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바스의 함정
ykamikura
S_Makoto 2024/8/22 (목) 22:35:01 #82965128
이건 그 소위 ’자기책임계’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가만히 있다고 해서 그것이 사라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다른 모르는 사람이 당하는 것을 방치하는 셈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려고 한다. 무서운 것은 모르는 채로 두는 것이 좋을지, 알아서 마음가짐이라도 하는 편이 좋을지.
나는 겁이 많은 아이였다. 아마 쓸데없이 상상력이 풍부했던 탓일 것이다. 폭풍우 치는 밤 윙윙 울리는 바람소리를, 상공을 날아다니는 괴물들이 으르렁대는 울음소리라고 믿었다. 얄팍한 지붕 너머로 「잡아먹어야지, 잡아먹어야지」, 「이제 잡아먹으러 가야지」, 「이불에 숨어도 소용 없다」 나를 비웃는 것이라고.
이렇게 세상이 무서운 것으로 가득했던 내게 있어서도, 크레바스는 특히 격이 다른 공포였다. 어디서 알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텔레비전 방송을 보고 알았던 것 같은데, 등산을 좋아하는 아버지에게 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정말 쓸데없는 지식을 준 셈이다.
크레바스는 빙하나 설산에 생기는, 얼음이 갈라진 틈을 말한다. 폭은 수십 cm에서 수 m 정도인데, 깊이는 수십 m에 달하기도 한다고 한다. 깊이에 비해 폭이 좁다는 점이 또 어린 나의 공포심을 부처겼다. 계곡처럼 폭도 장대하다면 한눈에 위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크레바스는 그렇지도 않다.

크레바스의 사진. 지금도 무섭다.
한번 상상해 보자. 탐험이든, 관광이든, 어쨌든 어떠한 목적으로, 빙설의 대지를 서둘러 주파하는 나그네 이윽고, 그의 앞길을 길게 갈라진 틈이 가로막는다. 여행자는 돌아가는 것이 귀찮아서 뛰어넘으려 한다. 갈라진 틈은 그 정도 폭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그 가장자리에 서서 발밑을 들여다보고 그는 비로소 깨닫는다. 자기가 뛰어넘으려 한 것이 지옥 입구라는 사실을.
뭐, 떨어질 확률이 1%에 불과하다 해도, 얌전히 돌아가는 것을 선택하지 않을까. 이치가 아니라 근원적 공포를 느끼고. 실제로 크레바스로 추락하는 사고는 종종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자면, 일본의 등산대가 중국의 빙하를 통과하던 중에 한 여성 대원이 크레바스에 떨어지는 사고가 있었다. 동료 대원들이 구조를 시도했지만, 크레바스가 너무 깊고 좁아서, 본인이 일찌감치 「이제 됐다, 나는 여기서 죽나 봐」 라며 포기했다. 몇 시간 후에는 그 목소리마저 두절되어 구조는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 대원의 사인은 낙하시에 입은 부상 혹은 빙벽에 계속 밀착한 탓의 저체온증이었을 것이다. 결국 그녀의 시신은 십수 년 후에야 회수될 수 있었다.
얼음 밑에 산 채로 묻힌 여성 대원, 그 심경이 어땠을까. 그녀도 죽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 끝없이 생각이 반복해서 튀었을 것이다. 「어쩌다 이런 곳에 와 버렸을까」 하는 후회, 「뭔가 기적이 일어나서 살아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희망 사이에서. 죽음이라는 구원이 찾아올 때까지, 거듭하고 거듭해서 .
차라리 떨어질 때 목뼈라도 부러졌으면 얼마나 편했을까. 적어도 나라면 그렇게 생각한다. 떨어지면 두 번 다시 나갈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는 크레바스를 지옥 입구라고 불러도 오버가 아닐 것이다.
서론이 길어져서 미안하다. 요컨대 당시의 나는 그만큼 크레바스를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설산이나 빙하에 가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 그런 이치조차 통하지 않을 정도로. 그런 것들이 나와 연결된 현실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참을 수 없는 공포였다. 이런 아이였으니, 망상과 현실을 혼동해서 이런 기억을 날조했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대도 그 눅눅한 찬바람의 감촉만은, 어른이 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이다.
S_Makoto 2024/8/23 (금) 00:21:27 #82965128
소학교 때 아마 저학년 때였을 것 같다.
세세한 상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집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였다. 우리 집은 작은 언덕 위에 있었는데, 거기서 내려다보는 거리 풍경에 문득 위화감을 느꼈던 것이다. 통학로 도중에 있는 담배가게, 그 앞 도로에 뭔가 검고 길쭉한 물체가 가로놓여 있었다. 한참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나는 그 정체를 깨달았다.
그것은 “검은 물체”가 아니었고, “가로놓여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아스팔트 노면을 찢고 달리는 그렇다, 크레바스였던 것이다. 적어도 내 첫인상은 그랬다. 나는 산소가 결핍된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뻐끔, 어머니를 부르려고 한순간 눈을 떼었더니 그 순간, 크레바스는 사라져 있었다.
당연히 나도 처음에는 뭔가 잘못 본 것이라고 생각했다. 크레바스를 너무 무서워하니까 검은 천인지 뭔지가 그렇게 잘못 보인 것이라고. 한순간에 사라진 것처럼 보인 것은? 바람에 날려간 것일 터 괴롭게 억지를 부릴 것까지도 없었다.
그 이후로 나는 동네 여기저기서 크레바스 같은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공원으로 이어지는 언덕길에서, 하천변의 공터에서, 허름한 집합주택 단지 앞에서, 크레바스는 입을 떡벌리고 있었다. 마치 현실이라는 회화에 검은 물감을 그은 것처럼. 그리고 한순간이라도 시야에서 벗어나면 사라져 버린다.
크레바스는 나한테밖에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당연하지. 단시간이라 해도 그런 것이 동네 여기저기 열려 있다면 소란이 일어났을 것이다. 한 번은 친구 바로 발밑에 열린 적도 있었다. 친구가 허공에 발을 디딜 뻔 해서, 내가 나도 모르게 눈을 꼭 감았더니 몇초 후, 조심조심 눈을 뜨자 크레바스는 어디에도 없었고, 친구들이 이상하다는 듯 나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만약 내가 눈을 뜨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지만 나는 금방 알게 되었다. 남 걱정 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그날 아침, 늦잠을 자서 지각하게 된 나는 통학로를 폭주하고 있었다. 교문 앞 죽도를 든 무서운 체육교사가 버티고 서 있는 시대는 아무래도 지나갔지만, 동급생들이 모두 이미 착석한 교실에 쭈뼛쭈뼛 들어가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신경줄이 약한 나는 울 것만 같았다.
그런 상태였기 때문에 주위에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이 모퉁이만 돌면 학교가 보이는 길목에서 전봇대를 잡고 회전축 삼아 돌입하려는 순간이었다.
내가 발 밑의 크레바스를 눈치챈 것이.
전봇대를 잡지 않았다면 그대로 떨어졌을 것이다. 그 직전에 코알라처럼 전봇대에 매달린 내 눈 밑에, 분명히 크레바스는 열려 있었다. 지금까지는 멀리서 슬쩍 보이기만 했는데, 이번에는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에. 바닥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깊이는 수십 m까지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현실의 크레바스라기보다, 내 공포 그 자체가 구현화된 듯한 그렇게 말하면 현실감 없는 광경이었나 싶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어른이 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즉, 크레바스 바닥 깊은 곳에서 불어오는 묘하게 눅눅한 찬바람은. 임상심리학은 잘 모르지만 망상이라는 것이 온도나 촉감까지 조작할 수 있을까.
우로 돌아서 조심조심 원래 길로 돌아와 잠시 후 조심조심 전봇대 그림자에서 얼굴을 내밀자, 크레바스는 사라져 있었다. 그렇다고 그 위를 걷자니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그 눅눅한 찬바랆이 아직도 길 위에 떠다니는 것 같아서.
결국 멀리 돌아가게 되어서 학교에 지각하고 말았던 것 같다. 애매하게 표현한 것은 기억이 잘 나지 않기 때문이다. 선생에게 주의를 받든, 동급생의 웃음거리가 되든, 그런 걸 신경쓸 처지가 아니었다. 무서운 가능성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그날 아침, 나는 맹렬히 서두르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크레바스는 모퉁이 바로 너머 사각인 장소에 열려 있었다.
그러니까 크레바스는 나를 떨어뜨리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명확한 악의를 갖고서.
S_Makoto 2024/8/24 (토) 22:45:33 #82965128
방과후가 되어도 도저히 하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다못해 동행자가 있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공교롭게도 친구들은 모두 나와 귀가 경로가 달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집에 놀러 가자고 권유해서 결과적으로 동행하면 되었을 텐데 아니, 무리인가. 과연 반나절이 지나자 나도 다소 침착성을 되찾았다. 동시에 세상 체면을 신경쓰는 어린애의 주제넘은 깜찍함도. 친구들 앞에서 쭈뼛쭈뼛 발밑을 살피며 걷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윽고 말 없이 교정에 우뚝 서 있자니, 선생들이 수상하게 본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에 가기 싫은 이유라도 있을까 싶었겠지. 나는 황급히 구름다리에서 노는 척을 시작했다. 아, 놀이기구라면 다른 것도 많이 있는데 왜 하필 구름다리를 선택했던 것일까. 잔꾀를 부려봐야 어린애였다고 해야 하려나.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벌써 알 것이다.

이 정도 크기였지만, 열 배 정도 길게 느껴졌다.
그래, 구름다리를 건너기 시작하자마자, 내 바로 아래 크레바스가 열린 거다. 아니, 나는 머리 위의 구름다리밖에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지 않았으면 놓쳤을 수도 있다 눈으로 확인한 것은 아닌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크레바스인 줄 알았는가 하면, 아래에서부터 불어왔기 때문이다. 그 눅눅한 찬바람이.
당연하지만, 구름다리를 건너기 시작한 이상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밖에 없다. 끝까지 건너가거나, 포기하고 중간에 떨어지거나 그러는 김에 인생도 포기하거나. 그렇다. 그렇게나 크레바스를 경계했던 주제에, 나는 스스로 그 위에 차슈처럼 매달려 버렸던 것이다. 더 최악인 것은, 나는 이 구름다리를 끝까지 건너본 적이 없었따.
생명의 위기를 눈앞에 두어선지, 내 두뇌는 풀회전하고 있었다. 뒤로 돌아가는 편이 거리가 짧을까? 아니, 시도해 보면 알겠지만 그게 오히려 어렵다. 인간은 어깨 구조상 등 뒤로는 팔을 뻗기 어렵고, 구름다리를 더듬어가며 잡아야 한다. 한 번 크레바스를 눈으로 확인하고 시선을 돌리면 사라지지 않을까 아니아니, 그것도 무리다. 이 상황에서 크레바스를 바로 위에서 직시하면 나는 그 자리에서 발광한다. 그리고 손을 놓고 말 것이다. 그런 확신이 있었다.
결국, 나는 결사의 각오로 크레바스 위의 구름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초조한 나머지 몇 번이나 땀에 손이 미끄러져서, 그때마다 비명을 지를 뻔 했다. 하지만 구름다리 중간쯤 접어든 시점에서, 이미 양손의 저림이 한계였다. 교과서로 가득한 책가방을 짊어진 것도 화근이었다. 이제 안 된다, 떨어지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다리에 뭔가 엉겨붙은 것이 느껴졌다.
그 감촉을 어떻게 비유해야 할까 그 눅눅한 찬바람이 응고되어 개구리 혀 같은 모양이 된 것. 내 표현력으로는 아무래도 진부해지지만 그게 제일 가까울 듯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감촉의 역겨움이 나를 각성시켰다. 나는 「으아아아!」 기묘한 괴성을 지르며, 표범에게 쫓기는 침팬지 같은 기세로 구름다리를 건넜다. 착지는 반쯤 굴러떨어지듯이 했을 것이다.
황급히 돌아보니 크레바스는 어디에도 없었다. 근처에 있던 여자가 「뭐야 방금? 관계되고 싶지 않네, 흥」 하는 표정으로 총총 멀어져갔다. 그 여자의 눈에는 내가 무엇인가 혼자 떠들고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을 비참하게 느낄 여유도 없이, 나는 교정을 뛰쳐나가려다 신발 한 쪽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 그것이 다리에 엉겨붙은 순간 벗겨져 버린 것이다. 신발이 벗겨졌기에 마치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듯이 살아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구름다리 주위에도, 교정 어디에도, 신발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께 어떻게 변명할지 내가 머리를 싸매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얼마 후의 일이다.
S_Makoto 2024/8/25 (일) 21:32:12 #82965128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가 자기책임계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크레바스는 무엇이었을까? 왜 나를 노린 것일까? 그 부분은 전혀 불명이지만, 한 가지 가설을 세운다면 나의 크레바스에 대한 공포가 놈을 불러낸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읽고 크레바스에 대한 공포를 품은 사람이 나와 같은 일을 당하고 만다 는 것은 지나친 생각일까?
물론, 모든 것이 나의 망상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크레바스는 실재하지만 나를 노린 것은 단순히 우연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크레바스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망상이었는지, 나를 노리기를 포기했는지, 내가 어른이 되어서 크레바스에 대한 공포가 희미해졌기 때문인지 이유는 모르겠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 안심하지 못하고 있다. 자기책임인 김에 그 이유도 언급해 두어야겠다. 히든 크레바스라는 것이 있다. 눈으로 표면이 덮여서 숨겨져 있는 상태의 크레바스를 말한다. 언뜻 보면 빙하나 설원의 일부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밟는 순간 끝장 이라는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새삼 크레바스에 대해 조사하다 알게 된 것인데, 아까 언급한 그 여성 대원이 추락한 것도 히든 크레바스였던 것 같다. 현대의 등산대는 그걸 방지하기 위해 빙하 위에서 서로를 로프로 연결해서 걷는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히든 크레바스의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이따금 상상한다.
소풍을 온 들판에서, 푹신푹신한 잔디밭에 발을 딛은 순간에. 해수욕을 하러 방문한 해변에서, 파도치는 물결이 맨다리에 와 닿는 순간에. 아니, 내가 확실히 지나갈 보증이 없는 그런 장소들보다도, 차라리 그래, 일을 마치고 귀가해서, 현관으로 통하는 섬돌을 밟는 순간에.
갑자기 발밑이 꺼지고, 이번에야말로 지구 중심까지 추락하는 자신을.
발 밑의 단단함을, 현실의 확실함을, 나는 지금도 믿지 못하고 있다.
by
Salamander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