽에 넣자, 양은 더 놀랐다.
"갑자기 뭐야?" 양이 외쳤다.
"공격이다!" 황소개구리가 소리쳤다. "어디서 뒤통수를 치고 있어!"
양은 씹창면상 덩과 부하들을 향해 태세를 갖추라고 소리치려 했지만, 고개를 돌렸을 때 보인 것은 부하 중 여덟 명이 총을 빼 들고… 그를 겨눈 광경이었다.
아. 이쪽 뒤통수구나.
양이 정의 멱살을 잡고 바닥에 꽂는 순간 총격전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쉬울 수가 없었다. 부하 중 두 명만 동조하지 않았는데, 그 둘은 지금 양과 정과 함께 물류 창고 안에 있었다. 애들 몇 명을 빼내 뒷문을 막으려는 계획이 실패한 건 분했지만, 일단 저배당으로라도 걸어 봐야 했다.
씹창면상 덩은 머리가 잘 돌아가는 편은 아니었지만, 시대의 흐름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이제 라오 펑의 시대는 가고 저우시왕의 시대가 온 것이었다. 그 노인네한테 악감정은 없었지만, 은검이 동원할 수 있는 자원 앞에 조직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전무했다.
라오 펑은 구닥다리였다. 신이니 신령이니 하는 것들이나 믿었으니. 아직도 그런 케케묵은 사고방식을 갖고 있으니 망할 수밖에 없었다.
실력 좋은 부하들, 저우시왕이 써먹을 수 있는 애들을 희생시키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양 그 씹호모 새끼 천벌 받는 건 볼 수 있겠다 싶었다.
"스컹크보이!" 황소개구리가 통신으로 소리쳤다. "저 새끼들 다 죽여 버려!"
"안 됩니다!" 스컹크보이 역시 소리쳤다. "삼합회 새끼들이 바글바글한 차가 지금 세 대가 오고 있습니다 씨발!"
"썅!" 황소개구리가 외쳤다. 이놈의 임무는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좆같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총알이 그의 머리를 핑 하고 지나쳐 나무 상자를 박살 내고 밴 옆구리에 구멍을 숭숭 뚫었다. 벌써 삼합회 한 놈이 피 웅덩이에 쓰러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또 한 놈은 밴 바퀴 뒤쪽에 움츠린 채 욕을 지껄이고 훌쩍거리며 다리에서 철철 흐르는 피를 지혈하려 하고 있었다. 두 번째 총알 세례가 콘크리트를 스치고 배에 쏟아지자, 남자가 피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나머지 조직원 두 명은 황소개구리네 조와 마찬가지로 엄폐물 뒤에 숨는 데 성공했다. 멋들어진 셔츠를 입은 우두머리 사내와 매서운 눈을 한 친구였다. 두 사내는 권총을 들고 상자 더미 위로 난사하다가, 포화가 또 허공을 수놓자 몸을 수그렸다.
황소개구리는 상황이 퍽 여의치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머릿수와 화력 면에서 불리한 채로 구석에 몰려 있었으니까. 지금이야 엄폐라는 이점을 가지고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적들이 측면을 치고 말 터였다. 그러면 죽음이다.
바보짓 하기 딱 좋은 시점이었다.
"고양이!" 황소개구리가 외쳤다.
키 크고 강단 있는 여자가 제 자리에서 흘긋 눈길을 보냈다. 예나 지금이나 한 치의 변함없이 무료한 표정이었는데, 심지어는 우수수 쏟아진 총알 중 하나가 얼굴 바로 옆을 훑고 지나가 머리가 헝클어져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황소개구리가 권총을 콘크리트 바닥에 미끄러뜨려 조원에게 보냈다. "뭐라도 해 봐." 그가 외쳤다.
고양이의 두 눈이 번뜩였다. 이내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가더니, 섬뜩하고 노기 어린 미소를 그렸다. 황소개구리는 고양이가 정장 외투 아래 감춘 칼집에서 지금껏 본 것 중 가장 큰 칼을 꺼내더니 입으로 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고양이가 눈을 감고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훅 내뱉었다.
그리고 몸을 움직였다.
스컹크보이는 미합중국 해병대에 애증이라고나 할 만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거기서 오 년이나 구르면서 맛도 더럽게 없는 밥과 모자란 동기들을 꾹 참고 견디고서 남은 거라곤 사실상 현대 군대를 향한 증오와 경멸뿐이었다. 슬로건이 없으면 말을 못 하는 개병대원은 이제 지긋지긋했다. 전역하고 나서 모병관이 재입대를 희망하냐고 물었을 때, 그는 그자의 면상에 대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해병대의 방식이 유용할 때도 있었다. 가령 홍콩 건물 옥상에 홀로 누운 사수로서, 피에 굶주린 삼합회 조직원이 빽빽이 들어찬 커다란 밴 세 대를 멈춰야 할 때라든가.
그런 상황에서는 그 옛날 패리스 아일랜드1에서 주입받은 가르침보다 더 안락하고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이 없었다.
"이게 내 소총이다." 스컹크보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소총을 끼고 조준선을 정렬했다. "비슷한 게 많아도 이 총이 내 총이다."
여유가 있으니 명중을 노려볼 생각이었다. 차들이 두 물류 창고 사이에 난 좁은 길을 빠져나오기 직전에 맞출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소총은 나의 둘도 없는 벗이다. 나의 삶이다. 인생을 갈고닦는 마음으로 소총을 갈고닦자."
운전자는… 맞추기 힘들 것 같았다. 그렇다면 엔진이 어떨까?
"나 없는 소총은 쓸모없다. 소총 없는 나는 쓸모없다. 정확히 맞도록 소총을 쏘자."
심호흡. 들이쉬고. 내쉬고. 정신을 집중한다. 조준선을 정렬한다. 심장 고동에 몸을 맡긴다.
"나를 죽이려는 적보다 똑바로 쏘자. 적이 나를 쏘기 전에 내가 적을 쏘자."
탕.
첫 방은 훌륭했다. 그러나 스컹크보이는 탄환이 적중하기도 전에 노리쇠를 당겼다 밀고 재차 조준했다. 총알이 자동차 후드에 박히는 건 보지 못했지만 후드에서 연기가 치솟는 모습은 훤히 보였다. 두 번째 탄을 쏘고 나서 운전석 창문이 산산조각 나는 걸 보니 마음이 흡족했는데,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어찌나 세게 밟았는지 뒤따라오던 차가 앞차를 들이받았다. 운전자가 비틀거리며 차에서 내리더니 자기편을 향해 손 흔들며 고함을 치는 게 보였다.
"반드시."
탕.
선두 차 운전자가 비틀대다 땅에 엎어지고는, 배를 부여잡고 괴로워하며 대굴대굴 구르는 모습이 보였다. 조수석에 탄 사내가 몸을 기울여 차를 부리려고 하자, 스컹크보이는 후드에 덤으로 한 방 더 쏴 주었다.
그리고 일에 착수했다.
씹창면상 덩은 어슴푸레한 물류 창고 안에서 연막탄 두 개가 굴러 나와 사방에 붉은 연기를 내뿜고 온 세상을 핏빛 안개로 덮어 버렸을 때 처음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가로등 불빛 아래서 연막이 분위기를 음산하게 만들었다.
"경계해라!" 그가 부하들에게 외쳤다. "이 틈을 타 도망갈지도—"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키 큰 외국인 여자가 개활지를 질주하는 모습이 보였다. 부릅뜬 두 눈은 사나웠고, 입에는 큼지막한 칼이, 양손에는 권총이 하나씩 있었다.
씹창면상 덩은 웃고 싶어졌다. 쌍권총은 명중률이 턱없이 딸린다는 걸 누가 몰라! 오우삼 액션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눈먼 총알이 빗발치자 그는 밴 뒤에 몸을 숨겼다. 난사에 가까웠기에 예상대로 아무도 맞지 않았다. 이제 탄약이 다 떨어지기만 기다리면…
그때 난봉꾼 루가 쓰러졌다. 무언가가 이마를 강타하고 허공에서 팽그르르 돌았는데, 그년이 쥐고 있던 권총 중 하나였다. 돌대가리 카이가 쏘려고 하자, 여자가 기관단총을 발로 차 떨구어 버린 뒤 빈 권총 손잡이로 카이의 얼굴을 치고 그 좆나게 큰 칼로 목을 갈라 버렸다.
애초에 맞출 생각으로 쏜 게 아니었던 것이다.
쌍권총은 그와 부하들이 몸을 숙이게 만들고 그 틈에 거리를 좁히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여자가 빈 권총 한 자루를 미끄러트려 물류 창고 쪽으로 보내자, 덩치 큰 외국인 남자가 한 발로 총을 멈추고는 재장전했다. 그리고 창고 벽을 낀 채 두 손으로 권총을 들고 천천히, 정밀하게 발포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부하 여섯 명이 당했다. 그 미친년이 칼로 두 명을 더 죽였고, 나머지 두 명은 덩치 큰 남자가 쏜 총에 맞았다. 전의를 잃은 덩은, 돌아서서 잽싸게 튀었다.
도망치는 그의 귓가에 남은 부하 둘이 지르는 비명이 들려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소리도 뚝 끊겨 버렸다.
스컹크보이는 우왕좌왕하는 적을 보고 누가 막대기로 헤집어 놓은 개미집을 떠올리고는 했다.
삼합회 녀석들은 오도 가도 못하고 아무 데나 겨누며 무작정 창문에 총질을 하다가 서로에게 고함질렀다. 우스울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장엄하게 소총수의 신조를 외기는 좀 그랬다. 그보다는 조금… 신나게 가야지.
"우리의 표적은 병자, 애새끼, 절름발이, 열과 성을 다해 불구로 만들지." 그는 흥얼거렸다. 지금 입이 귀에 걸렸다는 건 알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일단 죽이면 다 공적이거든…"
탕!
"네이팜이 애들 몸에 붙네…"
스컹크보이는 소총 탄창을 뽑고 종전에 비운 두 개 옆에 가지런히 놓았다. 그리고 다음 탄창을 조심스레 끼운 뒤 노리쇠를 당겼다 밀고 소총을 도로 어깨에 가져다 대었다.
"밀림을 가로질러 낮게 날며, 조종사들은 자기 멋대로…"
탕!
또 삼합회 한 놈이 쓰러졌다. 이제 네 명이다.
"피난민 위로 세열을 떨궈… 네이팜이 애들 몸에 붙네…"
결론적으로 일이 생각보다 잘 풀리고 있었다.
"상황 보고!" 총성이 멎자 황소개구리가 소리쳤다.
"지원군 발 묶어 놓았습니다." 스컹크보이가 보고했다. "당장이라도 후퇴할 기세네요."
"여덟 명 제거, 한 명 도주." 고양이가 말했다. "얼굴에 흉터 있는, 총격전을 시작한 놈입니다."
"그 새낀 내가 잡을 거야." 정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라오 펑께서 그놈이 그대로 달아나게 놔둘 리 없어. 하룻밤에 실력 좋은 싸움꾼이 열이나 죽었으니."
"그래." 양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일단은…" 양은 종전에 우두머리라고 생각했던 동양인 여자를 향해 깍듯이 고개를 수그렸다. "사과드립니다." 양이 말했다. "내가 부하들을 제대로 통솔하지 못해 우리 모두를 위험에 빠트렸지요. 만일 여러분이 이런 사태에 대비하고 있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겁니다. 반드시 그 배신자를 찾아내 징벌하겠습니다."
"내 손에 잡히면 불알을 떼서 생으로 처먹여 버릴 거야. 먼저 그놈 때문에 죽은 애들 수만큼 손가락을 자르고." 정이 맞장구쳤다.
"그건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거미가 말했다. 안경을 제자리로 치키는 거미의 검은 눈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씹창면상 덩은 홀로 골목길을 비척거리며 눈물지었다.
이럴 순 없었다. 이건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 미국인 새끼들이 잘 훈련된 삼합회 킬러 열 명을 칼 한 자루와 총 한 자루로 몰살하다니, 말도 안 됐다. 씹창면상 덩은 라오 펑의 부하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어야 마땅한 일이었다. 그 공포의 대상이 바지에 오줌을 지리고 한 팔에는 깊숙한 자상을 입은 채 전투에서 달아나다니, 말도 안 됐다.
이대로 저우시왕에게 가야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양 그 씹호모가 모두에게 이번 사건을 알릴 것이 뻔했다… 그리고 조직 사회는 배신자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도박을 했다 잃었으니… 밑천까지 날리기 전에 판에서 발을 빼야 했다.
떠오르는 햇빛 속으로 발을 내디딘 순간, 갑자기 아랫배가 콱 쑤시듯이 아팠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져 배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돌연 척추 끝에서 격통이 일어나 천천히 등을 타고 올라오자 아우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내 불 그 자체가 시신경을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자 그는 두 눈을 움켜잡고 눈물을 흘렸다.
홍콩에 해가 떠오를 무렵, 씹창면상 덩이라고 불리는 사내가 극심한 고통 속에 몸을 뒤틀며 아우성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못 하고 그저 폐창고 그림자 속에 웅크리고 누워 연신 비명만 지르면서.
거미는 삼베 인형의 고간을 추가로 한 번 더 찌른 뒤, 고양이의 칼을 써서 인형을 밴 옆구리에 붙박았다. 몇 주 전에 묘지 흙과 이산화 규소 한 줌을 속에 넣고 바느질해 만든 인형이었다. 목표를 찾는 데 필요한 전염성이 있는, 원하는 표적과의 연결 고리만 있으면 준비는 끝이었는데… 그러한 연결 고리에는 고양이가 쿠크리로 불쌍한 덩의 팔을 극적으로 갈라 버렸을 때 흐른 피도 포함되었다.
"이제 다 끝난 건가, 거미?" 황소개구리가 물었다.
"예, 끝났습니다." 거미가 삼합회 우두머리 두 명에게 고개를 돌리고 자연스럽게 어릴 때 배운 만다린어로 말했다. "한때는 너희 동료였던 그 배신자 새끼는 부두 동쪽에 있을 거야. 아파서 비명을 지르고 있겠지. 그놈을 찾기 전까지는 이 칼 뽑지 마."
"…그쪽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야?" 근사한 셔츠를 빼입은 멋쟁이가 물었다.
"…그건 신경 쓰지 마." 거미가 안심하라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보단 그쪽이 지금 누구인지나 생각해야지."
"누군데?"
"저우시왕한테 붙은 배신자를 잡아내 산 채로 라오 펑께 바친 부하들."
거미는 고양이와 황소개구리가 타고 있는 밴 뒷자리에 올라탔다. 거미가 시전하는 동안 그 두 사람이 상품을 모두 차에 실은 참이었다. 거미는 정신이 얼떨떨해 보이는 중국인 조직원들에게 손을 흔들며 모두와 함께 물류 창고를 빠져나갔다.
"이제 스컹크보이를 회수하고 홍콩 경무처의 눈을 피해 어떻게든 집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고양이가 지적했다.
"어." 황소개구리가 말했다.
"그냥 확인차." 키 큰 여자가 등받이에 몸을 기대더니 눈을 감았다.
잠시 후 고양이가 코를 골기 시작했다.
"가끔은 이 미친년이 부럽다니까." 황소개구리가 시인했다.
"합동 작전을 수락했을 때 제가 예상했던 결과와는 좀 다르군요." D.C. 알 피네가 맞은편 의자에 앉은 중국인 노옹의 아롱아롱 빛나는 형상을 향해 말했다.
"목표는 완수했소. 수송을 멈추었지. 박쥐를 잡아냈고, 저우시왕의 위법 활동도 머잖아 결딴날 거요." 불사백합형제회의 수장 라오 펑이 말했다. 라오 펑은 알 피네의 사무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찻잔을 집어 홀짝이고는, 냅킨으로 가장자리를 훑고 도로 티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홍콩 물류 창고에 총알구멍을 내고, 열 명이 넘는 사람을 죽인 데다, 경무처의 시선을 확실하게 끈 것도 잊어선 안 되지요." 알 피네가 지적했다. "그 밀정에게서 무얼 알아냈는지 몰라도 쓸모 있는 정보였으면 좋겠군요.
"쓸모 있는 정보요. 저우시왕이 폐공장을 발견한 뒤 차지해서 다시 가동했다는 사실을 알아냈소. 날마다 위협존재급 아티팩트를 대량으로 찍어 내고 있었지. 싸구려여도 값이 경쟁자들 것보다 훨씬 저렴했던 것이오." 라오 펑이 소리 내 웃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이렇게 아이러니할 수가."
"혹 그 조직을 와해하는 데 도움이 필요하신지요? 타격조를 좀 붙여 드릴 수 있습니다만."
"우리 불사백합형제회가 라이벌 조직을 치는 데 그대의 도움을 구하는 그날이 바로 우리가 세계 오컬트 연합에 가맹하는 날일 거요." 라오 펑이 정중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거절하겠소. 도와주어 고맙지만 이 일은 우리 손으로 처리해야 하오."
"공장을 모두 연합에 넘겨주기만 하신다면야." 알 피네가 단호히 말했다.
"물론이오. 초상에 엮이고픈 마음은 추호도 없소. 혼령과 신들의 일에 한낱 홍콩 사업가가 끼어들어선 안 되는 법이지."
"마음대로 되지는 않을 것 같군요. 신임 두터운 측근 둘이 보스 몰래 초상무기 거래를 꾀하다니, 예삿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내 진즉 알고 있었소. 조직에 숨은 배신자를 잡아내고 싶었으니 그러지 않았다만, 진즉 대화 자리를 마련하려 할… 했을… 것이오. 이렇게 됐으니 양에게는 사과와 함께… 해명을 전해야겠소. 슬슬 불사백합형제회의 정체를 알려 주어야 할 것 같군그래."
"반기지는 않을 텐데요. 삼합회인 줄 알고 들어간 조직이 사실은 먼 옛날부터 이어진 중국의 괴수 사냥꾼 결사였으니."
"곧 적응할 거요. 그럼, 이만 실례하겠소."
"살펴 가십시오, 라오 펑."
"…있잖아." 정이 한숨지었다. "이대로 가다간 형 따라 요절하게 생겼어."
두 조직원은 불사백합형제회의 안전 가옥 한 곳에 딸린 발코니에 나란히 앉아, 노을로 물든 홍콩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시가 이렇게 아름다워 보이는 건 처음이라고, 양은 생각했다.
"그러게 누가 따라오래." 양이 지적했다.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었잖아."
"죽는 게 더 쉽지." 정이 말했다. 정은 친구의 손에 제 손을 포갠 뒤 고개를 기울여 그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아무튼 이번엔 형이 나한테 신세 진 거다."
"복룡에서 저녁이나 한 끼 살까, 그럼? 열기가 좀 식고 나면?"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되겠다." 정이 웃었다. "그나저나 이제 덩 같은 혐오자 새끼가 귀찮게 굴 일도 없으니 우리끼리 재미 좀 볼 수 있겠네."
"혀도 없는 주제에 어떻게 나보고 씹호모 운운하겠어." 양이 맞장구쳤다.
양도 정에게 입을 맞추었고, 두 사람은 짧게 애정을 나눈 뒤 방 안으로 돌아가 전등을 껐다. 바깥에서는 마침내 해가 지평선 너머로 떨어지고, 도시는 어스름에 잠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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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han
각주
1. 역주 —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섬으로, 미 해병대의 신병 훈련 기지가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