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P-692-KO
일련번호: SCP-692-KO
등급: 유클리드
특수 격리 절차: SCP-692-KO는 눈 기지 포유류 구획에 격리되어 있다. 개체의 신체 조건을 완전히 파악하기 전까지, 최소한 일주일에 1회 이상 신체검사 및 심리 상담이 필요하다. 신체검사는 비변칙적 말목 말과 생물에 대한 검사를 준용하되, 경부 추간판탈출증1 의심 하에 경부 영상 검사에 더욱 중점을 둔다. 심리 검사는 인간형 변칙 개체 상담을 담당하는 상담사를 초빙하여 수행한다.
개체는 생존을 위한 영양 섭취가 거의 필요치 않지만, 스트레스 경감을 목적으로, 먹이는 합리적인 예산 범위 내에서 개체가 원하는 음식으로 제공한다.
SCP-692-KO-1의 무게를 경감하기 위해, 격리실 내를 이동하는 범위 내에서 SCP-692-KO-1을 격리실 천장에 견인용 하네스를 달아 두었다. 이로 인해 SCP-692-KO의 경부에 걸리는 부담은 격리 전보다 10% 미만으로 감소했으며, 개체가 해당 조치에 만족하고 있으므로, 하네스는 정비가 필요하거나 개체가 외출할 때를 제외하면 항시 유지한다.

바야르와 그 위에 올라탄 네 형제를 묘사한 그림. 14세기 초.
설명: SCP-692-KO는 각종 변칙성을 지닌 말과 유사한 동물형 개체로, 그 특성으로 보아 프랑스 전설인 "아이몽의 네 아들(Chanson des quatre fils Aymon)"에 등장하는 요정 말 바야르(Bayard)로 추정된다. 원전에 언급되는 바야르와 마찬가지로, SCP-692-KO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 변칙적 수준의 도약 능력을 보유한다. 한 차례의 도약만으로도 500 m 이상 이동이 가능하며, 개체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전설이 기록된 당시에는 더욱 멀리 도약이 가능했다.
• 자신의 크기를 조절하는 능력을 보유한다. 등 부분만 길이를 늘려, 비변칙적 말보다 훨씬 많은 인간을 태울 수 있다. 본래는 덩치 자체를 키울 수도 있지만, 뒤에 언급할 SCP-692-KO-1 때문에 현재는 어렵다고 개체 자신은 주장한다. 능력의 최대 범위는 (개체 자신의 주장대로라면) 약 10배로 추정되며, 이때 질량은 늘어난 체적에 비례하여 증가한다.
• 중세 및 현대 프랑스어로 발성 및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개체 자신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 변칙적 수준의 생존력을 지녔다. 생존에 필요한 열량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듯하며, 개체는 이를 "공기 중에서도 마력을 충분히 보충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진위 여부 및 흡수하는 물질의 정확한 정체는 아직 알아낼 수 없었다.
SCP-692-KO의 목은 직경 약 2 m, 무게 약 1 t의 맷돌(이하 SCP-692-KO-1)에 끼어 있다.2 SCP-692-KO-1은 현재까지 어떠한 파괴 시도에도 손상되지 않았다.
SCP-692-KO가 처음으로 발견된 것은 1812년, 프랑스 국가성경대가 "숲에서 난동을 부리는 말이 있다"라는 민간인 신고에 대응하기 위해 파견되었을 때였다. 당시 국가성경대는 1804년 처음 창설된 이래로 점점 세를 더해가고 있었고, 실적을 추가하기 위해 변칙 개체 확보에 다소 무리한 방법까지 동원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개체의 기적술 등 능력에 고전한 국가성경대는 토벌에 실패했고, 이들의 격리 활동은 개체가 해당 구역 내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데에 치중했다. 이후로도 수 차례 국가성경대 측과의 충돌이 있었던 듯하나, 20세기 들어 국가성경대가 급속히 쇠퇴하면서 SCP-692-KO의 존재는 자연스럽게 잊히게 되었다.
SCP-692-KO의 활동 반경은 현재의 아르덴 지역 자연공원(Parc naturel régional des Ardennes) 내부로 한정되어 있었고, 2010년대 이전에는 개체 자신이 인간과의 접촉을 피해 왔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2015년 처음으로 SCP-692-KO가 공원 내 여행객을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맷돌 달린 말이 사람을 공격했다"라는 내용의 사건이 지역내 언론에 보도되면서 재단의 관심을 끌었다.
면담 기록 692-KO
기동특무부대 델타-4 ("사파리 타임!")이 최초 신고 후 SCP-692-KO를 아르덴 숲 내에서 확보했다. 이후 눈 기지로 이송된 SCP-692-KO와 시행한 최초 면담은 아래와 같다.
면담자: 베르트랑 르페브르(Bertrand Lefebvre) 박사 면담 대상: SCP-692-KO 장소: 눈 기지 격리 유닛 내 비고: 면담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마이크로 이루어졌으며, 현대 프랑스어로 진행됨.
<기록 시작>
베르트랑 박사: 안녕하세요, SCP-692-KO. 앞으로는 이 번호로 불러야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SCP-692-KO: …상관없다. 옛 이름은 이미 버렸어.
베르트랑 박사: '옛 이름'이라고 함은, '바야르'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SCP-692-KO가 커다란 한숨을 내쉬자, 한숨 때문에 유리창이 덜컹거린다. 박사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SCP-692-KO: 이미 거기까지 알았나. 그렇다. 먼 옛날 공작의 네 아들을 태우고 샤를마뉴와 맞섰거늘, 인간들의 평화라는 명목에 희생당한 멍청이가 바로 나다.
베르트랑 박사: 원망하고 계신가요?
SCP-692-KO: 당연하지. 한때는 대제의 폭정에 저항한다는 그 형제들의 취지에 공감하였기에, 그의 왕관을 훔쳐오는 미친 짓도 서슴지 않았어. 헌데 이게 뭐지? 머저리같이 맷돌을 목에 진 채로 속절없이 늙어가는 꼴이라니.
베르트랑 박사: 한 가지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원전을 읽어보니 당신이 '힘차게 헤엄치며 발굽으로 맷돌을 내리치다가, 끝내 흙덩이를 부수듯 산산조각 냈다'고 하던데요. 왜 아직 맷돌이 목에 걸려 있는 건가요?
SCP-692-KO: 샤를마뉴는 내가 떠내려가다가, 숲 속으로 도망가는 모습만을 멀찍이서 봤을 뿐이다. 그래서 맷돌을 부쉈겠거니 지레짐작했고, 그게 전설로서 전해져 내려오는 것뿐이겠지. 날 죽이려고 공들여 준비한 귀물(貴物)인 모양이던데, 그래도 이 정도 무게는 어찌저찌 감당할 수 있다고.
(SCP-692-KO가 힘겹게 목을 돌리며, 스트레칭하는 듯한 자세를 취한다.)
베르트랑 박사: 수백 년 이상 그 맷돌이 걸린 채 생활하셨으면, 많이 힘드실 것 같습니다.
SCP-692-KO: …그래. 솔직히 말하면 끔찍할 지경이야. 기력이 남아돌던 옛날에야, 이 맷돌을 낀 채로도 하루종일 뛰어다닐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악마… 아니, 요정의 피를 이었다고 한들, 세월을 이겨낼 수는 없더군.
베르트랑 박사: 그 부분을 도와드릴 수는 있겠습니다. 저희가 뭐… 방 안에 와이어라도 달든지 하겠습니다. 검사도 해드리고요.
SCP-692-KO: …고맙다. 솔직히, 숲 속에서 숨어 다니는 것도 지쳤어. 날이 갈수록 신경질적이게 변하더군. 내가 무얼 잘못했길래 이런 꼴로 있어야 하는지. 오랫동안 잘 참아오다가 홧김에 눈에 보인 사람들을 걷어찼던 건데, 그것 때문에 오랜 기간 들키지 않으려 노력했던 게 모조리 물거품이 되다니. 사악한 핏줄을 숨길 수는 없다는 건지…
SCP-692-KO: 더 이상 달리지도, 누군가를 태울 수도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개체는 바닥에 웅크리고,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베르트랑 박사: 오늘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초 면담은 우선 이것으로 종료하겠습니다.
SCP-692-KO: …그러든가.
<기록 종료>
비고: SCP-692-KO가 면담 도중 무심코 말한 '악마', '사악한 핏줄'에 관한 조사를 위해, 한국사령부 악마학과로 조사가 의뢰되었다. 악마학과 측에서는 협조를 위해 문헌 조사에 착수했고, 현장 조사 목적으로 신회석 연구원(SCP-692-KO의 이론적 조사 담당) 및 I-I3LL(만일의 사태 시 무력 대응 담당)이 파견되었다.
SCP-692-KO의 심리 평가 결과 개체는 장기간의 우울감, 의욕 저하, 수면 시간 감소, 불안감, 식욕 저하 등의 증상을 보였으며, 이는 전형적인 인간의 주요우울장애 소견과 일치한다. 개체의 심리적 건강 유지를 위해 현행 특수 격리 절차가 책정되었다.
베르트랑 박사의 제안에 따라, SCP-692-KO의 목 관련 건강검진이 이루어졌다. 개체는 현재 C3~C4 높이에서 최소 3기 이상의 추간판탈출증이 발생했으며, 이로 인해 근력 및 감각 저하 등의 증상을 호소하고 있다. 질병의 원인은 장기간 경부에 걸린 과도한 무게 부하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증상 완화 목적의 약물 투여가 시작되었고, 목에 걸리는 부담 완화를 위해 현행 특수 격리 절차대로 격리실 내 하네스가 설치되었다.
악마학과 조사 결과
눈 기지의 업무 협력 요청을 받은 제145K기지 악마학과는 아래와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파견된 신회석 연구원의 조사 결과를 받아 보았습니다. 우선 SCP-692-KO 자체가 악마, 그러니까 재단 용어로 타르타로스 독립체는 아니라고 사료됩니다. 개체의 문헌조사 결과에서도 어떠한 "계약"을 통해 힘을 행사한다는 묘사는 존재하지 않았고, 인류에게 적대적이지도 않습니다. 다만, 타르타로스 독립체들이 뿜어내는 타르타로스 공명 에너지를 직접 방출하지는 않되, 그 잔흔이 남아 있는 것을 포착했습니다. 즉, SCP-692-KO는 이전 악마가 사역하던 동물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문헌적 근거도 발견하였습니다. 1923년 출판된 '아이몽의 네 아들(Four Sons of Aymon)' 전설에서는 바야르를 '악마의 말'이라고 주장합니다. 본래 사탄이 가지고 있던 말을, 당시 아이몽 공작과 협력하여 샤를마뉴 대제와 맞서 싸우던 사령술사 마우기스가 (어떻게 해냈는지는 몰라도) 가져와서 공작에게 선물한 것입니다. 그 뒤로 마우기스는 사탄이 환수한 말을 다시 한 번 지혜롭게 훔쳐 왔다고 합니다. 아무튼 요점은, 바야르가 본래 악마의 본성을 지녔다고 묘사된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바야르는 본성을 극복하고, 선한 미덕을 바탕으로 인간들을 도왔고요.
차후 악마적 문제에서 추가 협력이 필요하다면, 달레트 기지 분들께 문의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 제145K기지 악마학과, 전지태 선임연구원
제시된 내용을 SCP-692-KO에게 질문하자, 개체는 처음에는 부정했지만, 이윽고 대부분의 내용이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사건 692-KO
베르트랑 박사가 위 답변을 받은 직후, 눈 기지 내부의 SCP-692-KO 격리실이 타르타로스 독립체 1개체에게 습격을 당했다. 당시 격리실 내에는 신회석 연구원, I-I3LL, 베르트랑 박사, SCP-692-KO가 있던 상태였다. 아래는 당시 상황을 녹화한 격리실 내 카메라의 영상 기록이다. 인원들 간의 대화는 영어로 이루어졌다.
<기록 시작>
신회석 연구원: …그러면, 저희 일은 이걸로 끝났다고 봐도 좋을까요?
베르트랑 박사: 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이전에도 협력했던 적이 있다고 들어서 협력을 요청했는데, 정답이었던 것 같네요.
신회석 연구원: 그 정도로 대단한 일도 아니었는걸요.
I-I3LL: 의문을 제기합니다. 연구원이 어젯밤 숙소에서 밤을 새워서 자료를 정리하고 있던 것을 제가 확인했는데.
신회석 연구원: 잠시만 잠시만 잠시만,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데?
I-I3LL: 제 임무에는 만일의 사태 시 무력 대응뿐만 아니라, 연구원님의 안전 확보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방은 따로 배정되었지만, 예의주시를 위한 카메라 설치는 필수적이라 판단했습니다.
신회석 연구원: 돌겠네 진짜.
(베르트랑 박사가 피식 웃는다. SCP-692-KO가 입꼬리를 씰룩인다.)
베르트랑 박사: (SCP-692-KO 쪽을 보며) 기분이 좀 괜찮아지셨나 봅니다.
SCP-692-KO: 여기서 몇 달 있어 보니, 나름 괜찮아졌다. 여전히 밖으로 나갈 생각은 없다만…
(SCP-692-KO의 미소가 멈춘다. 격리실 한쪽 벽을 우두커니 쳐다보기 시작한다.)
베르트랑 박사: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SCP-692-KO: 설마… 이건… 아니야, 그래서는 안 되는데-
(기지 내에 노란색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신회석 연구원: 잠깐… 유황 냄새입니다! 악마 출현 가능성 있음! 기지 내 경보 발령해 주세요!
I-I3LL: 타르타로스 공명 에너지 상승 확인. 이전 데이터베이스와 대조. 위험. 위험. 해당 공명 에너지의 파형은-
정체불명의 목소리: 자기소개는 내 입으로 하게 해주지 그래.
(얼굴 부분이 흐릿하게 잘 보이지 않고, 신장은 약 3 m인 인간형 독립체가 연기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목소리는 중년 남성의 것으로 들린다.)
정체불명의 목소리: 그 말의 원래 주인 되는 악마다. 이름은 뭐, 너희가 아는 그 사탄이다. 긴 말은 필요 없겠지. 옛적에 잃어버린 내 것을 되찾으러 왔다. 이놈만큼 성에 차는 탈것이 없어서 말이야.
(그때까지 웅크리고 있던 SCP-692-KO가 제자리에서 일어난다.)
SCP-692-KO: 왜 이제 와서…
사탄: 뭐, 그 이후로는 나도 이래저래 바빴으니 어쩔 수 없잖아. 스올이 완전히 안정화된 지금에 와서야 떠오르더군. 누울 자리가 편안해지고, 하루 온종일 돈만 만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옛날 생각이 났어. 감히 내게 반항하는 가소로운 것들을, 널 타고서 썰어 넘기던 그 시절의 피비린내가 그리워지지 뭐냐.
(사탄이 SCP-692-KO 쪽으로 손을 뻗는다.)
사탄: 넌 내 손에 빚어진 자식과도 같은 존재다. 인간 세상에서 하던 '소꿉장난'은 이제 끝낼 때도 되지 않았나? 날 따라와라.
SCP-692-KO: 나는…
사탄: 네가 별종인 것이야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말이지, 천성은 변하지 않아. 네가 전쟁에 뛰어들었던 이유는 무엇이더냐? 인간들을 돕는다는 핑계로, 그저 날뛰고 싶었을 뿐 아닌가? 그저 본성대로 천방지축 날아다니다 보니 주변에서 영웅 말이니 뭐니 떠받들어 주니, 그 달콤한 말에 취했을 뿐이지 않나?
베르트랑 박사: 아닙니다!
(사탄이 말을 멈추고, 베르트랑 박사 쪽을 바라본다. 얼굴의 용모는 분명하게 보이지 않지만, 붉은색 눈빛이 분명히 보인다. 베르트랑 박사가 헛숨을 삼킨다.)
사탄: 뭐라고 했나?
베르트랑 박사: 당신의 말은… 틀렸습니다! 사탄!
(베르트랑 박사가 SCP-692-KO 쪽을 돌아본다.)
베르트랑 박사: SCP-692-KO… 아니, 바야르! 당신이 숲에서 떠나지 않은 이유가 뭔지, 한참 고민했습니다. 그건, 마우기스 때문이지 않았나요? 당신을 불러온 강령술사 말입니다!
SCP-692-KO: 너…
사탄: (피식 웃으며) 헛소리를. 그놈이 왜 그 간사한 놈을 따라갔는지는 나도 잘 안다. 뻔하지. 지옥에서의 생활이 질렸으니, 흥미 본위로 날뛰려고 했을 따름이다.
베르트랑 박사: 분명히 처음에는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만약 그랬다면 천사의 명을 받아 마우기스를 태우고 교황을 만나러, 로마까지 갔던 것은 어찌 설명하실 겁니까?
(사탄이 눈살을 찌푸린다.)
사탄: 내 앞에서 천사를 언급하다니 배짱도 좋군.
I-I3LL: 반론. 근데 본인도 출신은 천사인데 타락한…
(신회석 연구원이 I-I3LL의 발성 부위를 틀어막는다.)
신회석 연구원: 너 제발 눈치 좀 챙겨.
베르트랑 박사: 로마에서 돌아온 뒤로 아르덴의 숲에서, 마우기스와 당신은 함께 기도를 하며 지냈다고 하더군요. 그러다가… 마우기스가 사망했습니다. 당신은 그의 묫자리를 지키고자 계속 그 자리에 머무르고 계신 것 아닌가요?
(SCP-692-KO가 고개를 푹 숙였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사탄 쪽을 바라본다.)
SCP-692-KO: 난, 당신을, 따라가지 않아.
사탄: 그걸 네가 결정할 수 있을 것 같나?
(사탄이 막대한 양의 타르타로스 공명 에너지를 방출한다. 수많은 핏방울이 공중에 나타나고, 주변의 유황 연기가 더욱 짙어진다.)
I-I3LL: 평균적인 악마가 방출하는 에너지의 30배 정도로 추산됩니다.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대항 불가능, 최대 출력의 자폭 프로토콜 개시합니다. 모두 대피하시면 즉시…
신회석 연구원: 여기서 우리는 어떻게 나가라고?!
사탄: 설마 내가 보내줄 거라고 생각하진 않겠지?
SCP-692-KO: …
(SCP-692-KO가 베르트랑 박사와 신회석 연구원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목에 고정된 하네스를 힘으로 뜯어낸다.)
SCP-692-KO: 당장 등 뒤에 타라!
신회석 연구원: 와앗?!
(SCP-692-KO가 두 인원을 재빠르게 태운 뒤, 단 한 차례의 도약으로 격리실 벽을 완전히 파괴한 다음 밖으로 사라진다. 사탄이 소환한 핏방울은 전혀 발사되지 않는다.)
사탄: …꼴에 내 피조물이라고, 성장한 걸 보니 재밌군.
I-I3LL: 분석. 당신이 정말 사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저분에게 품은 감정은 꽤… 양가적인 것 같습니다.
사탄: 헛소리. 너희 재단과 완전히 척을 지면서까지 가져갈 정도의 가치가 없는 거다. 정말 필요했다면, 어떠한 수를 써서라도 빼앗았을 터. 그게 내 삶의 방식이다.
I-I3LL: 그렇습니까. 아무튼 만나 봬서 즐거웠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또 뵙겠습니다.
사탄: 그런 날이 오지 않길 바라지. 그런데 잠시만… 다들 무사히 내보내 줬는데도 그냥 폭발하는 건가?
I-I3LL: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악마의 수장을 공격해 보겠습니까?
(사탄이 껄껄 웃는다.)
사탄: 이거 숫제 미친 놈들밖에 없군.

격리실 내 카메라에 촬영된 폭발 순간의 모습.
(I-I3LL이 폭발한다. 격리실이 빛과 폭연에 휩싸이면서 카메라 시야가 완전히 가려진다. 격리실 안에서 유황 연기가 빠르게 걷힌다. 폭발 이후 드러난 영상에서는 방 안에 자폭한 I-I3LL의 잔해 외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10분 후, 기지 내 대응반이 도착하여 I-I3LL을 수습한다.)
<기록 종료>
비고: 폭발로 인한 기지의 피해 규모는 SCP-692-KO의 격리실에 그쳤다. I-I3LL의 자폭 판단은 정당했다고 판단되어, 별다른 처분이 내려지지 않았다. I-I3LL의 영혼은 이후 다른 몸체로 주입되었다.
사건 이후, 베르트랑 박사의 재단 이메일 계정으로 "사탄중앙은행 총재 사탄"이라는 이름의 발신인이 발송한 메일이 도착했다. 메일에는 '분양비'라는 제목 외에 아무런 내용도 쓰여 있지 않았고, 메일을 열람한 베르트랑 박사의 책상에 즉시 10,000 유로의 현금이 나타났다. 현금의 출처를 추적하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했다.
악마학과는 정말 출현했던 타르타로스 독립체의 정체가 사탄이 맞는지 확인하고, 사탄의 추가적인 정보를 획득하려고 시도했지만, 이 시도들 역시 대체로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재단에 격리된 몇몇 타르타로스 독립체에게 질문한 결과, '사탄이 이전에 말을 몰고 다녔지만, 그 말이 어느 순간 사라진 뒤로는 어떠한 탈것도 타고 다니지 않는다'는 공통된 증언을 얻을 수 있었다.
SCP-692-KO의 정신 상태는 사건 이후 상당 부분 호전되는 추세이다. 개체 자신의 요청에 따라, 특수 격리 절차에 '기지 인원들을 태우고 산책시키는 시간'을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면담 기록 692-KO-2
면담자: 베르트랑 르페브르 박사 면담 대상: SCP-692-KO 장소: 눈 기지 격리 유닛 내 비고: 면담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마이크로 이루어졌으며, 현대 프랑스어로 진행됨.
<기록 시작>
베르트랑 박사: 안녕하세요? 요즘은 좀 기분이 어떤가요.
SCP-692-KO: 나쁘지 않다. 오랜만에 사람을 태우고 돌아다니다 보니 재활도 좀 되는 것 같고. 다 늙고 나니 이런 여유로운 생활도 좋다고 느껴진다.
베르트랑 박사: 전에 사탄…이 나타났을 때 뛰는 솜씨는 전혀 안 늙은 것 같던데요?
(베르트랑 박사와 SCP-692-KO가 서로를 바라보다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린다.)
SCP-692-KO: 뭐, 늙었어도 실력은 어디 안 간다는 뜻이겠지. 그나저나, 오늘은 원래 면담하는 시간이 아니지 않던가? 왜 찾아왔지.
베르트랑 박사: 아뇨, 그냥. 이 사진을 보여드리면 좀 좋아하실까 해서요. 한 번도 아르덴 숲 바깥으로 나가시진 않았으니, 본인이 얼마나 유명해지셨는지도 잘 모르실 것 같았습니다. 한번 보시겠어요?
(SCP-692-KO는 베르트랑 박사가 건네준 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살짝 미소를 띤다.)
SCP-692-KO: 내 멋진 외모의 1할도 따라하지 못했다.
베르트랑 박사: 솔직하지 못하시기는.
SCP-692-KO: 조용히 해라.
<기록 종료>

벨기에 덴데르몬더(Dendermonde)에서 열린 전통 축제의 사진. 바야르와 네 형제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by
LR0725
각주
1. 소위 일반인들 사이에서 '목 디스크'라고 부르는 질병. 말의 추간판은 인간이나 다른 생물들과 달리 거의 전부 섬유연골 조직이지만, 드물게 추간판의 탈출이 나타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2. 바야르는 이전의 갈등으로 인해 분노한 샤를마뉴 대제가 목에 맷돌을 걸고 강에 던져 버렸으나, 결국 헤엄쳐 살아남았고 이후 아르덴 숲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