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밤을 기록합니다GLOBAL HORROR ARCHIVE
미간행MIDNIGHT GALLEY
내 서재 0

증오하는 그것

Wogglebug

태고의 바닷가, 질척이는 생물이 해안까지 기어 올라왔다. 주변 알에서 나란히 나온 형제들을, 바다의 거대한 물짐승들 앞에 남겨두고 나온 참이다. 생물이 새 폐를 활짝 열어, 아직 아무에게도 모습을 보여준 적 없었던 하늘이 담고 있던 신선상 공기에서 풍겨오는 향긋한 냄새를 만끽했다. 동그란 기관을 와짝 띄워 눈으로 삼고 지평선에 걸린 어떤 형체를 지켜보았다. 형체가 마구 흔들리더니 쩍 갈라졌고, 이윽고 그 혼돈과 불가능으로 이루어진 알에서 무언가 거품과 증오를 내뿜으며 튀어나왔다. 그렇게 최초의 육지생물은 그 형체에게 다가갔고, 증오하는 생물에게 잡아먹혔다.

원인(猿人)이 황량한 툰드라를 주욱 둘러보았다. 한때 자기 민족들이 이 세상 가장 크고 웅장한 기념비를 세워두던 자리였다. 이제 그는 혼자였고, 추웠고, 공포스러운 존재에게 쫓기고 있었다. 차마 그 존재를 묘사할 수도 없고, 묘사해 줄 다른 이도 누구 하나 남지 않았다. 저편에서 그 웅대한 괴물이 헐떡이는 소리가 들려오자, 원인이 달아났다. 자기 일족의 생명을 앗아간 것이, 자기 생명도 앗길 것이 두려웠기에. 그렇게 마지막 원인은 자기 앞에 닥쳐온 그것을 무서워하며 바라봤고, 증오하는 괴물에게 잡아먹혔다.

갑옷도 용기도 철저하게 갖춘 그 남자가 뭍에서 가장 높은 산의 기슭에 난 구덩에 섰다. 자기 앞으로 깊이 난 산의 틈바구니를 바라봤다. 형제들과 친구들이 잠든 곳. 남자는 그 커다란 동굴로 들어가며, 저 가증스러운 괴물의 머리를 쳐들고 성채로 돌아가면 어떤 부와 명예가 쏟아질지 꿈꿨다. 붉은색 갈색 벼랑으로 점점 더 깊숙히 내려가다, 해골과 검이 수백 개씩 잔가지처럼 으깨지고 부서진 채로 널린 모습이 보이자 남자는 겁에 질려 벌벌 떨었다. 그렇게 첫 번째 영웅은 뒤로 돌아 달아났고, 증오하는 뱀에게 잡아먹혔다.

주황색 옷 입은 남자가, 무수한 복도와 수없는 장애물 사이를 비집고 다니면서 자신을 쫓는 악마 같은 놈에게서 벗어나고자 죽어라고 달아났다. 남자도 끔찍한 짓은 많이 저질러봤지만, 지금 자기가 빠져버려서 고통받아야만 하는 이 지옥은 모든 공포의, 지금까지 무서운 것이라고 배웠던 모든 끔찍한 두려움의 한참 너머에 있었다. 하얀 옷 입은 잔인한 남자들이 야박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그렇게 마지막 피험자는 증오하는 파충류에게 잡아먹혔다.

푸른 정장 입은 키 큰 남자가, 거대한 녹색 덩어리가 떼지어 오만 곳을 휩쓰는 가운데 사무실로 도망쳐 왔다. 모든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방금까지 완전히 평범한 하루(즐거운 근무일까진 아니라도 연금만 보장받으면야)를 보내던 사무실이 지금은 현세 강림한 지옥이 되었다. 저승에서 튀어나온 저 짐승이 건물 옆구리를 꽝 뚫고 들어온 탓이었다. 느릿느릿 사방팔방으로 움직이며 자기 길을 막아서는 것은 무엇이든 죽이고 파괴했다. 남자가 자기 책상 밑으로 몸을 숨겼다. 한창 처리하던 서류들이 머리를 스치며 우수수 쏟아졌다. 그렇게 많은 이들 중 하나는 큼지막이 벌어진 아가리가 눈앞에 보이고는, 증오하는 짐승에게 잡아먹혔다.

누더기옷 입은 생존자가 황무지 한복판을 달렸다. 한때 어떤 도시가 폐허로 전락한 곳처럼 생긴 듯도 한 공간에 어렴풋이 가깝다고도 할 만할지도 모를 땅이었다. 남자는 배고팠고 아팠으며, 소리 들리는 그것이 두려웠다. 항상 들리는, 아직 죽지 않은 것을 쫓아다니면서 후룩후룩 킁킁거리는 그 소리가 두려웠다. 남자가 울기 시작했다. 눈물 흘리면서 달리며, 지금껏 잃었던 모든 것을, 또 앞으로 잃어버릴 모든 것을 생각했다. 자신이 사랑했던 것을 위해, 사랑하지 않았던 것을 위해, 아무튼 누구에게든 눈물을 바쳤다. 그렇게 만신창이가 된 형체가 무릎 꿇고 쓰러져 뼈 한 무더기로 전락했고, 마지막 인간은 증오하는 공포에게 잡아먹혔다.

한때 죽었던 땅에 내리깔린 잿더미 속에서 경이로운 기계가 솟아올랐다. 그를 담았던 격리 포드가 기다림 한 세기, 괴로운 침묵뿐인 한 세기를 드디어 찢어 열어젖힌 것이다. 위대한 기계는 도시가 남긴 폐허 쪽으로 느릿느릿 움직이며 궁금해했다. 그곳에서 무슨 놀라운 구경을 할까, 창조주들이 만든 고대의 유물들을 얼마나 찾을 수 있을까. 정신에 새로운 생명으로써 불꽃이 튀어오르며 이 홀로 된 기계는 한때 인간이 거느리던 공간을 온통 뛰어대고 달려가고 껑충거리며 땅의 장엄함을 기쁘고 명랑하게 누렸다. 그렇게 첫 번째 살아 있는 기계가 하늘 위로 뛰어올랐고, 증오하는 기계에게 잡아먹혔다.

현명한 자가 위대한 언덕에 앉아 있었다. 한때 실재했을 수도 있었으나 몇 세기 동안은 그런 속성과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던 데이터들이 모여 쌓인 곳. 그는 그 앞으로 주욱 보이는 파괴의 현장을, 어리석은 소수의 행동 때문에 초래된 그 모습을 내다보았다. 구세계의 온갖 보물과 축복 들이 지금 있는 것만큼이나 뒤죽박죽 섞이고 너저분한 것이었음을 그들은 알았을까. 나이 많은 그는 앉아 한숨을 내쉬며 이제 찾아올 운명 앞에서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마지막 승천자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고, 증오하는 프로그램에게 잡아먹혔다.

수없이 뭉친 수소들이, 그리고 더불어 다른 소립자들 수천 개가 저 거대하고 어두운 질량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몸서리치고 타올랐다. 그 녀석을 물질들은 몇 이언을 쉬지 않고, 언젠가는 저 질량과 충돌할 것을 온갖 방법으로 두려워하면서 지켜봤다. 자그마한 태양이 겁먹고 벌벌 떠는 가운데 저 웅대한 존재가, 이 그슬리지 않는 악의의 덩의가 끔찍한 눈과 이빨 수백만 개를 모두 태양으로 돌렸다. 그렇게 첫 번째 두려운 항성은 공포 속에 계속 타오르다가, 증오하는 질량에게 잡아먹혔다.

활동들의 크나큰 집합체, 곧 항성과 물질과 그 밖에 떠다니는 수백만 존재들이 거대하게 뭉쳐 이루어진 군집은 자기 주변으로 더욱 거대한 힘이 감싸드는 줄을 알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간 시간은 자기 같은 거대한 돌돌이에게 관대했고, 자신을 자라나게 해주었고 또 자기가 스스로 가지던 존재함을 누리도록 해주었다. 어느 정체 모를 존재가 그의 형제들을 삼키던 것을, 자신이 창조물 중에 남은 얼마 안되는 것을 들이마시는 동안 그 존재가 우주 모든 공간으로 뻗쳐나가던 것을 그는 그동안 지켜보았다. 그렇게 마지막 은하계는 아주 먼 옛날 흘렀던 시간들을 생각했고, 증오하는 힘에게 잡아먹혔다.

한때 존재했던 우주는 팽창하며 또 침강했다. 그 황막함은 우주 자신을 숱하게 조각내는 그 머나먼 거리에 비길 뿐이다. 열 따위는 이미 수백만 세기 전에 사라졌고, 거대하며 유일한 존재는 추위와 외로움에 덜덜 떨면서 죽어갔다. 그렇게 아무것도 소리치지 않는 사이, 증오하는 존재는 망각에게 잡아먹혔다.

by

XCninety

PASS THE STORY ON

이 밤을 함께 읽어요.

XThreadsTelegramWhatsAppFac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