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트마이어즈호 조난사고

보스턴항에 정박한 센트마이어즈호. 1919년 촬영.
센트마이어즈호 조난사고는 여객선 센트마이어즈호가 1920년 매사추세츠주 보스턴항에서 플로리다주 마이애미항으로 항해하던 도중 돌연히 소식이 두절된 사건이다. 이후 선체의 일부로 추정되는 물체가 발견되었지만, 그 물체들에 불가해한 점이 많아 아직도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건 개요
1920년 12월 02일,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플로리다주 마이애미항으로 향하던 도중, 센트마이어즈호는 노스캐롤라이나주 윌밍턴 앞바다에서 돌연히 실종되었다. 실종되기 직전, 인근 해안국과 모스 통신으로 교신을 했지만, 그 내용은 지극히 평범한 것이었고 실종될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센트마이어즈호는 구조신호를 전혀 발신하지 않았으며, (혹은, 발신할 수 없었으며) 또한 추정 실종일 기간 내에 윌밍턴 앞바다 해역은 항상 쾌청하여 해수면도 잔잔해서 조난이나 전복을 생각하기 어려웠다. 처음에는 극단적으로 국소적인 격렬한 폭풍으로 배가 침수되었으리라 추측되었으나, 현지 어선들과 미국 해안경비대가 대규모 수색을 실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센트마이어즈호는 흔적조차 발견되지 못했다.[1]
배경
센트마이어즈호는 미국 국내 주요도시를 연결하는 정기선으로, 1915년 취역했으며,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워싱턴 DC 등 미국 동해안의 주요 도시를 항행했다. 보스턴항에 도착하기 전에는 워싱턴 DC에 기항했다. 사건 발생 당시 미국은 「광란의 20년대」라고 불리는 전례없는 호황기였고, 서민조차도 정기선을 이용한 국내 여행을 빈번히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당시 센트마이어즈호는 대형이라 다른 정기선보다 더 많은 인원을 수송할 수 있었기에,[출처 필요] 다른 정기선보다 운임이 저렴하게 책정되었다. 그래서 센트마이어즈호는 거의 항상 정원이 만원이었으며, 경우에 따라서 정원을 초과해서 운항하기도 했다고 한다.[2]

센트마이어즈호 함내 사진. 1919년 촬영.
출항 당시는 크리스마스가 목전이었고, 장기에 걸친 크리스마스 휴가를 얻어 플로리다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려는 노동자 및 그 가족들이 많이 승선하고 있었다. 1920년 12월 19일에 플로리다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크리스마스에서 5일 정도 여유가 있는 것은 악천후 등으로 인한 도착 지연을 고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선내 1등석은 1인실, 2등석은 4인실이었다. 하지만 1등석 요금이 2등석의 몇 배에 달했고,[출처 필요] 애초에 1등석 수효 자체가 적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승객이 2등석을 선택했을 것으로 보인다.
센트마이어즈호는 식사도 평판이 좋아서, 유료이지만 요금이 저렴하여 많은 승객이 승선 중 하루 세끼 제공되는 식사를 손꼽아 기다렸다. 센트마이어즈호 선장은 이탈리아인으로, 전속 요리사와 함께 맛있는 이탈리아 요리를 승객들에게 대접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조식은 무료로 제공되었으며, 그윽한 향을 풍기는 카푸치노 한잔, 다섯 겹 밀가루 반죽에서 풍부한 향이 올라오는 비스킷 몇 장, 크루아상에 딸기, 마멀레이드, 블루베리 등 과일잼이 제공되었다. 점심으로는 토마토와 달걀, 치즈를 넣은 페투치네 파스타가 제공되었으며, 듬뿍 얹힌 진한 토마토 소스에 뜨겁게 녹은 치즈가 맛있었다고 전해진다. 가장 호화로웠던 석식은 생선과 조개 등 어패류로 만든 파에야 등이 제공되었다. 석식에는 대량의 레몬이나 라임을 뿌렸으며, 이는 탑승 인원의 괴혈병 예방도 겸하였던 것이라고 한다.
때로는 선원들이 잡아올린 왕연어와 바닷가재 등이 그대로 석식 재료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이런 바다의 별미는 자연의 감칠맛이 풍부해 쌀과 함께 먹으면 고기와 곡물의 균형이 맞는 식사로 특히 평판이 좋았다. 또한 성인에게는 무료로 식전주가 제공되었으며, 이러한 식사는 긴 항해 중에 즐길 수 있는 흔치 않은 오락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조난(1920/12/16~1920/12/24?)
16일 오후 8시경, 노스캐롤라이나주 윌밍턴의 무선국이 센트마이어즈호에서 온 모스 전신을 수신했다. 당시 윌밍턴 무선국은 주변을 지나가는 선박들에게 날씨 정보를 받았는데, 그 정보는 일관되게 “바다는 잔잔하고, 달빛이 해수면을 비추고 있다”는 것이었다.[출처 필요] 당시 무선통신 상에도 특별한 점은 없었으며, 센트마이어즈호는 주변을 항행하는 다른 배들과의 정기 연락을 마쳤다. 그러나 센트마이어즈호의 안부가 확인된 것은 이 때가 마지막이며, 그 이후로 센트마이어즈호와 교신했다는 이야기 혹은 목격했다는 정보는 존재하지 않는다.
1920년 12월 24일, 윌밍턴 앞바다 해역에서 부러진 돛대가 표류하는 것이 발견되었다. 당시 윌밍턴항에는 크리스마스라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래서 앞바다에 표류하고 있는 돛대를 많은 사람이 목격했으며, “조난한 선백이 있고, 무슨 이유든 간에 무선기구를 사용할 수 없을 것”이라는 소동이 일어났다.
이후, 미국 해안경비대와 주변 어업조합들이 몇 주간 걸쳐 주변 해역을 수색했지만, 난파선이 발견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기일이 지나도 센트마이어즈호가 플로리다에 나타나지 않아 난파 가능성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고, 회수된 돛대가 센트마이어즈호의 것과 유사했기 때문에 당국은 센트마이어즈호가 윌밍턴 앞바다에서 국소적이고 단기적인 폭풍을 만나 침몰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센트마이어즈호가 최후의 교신을 하고서 돛대가 발견되기까지 윌밍턴 해역은 일관되게 맑았으며, 지나가는 비조차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와 같은 결론에는 다소 의문이 남는다.
또한, 1934/01/25, 1941/04/19, 1955/11/13 세 차례에 걸쳐 윌밍턴 등대 무선국이 센트마이어즈호를 자칭하는 선박으로부터 구난신호를 수신했다. 그 내용은 모두 동일했으며, 현재 좌표까지 완전히 같았다고 한다. 이것들은 모두 「못된 장난」으로 처리되었지만, 구난신호의 좌표가 일반에 공개되지도 않아 “장난으로 설명하기에는 이야기가 지나치게 작위적”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누가?]
발견(1921/01/31)
1923년 8월 31일,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레이트스모키산맥 국립공원에서 커다란 충격음이 들렸다고 삼림관리국 직원이 보고했다. 다음날, 직원이 부근을 수색한 결과, 스모키산 중턱에서 크게 파손된 철덩어리가 발견되었다. 경찰 조사 결과 그것들이 센트마이어즈호의 일부임이 밝혀졌지만, 파손이 너무 심하여 단순한 철판에 불과했다. 바닷말이 썩은 듯한 끔찍한 냄새를 풍겼으며, 그 냄새가 주변에 가득했다. 이것들은 깊은 산중에 위치해서 운반이 난항을 겪었으며, 잔해를 모두 제거하는 데 2개월 조금 넘는 시간이 걸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4]

센트마이어즈호 잔해가 발견된 지역 근처에서 촬영된 사진.
또한 이 잔해가 산중에 있었던 이유에 대하여 노스캐롤라이나주경찰은 용오름에 빨려올라간 잔해가 산중에 추락했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기상관측일지를 살펴보면 1921년 1월에 토네이도가 발생했다는 기록은 없으며, 지극히 불합리한 견해였다.
비디오필름
1951년 3월 21일, 노스캐롤라이나주경찰 자료보관고의 폐가(閉架)에서 비디오필름이 발견되었다. 어떠한 목록에도 기록된 바 없고, 비디오필름의 촬영자, 목적, 일시 등 모든 것이 불명이며, 한때는 영화 같은 것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영상에 찍힌 선박이 센트마이어즈호와 매우 흡사했던 점, 또한 센트마이어즈호 관련 자료들이 모여 있던 골판지 상자 속에 들어 있었던 점 때문에, 무언가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최종적으로 폐기되지 않고 도서목록에 기록되게 되었다. 하지만 이 필름은 1960년 화재로 소실되었고,[5] 현재는 문자로 옮겨진 단편적인 기록만이 소실을 면하고 보관되고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노스캐롤라이나주경찰본부에서는 증거물의 내화성 보존이 강조되기 시작하였다.[출처] 이 문서들은 일반에도 공개되어 있으며, 노스캐롤라이나주경찰은 여전히 센트마이어즈호에 관한 정보를 모집하고 있다.
이 기록은 수백 자에서 수천 자에 이르는 것까지 10개 이상이 기록/공개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 특필할 만한 것들을 발췌한다. 아래 영상을 문자로 받아쓴 기록을 기재한다.[6]
배의 조타실에서 복수의 남성이 “바다가! 바다가 움직인다!”, “놈들을 끌어내라!” 외치고 있다. 방이 크게 요동치고, 카메라도 한순간 고정된 위치에서 떨어질 뻔한다. 무선통신사로 보이는 남성이 필사적으로 모스 부호를 타전하고 있고, 이윽고 승조원들은 조타실에서 달아나, 선장으로 보이는 남성 혼자 방에 남는다.
촬영자는 부두 같은 장소에 있다. “바닷말 썩는 것 같은 냄새”에 불평을 늘어놓으며, 앞서 가는 작업원 같은 남자에게 말을 건다. 남자는 촬영자를 ‘안드레’라고 부르며, 늦었다고 심하게 꾸짖은 뒤 카메라를 향해 자신이 노스캐롤라이나주경찰 소속 ‘미로 존슨’이며, 촬영자 ‘안드레 케네디’와 함께 지금부터 정체불명 선박의 검역을 수행하겠다고 선언한다. 이후 일행은 부두 끝의 잔교에 정박되어 있는 배에 올라탄다. 이 배의 선창에서는 은은한 빛이 새어나오지만, 창문이 탁해서 안을 들여다볼 수는 없다. 주변은 달빛조차 없고, 갑판에 설치된 칸델라, 미로가 들고 있는 희미한 회중전등만 의지할 수 있다. 갑판을 걸을 때마다 합판으로 만든 바닥이 끼익 소리를 내서 일행을 불안에 빠뜨린다. 그들은 곧 선내로 이어지는 기밀문을 발견하지만, 잭을 조작할 수 없어 진입을 포기한다.
그들은 식당 같은 장소에 있다. 기묘하게도 식당의 식탁 위에 커피와 우유가 들어 있는 도자기 용기가 놓여 있고, 거기서 김이 끊임없이 피어오르고 있다. 안드레는 미로에게 휴식을 제안하지만 미로에게 일축당한다. 또한 식당에는 소다파운틴 따위도 놓여 있으며, 조명이 켜져 있어서 여전히 가동 중이다. 식탁과 의자 위에는 먼지 하나 없고, 마치 순간적으로 탑승 인원들만 실종된 듯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시계는 좌우가 뒤집혀 있는데, 회전 방향은 평범한 시계와 같다.
두 사람은 식당을 나와서, 복도로 연결된 식물 무늬가 새겨진 큰 나무문을 둘이 힘을 합쳐 여닫는다. 객실과 연결된 문이 복도를 마주하고 있다. 복도 깊은 곳에서 미묘하게 음정이 이탈한 재즈가 흘러나오는데, 복도 깊은 곳이 들여다보이지는 않는다. 그들은 사람을 찾아 문을 차례로 노크하지만 대답은 없다. 모든 방에 자물쇠가 풀려 있어 진입이 가능하지만 승객은 존재하지 않는다. 침대보는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고, 모든 방에 칫솔이나 빗 등 최소한의 비품이 비치되어 있으며, 방에 따라서는 추상적인 유화나 관엽식물 등이 세간으로서 비치되어 있다. 특필할 만한 점은, 어떤 방에는 엄청난 양의 볼펜이 바닥에 흩뿌려져 있고, 다른 방에는 바닥, 벽, 천장 등 모든 면이 분홍색 잉크로 물들어 있다. 이것들은 칠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문을 열자마자 유기용제 냄새가 가득하여, 안드레는 악담을 내뱉으며 문을 닫는다.
그들은 곧 아래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발견한다. 금방이라도 꺼질 듯한 조명에 겁을 먹으며 계단을 내려간다. 내려가서 드넓은 무대를 마주치자, 이 정도 크기의 배 어디에 이만큼 넓은 공간이 들어갈 자리가 있는지 의문스러워한다. 그러던 중 계단참에서 바다를 등지고 웃고 있는 두 남성이 그려진 회화를 발견한다. 한 남성은 어딘가 미로와 닮았다. 두 사람은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다. 그들은 몇 분에 걸쳐 계단을 계속 내려가서, 마침내 한 방에 도착한다. 거기에는 커다란 원형 탁상과 의자 2인분이 나란히 놓여 있고, 마치 금방 니스칠을 한 듯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탁상 위에 놓인 축음기 발이 공중을 긁으며 회전하자 허공에서 맑은 소리가 솟아난다. 그 순간, 안드레가 무언가 눈치챈 듯 갑자기 뒤를 돌아보니, 그들이 내려온 계단이 사라져 있고 같은 공간이 격자 형태로 이어져 있음을 깨닫는다. 두 사람은 반광란 상태로 달리기 시작한다.
안드레는 미로와 헤어져, 혼자서 선창 같은 곳을 달리고 있다. 규칙적으로 설치된 창문을 통해 같은 모습의 복도 모습이 들여다보인다. 그는 무언가를 피해 도망치듯이 로커 안에 숨지만, 딱히 소리 같은 것은 들리지 않는다. 몇십 분이 지나자, 앙드레는 로커에서 나와 복도 끝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다. 그 찰나, 조명이 모두 꺼지고, 그가 들고 있던 미약한 회중전등은 부자연스럽게 뒤틀린 배의 구조를 비추어 보인다. 그는 즉시 반대 방향으로 달려나가고, 곧 공간 전체가 불안정해지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발을 헛디딘 순간, 안드레는 바닥을 통과하듯이 스르륵 추락해 사라지고, 카메라만이 배의 어두운 복도를 전지가 떨어질 때까지 계속 촬영하다가, 결국 기록이 끝난다.

노스캐롤라이나주 공문서관. 1978년 촬영.
현재까지 노스캐롤라이나주경찰 및 미국 해안경비대에 「Andre Kennedy」라는 이름의 직원이 재직했다는 기록은 없다. 「Miro Johnson」에 관해서는 재직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1911년에 퇴직했으므로 당시 정체불명 선박의 검역 같은 업무를 맡았을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된다. 또한 Miro Johnson은 Andre Kennedy라는 이름의 남자는 모른다며, 그런 얼굴의 남자 본 적도 없다고 진술하였다. 또한, 노스캐롤라이나주경찰은 과거 직원들의 명부를 작성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A행에서 Andre Kennedy가 딱 들어갈 법한 위치에 부자연스러운 공백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에 이 명부를 작성했던 직원은 이미 퇴직했으며, 연락도 닿지 않아 왜 공백이 있는지는 아직 불명인 상태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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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밍턴의 전설
윌밍턴 마을에는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전승이 하나 있다. 그 전승은 시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주된 내용의 요지는 「윌밍턴 앞바다 해역의 특정 지점에서는 드물지만 바다가 전혀 이질적인 무언가로 변모해 어부와 어선이 거기 갇힌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윌밍턴 앞바다 해역에서는 청교도들이 도래하기 전부터 실종된 어선이 몇년 뒤 아무 일도 없이 돌아오는 현상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출처 필요] 이러한 현상을 조우한 어부들은 예외없이 일찍 죽었기 때문에 윌밍턴 주민들은 이 현상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혐오했다.[출처 필요] 현재도 이러한 현상은 과학적으로 해명되지 않았으며, 윌밍턴 앞바다에서 조업하는 어선은 다른 지역에 비해 행방불명 발생률이 유의미하게 높다는[7] 것이 알려져 있다. 과거 여러 차례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원인은 고사하고 단서조차 잡아내지 못했다고 한다.

윌밍턴의 후미. 2005년 촬영.
참고문헌
1. 「여객선이 윌밍턴 앞바다에서 조난」, North Carolina Daily, 1920년 12월 20일.
2. 「플로리다 선편여행 추천」, David Geily, Saint Joseph 출판사.
3. 「센트마이어즈호 조난에 관한 견해」, 노스캐롤라이나주경찰 발표, 1921년 2월 13일.
4. 「그레이트스모키산맥 기상일지」, 그레이트스모키산맥 산림관리국 작성, 1923년 10월 10일.
5. 『노스캐롤라이나주경찰본부 화재에 관한 보고서』, 노스캐롤라이나주 공문서관리관 소장, 1960년.
6. 「센트마이어즈호 조난사고에 관한 영상기록의 문자 전사」, 노스캐롤라이나주 공문서관리관 소장, 1951년.
7. 「노스캐롤라이나주 행방불명자 연보」, 노스캐롤라이나주 공문서관리관 소장, 2021년.
8. 「센트마이어즈호 조난사고의 수수께끼」, Adam White、applebook사(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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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amander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