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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쿠와 유리카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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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일자: 2026년 7월 5일 (일)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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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이름: 마쿠와 유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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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쿠와 유리카(일본어: 真桑 友梨佳, ? ~ ?)는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일본 여성으로, 여러 사람들이 서로 다른 주제로 집필한 다수 문학 작품에 등장한다. 문화 교란이나 패러디가 지나치게 많은 탓에 이러한 인물이 정말로 현실에 실존했는지 단정하기는 어렵다.

유럽 회화의 발견 사례

《대사들》
《대사들》

《대사들》

유럽의 수많은 예술 작품에는 "이름 없는 여성 시신"이 그려진 장면이 등장하곤 했으며, 학계에서는 이를 대개 "죽음"이라는 창작 모티프의 흔한 분파 중 하나로 여겨 왔다. 수많은 해당 예술품들 중 크게 영향을 끼쳤기로 손꼽히는 작품으로서 16세기에 그려진 《대사들》(Die Gesandten)을 들 수 있다. 이 그림에서 화가는 두 사람의 전신 초상화 아래에 해골 하나를 왜상으로 그려 넣었다. 이 해골의 모습은 매우 왜곡되었기 때문에 다시 올바른 투시상으로 해골을 보려면 어느 특정한 각도에서 근접한 채로 그림을 보아야만 한다. 현재 일반적으로 《대사들》은 3가지 층위, 즉 천국(위쪽 선반의 아스트롤라베를 비롯한 물건들)과 인간 세계(책장과 아래 선반의 악기들), 그리고 지옥(해골)을 나타낸다고 여겨진다. 근대에 골격을 분석한 결과 해당 해골은 여러 가지 특징을 바탕으로 연령 15~24세의 동아시아 여성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화가 한스 홀바인의 국적이 독일임을 감안할 때 다소 의외스런 결과이다.

17세기 유럽 정물화에는 바니타스(vanitas)라는 장르가 출현했다. 바니타스 정물화는 해골이나 모래시계, 양초, 생화 등의 사물로 관람자에게 "인생은 고되고 짧으며 결국에는 이 탁자 위에 놓인 정물들처럼 허무한 신세를 맞이한다"라는 메시지를 표현한다. 네덜란드 화가들이 해당 사조의 주축으로 활동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바니타스 사조를 연 인물은 요리스 더헤임 2세(Joris de Heem II, 1620년경 ~ 1672)으로, 지금까지 바니타스 정물화 30여 점을 남겼다. 더헤임이 그린 그림은 항상 책·악기·술잔·모래시계·해골의 구도를 띠지만, 1660년경 그려진 무제 캔버스 유화(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소장, 고유번호 SK-A-4982)만은 이러한 양식에서 뚜렷하게 벗어난다.

해당 그림 속 주체로서 쌓여 있는 네덜란드어 책들과 넘어진 높직한 잔 하나, 반쯤 남은 양초가 그려진 것은 같다. 그러나 화면 중앙에 둔 정물용 탁자 옆에는 의자가 하나 놓였으며, 의자 위에서는 전신 해골이 힘없이 쓰러진 자세로 탁자 위 화병에 꽂아둔 백합 두 송이를 바라보고 있다. 해당 해골이 지닌 두개골은 《대사들》에 등장하는 길게 늘려 감추어진 해골과 매우 닮았는데, 특히 눈확위모서리의 경사각, 함몰된 코뼈, 광대뼈아치가 돌출된 모습 등의 특징이 비슷함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골격을 분석한 결과 이 해골의 신원 역시 연령 12~20세의 동아시아 여성으로 판정되었다. 주요 단서로는 아래턱뼈에 남은 치아 여러 개가 꼽혔으며, 왼쪽 위턱의 송곳니 역시 유럽에서 흔하지 않은 경사면을 띠는 채로 마모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골학자들은 이러한 마모 형태가 당시 네덜란드는 물론 유럽 어느 지역의 식생활에도 맞아들기 어려우며 오히려 일본 에도 시대의 여성들처럼 절인 무 같이 비교적 단단한 음식을 오랫동안 씹으며 생기는 흔적과 더 어울린다고 지적했다.

현재 인정받는 주류 학설은 더헤임이 동아시아에서 수입된 두개골 하나와 접촉해 이를 화실 소품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한편 그 밖에도 해당 그림에는 의심되는 사항들이 여러 가지 있는데, 이를테면 꽃병에 든 꽃이 네덜란드 화가들이 흔히 선택하던 튤립이 아니라 백합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더헤임의 다른 작품들은 거의 일률적으로 생화를 상징하는 매개체로서 튤립만을 선택하는 것과도 들어맞지 않는 상황이다.

일본 작품 속의 연이은 출현

동아시아, 특히 일본의 작품에서는 해당 소재가 더 일찍 출현했다. 8세기 무렵에 창작된 《만엽집》(万葉集)의 초기 판본에는 다음과 같은 시구가 등장한다.

만엽집 가나자와본
만엽집 가나자와본

만엽집 가나자와본

死は近し/我が骸は/野辺の露/消えて後には/何も残らじ 죽음이 가까우니 / 내 해골은 / 들판의 이슬 사라지고 나면 / 아무것도 남지 않으리

黄泉の路は/今日か明日かと/待ちながら/生きる身の憂さ/ただ涙せり 황천길은 / 오늘일까 내일일까 / 기다리면서 살아 있는 이 몸의 근심에 / 그저 눈물만 흐른다

제사(題詞)에 따르면 두 시는 창작된 시점이 매우 가깝고 최근에 세상을 떠난 친구를 추모하고자 지어졌으며, 세간에 알려진 이 죽은 친구의 이름은 "마쿠와 유리카"였다고 한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이 두 수는 나중에 필사 과정에서 《만엽집》 속에서 의도적으로 삭제되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앞뒤의 시는 모두 온전하게 보존되었으나 두 시를 수록해야 하는 부분은 "결(缺)" 자로 대체되었으며, 더불어 후속 보충할 수 있도록 비워두는 공간마저도 남아 있지 않다. 해당 조치가 결코 우연히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짐작할 만한 사항이다. 현재는 위의 시들을 수록한 유일한 판본마저도 2004년에 마지막으로 모습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이후로는 행방이 묘연하다.

헤이안 시대 단림황후구상도, 작자 미상
헤이안 시대 단림황후구상도, 작자 미상

헤이안 시대 단림황후구상도, 작자 미상

일본의 회화 전통인 구상도(九相圖)는 가마쿠라 시대 전후로 등장하여 수백 년 동안 이어져 내려왔다. 구상도는 불교의 수행인 "구상(九想/九相)"에서 유래했는데, 주로 종교적 상상을 가미하여 시체가 썩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시간의 범위는 사후 며칠에서 몇 년까지 다양하며, 그려지는 대상은 주로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다. 학계에서는 보통 구상도 속의 장면은 모두 상상한 모습이며 특정한 시신을 사실적으로 그린 것은 아니라고 여긴다. 그러나 실제로 그림 속 시신이 존재했으며 구상도는 이를 역대 화가들이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구상도가 전달하는 인신부정(人身不淨), 제행무상(諸行無常) 등의 사상은 후대의 여러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 예시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지옥변》, 교고쿠 나츠히코의 《항설백물어》 등을 들 수 있다. 비록 출처를 추적할 수는 없으나 세간에는 구상도에 그려진 수많은 여성들이 모두 마쿠와 유리카였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는데, 만약 정말 사실이라면 마쿠와 유리카가 일본 문화에 미친 영향은 종교의 영역까지 뻗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무로마치 시대에 편찬된 《오토기조시》는 마쿠와 유리카를 묘사한다고 의심되는 최초의 이야기를 1개 단편 형식으로 수록했는데, 해당 이야기는 오늘날의 마쿠와 유리카 관련 모든 2차 창작물이 정보 출처로 삼는 글이기도 하다. 글의 본문은 이름 불명의 여성이 38차례에 걸쳐 자살을 기도하는 과정을 1인칭 시점으로 자세히 기록하며, 각 시도의 원인 및 결과와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과 나누는 대화 역시 적고 있다. 해당 단편은 청소년에게 불량한 영향을 미칠 것이 우려된다고 하여 이후에 책에서 완전히 삭제되었으며, 관련 내용을 온오프라인에서 유포하는 행위 역시 불법으로 간주된다. 현재 온라인 고서 사이트에서는 법적 사정으로 관련 문헌을 보존하지 못했으나 민간에서 보존하는 고서 여러 질에서는 아직 관련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마쿠와 유리카"라는 이름을 처음 서면으로 기록한 문헌은 일본의 작가 고다 로한이 1895년 펴낸 수필집 《안목초》(眠目抄)이다. 《고골(枯骨)》이라는 제목을 단 짧은 글에서 고다 로한은 나가사키의 데지마에 있었던 네덜란드 상관이 남긴 옛 일지에서 다음과 같은 네덜란드어 기록을 번역해 옮겨적었다고 주장했다.

덴분 20년(1551년) 무렵, 어떤 일본 여성이 포르투갈 상선을 따라 고아로 갔다가 다시 리스본으로 돌아왔다. 여성의 이름을 네덜란드어로 쓰면 "Makuwa Yurika"이다. 이 여자는 자기가 일찍이 죽음의 참모습을 보았다고 자처하며 화가에게 자신을 "해골 같은 모습"으로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 후 행방을 알 수 없다.

고다 로한은 해당 수필의 주석에서, 자신이 메이지 27년(1894년) 나가사키를 찾았을 때 어떤 고서적상에서 이 일지의 필사본을 구입했으나 관동 대지진 중에 그 필사본을 잃어버리고 말핬다고 적었다. 고다 로한은 원래 문학가였던데다 박문강기(博聞强記)한 재능과 고증에 집착하는 성향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학계의 연구자들은 대개 해당 기록이 고다가 일본 문학에 "유령도"라는 소재를 도입하고자 서양 괴담을 모방해 창작한 "위조 문헌"에 불과하다고 본다. 다만 "마쿠와 유리카"라는 이름이 일본 전국시대의 여성 작명 관습에 부합하는 것은 사실이다. 해당 이름이 등장하면서 일본 문학평론계에서는 "고다 로한이 마쿠와 유리카를 창조했는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마사오카 시키가 《병상육척》에서 이를 두고 "로한 옹은 아무래도 꿈속에서 서양 해골을 보고 그런 이야기를 구구절절 만들어낸 모양이다"라고 꼬집기도 했다. 고다 로한 본인은 생을 마칠 때까지도 허구설을 부인했으며, 자신은 "인용했을 뿐 진위는 몰랐다"라고 말했다.

《인간실격》 초판 표지
《인간실격》 초판 표지

《인간실격》 초판 표지

1948년 발표된 《인간실격》의 초판본에서 주인공과 사랑했으나 결국 목숨을 끊은 여성의 이름은 원래 마쿠와 유리카였다. 해당 소설에서는 주인공 오바 요조와 마쿠와가 만나 사랑에 빠지고 마지막에는 함께 바다로 투신하기에까지 이르는 과정이 자세하게, 생생하고 감동적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몇 달도 지나지 않아, 현재 유통되는 《인간실격》 판본처럼 소설에 등장하는 "마쿠와 유리카"는 모두 "츠네코"로 바뀌었으며 바다로 투신하는 장면 또한 대폭 축약되고 상세한 직접적 묘사 역시 대거 삭제되었다. 책의 저자 다자이 오사무는 출간 후 쓴 작가 해설에서 해당 사항에 어떠한 의견도 밝히기를 거부했다. 내용 개변 사항이 작가 자신의 의도가 아니라 당시 일본 문단의 검열 체계 때문에 제약을 받은 결과라고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 있다. 해당 소설은 발표 당시 판매량이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으며, 마쿠와 유리카와 오바 요조의 사랑과 죽음 이야기가 딱히 감동을 이끌어내지도 않았다. 현재로서는 소설의 초판을 읽어본 적 있는 독자는 대다수가 이미 세상을 떠났으며, 인터넷에서도 《인간실격》 초판의 관련 대목을 보존하고 있다는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다.

1948년 발표된 초판본 《인간실격》에서 주인공과 사랑하다 목숨을 끊은 여성의 이름은 츠네코였다. 그러나 인터넷상에서는 초판(또는 원고) 《인간실격》에서 주인공과 투신한 여성의 이름이 마쿠와 유리카였으며 소설에서 마쿠와 유리카가 바다로 투신할 때까지 벌어지는 상황들을 자세히 묘사하기까지 했다는 소문이 퍼져 있다. 출판사가 검열 과정에서 소설의 내용을 고치고 주인공의 이름을 바꾼 것은 사실이지만, 알려진 모든 검색결과를 종합하면 "마쿠와 유리카"라는 개념이 출현한 뒤에야 인터넷에서 "초판에서 해당 인물의 이름은 유리카였다"라는 취지의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으므로 해당 의견은 기존의 유명한 작품을 마쿠와 유리카와 억지로 결부지어 만들어낸 낭설일 뿐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문학평론가는 "마쿠와 유리카"라는 이름에서 출발하여, 해당 인물은 실존하지 않으며 일본 문화의 "이름 없는 여성 시신"이라는 모티프를 의인화한 인물일 뿐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마쿠와(真桑)는 사람들이 흔히 먹는 참외로서 민중의 평범함을 상징하며, 유리카(友梨佳)는 백합과 꽃[ユリ科]을 연상시켜 우아한 죽음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일상생활에서 간과하기 쉬운 소멸됨은 자연히 정체성의 모순을 낳아 긴장을 형성해 문학적 이미지를 이루며, 일본의 미학 체계 속 요소인 "와비사비"(侘寂)에 부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의문스럽다는 시선을 받고 있는데, "마쿠와" 자체가 실존하는 일본의 성씨이며 "유리카" 역시 평범한 여성 이름으로 쓰이므로 꼭 특별한 뜻을 함의한다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현대의 관련 사건

시노하라 요시코 사건이 발생했다고 알려진 장소
시노하라 요시코 사건이 발생했다고 알려진 장소

시노하라 요시코 사건이 발생했다고 알려진 장소

현대에 네트워크 통신 기술이 날로 발전을 거듭하면서, 인터넷상에 "마쿠와 유리카"를 목격했다는 기록이 대거 출현했다. 이 중 가장 빈번한 상황은 여성 자살 사건 관련 보도에서 사망자의 성명을 "마쿠와 유리카"로 오기재하는 사례이다. 예를 들어 2011년 9월, 일본의 민간 인터넷 포럼에 "자살한 여학생"을 다루는 토론글이 대거 게시되었는데 그 장소가 대부분 나고야의 모 기숙사 근처에 집중되어 있었다. 현재는 해당 게시글들 대다수가 "삭제된 글" 분류로 옮겨져 토론글의 주제만 확인할 수 있을 뿐 토론의 구체적 내용은 확인이 불가능하다. 다만 현존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추측할 수 있는 바에 따르면, 당시 해당 기숙사의 근처에서 신원 불명의 여학생이 실내에서 연탄을 피워 자살하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여러 사람이 주장했다. 이때 해당 현장에는 경찰과 더불어 수많은 보험업자들이 몰려왔으나 사망자의 유족은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해당 사건 이후 온라인에서 "돈과 생명"을 놓고 토론이 촉발되었으나, 관련 사이트들이 하나같이 사건이 언급된 내용들을 대거 삭제하며 사건은 흐지부지 잊혀졌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당시 현장에 도착했던 양자는 사망자의 신원 문제에서 의견이 불일치했다. 경찰 측은 DNA 데이터를 대조해 사망자가 시노하라 요시코(篠原佳子, 21)라고 확인했으나, 현장으로 파견된 보험회사 직원은 보험증권에 기재된 가입자는 시노하라 요시코의 어머니였지만 피보험자는 시노하라 요시코가 아니라 마쿠와 유리카였으므로 보험급 지급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해당 사건의 전모를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시노하라 요시코와 그 어머니가 무고한 여성을 살해해 보험금을 타려던 것으로 오인했으며, 이 때문에 시노하라 요시코의 다른 가족 일원들이 사이버 폭력을 당하고 말았다. 이후 시노하라 요시코의 어머니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관련 사이트들은 피해자의 유족들을 정신적으로 보호하고자 게시글을 삭제했고 이에 토론 역시 중지되었다.

2015년 2월, 어떤 경마 경기에서 "마쿠와 유리카"라는 갈색 순혈 암말이 우승을 차지하며 세간에 주목을 받았다. 기이하게도 이후 몇 달 지나지 않아 해당 경주마와 그 3대 이내의 후계마들이 잇따라 이른 나이에 사망했다. 해당 경주마를 기르던 목장주는 여러 차례 진정서를 제출해 최근에 말 전염병이 유행하며 자신이 보유하던 우수한 경주마들이 사망했다면서 관련 부처에게 동물 방역에 더 철저히 나설 것을 주문했다. 해당 사건으로 대중 역시 관심을 모았다. 다만 이상한 점으로, 해당 목장주는 누리꾼들이 SNS로 거듭해서 캐물었는데도 말에게 그런 이름을 붙인 이유를 한 번도 설명하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말의 이름은 이미 민간에 널리 퍼진 전설인 "마쿠와 유리카"에 경의를 표시하는 정도이거나 단순한 우연의 일치라고 추정된다. 그 밖에도 또 다른 자료에 따르면 해당 경주마가 말 전염병이 아니라 마굿간 울타리를 자꾸 들이받다가 뇌출혈을 일으켜 죽었다고 하기도 한다.

다음해 9월, 마쿠와 유리카를 목격했다는 소식이 중국 구이저우성과 상하이시에서 연이어 한 건씩 등장했다. 구이저우성 사건의 주요 경과를 당국 보도에 따라 말하면, 일본에서 온 유학생이 투신자살을 기도하였는데 뜻밖에도 주차장 지붕 위로 추락하면서 큰 소리가 퍼졌다. 어떤 영상 플랫폼에서는 《검증! 투신이 정말 그렇게 척지유성한가?》라는 영상을 업로드하며, 여학생이 투신하면서 실제로 소리가 그만큼 크게 울려퍼질 수 있었는지 이론적 계산 결과와 과학적 실험을 거쳐 의문을 제기하려 하였다. 그러나 해당 영상은 불과 몇 시간 뒤에 불명의 이유로 삭제되었으며, 원작자 또한 백업 파일 제공을 전면 거부한 관계로 현재로서는 로스트 미디어가 되었다고 보인다. 상하이에서 발생한 사건은 관련 보도들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데, 각 기사 모두 어떤 일본인 유학생이 자살하게 된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보도 각자에서 제시되는 사건의 경과는 서로 매우 일치(당사자의 자살 기도가 목격됨 → 자살을 단념하라고 설득받음 → 위험한 구역에서 벗어나던 도중에 사고 발생 → 결국 사망)하지만, 묘사되는 당사자의 외모 및 행동은 모두 서로 판이하게 다르다. 물론 사건들이 전부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2018년부터 전세계적으로, 특히 동아시아에서 자살 사건의 발생 빈도가 계속 증가하면서 마쿠와 유리카를 목격했다는 신고 또한 대거 늘어났으며 그 신뢰도 역시 현저하게 하락했다. 이들 목격담 중 대다수는 마쿠와와는 아무 관련 없는 평범한 자살 사건에 불과했다. 사망자는 젊은 동아시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쿠와 유리카"라는 이름이 붙여지고 사망 경위 또한 넓게 퍼져나갔으며, 이 때문에 종종 유족의 생활까지 막대한 악영향을 입기도 했다.

또 다른 가장 주목할 만한 목격담으로, 2021년 중국 윈난성 윈링(云岭) 동물원에서 발생한 사건이 있다. 해당 사건에서 마쿠와 유리카로 추정되는 시신 한 구가 동물원 내에 출현했으며, 사육받는 동물로 취급받으며 공연히 전시되었다. 당시에 관람객들 또한 SNS 상에 관련 기록들을 대거 남겼다. 그러나 당시에 시신을 전시하는 행위가 몹시 황당한 상황이라고 지적하는 사람이 왜 아무도 없었는지, 나아가 온라인상에서 왜 대체로 호평을 얻기까지 했는지 설명할 방법이 없는 관계로 이것이 실제로 있었던 사건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 몇 달 뒤 미국 오리건주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는 아시아 이외의 지역에서 마쿠와 유리카 목격 사건이 발생한 최초 사례이기도 하다. 이상하게도 이 사건과 관련된 기록은 2022년 초부터 거의 모두 소실되었고, 해당 동물원에서 "마쿠와 유리카"를 전시했다는 증거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으며 사진 파일 역시 전혀 찾을 수가 없다. 현재의 주류 견해에 따르면 해당 사건 전체는 규모가 거대할 뿐인 만델라 효과에 불과하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마쿠와 유리카는 이제 문화적 기호의 일종으로서만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터넷 트렌드 "유리카를 찾아주세요"

마쿠와 유리카에 관련된 소문은 한 번도 가라앉은 적이 없으며, 오히려 옛날의 게시글·사진·영상 등이 잇따라 자취를 감추면서 새로운 형태로 변화했다. 수많은 네티즌들이 갖은 플랫폼에서 마쿠와 유리카 관련 히스토리·목격사진·영상클립 등을 본 적 있었다고 기억하지만 다시 검색하니 페이지가 "삭제됨"으로 표시되거나 아예 사라졌다고 밝한 바 있다. 적지않은 사람들이 이러한 집단적 기억 오류를 만델라 효과라는 틀에서 논의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는 의견 역시 제기되었다. 2021년 12월, 맨 먼저 중국에서 웨이보나 더우반 등 SNS에 "#寻找真桑友梨佳#"라는 해시태그가 등장했다. 이후 이 태그는 트위터나 레딧, 틱톡 등지로도 옮겨졌으며, "#FindMakuwaYurika", "#真桑を探して", "#유리카를_찾아주세요" 등 갖은 언어판으로도 확산되었다.

해당 트렌드가 뜨거운 감자에 오르면서 창작 콘텐츠가 차츰 고증을 대체하기도 하였다. 2022년 초에 생성형 AI 이미지 도구가 보급되기 시작하자 수많은 네티즌들이 마쿠와 유리카의 "유사 복원도"를 생성해 각종 SNS에 업로드하며 조회수를 얻었다. 해당 이미지 속 내용은 대개 흑발에 흰 치마를 입고 안색이 창백하며 백합꽃이나 해골을 곁에 둔 동아시아 소녀이며, 대개 "1551년 리스본에서 그려진 모사본", "1895년 나가사키에서 촬영된 사진" 같은 설명글이 곁에 붙어 사실과 허구의 중간에 놓인 일종의 "가짜 사료"를 형성한다. 이들 중 일부가 AI 생성물로 지목되기는 하였으나, 그럼에도 여전히 스크린샷 형태로 널리 유포되었다. 틱톡에서는 감시 카메라 화면을 모방한 도시전설형 숏폼까지 출현했다. 이들 중 조회수가 가장 높은 영상으로, 어떤 소녀가 텅 빈 복도 끝에 나타났다가 화면이 깜빡이더니 소녀는 사라지고 바닥에 백합 한 송이만이 덩그러니 남는 것이 있다. 해당 영상은 나중에 연출이라고 밝혀졌으나 관련 편집 클립은 여전히 폭넓게 퍼져나갔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이를 실제 자료라고 여기기도 했다.

이러한 트렌드는 현실에서도 논란을 자아낸 바 있다. 2022년 봄, 나가노현에서 어떤 인물이 "마쿠와 유리카 기념협회"의 명의로 실종자 포스터를 붙이며 "센고쿠 시대에 태어난 몰년 미상의 여성"을 찾는다고 주장하다가 허위정보를 유포해 공공질서를 문란하게 한 혐의로 현지 경찰에 체포되었다. 같은 시기, 한국의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어떤 스트리머가 자신이 마쿠와 유리카라고 주장한 뒤 안색을 창박해게 화장한 처녀귀신 모습으로 며칠 동안 방송하며 죽기 전에 겪었다는 억울한 일, 죽은 뒤 저승에서 보았다는 모습 등의 이야기를 풀어놓다가 결국 조회수 때문에 연기했던 것이라고 시인했다. 한편 4Chan 등 플랫폼에서는 "마쿠와 유리카 챌린지"도 등장했는데, 자정에 묘지나 폐교 근처로 가서 마쿠와 유리카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서 만약 해당 인물이 정말로 출현하면 마쿠와에게 축복을 받게 된다는 괴담이다. 네티즌들이 더러 해당 게시글에 댓글 사진 라이브 형식으로 챌린지를 시도하였으나 결국 다른 네티즌들에게 가로막혀 중단했다. 웨이백 머신 상으로는 해당 게시글의 보존된 페이지에 글 내용만 남아 있으며 사진은 모두 소실되었다.

모방 자살

도쿄 야마노테선 하라주쿠역. 목격자에 따르면 자살한 여학생은 사진 속 육교에서 철로로 투신했다
도쿄 야마노테선 하라주쿠역. 목격자에 따르면 자살한 여학생은 사진 속 육교에서 철로로 투신했다

도쿄 야마노테선 하라주쿠역. 목격자에 따르면 자살한 여학생은 사진 속 육교에서 철로로 투신했다

상기한 트렌드가 초래한 또 다른 문제로 모방자살이 있다. 청소년 자살이 현재 일본 사회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사건이기는 하나, 해당 사건들 중 마쿠와 유리카를 모방할 목적으로 발생한 사례를 적지않게 구별해낼 수 있다.

2025년 9월 23일, 도쿄 야마노테선 하라주쿠역에서 철도 투신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사망자는 17세 여학생으로, 단발을 녹색으로 약간 염색했으며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다. 해당 인물은 역의 시부야 방면 승강장 가장자리 쪽에 서 있었는데, 당시 시각은 저녁 7시 즈음으로 고등학생들이 대개 동아리 활동이나 방과후 학습을 마치고 저녁을 먹을 시점이었다. 당시에 탑승을 기다리던 사람들 여러 명이 열차가 역에 들어오려던 때에 해당 학생이 승강장에서 투신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한편 기관사가 전체 과정을 모두 완전하게 지켜보았는데, 이후 진술에 따르면 해당 학생은 투신 당시에 휴대폰을 왼손에 쥔 채로 얼굴에 섬칫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고 한다. 본 사건을 녹화한 영상이 SNS 상에 업로드되었는데, 열차가 통과하기 전 몇십 초 구간을 느리게 재생한 결과 사망자가 승강장 아래로 추락하는 동안 "안녕 엄마"라는 말을 조용히 속삭였음이 확인되었다. 이는 얼마 전 어떤 온라인 포럼에 게시된 크리피파스타 작품에서 마쿠와 유리카가 자살할 때 했던 말과 일치한다. 사망자 역시 선로로 투신하기 전에 휴대폰으로 관련 영상을 촬영했으리라고 추정되지만, 직후 휴대폰이 달려오던 열차에 짓밟히며 관련 단서를 입수하기는 불가능해졌다. 선로 위로 산산조각난 시신이 흩뿌려진 탓에 사건 당시의 기관사는 적잖은 곤란을 겪어야만 했다.

2025년 12월 1일, 동영상 플랫폼 니코니코 동화에서 자살에 관련된 스트리밍 하나가 송출되었다. 송출자의 계정명은 "마쿠와 널 보러왔어まくわあいにきたよ"로, 마쿠와 유리카에 관련하여 지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스트리밍 내용은 젊은 여성이 평소에 입는 작업복 차림으로 어느 아파트 옥상 위에 머무르는 것이었다. 해당 여성은 스트리밍 전반부에는 경위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 채로 가끔씩 훌쩍이면서 시청자 수가 늘어나기를 기다렸다. 후반부에는 많은 시청자들이 해당 스트리밍이 코멘트로 실제 상황이 맞는지 문의하며 뷰어십을 노린 조작 방송이 아니냐고 의심했으나, 해당 여성은 시청자에게 뚜렷한 감정을 담아 반응하지 않았다. 스트리밍 막바지에 해당 여성은 하이힐을 벗고 카메라 각도를 조정해 화면에 자신을 정면으로 담고는 난간에 양손을 짚은 채로 앉은 다음 렌즈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으며, 이후 손을 놓고 몸을 뒤로 넘어뜨려 화면에서 사라졌다. 5분이 지나고 스트리밍은 중단되었다.

상술한 사건 이외에도 "마쿠와 유리카" 관련 내용을 언급하는 여학생 자살미수 사건들이 여러 차례 발생한 바 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이후에 자살을 기도하기 전에 "인터넷의 마쿠와 괴담에 힘입어 죽어서 유명해지고 싶었다"라는 생각을 어느 정도 품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마쿠와 유리카 관련 정보를 전면 유포 금지하기를 촉구했으며, 또한 가정을 비롯해 학교와 사회에서 학생들의 생명 중시 교육을 다방면으로 강화하기를 요구했다.

2026년 4월 17일, 중국 산둥성의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학교 꼭대기의 빈 교실에서 집에서 가져온 과도로 손목을 그어 자살을 기도했으나 미수에 그친 채로 발견되었으며 신경계에 후유증이 남게 되었다. 이하는 당시에 해당 학생이 남겼던 유서이다.

정말 너무 지쳐버려서

좀 쉬고 싶어

마쿠와 보고 있어?

나를 데리러 왔니

너무 유치해지는 걸까

아무튼

만약에 진짜 저세상이 있으면 어떡하지

그럼 저세상으로 갈게 안녕

이 사건 역시 당국에서 아무 정보도 발표한 바 없으며, 갖은 SNS 상에 사건의 경과가 유포되었으나 게시글에 첨부된 이미지들을 살펴볼 때 사건의 진위는 대체로 파악이 마쳐진 상태이다.

결론

현존하는 자료들을 종합해볼 때 마쿠와 유리카에 대응하는 요소가 실제 역사에 존재하는지는 아직도 확정할 수가 없다. 관련 단서들이 갖은 시대와 매체에 걸쳐 존재하기는 하나, 핵심 증거 유실이나 출처 불명확, 검증 불능 등의 문제가 잔존하는 탓에 엄밀한 증거사슬을 구축해내기는 어렵다. 이런 탓에 현재 학계의 주류 견해에서는 마쿠와 유리카가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모티프에서 출발한 여러 가지 창작 방향들이 함께 빚어낸 복합적 형상이며, 갖가지 공교로운 요인들이 공동으로 작용하면서 분석가능한 인격의 형태로 구축되었다고 본다. 이렇게 해석한다면 왜 관련 자료가 항상 문헌으로 형성되어 직접 전승되지 못했는지, "마쿠와 유리카"라는 이름이 왜 근대에야 서면 기록 형태로 출현했는지, 그리고 증거로 손꼽히는 수많은 자료들이 어째서 항상 패러디·오독·위조를 거쳐 발생했다고 밝혀졌는지 비교적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마쿠와 유리카는 존재하지 않는다.

by

XCnin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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