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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카나트

ykamikura

Karkaroff 2020/7/24 (토) 22:35:01 #82965128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의 옛 도읍지 페르세폴리스 유적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의 옛 도읍지 페르세폴리스 유적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의 옛 도읍지 페르세폴리스 유적

이란은 페르시아제국이 오랫동안 번영했던 땅이다. 이슬람 시아파의 아성이 된 지금도 그 흔적은 여기저기 남아 있다. 이 이야기도 그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혁명이니 경제제재니 해서 이란이 미국을 사갈(蛇蝎)과 같이 싫어하는 것은 외교상의 상식이지. 그렇지만 구미의 상품을 수입하지 못하면 그들도 곤란하다. 그럼 우리끼리 어떻게든 해 봅시다  해서 발목 잡히듯이 러시아의 단골 고객이 되었지만, 공산주의에는 회의적.

그런 미묘한 관계이지만, 우리 회사로서는 상품만 사 준다면 불평할 것은 없는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나는 동료와 함께 교섭 채비를 위해 파견되었다. 다행히 이란 정부는 우리에게 호의적이었고, 유능한 공인 가이드를 붙여 주었다. 그의 안내를 받아 점찍어 둔 거래처들을 순회하며, 접대에 쓸 만한 가개를 물색하고, 이란 국민들의 생활 실태를 관찰하고  그렇게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귀국 전날 밤, 우리는 가이드와 함께 테헤란 시내의 식당에서 뒷풀이를 했다. 타고난 파라워처인 나는 이런 자리에서 빠뜨릴 수 없는 질문, 「불가사의한 체험담 같은 거 없냐」고 동석자에게 물었다. 세계 각지의 괴담 기담을 수집할 수 있는 것도 이 직업의 특전 중 하나다.

이하는 가이드가 말해준 이야기를, 가능한 한 충실하게 재현한 것이다. 과연 아라비안 나이트의 백성이라고 해야 할지, 현장감 넘치는 말투였다.

Karkaroff 2020/7/24 (토) 22:46:01 #82965128

(재현 중) 지금은 돌아가신 조모님께서 어렸을 때 체험하신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60~70년 전의 이야기일까요.

저는 태어난 곳도 자라난 곳도 테헤란이지만, 조모께선 변경의 농촌 출신이셨습니다. 마을 주위는 온통 황야였지만, 카나트가 뚫려 있어서 밭의 열매는 풍성했다고 합니다.

카나트의 개념도. 마우스 호버하면 확대
카나트의 개념도. 마우스 호버하면 확대

카나트의 개념도. 마우스 호버하면 확대

카나트(qanat)란 전통적인 지하수로를 말합니다. 그 발상은 일설에 따르면 기원전 2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답디다. 산악지대의 지하수맥에서 평야의 경작지까지 완만한 경사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길이가 수십 km에 이르기도 합니다. 약 40000 개가 현존하고 있으며, 그 중 약 25000 개는 현역으로 기능하고 있답니다. 페르시아제국이 번영한 이유, 적어도 그 이유 중 하나였음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해서, 어릴 때 조모께선 마을 제일가는 장자(長者)의 집에서 식모살이를 했습니다. 일은 힘들었지만 고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장자에게 딸이 한 명 있었는데, 이 사람이 제 조모님을 친동생처럼 아껴 주었기 때문입니다. 샤(shah)대왕(大王)의 하렘(harem)후궁(後宮)에 피어난 꽃 같은 미인인데다, 쿠란을 통째로 암송할 정도로 현명해서, 조모님으로선 동경의 대상이었다지요.

장자의 딸에게는 불가사의한 힘이 있었습니다. 조모님이 그것을 처음으로 목격한 것은, 이웃마을에 심부름을 갔을 때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미아가 되어 곤란해 하고 있는데, 다름아닌 장자의 딸이 마중을 나와 준 것입니다. 어떻게 여기 있는 줄 알았냐고 조모께서 묻자 장자의 딸은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진니들이 노래하는 게 들렸어. 여자애가 길을 잃었구나, 서쪽의 말라붙은 골짜기에서 길을 잃었구나, 하고」

진니라고 하면, 외국에서는 램프의 정령 이미지가 강한 것 같지만, 원래 초자연적인 지적종족의 총칭입니다. 이슬람교가 확산되기 전부터 속설에서 믿어져 왔고, 쿠란에서도 마지못해 그 존재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진니의 목소리가 장자의 딸에게는 들렸다는 것입니다.

역시 조모께서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도 몇 번이나 장자의 딸은 “진니의 목소리를 듣고” 사람들을 도와주었습니다. 야밤중에 벌떢 일어나 아직 번지지 않은 작은 불을 끄거나, 나그네의 정체가 범죄자인 것을 간파하여 관헌에게 신고하거나  그러다 보니 조모께선 장자의 딸을 믿게 되었습니다. 세상 형편이 좋았다면 이 사람은 왈리(walī)성자(聖者)라고 불렸을 것이라고.

아니,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다 압니다. 그 장자의 딸이란 사람은 단순히 직감이 좋았던 것일 뿐이 아닌가. 어떤 특수능력의 소유자였는데 그것을 진니의 목소리라고 해석했을 뿐은 아닌가. 저도 현대인이고, 그 정도 생각은 다 해 봤어요. 하지만 그런 설명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뒤에 일어난 일이 말이지요.

Karkaroff 2020/7/24 (토) 23:03:21 #82965128

(재현 중) 장자의 딸이 나이가 차자, 당연히 구혼이 쇄도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모두 물리쳐 버렸어요. 숨겨둔 애인이라도 있나 싶어서 부친인 장자도 결혼을 재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조모님이 수세를 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장자의 딸이 뒷문으로 집을 빠져나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렇다면 연인과의 밀회인가. 할머니는 어떻게든 그 상대가 알고 싶어져서, 죄악감을 느끼면서도 미행을 했습니다. 밖은 컴컴한데도 장자의 딸은 망설임 없이 성큼성큼 걸어갔고, 조모님은 그녀를 몇 번이나 놓칠 뻔했습니다.

이윽고, 장자의 딸이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곳은 의외의 장소였습니다. 마을 밖 절벽 아래 뚫려 있는, 카나트의 방수구였던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일 카나트도 밤에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고 합니다. 뻥 뚫린 어둠 속 깊은 곳에서 차가운 물을 무한히 토해내는 모습은, 마치 바르자크(barzakh)명계(冥界)의 지저호수로 가는 입구 같았다더군요.

장자의 딸은 카나트 방수구를 들여다보며 뭐라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누가 있는가 싶었지만, 조모님의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곤혹해하고 있는데, 방수구에서 갑자기 찬바람이 불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장자의 딸이 즐거운 듯 웃어댔습니다. 다시 휘휘휘 찬바람이 불어왔고, 장자의 딸도 다시 웃음을 터뜨리고  하는 것이 마치 카나트에 숨어 있는 누군가와 담소를 나누는 듯하였습니다.

조모님은 황급히 달아났다고 합니다. 그 누군가는 물론이고 장자의 딸까지 무서워져서요.

조모님은 아무에게도 그날 밤 일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장자의 딸은 매일밤마다 카나트에 다녔던 것 같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온 마을에 소문이 파다해졌습니다. 역시 장자도 이에 화가 나서 오밤중에 무엇으 하고 다니냐고 딸에게 따져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주눅조차 들지 않고 대답하기를,

「저는 자네 카나트(zané qanat)카나트의 색시가 된 것입니다」

카나트의 색시란 오래된 풍습입니다. 카나트가 수량이 줄어들거나 때로 완전히 말라붙을 때가 있습니다. 이것을 옛 사람들은 “카나트의 물은 남신이고, 반려자를 물색하러 가 버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카나트를 붙잡아두기 위해 마을의 여성을 색시로 삼는 것입니다. 무칸니(muqanni)카나트 뚫는 기능인들의 밧시(バッシ)우두머리 장인가 혼례를 집행하고, 색시를 벗겨서 카나트 물에 담그는 등 다소 에로틱한 절차도 뒤따랐다고 합니다.

그렇다 치고, 장자의 딸이 그 색시가 된다는 것은 엉뚱한 이야기였습니다. 왜냐하면 카나트의 색시가 되는 것은 과부, 그것도 고령이고 가난한 여성 중에 선택되기 때문입니다. 카나트의 색시가 되면 마을에서 식료품 등의 보수가 나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사회복지이기도 했던 것이지요. 즉, 미혼이면서 유복하기까지 한 장자의 딸이 카나트의 색시가 될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결혼이 싫어서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냐고, 장자는 필사적으로 딸을 설득했습니다. 결혼이란 남녀가 서로를 지탱하도록 알라께서 정해주신 계약, 그러니 아무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 말을 들은 장자의 딸은 미소를 지으며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네, 알라께서 저와 카나트를 맺어주신 것입니다. 걱정 따위 하고 있지 않습니다」

Karkaroff 2020/7/24 (토) 23:07:56 #82965128

(재현 중) 딸이 정신이 나가 버렸다, 장자는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부름꾼을 시켜 의사를 부르러 보내고, 의사가 도착할 때까지 딸을 집안에 연금하기로 했습니다.

정신이 나가 버렸다  그렇다면 의사에게 보여주면 회복할 가능성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 조모님께선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밤 분명히 장자의 딸은 카나트와 대화하고 있었다, 적어도 조모님께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아무튼 아가씨가 카나트에 접근하도록 해선 안 된다. 조모님은 그렇게 결심하셨습니다.

다행히 집 문에 자물쇠를 걸어 놓았기에 그런 걱정은 없을 것이었습니다. 헌데 “연인으로부터 떨어뜨려 놓은” 신세가 된 장자의 딸은 변함없이 행복하게 웃으며 노래 같은 것을 흥얼거렸습니다. 카나트에게 선물받은 루바이(rubāʿī)사행시(四行詩)라고 했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내 사랑의 장미여, 자 오시오. 혼례의 잔치가 열리는 나의 정원으로. 밤꾀꼬리나이팅게일가 노래하고, 오달리스크여자 노예도 춤춘다. 더불어 갑시다, 끝이 없는 낙토로.

카나트의 목소리  조모님의 귀에는 웅웅대는 바람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습니다만, 장자의 딸에게는 그것이 이렇게 들렸다는 모양입니다. 그 표현이 휘황한 것이, 그래서 오히려 무서웠다고 합니다. 그날 밤, 알라께 「부디 아가씨를 지켜 주세요」라고 기도하고 조모님은 잠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기도는 닿지 않았습니다. 구원을 받고 싶어하지 않는 자는 알라께서도 구원해줄 수 없는 것일까요. 다음날 아침, 장자의 딸은 집에서 모습을 감추어 버렸습니다. 곧 온 집안이 난리가 나서 수색이 이루어졌고  그리고 기묘한 사실이 발견되었습니다. 문의 자물쇠가 그대로 잠겨 있었습니다. 이래서야 장자의 딸이 밖으로 나갈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떠올렸습니다. 그 집에 샤베스탄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샤베스탄의 개념도, 마우스 호버하면 확대
샤베스탄의 개념도, 마우스 호버하면 확대

샤베스탄의 개념도, 마우스 호버하면 확대

샤베스탄(shabestan)이란, 카나트를 이용한 고대의 냉풍기입니다. 카나트와 연결되는 지하실의 수직갱과, 바드기르(bâdgir)라는 탑 모양의 환기구로 구성됩니다. 이 두 가지 요소로 공기를 순환하여 카나트의 냉기를 실내로 끌어올리는 구조입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장자의 집은 카나트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설마 하면서 조모님은 지하실을 살펴보셨습니다. 수직갱은 추락방지용 쇠격자로 단단히 닫혀 있었지만, 그 곁에 히잡(hejâb)두건(頭巾) 한 장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틀림없이 장자의 딸이 애용하던 물건이었습니다. 흠뻑 찬물에 젖어 있었답니다.

조모님께 두건 이야기를 들은 장자는 딸의 수색을 포기했습니다  예, 뭔가 이상한가요? 상대가 누구든 간에, 그녀는 스스로 원해서 시집을 간 것입니다. 그것을 억지로 찢는 일 따위, 알라께서 용납하시 리 없지요.

그 이후로 장자의 딸을 본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이 “결혼”의 음덕인지, 그 후로도 카나트는 마을에 풍부한 물을 계속 가져다 주었습니다. 다만, 마을 사람들 사이에 가끔 이런 소문이 돌았다고 합니다.

밤이면 밤마다 카나트 깊은 안쪽에서, 간난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온다고.

Karkaroff 2020/7/24 (토) 23:11:09 #82965128

가이드의 이야기는 이상이다.

이란은 페르시아제국이 오랫동안 번영했던 땅이다. 이슬람 시아파의 아성이 된 지금도 그 흔적은 여기저기 남아 있다. 이 이야기도 그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Sakura_Minegisi 2023/07/24 (일) 00:10:12 #71806423

조모님은 황급히 달아났다고 합니다. 그 누군가는 물론이고 장자의 딸까지 무서워져서요.

그 기분 알 거 같아요. 정체 모를 존재도 무섭지만, 소중한 사람이 그렇게 되어 버리는 게 더 무섭겠지요. 그건 그렇고 고대 페르시아의 기술력은 대단하네요!

Detteiu 2020/07/25 (일) 00:20:08 #22806555

카나트의 색시가 되는 것은 과부, 그것도 고령이고 가난한 여성 중에 선택

그걸로 OK라는 것은 카나트는 숙녀가 취향인가?

SKY WAVE 2020/07/25 (일) 00:34:29 #42806555

너땜에 감상 다 망침 ㅋㅋㅋㅋ

by

Salamander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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