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P-CN-2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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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백신 접종 개시.
이것은, 포스트모던의 주민이 현대의 규칙에 따르며 신중히 살아갔음에도, 그 규칙 때문에 소중한 것이 망가지고 마는 이야기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불가지론을 따르며 아주 혼란한 세상이지만, 사실 모두는 아주 적절하게 어떠한 체계 하에 놓여 있습니다. 체계와 체계 사이, 또 그 체계와 전체 사이에도 각각 상응하여 위치 관계가 생겨납니다. 사람은 제 자신의 위치에서 단 한 걸음이라도, 단 한 순간이라도 벗어난다면, 영원히 있을 곳을 잃어버릴 위험에 빠지고 맙니다. 마치, 마왕이 되어버린 신격(apotheosis) 소녀처럼 말이에요. 변치 않는다 생각했던 환경 속에서, 그녀는 이미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을 위험을 떠안고 있었고, 결국 실제로 버려지고 말았습니다. 그녀가 구한 것은 장대한 이야기의 세계가 아닌, 현대인이 잃어버린 '자신'이란 이름의 세계였습니다. 작품은 관객에 의해 만들어지고, 또 관객은 작품에 영향을 받습니다. 언뜻 관객의 뜻을 거스르는 듯한 작품들도, 그저 관객이 그러한 반격을 원하기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결국에 우리는 모두 평범한 인간으로, 현대 호러의 탈을 쓴 이 우리에 갇혔고, 저마다의 혼은 고난으로 가득합니다. 이것으로 마지막이겠네요. 이런 작품이 떠올랐습니다. 여러분 부디, 변변치 못한 글이지만 즐겨 주십시오. 만약 읽으시다가, 실제 생활에 영향이 가는 듯한 느낌이 드신다면…… 즉시 열람을 멈추시고, 다시 읽기 전에 심리 상담 등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접종 완료. 문서에 접근이 가능합니다.
……
일련번호: SCP-CN-2504 5/fātālis등급
등급: 케테르 기밀

SCP-CN-2504, "스컬드"
특수 격리 절차: SCP-CN-2504는 그 특성상 부분적으로만 격리되어 있다. 자세한 사항은 『현실 조정자 개체 격리 규범 』1 및 『메타서사 개체 격리 규범』2을 참조하라.
설명: SCP-CN-2504는 현실조작 능력을 가진 인간형 개체이다. 개체가 가진 고농도의 아키바 방사선과, 영향을 받은 현실이 보이는 기준현실과의 편차를 고려할 때, SCP-CN-2504는 V급 현실 조정자에 해당한다. SCP-CN-2504는 재단에 관련된 존재현실에 대하여 적극적이며 침습적인 변칙적 영향을 미치므로, 개체에 대한 기록은 (본 문서를 포함하여) 빈번한 수정이 가해지고 있다.
SCP-CN-2504에 관해 수정되지 않은 모든 정보는 아래와 같다.
• SCP-CN-2504의 본명은 샤오蕭█시曦로, 여성이다. 199█년 █월 ██일 출생. 14세 무렵에 현실조작 능력을 발현했지만, (개체 본인을 포함해) 누구에게도 발각되지 않았다.
• SCP-CN-2504는 SCP 재단의 존재를 인지하기 전부터 '스컬드'라는 필명으로 문예창작에 열중했으며, 창작 내용은 현대 호러 소설, 음성 합성 소프트가 부르는 락 음악, 동인 일러스트・PV 등으로 다양했다.
• SCP-CN-2504는 2007년 7월 12일에 'SCP-173'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열람했다가 우발적으로 본인의 능력을 사용하여 SCP 재단 및 연관 GoI를 실제 현실에 창조했다.
SCP-CN-2504는 201█년 █월 ██일에 발견되었다. 이 시점에 대상은 대학을 졸업했고, 창작물의 작풍은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풍자와 철학적 사색으로 변화했다. 대상이 웹상에 공개한 창작물(이하 SCP-CN-2504-ᚩ로 지칭)에는 아키바 방사선이 남아 있었던 탓에 재단의 주의를 끌었다. 연구를 통해 이러한 창작물이 피영향 현실에 미약한 개변 효과를 가지지만, 기준현실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이후 데지레 박사의 연구에 의해, 모든 SCP-CN-2504-ᚩ가 주머니 현실을 내포하고 있으며, 메타서사와 결합한 특수한 기적술 의식으로 해당 차원으로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재단은 SCP-CN-2504의 현실조작 능력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2022년 5월 ██일, SCP-CN-2504는 알 수 없는 수단으로 제CN-██기지의 형이초학 연구팀을 포착했다. 개체는 SCP 재단 및 연관 GoI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다는 태도를 내비치며 자신을 격리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개체기 재단의 격리 방침에 동의하지 않고 격리 업무에 지속적으로 저항한 탓에, 재단은 대상에 대한 강제 격리 절차를 집행했다. 해당 행위로 인해 개체는 재단의 존재 자체에 대한 파괴적 심리를 품게 되었고, 본인의 현실조작 능력을 인지하고 통제하는 능력이 강화되었다. 또한 자신의 신체나 행동의 자유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고 파괴하기 위해 현실조작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대상에 대한 모든 격리 시도는 실패했다.
HK급 ("신격정복") 시나리오 발생을 저지하기 위해 재단은 강제적이고 철저한 격리에 중점을 두던 방침을 바꾸어, SCP-CN-2504로 인한 피해나 SCP 재단 및 연관 GoI에 대한 적대적 태도 경감을 주된 격리 절차로 삼았다.
현재 형이초학부 연구원인 데지레 박사가 개체와의 주요 연락원으로서 파견된 상태이다.
부록 2504:
…… 친구의 말처럼 '현대의 극작가는 모두 각 인물이 설 위치를 미리 정해 둔다'고 한다면, 재단이 마주하는 수많은 최상급 다능성 독립체들 또한 그 이야기에서 '신들은 그 위치에 놓인다'는 역할을 맡아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 터이다. 신들의 신성은 그 사실을 눈치챌 수 있을까. 아마도 대부분의 존재는 지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해서 그 사실을 뒤집을 수는 없다—— '신'의 위치에서 벗어난다면 그들은 필연적으로 신단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이야기 속 존재에 의해, 결국에는 '왕권신수설'이 아니라 '신권왕수설' 같은 부조리한 장면이 생겨난다—— 신들은 마치 중간관리자처럼, 겉보기에는 눈부시지만 서사 구조라는 감옥에 갇혀 있고, 주제 넘는 짓을 했다가는 끝내 철저하게 말소당하고 만다. 과연 재단은 이 다모클레스의 검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을까? 내 의견은, 예스다. 방법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간략히 해설하겠다.
일시: 201█/0█/██
메모: 본 영상 파일은 SCP-CN-2504-ᚩ와 관련된 주머니 차원에 최초로 접촉한 기록이다. 기술적 제약 때문에 탐색자는 데지레 박사 혼자였다. SCP-CN-2504-ᚩ1은 SCP-CN-2504가 제작한 최초의 뮤직비디오로, 제목은 『비터 초코 애딕션』이다. 한 소녀가 비터 초콜릿에 매료되고, 그 취향이 점차 병적인 방향으로 변모하다가 마지막에는 햇볕 아래에서 초콜릿과 함께 녹아버리는 이야기를 묘사한다.
[기록 시작]
데지레 박사: 으랏차. 아직도 조금 어질어질하네……
데지레 박사: 일단 렌즈 조정부터 마칠까.
카메라 초점이 맞춰진다. 영상은 채도가 칙칙한 도시에 데지레 박사가 서 있는 광경을 비춘다. 가까운 교차점은 녹은 초콜릿으로 뒤덮여 있다.
데지레 박사: 굉장히 전형적인, 음, 현대의 규율과 팽창하는 욕망이 주제구나. 그 녀석의 첫 작품이니까, 나쁘지 않은 은유네. 하지만 먼저——
데지레 박사는 오염 단절의 기적술을 시전하면서, 액체가 된 초콜릿 속에 숨어 있던 인간형 개체를 끌어 올린다.
데지레 박사: 이런 곳에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네.
SCP-CN-2504-ᚩA: 푸하…… 언니 고마워!
여자아이의 모습을 한 개체가 액상 초콜릿을 뚝뚝 흘리면서, 데지레 박사 앞에 선다.
데지레 박사: 이름을 말해줄 수 있을까?
SCP-CN-2504-ᚩA: 샤오루이시蕭蕊曦!
(검증 결과 해당 성명은 SCP-CN-2504의 본명과 일치했다.)
데지레 박사: 아하…… 나이는 몇 살이야?
SCP-CN-2504-ᚩA: 일곱 살! 언니, 나 초콜릿 먹고 싶어. 조금 주지 않을래?
데지레 박사: 초콜릿이라니…… 저 주변이 온통 다 초콜릿투성이잖아.
SCP-CN-2504-ᚩA: 안돼…… 여깄는 건 전부 비터 초코잖아. 더 달달한 게 먹고 싶어!
데지레 박사: 음…… 언니는 규칙을 갖고 살거든. 멋대로 과자를 줄 수는 없어.
SCP-CN-2504-ᚩA는 낙담한 표정을 짓는다.
SCP-CN-2504-ᚩA: 엄마도 그래. 우리 엄마, 달콤한 초콜릿은 못 먹게 해. 간식을 먹고 싶다 해도, 엄마는 비터 초콜릿밖에 안 줘. 비터 초콜릿 따위 하나도 안 맛있는데……
SCP-CN-2504-ᚩA: 엄마는 날 위해서래…… 단 걸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데지레 박사: 너무하셨네. 어쩔 수 없지. 오늘만 특별히 주는 거다? 다음엔 안 되니까……
데지레 박사가 바지 주머니에서 초콜릿 바를 꺼낸다.
SCP-CN-2504-ᚩA: 와ー! 고마워, 언니!
SCP-CN-2504-ᚩA가 데지레 박사한테 초콜릿 바를 받아 들자, 액상 초콜릿처럼 유동적으로 돌아가며 초콜릿 속으로 사라진다.
데지레 박사: 이게 개체가 가진 기억의 한 조각이라면…… 이 세상은 창작의 발상이 구현화된 공간이란 걸까? 역시 본인과 직접 대화해 보는 게 좋겠어…… 적의가 있지는 않을까.
데지레 박사: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적의를 가지진 않았을 것 같긴 한데.
데지레 박사가 마법진을 그리고 해당 차원에서 빠져나온다.
[기록 종료]
메모: 본 영상 파일은 SCP-CN-2504와 최초로 접촉한 기록이다.
[기록 시작]
데지레 박사가 책상에 엎드려 낮잠을 자고 있다.
SCP-CN-2504: 안녕하세요, 배달 왔습니다~
SCP-CN-2504가 책상에 식사를 내려 놓는다. 데지레 박사가 놀라서 눈을 뜬다.
데지레 박사: 으어어, 여기 두고 가세…… 으엥? 왜 여기 있어?
SCP-CN-2504: 맛있게 드세요~
데지레 박사가 SCP-CN-2504를 붙잡는다.
데지레 박사: 잠깐만. 너, 현관 앞에서 배달 음식 픽업해서 가져온 거 맞지? 어떻게 들어왔는지 설명하지 않으면 책상 밑에 비상 버튼 누를 거야.
SCP-CN-2504: 쳇…… 알겠어, 알겠다고. 여기는 SCP 재단 제CN-██기지, 너는 형이초학부 팀의 데지레…… 맞지?
SCP-CN-2504: 난 그저 격리해 달라 하려고 왔을 뿐이야…… 날 격리해 줘.
데지레 박사: ……윗선에 연락해 볼게.
SCP-CN-2504는 초조해 하는 듯한 표정이다.
SCP-CN-2504: 아~ 귀찮아. 재단도 그런 거 해? 언니, 나 격리하는 게 그렇게 귀찮아? 서류 쓱쓱 쓰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데지레 박사가 경보 버튼을 누르고, SCP-CN-2504를 무시한 채 책임자에게 연락한다.
SCP-CN-2504: 아, 배달할 거 하나 남았다. 잠시만 기다려 봐.
SCP-CN-2504가 홀연히 모습을 감춘다.
데지레 박사: ——대상은 최소 III등급 이상의 현실 조정자입니다. 신속히 지원 요청합니다!
5분 뒤, SCP-CN-2504가 데지레 박사 앞에 다시 나타난다.
데지레 박사: 뭘 하고 온 거야?
SCP-CN-2504: 남은 배달 끝내고 왔는데? 내 애마가 고장나 버려서, 힘 좀 써서 하고 왔어. 오늘 수주는 마쳤으니까 안심해. 방금 게 진짜 마지막이야.
데지레 박사가 수상쩍어 하는 눈빛으로 SCP-CN-2504를 응시한다.
데지레 박사: ……어떻게 우릴 발견한 거지?
SCP-CN-2504: 오케이, 처음부터 얘기해야 되는구나. 어차피 그쪽에서 내 작품을 휘젓고 돌아다닐 때부터, 나도 너희가 실존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어. 뭐 그렇게까지 신경 쓰진 않았지만.
SCP-CN-2504: 그런데 오늘 아침, 사건이 터진 거야. 내 바이크를 누가 분해해 놔서, 부랴부랴 달려가 봤을 때 이미 부품 도둑은 도망친 뒤였어. 그러고서…… 어, 그 순간, 시점이 사람들을 내려다 보듯이 돼버려서, 바쁜 인파를 하늘에서 한동안 쳐다봤어. 그러니까, 문득——
SCP-CN-2504: 인생이란 재미없구나. 너희한테 격리당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야.
데지레 박사: ……그것뿐이야?
SCP-CN-2504: 그것뿐이지.
데지레 박사가 길게 한숨을 내쉰다.
데지레 박사: 좋아. 수속을 시작할 테니까, 우선 밀실에서 대기하도록 해. 그 후에는 신체검사부터 시작할 테니까.
SCP-CN-2504: 해냈다아.
[기록 종료]
일시: 202█/06/██
메모: 기술적 제약 때문에 탐색자는 데지레 박사 혼자였다. SCP-CN-2504-ᚩ2는 SCP-CN-2504가 제작한 뮤직비디오 『판옵티콘의 바닥』이다. 작품에서는 제러미 벤담의 설계를 본뜬 원형 감옥에 주인공이 수감된다. 주인공은 탈출을 감행하다가 중앙 탑에서 번쩍이는 빛을 보고 공포심을 깨달아 미쳐 버리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기록 시작]
데지레 박사: 일단 늘 하던 것처럼, 초점부터 맞출까……
카메라의 초점이 조정되고, 영상은 데지레 박사가 뮤직비디오 내의 감옥 바깥 복도에 있는 모습을 비춘다. 근처 독방에 사람은 없고, 오렌지 죄수복을 입은 검은색 인형이 다양한 포즈를 취한 채로 놓여 있다. 주목할 만한 점으로, 죄수복의 규격이 D계급 인원과 완전히 일치한다.
데지레 박사: 순수한 자기 체험에서 출발해서…… 고전을 인용하기 시작했네. 곧잘 있는 창작자의 성장 과정이야. 하지만, 인형들 전부 다 정보가 너무 적어서 창작자 본인의 심리를 분석하기에는 어렵겠어.
데지레 박사: 어라? 저기 있는 건…… 사람?
데지레 박사가 복도 반대편으로 빠르게 달려 나간다.
영상은 데지레 박사 눈앞에 있는 독방에 SCP-CN-2504와 닮았지만, 보다 젊은 미성년자 여성이 수감된 모습을 비춘다. 여성은 인형과 동일한 규격의 죄수복을 착용했다.
SCP-CN-2504-ᚩB: 하, 누군가 했더니.
데지레 박사: 날 아니?
SCP-CN-2504-ᚩB: 알 리가 없잖아. 근데, 재단의 개라는 건 다 뻔히 보인다고!
SCP-CN-2504-ᚩB는 격분한 상태이다.
데지레 박사: ……진정해. 난 딱히 적대할 생각이 없어. 자, 봐봐. 무기 같은 것도 안 갖고 있잖아.
데지레 박사가 양손을 들어 올린다.
SCP-CN-2504-ᚩB: 그야 없겠지! 이 기적술사야! 너희 재단은 말이야, 나 같은 사람을 몇천 명은 잡아 가둬 놓고 있잖아. 우릴 실험대로 삼아서, '변칙개체'라는 살인 장난감한테 들이밀려는 거잖아! 재단은 변칙개체를 이천 개 넘게 모아서는——
데지레 박사: 잠깐. 방금, 변칙개체 가 얼마나 있다고?
SCP-CN-2504-ᚩB: 하? 개수? 이천 개 넘게잖아. 곧 삼천 개가 되겠지만!
데지레 박사: 아…… 그렇구나. 이렇게 하자. 널 꺼내 줄게. 하지만 그 전에, 날 공격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줘. 어때?
SCP-CN-2504-ᚩB는 대답하지 않고, 데지레 박사를 매섭게 쏘아본다.
데지레 박사: 에이, 그럼 일단, 나부터 해주지, 뭐.
데지레 박사는 SCP-CN-2504-ᚩB가 갇힌 철문에 자물쇠 개방의 기적술을 행사한다. 문이 열린다.
SCP-CN-2504-ᚩB: 너, 다른 재단 녀석들하고 완전히 다르네.
데지레 박사: 솔직히 나도 재단이 초상인간을 대하는 자세에는 찬성하지 않는 구석이 있거든. 너도 알고 있겠지만, 정말이지…… 너무 물건 취급하니까.
SCP-CN-2504-ᚩB가 독방에서 걸어 나온다.
SCP-CN-2504-ᚩB: 그래 그래, 사람 취급도 안 해준다니까! 선생이나 부모도 매한가지야. 여기 죄수들처럼, 앞장서서 관리하려고 들기만 해. 특별한 것 따위 무엇 하나도 허락해 주지 않는다고!
SCP-CN-2504-ᚩB: 도대체 어디까지 감시하는 건지. 퉷, 하다하다 침 삼키는 것까지 일일이 간섭한다니까! 정말이지 부아가 치밀지만, 아무튼 고마워. 드디어 여기서 도망칠 수 있겠어!
SCP-CN-2504-ᚩB는 복도의 난간을 뛰어넘고, 상처 하나 없이 바닥에 착지한다.
SCP-CN-2504-ᚩB: 여기 탑의 지하 통로로 들어가면, 나도 이제 자유야! 와하하——
SCP-CN-2504-ᚩB의 목소리가 서서히 사라져 간다.
데지레 박사: 단지 환영에 불과하긴 하지만…… 어째서 이런 작품을 만들었는지, 점점 감이 오는걸.
데지레 박사: 학생 시절의 억압을 견디지 못하고 SCP 재단으로 도망쳐 왔지만…… 재단은 그녀가 바랐던 피난처가 아니었던 거겠지.
데지레 박사: 그렇지만, 왜 허무주의니힐리즘으로 도망친 걸까…… 으음…… 뭔가 마음에 든 구석이 있었나?
데지레 박사: 그래, 그래. 보컬로이드 곡은 쓰지 말라고 해둬야겠어—— 이대로 가면 은폐가 따라가지를 못하니까.
[기록 종료]
메모: 본 영상 파일은 격리 이후 SCP-CN-2504와 이루어진 최초의 교류 기록이다. 교류 도중 발생한 제CN-██기지 소실 사건은 재단의 다른 기기에서는 기록되지 않았으며, 대상이 서사개정 능력을 발휘해서 일으켰다고 의심된다. 따라서 본 영상의 원본 데이터는 기밀로 취급되고 있다.
[기록 시작]
데지레 박사: SCP-CN-2504, 잘 잤어?
SCP-CN-2504가 불만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SCP-CN-2504: ……
SCP-CN-2504: "아니"라고 말해도 아무것도 안 바뀌잖아. 어차피.
SCP-CN-2504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한다.
데지레 박사: 안심해. 넌 스스로 격리되러 온 거잖아. 협조적인 개체한테는 어느 정도…… 규정을 느슨하게 해주는 관례가 있으니까.
SCP-CN-2504가 자리에 도로 앉는다.
SCP-CN-2504: 아ー…… 불만인 건 그 부분이 아니야. 엄마는 어떻게 됐어?
데지레 박사: 우리는——
SCP-CN-2504: ——'기억소거' 같은 소리 했다가는 네가 낀 그 고글 아주 박살을 내놓을 테야.
데지레 박사: ……하아.
SCP-CN-2504: 딸이 감방에 들어갔다…… 그렇게 말해주는 편이 차라리 나아. 어쨌거나, 여기도 중범죄자 감옥하고 크게 다르지 않네. 예전에 들어갔던 정신병원이 생각날 정도야.
데지레 박사: 정신병원에…… 입원했었어?
SCP-CN-2504가 손을 흔든다.
SCP-CN-2504: 그 얘기는 금지. 두통이 올라오거든.
데지레 박사: 다음 질문이야. SCP-CN-2504, 너는 언제부터 창작을……
SCP-CN-2504는 상공에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SCP-CN-2504: 밖에서 웅웅 울려대는 건 뭐야? 현실성 닻? 일고여덟 대는 있는 것 같은데.
데지레 박사: 그래.
SCP-CN-2504: 헤에…… 성대하게도 준비해 놨네. 이건 내가…… 현실 조정자니까?
데지레 박사: 먼저 질문에 대답해.
SCP-CN-2504: 내가 대답하지 않으면? 아아, 현실성 닻의 리모컨은 보통 너나 감시역이 갖고 있던가.
SCP-CN-2504: 그럼 이렇게 하자. 50 제곱미터도 안 되는 방도 질렸으니까, 형무소에도 원래 운동 시간은 있잖아?
SCP-CN-2504가 손뼉을 친다. 실내의 감시 카메라에서, 대상과 데지레 박사과 갑자기 사라지는 모습이 촬영된다.
데지레 박사가 소지한 소형 카메라의 영상에서는, SCP-CN-2504-ᚩ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무한히 펼쳐진 아무것도 없는 차원으로 두 명이 이동한 모습이 나타난다.
SCP-CN-2504: 으음…… 박사는 어떤 세계관이 취향이야?
데지레 박사가 SCP-CN-2504를 바라본다.
SCP-CN-2504: 아, 괜찮아 괜찮아. 덮치려는 게 아니니까.
데지레 박사가 SCP-CN-2504를 바라본다.
SCP-CN-2504: 하아…… 그럼 그렇게 할게. 출신지는?
데지레 박사: 일본.
SCP-CN-2504: 헤에, 중국어가 능숙한걸. 왜 중국에 있는 거야?
데지레 박사: ……인사 이동.
SCP-CN-2504: 또 그런다. 아까는 현실성 닻도 있었으니, 날 속인 거 같은데. 여기선 통하지 않거든?
데지레 박사: 뭘 알고 있는 거지?
SCP-CN-2504: 전부 다…… 네가 나처럼 향수병이 있다는 사실도.
SCP-CN-2504는 해당 차원을 실존하지 않는 일본의 산촌으로 바꾼다. 둘은 논밭 옆 큰길에서 전신주 아래에 서 있다.
데지레 박사: ……이와테현 도노시, 내가 태어난 곳. 하지만 중학생 때부터는 아버지가 전근 가시면서 중국으로 이주했어. 그때부터는 쭉 여기에 살고 있고.
SCP-CN-2504: 그렇구나. 기묘한 우연이네. 내 본가는 헤이룽장성 솽청시에 있어. 장쑤성으로 이사한 후에는 아빠가 돌아가셨거든. 낯선 마을에서 엄마랑 둘이서 어떻게든 살아 왔어.
SCP-CN-2504: 그래서, 왜 재단 같은 곳에서 계속 일하는 거야? 이젠 여기서밖에 일할 수 없으니까?
데지레 박사: ……너하곤 상관 없잖아, SCP-CN-2504.
SCP-CN-2504: 예이, 예이. 상관이 없으시다라…… 호잇짜.
영상은 SCP-CN-2504가 둘을 현실차원으로 되돌려 놓고, 몇 초가 지나자 대상이 있는 곳과 제CN-██기지의 존재 자체를 말소한 모습을 비춘다.
SCP-CN-2504: 이걸로 됐다. 역시 재단의 방식은 마음에 안 들어…… 최소한 개인의 자유 정도는 보장해 줘야지.
SCP-CN-2504: 그리고 다음에는 더 좋은 현실성 닻 좀 써.
데지레 박사: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SCP-CN-2504: 제CN-██기지를 지웠어. 그 후에는, 거 뭐냐…… 각자 알아서 귀가해 주세요 하는 느낌?
데지레 박사: 적당히 좀 해!
데지레 박사가 분노하여 대상에게 다가가 손바닥으로 뺨을 친다.
데지레 박사: 꼭 내가 말해야 되겠어? 내가 재단에 거두어진 고아라는 걸? 재단이 나한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모르는 거야?!
데지레 박사: 제 입으로 격리되고 싶다고 내뱉어 놓고, 규칙은 무엇 하나 지키기 싫어해. 거기다…… 거기다 기지까지 가볍게 날려버리다니. 자유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는 걸 왜 모르는 거야!
SCP-CN-2504는 움직이지 않고 우두커니 서 있다. 이후, 영상은 두 명이 제CN-██기지의 인간형 개체 격리실로 돌아온 모습을 비춘다.
SCP-CN-2504: 나…… 난 그냥……
SCP-CN-2504가 울기 시작한다.
SCP-CN-2504: 그냥…… 나랑 똑같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줄 알아서…… 미안…… 미안해요……
데지레 박사가 심호흡한다.
데지레 박사: ……나야말로, 어른스럽지 못했네. 미안해. 오늘 면담은 여기까지 할까.
데지레 박사가 왼손을 카메라의 스위치 쪽으로 뻗는다.
[기록 종료]
……
[01:00] SCP-CN-2504가 침대에서 일어선다.
[01:01] 데지레 박사가 본인의 보안 인가를 사용해서 SCP-CN-2504의 격리실로 들어온다. 감자튀김과 프라이드 치킨이 담긴 상자를 들고 있다. 박사는 SCP-CN-2504에게 사과하며 감자튀김을 건넨다.
[01:03] 둘이 함께 식사하기 시작한다.
[01:06] 데지레 박사는 SCP-CN-2504를 똑바로 쳐다보며, 본인이 이전에 뺨을 때린 곳을 만진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사과의 뜻을 전한다.
[01:06] SCP-CN-2504는 고개를 저으며 상자에서 감자튀김을 하나 꺼내서, 데지레 박사에게 준다. 박사는 몇 번이고 사양하다가 결국 감자튀김을 받아 든다.
[01:22] 식사가 끝나고 데지레 박사는 SCP-CN-2504에게 무언가를 설명하지만, 내용은 알 수 없다. SCP-CN-2504의 차후 격리 방침에 관해 설명했다고 추측된다.
[01:23] SCP-CN-2504는 고개를 끄덕이고, 최초 격리 당시에 그렸던 일러스트를 데지레 박사에게 선물한다.
[01:25] 데지레 박사는 SCP-CN-2504가 그린 일러스트와 포장 용지를 갖고 격리실을 나선다. SCP-CN-2504는 손을 흔들며 배웅한다.
……
……
SCP-CN-2504: 데지레 언니, 왔어ー?
데지레 박사: 전에 보낸 메일인 읽어 봤어? 이제 보컬로이드 곡을 업로드하면 안 돼. 업무상 너의 작품은 규제해야 되거든.
SCP-CN-2504: 으엥, 보카로 곡까지 규제하는 거야?
데지레 박사: 그야…… 네 어처구니없는 곡이 현실이 된다면 위험하잖아?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을 몰랐다면 난 진작 울화통이 터져서 죽어버렸을 거야.
데지레 박사는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단번에 마신다.
SCP-CN-2504: 그래서 내 신곡은 어땠어?
데지레 박사: 제법 괜찮던걸. 그런 가사만 아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너처럼 그레이스케일로만 PV를 만드는 업로더한테는 머리에 8900이라도 처박아서, 이 세상에는 좋은 게 많단 걸 깨닫게 해줘야 돼. 자살이니 일가족 몰살이니 하는 생각만 매일 떠올리지 말고.
SCP-CN-2504: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가사 속에서 제대로 반성하고 있잖아.
SCP-CN-2504는 카운터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괸다.
SCP-CN-2504: 오히려 정반대야. 재단에 접촉하고 나서, 내 창작은 '풍자'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자아 성찰을 하고 있다고. "메타포의 본질은 타인을 향한 악의"이라든가, "신을 부정하고 신을 대신하려 한다"느니 하는 얘기 있잖아. 봐봐, 이거 마치 부메랑으로 내 자신을 때리는 거나 다름없잖아? 근데 그게 왜 염세적인 질투 따위로 비춰지는 거야.
데지레 박사: 다른 건 제쳐두더라도, 시청자는 그런 가사의 뉘앙스를 몰라. 단순히 자극적인 단어에 편향되게 꽂혀서, 그걸 표적 삼아 패고 싶은 사람 패러 다닐 뿐이야. 아무리 직접적으로 써줘도 소용없지.
SCP-CN-2504: 그거야 뭐, 내 손을 떠난 일이지. 뭐가 됐든, 난 이미 그런 느낌으로 출력을 끝낸 거야. 어떻게 해석할지는 시청자들의 문제지. ……주문한 아이스크림은 아직 안 나왔나?
데지레 박사: 재단이 마주했던 신격 독립체 중에서 넌 유달리 힘을 억제하는 편이네.
SCP-CN-2504: 나라고 해서 딱히 만능은 아닌걸.
SCP-CN-2504를 어깨를 움츠리고, 다가온 점원한테서 아이스크림 컵을 받아 든다.
SCP-CN-2504: 중국 축구 국가대표도 공 제대로 못 차잖아.
둘이 크게 웃는다.

연구원 데지레 박사, SCP-CN-2504가 그린 그림
SCP-CN-2504: 아, 맞다. 스탠딩 일러스트라도 그려줄까.
데지레 박사: 에엥? 됐어, 그렇게까지 2차원은 좀……
SCP-CN-2504는 스마트폰을 꺼내서, 데지레 박사를 연달아 촬영한다. 플래시가 박사를 비춘다.
데지레 박사: 얌마!
SCP-CN-2504: 아하하, 데지레 언니의 의견은 상관 없거든? 찍은 사진으로 스탠딩 그리겠다고 처음부터 결정해놓고 왔지롱.
데지레 박사: 하여간——
SCP-CN-2504: 알아, 안다니까. 힘은 제대로 뺄 테니까. 하지만 가슴은 한 컵 정도 키울지도…… 농담.
데지레 박사: 그 뒤틀린 센스는 좀 어떻게 자제 좀 해봐.
SCP-CN-2504: 예술에 뒤틀림이 없어서야 예술이라고 할 수 있겠냐고. 재단 사람들은 전부 그렇게 목석 같아?
데지레 박사: ……그 얘기는 다음에 다시 하자.
SCP-CN-2504: 아, 이제 돌아가는구나…… 앗, 계산! 결제 언니가 하는 거 아니었어?! 잠시만!
[기록 종료]
일시: 202█/10/██
메모: 기술적 제약 때문에 탐색자는 데지레 박사 혼자였다. SCP-CN-2504-ᚩ3는 SCP-CN-2504가 제작한 뮤직비디오 『절대경관소녀』이다. 볼거리가 가득한 사회에 발을 들인 소녀가 물질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몸을 팔기 시작하고, 점차 사회에 빠져들어 가는 이야기를 묘사한다. 이 작품 이후 SCP-CN-2504-ᚩ의 내용은 점점 추상적이며 난해한 작풍으로 변화해 간다.
[기록 시작]
데지레 박사: 자, 그럼…… 어디 한번 봐 보실까―― 어라?
영상은 현실의 도시와 거의 차이가 없는 차원을 촬영한다. 유일한 차이점은 이곳에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데지레 박사: 왜 갑자기 주변이 우르르 넓어지지…… 장대한 이야기라도 쓰기 시작한 거려나.
데지레 박사: 하지만 문제 없어. 과거의 작품들처럼 '마음의 궤적'이 존재한다면, 어딘가에 분명 기억의 단편이 있을 텐데……
30분에 걸쳐 탐색했지만, 데지레 박사는 대응하는 인간형 변칙 개체를 발견하는 데에 실패한다.
데지레 박사: 으응? 이상하네…… 혹시 노래 속 소녀가 일종의 암시고, 실제로는 모든 현대인을 뜻하는 건가?
데지레 박사: 그러고 보니…… 노래 자체가 예전 작품들보다 추상적인 부분이 많아졌지. 도시의 빈 껍질이 제작자의 '생각'이라고 한다면……
데지레 박사는 쇼윈도로 향한다. 그러자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SCP-CN-2504-ᚩ3에 그려진 주인공의 외모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데지레 박사: 역시나. 그렇지만, 개체의 내력을 감안해서 생각해 보면…… 친구가 별로 없었던 걸까?
데지레 박사: 삭막한 현실에서 독자적인 정신 세계로 도망친 것까지는 좋았지만, 철학적 사유만으로 현실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지는 않았다…… 지행합일(知行合一)이 부족했던 모양이네.
데지레 박사: 아무튼, 지금으로서는 개체와 친구가 되는 것부터 시작하고 있다. 좀 더 내면으로 다가가서 마음을 안정시켜 주자…… 최소한 재단을 향한 적의를 누그러뜨리고, 그 염세적인 태도도 좀 줄여줘야겠지.
데지레 박사: 하아, 돌아가면 보고서의 설명도 수정해야겠네. 상층부라는 사람들도 정신병이라고 처음부터 단정짓고 말이야. 다음 회의에서 죄다 혼내줘야지.
[기록 종료]
…… 예, 예에.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격리된 개체는 V급 현실 조정자입니다. 정신적으로 극히 불안정하며, 마치 SCP-3812처럼 무한히 겹쳐진 서사의 심연 속으로 추락할 우려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반대하는 이유는—— SCP-CN-2504에게 정신질환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울증, 정신 붕괴, 조증…… 그러한 정서가 확인되는 것은 사실이나, 제어 불가능한 수준까지 치닫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개체의 정신적 불안정성에 대해서 말하자면, 해당 현실 자체가 보통 인간이라도 미쳐버리게 할 만한 수준이라는 점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알고 계신가요? 재단이 접촉한 현실 조정자 중에서, 우리 우주 전체에 미칠 힘을 가졌음에도 이토록 평범한 사람처럼 살아가려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미 개체는 재단에 지대한 공헌을 남기고 있다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적어도 그녀를 자극해서는—— 아뇨, 절대 구속해서는 안 됩니다. 재단이 적의를 품었다는 사실을 그녀가 눈치채는 일만은 없어야 합니다.
일시: 202█/12/██
메모: 기술적 제약 때문에 탐색자는 데지레 박사 혼자였다. SCP-CN-2504-ᚩ9는 SCP-CN-2504가 최근 제작한 뮤직비디오 『나는 될 수 없어』이다. 이전의 SCP-CN-2504-ᚩ와 달리, 이 곡은 난해한 표현으로 AI 창작을 풍자하고, 동경을 품었지만 여러 이유로 함께할 수 없는 선배에 대해 묘사한다.
[기록 시작]
데지레 박사: 잇차…… 사뿐하게 착지.
데지레 박사: 뭔가, 그 아이의 전속 심리 상담사라도 된 기분이네. 뭐,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이건?
영상에는 데지레 박사가 아무것도 없는 회색 차원에 도착한 모습이 나온다. 기하학적인 철근 콘크리트 여럿이 지면에 내리 꽂힌 것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데지레 박사: 하여간. 얘는 이러면 정신 상태가 1밀리도 개선 안 된 거잖아! 대체 뭐가…… 설마 재단이, 내가 모르는 곳에서 격리 수준을 올리기라도 했나?
데지레 박사: 저기요? 누구 있어요?
무음.
데지레 박사: 여보세요?
무음.
데지레 박사: 이래서야 독해할 것도 없겠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라, 그 아이도 이제는 의미를 추구할 기력을 다 잃었다는 뜻이겠지. 이대로 방치하면 위험해. 예의 그 공허한 메타서사 같은 녀석이, 이런 부류를 좋아해서 먹어 치워 버리니까…… 아, 찾았다.
데지레 박사는 원통 뒤에 가려져 있던 석고상을 발견한다. 얼굴과 몸의 대부분은 명료치 못하지만, 특정 요소들로 보아 데지레 박사의 현실 외모를 예술적으로 가공한 조각상이라고 판단된다.
데지레 박사: 가사의 '선배'는 날 말하는 건가? 어머, 둘이서 우산 쓰는 것도 그려 놓고……
데지레 박사: 그 애도 참…… 아무리 깊이 숨겨 놔도, 형이초학부 연구원한테서 도망칠 수 있을 리 없잖아? 아니, 잠시만…… 그 아이는 SCP 재단을 알고 있는데…… 그러면, 아마 형이초학도 이미……
데지레 박사: 설마, 일부러 내가 눈치채게 하려고? 알려주고는 싶은데 숨겨두고도 싶고, 그런 기분으로——
데지레 박사가 석고상과 접촉한다. 그 순간, 조각상이 천천히 쓰러지다가 지면에 닿는 순간 산산조각으로 부서진다.
가루가 된 석고상 앞에서, 데지레 박사는 눈살을 찌푸린다.
데지레 박사: ……그 정도로 깊은 감정을 어째서 사랑 노래로 써주지 않는 걸까나.
데지레 박사는 가볍게 헛기침한다.
데지레 박사: 뭐, 좋아…… 이건 좀 생각해 보게 해줘.
[기록 종료]
[기록 시작]
SCP-CN-2504: 이야ー 춥네. 왜 실내에서 안 보고?
데지레 박사: 이 정도 추워야 머리도 빠릿빠릿하게 돌아가지? 자, 따뜻한 음료수.
데지레는 SCP-CN-2504에게 뜨거운 커피를 건넨다.
SCP-CN-2504: 고마워. 재단 사람들이 모두 언니 같으면 좋을 텐데…… 해서, SCP 재단은 결국 어째서 이렇게 된 거야?
(*주: SCP 재단의 존재 인과에 관해서 대상이 직접 언급한 최초의 사례.)
데지레 박사: 엣? 그러게, 그걸 말하려면 우선 '관리자'가 재단을 창설한 것부터 얘기해야……
SCP-CN-2504가 손을 들어 데지레 박사의 말을 막는다.
SCP-CN-2504: 그 얘기가 아니야. 장황한 역사 얘기 듣고 싶진 않아. 옛날에, 역사 선생님도 그런 수업을 하셨었는데, 난 만날 자기만 했거든. 알고 있어. 나처럼 인과를 뒤트는 녀석을 맞닥뜨리면, 재단의 역사까지 조작당하지 않도록 시간선을 몇 번이고 꼼꼼히 점검해 보잖아? 난 '재단' 자체에 대해서 말하는 거야…… 데지레 언니는 형이초학부 소속이니까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짐작이 가지?
데지레 박사는 주머니의 휴대형 현실성 닻을 기동한다.
데지레 박사: 뭐…… 됐어.
SCP-CN-2504: 자, '재단'은 현대 호러를 표방하잖아? 그런데, 최근 반 년 동안 마주해본 결과, SCP 재단은 현대 호러 특유의 불가지론인 척하는, 현대적 규칙의 함정이라고 생각했어. '미지'나 '괴담' 같은 것들을 현대의 규칙으로 해체하려 하려 시도하잖아.
데지레 박사: 그 말은 곧, 네 생각은 지금까지와 다를 바가 없단 거구나…… 원래 세계로 돌아가길 바라는 거야?
SCP-CN-2504: 그건 아니고. 난 지금의 SCP 재단을 좋아하지 않을 뿐이야.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SCP 재단을 만들어낸 게 아니야. 우연히,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조각 작품이 세계적인 현대 호러로 변모할 계기를 마련해준 것뿐이지.
SCP-CN-2504가 코를 훌쩍인다.
SCP-CN-2504: 지금의 SCP 재단은 너무 거대해. 너무나도 거대해진 나머지, 그 자체가 현대 규칙이 되어 버렸어. —— "그것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가" 하는 거 말이지. 해서, "괴담을 이겨내기" 위해 과학적인 태도를 취하고, 일련의 격리 절차나 편집 서식을 결정해둔 거야.
SCP-CN-2504: 그렇게 하다 보니, 불가지론을 향한 공포는 밈적 백신으로 변화했어. 일단 한 번 주사당하면 이런 종류의 공포에는 저항성이 생겨서 현대의 규칙을 더욱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돼.
데지레 박사: 그러면, 너는…… 변칙은 '변칙'인 채로 있어야 한다, 그런 말이야?
SCP-CN-2504: 으음…… 그런 것도 아닌데. 잠깐만 고민 좀 해볼게……
SCP-CN-2504가 고개를 기울이고 생각에 잠긴다.
SCP-CN-2504: 나는 일단 '권력을 가진 입장에서 규칙을 정하는 행위' 자체에 반대하거든…… 게다가, 하나부터 열까지 규칙을 고수하는 사람이면 괜찮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규칙을 다른 사람을 후려치는 몽둥이로 쓰잖아. 마음에 안 드는 인간을 쫓아내려고—— 아, 이런 걸 실용주의, 프래그머티즘이라 하던가? 자기들한테 유리한 법칙이라면 아무리 억지 논리여도 냅다 휘두르고 보는 거.
데지레 박사: 아, 좀 알겠네. 상황에 따라 말을 정반대로 뒤바꾸는 사람들 말이구나. 곧잘 있는 일이지.
SCP-CN-2504: 이런 상황을 나는 '현대성의 파탄'이라 부르고 있어. 역사상 '현대성의 재앙'에 대응하는 느낌으로.
데지레 박사: 호오? 자세히 얘기해 볼래.
SCP-CN-2504: 간단히 말하자면, 규칙을 만들 발언권은 누구한테나 있고 겉보기에 자유로운 듯 보이지만, 실상 결국에는 사회적 역랑을 중요시하도록 돼버려. 게다가 개인의 판단은 조종당할 수도 있어—— '응용심리학'이란 분야도 있잖아.
데지레 박사: ……네가 포스트모더니즘 신봉자라는 건 놀랍지도 않기는 해. 하지만 포스트모던 자체도 현대성모던을 전제로 성립하잖아. 그런 류의 것에 손대면 안 돼…… 본인의 능력도 생각해줘.
SCP-CN-2504: 내가 힘이 있다고 기뻐하는 것 같아 보여? 말해두겠지만, 격리에 반항하고 기지를 없애 버렸던 건, 좋아하는 현대 호러가, 현대 규칙의 일부가 되어 버린 데다가 우리 같은 존재를 물건처럼 취급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야. 그래서 참을 수 없어져서, 내 힘으로 재단을 없애 버리려고 했던 거고……
데지레 박사: 그런 이유로, 거대 국제 조직을 함부로 무너뜨리지 말아줄래? O5한테도 뭐라 변명할 여지가 없어진다고……
SCP-CN-2504: 헤헤, 이제 안 한다니까. 데지레 언니가 재단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게다가 재단이 없어지면 우리가 데이트할 이유도 없어져 버리잖아? 크리스마스에 받은 장식이 꽤 마음에 들었거든.
데지레 박사: 데…… 데이트?
SCP-CN-2504: 어라? 아니야?
데지레 박사는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고, 입가에 얹는다.
데지레 박사: 그건 좀…… 뭐, 그럴 수도 있겠네.
SCP-CN-2504: 아아, 데지레 언니가 부끄러워 한다. 난 그냥 둘이서 놀러 나가자는 뜻이었는데, 호옥시……
데지레 박사: 아니야!
SCP-CN-2504가 천천히 데지레 박사에게 다가간다.
SCP-CN-2504: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안될 것도 없지.
데지레 박사: 에?
SCP-CN-2504: 그야, 흥미 있는 이야기를 걱정 없이 늘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언니밖에 없고……
데지레 박사: 안돼, 난 재단 소속 연구자야. 이런…… 이런 건 더더욱이! 안돼! 이건 업무야!
SCP-CN-2504: 업무 시간 외라도 안 돼? 업무 중이 아니면 직책 같은 것도 없잖아? 하여간. 방금 전에 막, 오늘을 언니 휴일로 바꿔 놨어.
데지레 박사는 반사적으로 주머니의 휴대형 현실성 닻 쪽으로 손을 뻗는다. 현실성 닻은 평소처럼 정상적으로 작동 중이다.
데지레 박사: 엥? 아…… 몇 번이고 말했잖아. 그런 거에 능력 쓰지 말라니까……
SCP-CN-2504: 그러면 좀 더 나랑 놀아 줘. 요즘 일 때문에 한 달에 두 번밖에 못 쉰다니까. 평소에는 나랑 좀처럼 얼굴 보기 힘들잖아?
데지레 박사: ……그럼, 오늘만 특별히.
데지레 박사는 조용히 몸을 기대오는 SCP-CN-2504의 손을 잡고, 다른 한쪽의 손으로 본인의 목도리를 푼다.
데지레 박사: 정말…… 불필요한 감정을 갖게 하다니……
SCP-CN-2504: 에ー, 데지레 언니, 완전 츤데레네.
[기록 종료]
기록일: 20██/04/22
메모: 본 음성 파일은 비정규 녹음이다.
[기록 시작]
천이 스치는 소리.
황급한 노크 소리.
데지레 박사: 실례합니다.
정체불명의 남성: 들어와라.
문이 닫히는 소리.
데지레 박사: 그래서…… 기지 이사관님? 무슨 용무신가요?
정체불명의 남성: 본론부터 말하지. 신격 독립체 "스컬드"의 격리 책임자는 자네지?
데지레 박사: 네…… 그렇습니다.
정체불명의 남성: 상부에서 내려온 통보다. 현행 격리 절차는 취소하고, 제어 불가능해지기 전에 개체를 완벽한 격리 하에 둘 것. 유화책으로는 더 이상 제어할 수 없다고 상층부에서 판단했다.
데지레 박사: 그것만은…… 부디——
정체불명의 남성: 무리다. 이렇게 된 김에 확실히 말해 두지. O5 평의회가 직접 자네들의 보고서를 읽어본 뒤에 내린 명령이다. 그 분들을 설득할 힘이 없는 이상 변경은 불가능하다.
데지레 박사: 이사관님, 아직 제어 가능한 기회는 있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신다면……
정체불명의 남성: ……데지레, 기지 이사관은 나인가, 아니면 자넨가?
컵이 테이블에 내팽개쳐지는 소리.
정체불명의 남성: 스컬드의 능력은 이미 본인을 위해 세계를 창조하는 지경에 이르렀어. 데지레,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O5의 지령을 인쇄해서 얼굴에 붙여주기라도 해야 읽을 수 있겠나?
데지레 박사: …………괜찮습니다.
정체불명의 남성: 잘 생각해 봐라. 재단이 널 채용한 이유 말이야—— 개체랑 소꿉놀이 따위나 하라는 게 아니었을 텐데! 제어권을 상실할 우려가 있는데, 어째서 더욱 강력한 격리책을 사용하지 않지? 재단의 책무가 무엇인지, 여기서 가르쳐줘야만 하겠나?!
짧은 침묵
정체불명의 남성: ……직접 말해보겠나?
데지레 박사: ……네.
정체불명의 남성: 그럼 대답해라!
데지레 박사: 확보, 격리, 보호!
정체불명의 남성: 직원 강령이라도 베껴 써 와라. 끝나면 가지고 오도록!
데지레 박사: 이사관님.
정체불명의 남성: 그리고, 여기에 사물 개체 서류도 몇 장 있다. 나중에 이것도 정리해서 제출해라.
데지레 박사: 알겠습니다.
문이 열리는 소리.
정체불명의 남성: 정말이지 손이 너무 가는구만……
문이 닫히는 소리.
여성이 훌쩍이면서 우는 소리.
[기록 종료]
경과 개요: 2023년 5월 ██일, 제CN-██기지가 SCP-CN-2504 (V급 현실 조정자 "스컬드")의 추적 수단을 전부 상실함. 제CN-██기지는 즉시 본부에 보고했고, 최고 위협 수준의 격리 파기로 판단됨.
37시간의 지속적인 수색 끝에, 데지레 박사는 동경 120.█████, 북위 31.██████ 지점에 있는 터널의 낙서에서 SCP-CN-2504가 현실조작 능력을 이용해 창조한 주머니 차원을 발견함. 재단 본부는 데지레 박사를 교섭 요원으로 임명한 다음, 즉시 기동특무부대를 파견하여 SCP-CN-2504를 대상으로 진압 격리 절차를 실시함.
대처 결과: [데이터 말소]. 금번의 격리 파기로 인한 손실은 현재까지도 윤리위원회 및 중대격리파기 사건조사위원회에서 평가를 계속하고 있다.
[기록 시작]
주머니 차원에 들어가면서 칸트 계수기의 경보음이 울림.
계속 후두둑 내리는 빗소리. 데지레 박사가 들어간 주머니 차원은 색채가 극도로 결핍되었으며 채도도 현저히 낮다. 흑색, 백색, 회색 위주의 인상을 주며, 개체가 제작한 영상 작품의 양식과 일치한다.
데지레 박사: 이건 분명 장마의 이미지를 토대로 만든 거구나. 흐린 하늘에 그치지 않는 비, 곳곳에 무너진 벽이 있고 낙서는 빗물에 젖었고. 뭐 적어도, 아무것도 없는 세계보다는 낫나……
데지레 박사: 스컬드! 찾으러 왔어!
끊이지 않는 빗소리.
데지레 박사: 스컬드! 어딨는 거야?!
끊이지 않는 빗소리.
물웅덩이를 밟는 발소리.
데지레 박사: 스컬드……! 네가 엄청 좋아하는 감자튀김 가져왔어!
물웅덩이를 밟는 발소리.
데지레 박사: 스컬드—— 너, 어떻게 된 거야?
영상은 처마 밑에 숨은 개체를 비춘다. 대상에게는 울어서 눈이 부은 흔적이 보인다.
SCP-CN-2504: 데지레 언니……?
데지레 박사: 설마 내 퇴근길에 있는 터널에 숨어 있을 줄은…… 자, 따뜻할 때 어서 먹어.
SCP-CN-2504: ……배 안 고파. 나…… 조금, 지쳤을 뿐이야.
개체는 전에 없이 침울한 감정을 보인다.
SCP-CN-2504: 데지레 언니. 모두들 힘내고 있는데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 현실 따위, 어째서 존재하는 걸까. 산다는 건 결국 뭘 위한 걸까?

소녀는 아직, 눈치채지 못했었다. 그 우산 아래에, 정답이 이미 서 있었다는 사실을.
데지레 박사는 우산을 들고 다가선다. 데지레 박사: 말해줘……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여기서 내가 듣고 있으니까.
SCP-CN-2504: 나…… 사는 게 너무 허무해져서.
SCP-CN-2504: 재단도 인류의 존속을 위해 분투하고 있는 건 알아. 나만 하더라도, 까딱 방심하면 이 썩어빠진 세상을 부숴버릴 힘을 갖고 있으니, 재단이 날 감시하는 건 옳은 일이야. 적어도 난 언니 덕분에 평범한 사람처럼 생활하고 있어……
SCP-CN-2504: 하지만 그 누구도, 삶 그 자체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라는 건 알려주지 않았어.
SCP-CN-2504: 직장에서 또 엄청 깨졌거든. 상사들은 항상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할당량을 떠넘겨. 마치 혼나는 것도 일의 일부라는 양 말이야. 엄마는 척추에 문제가 발견됐어. 돈은 필요 없다고 말씀하시지만, 정년이 지나서 은퇴한 뒤에는 나한테 의지할 수밖에 없으시겠지. ――결국 부모님은 날 길거리 행인 정도랑 똑같이 생각해. 손 하나 까딱하면 현실을 뒤바꿀 수 있는 신격 소녀라고는 조금도 생각지 않고 있어.
SCP-CN-2504: 힘을 사용하고 싶어. 사용한다면 모든 걸 바꿀 수 있을까, 데지레 언니.
데지레 박사: ……
SCP-CN-2504: ……그치만 말이야, 써봤자 소용없다는 것도 알아. 찬란한 인생으로 바꿔 쓴다고 한들, 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어―― 신에게 가는 계단을 오른다고 해도, 결국…… 결국엔! 아무런 의미도 없잖아!
SCP-CN-2504: 앞으로도 세계는 나 같은 사람을 계속 괴롭게 하면서, 규칙이라는 기계로 짓누르고, 거기서 나온 피를 연료로 삼을 거야. 우리 모두를 속이고 있다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노력이 어떤 장대한 이야기에 속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끝없는 공허 끝에서 마치 시시포스처럼 부조리한 윤회를 반복할 뿐인 거야.
SCP-CN-2504: 나…… 지금, SCP 재단을 부숴 버리면, 뭐가 되는 걸까…… 모르겠어…… 난……
SCP-CN-2504는 데지레 박사의 가슴으로 몸을 파묻는다.
SCP-CN-2504: 이제 살아갈 수가 없어…… 우으…… 으으으……
……
ᛟ10-1: 스리, 포, 목표 지점에 도착했나?
ᛟ10-3: 보고, 도착 완료.
ᛟ10-4: 보고, 도착.
ᛟ10-1: 제대로 해라. 너희가 갖고 있는 저격탄은 특수 제작품이다. 이 세상에 딱 2발뿐이고, 그중 하나를 우리가 손에 넣었지. 만일의 사태가 아니라면 사용하지 말 것.
ᛟ10-3: 그렇게 귀중한 거라고?
ᛟ10-4: 탄두에 특수한 살상약이 장치되어 있다고 들었어. 형이초학부 데지레 박사가 개발했다던데. 맞은 생물을 서사 속에서 완전히 말소할 수 있다던가……
ᛟ10-3: 완전히 없던 존재가 되어 버리는 건가. 그거 귀중할 만하네. 그래도, 우리처럼 신격하고 매일 부닥치는 인간들한테는 한 상자쯤 쥐어줘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ᛟ10-2: 저 안에 본인이 지금 있어. 나오면 양산할 얘기가 오가는지 직접 물어보는 거 어때.
……
……
SCP-CN-2504: 데지레 언니…… 언니 가슴에서 울었더니 조금 편안해졌어.
데지레 박사: ……아, 그럼 다행이네……
SCP-CN-2504: 데지레…… 고마워. 나…… 언제까지고 언니의 곁에 있고 싶어.
SCP-CN-2504: 하지만…… 그런 기회가 우리에게 있을지 모르겠어. 언니는 재단의 연구원이고, 난 세상을 멸망시킬지도 모르는 변칙 개체…… 분명, 언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데지레 박사: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나는……
SCP-CN-2504: 왜 그래, 데지레 언니.
현실성 닻이 기동되는 소리.
개체가 창조한 주머니 현실이 붕괴되기 시작한다.
데지레 박사: ……책무, 네가 말한 대로야. 재단에는 책무가 있어.
데지레 박사: 미안해. 나도 네 여자친구가 되고 싶었어. 영원히 곁에서 함께하는 언니로 남고 싶었어.
둘이 기준세계에 출현하고, 잠복 중이던 기동특무부대에게 포위당한다.
데지레 박사: ――하지만 더 이상, 선택지는 없어.
데지레 박사는 잠시 말문이 막힌다.
데지레 박사: 고마워…… 스컬드, 그리고 미안해.
데지레 박사: 잘 있어.
[03:34:11] 데지레 박사와 개체가 터널 출구에서 나타난다. 기동특무부대가 작전대로 흩어져 두 명을 포위한다. 개체는 당황해 하며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짓는다.
[03:34:14] 칸트 계수기가 경보를 울리고, 개체가 현실조작을 시작한다. 기동특무부대가 즉각 무력 제압을 시도한다.
[03:34:16] 포위 중이던 기동특무부대는 개체에서 방출된 강력한 EVE 입자 펄스에 닿자 소멸된다.
SCP-CN-2504: 데지레 언니, 어째서……
데지레 박사: ——도망가!
[03:34:17] 대기 중이던 기동특무부대 저격수가 데지레에게 발포한다. 그와 동시에, 데지레 박사가 개체를 밀치면서 특수탄이 데지레 박사에게 명중한다.
SCP-CN-2504: ——아.
RGVzaXJlZQ: 어서…… 가…… 난 이제……
SCP-CN-2504는 피웅덩이 위에 쓰러진 여성을 안아 올린다.
SCP-CN-2504: 언니…… 이름이…… 어째서, 안 돼……
\u30c7\u30b8\u30ec\u30fc: 나는…… 서사층 속에서…… 죽는 거야…… 이거, 받아……
빈사 상태의 인물이 무언가를 SCP-CN-2504에게 건넨다.
SCP-CN-2504: 안 된다고…… 그만해! 나라면 구할 수 있어, 현실을 고쳐 쓰기만 하면…… 그러기만 하면…… 안 돼, 죽지 마…… 데지레…… 데지레……
Desiree 은(는) 기존 사용자 이름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부디…… 나…… 를…… 기억해줘…… 가도록 해, 스컬드……
Desiree 은(는) 기존 사용자 이름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너만은…… 살아야 돼.
사망자의 시신이 사라진다.
SCP-CN-2504: ……알았어.
SCP-CN-2504가 영상에서 사라진다.
7월. 막 그친 폭우는 혹독한 더위를 누그러뜨리기는커녕, 오히려 습기를 더해 무거운 공기가 떠돌고 있었다. 스컬드는 바이크를 멈춰 세우고, 백정화 꽃다발을 손에 든 채 본인만이 아는 비밀스런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논과 전신주, 변압기, 아스팔트와 갓길의 노목―― 데지레가 말한 고향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시골이라는 인상이 느껴지도록 특별히 만들어낸 아담한 촌락이다. SCP 재단이나 다른 초상 조직의 방해는 들어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곳에는 사람 하나 얼씬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 조그마한 묘비 하나가 늙은 나무 아래 우두커니 서 있다.
재단 인원 Dr.Desiree 소녀가 사랑한 사람
그 이름은 코토노하 마후유
이곳에 잠들다
스컬드는 백정화 꽃다발을 조용히 묘비 앞에 내려 놓았다. 마치 그때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시끄러운 매미 소리가 울려 퍼진다.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어와 어깨에 걸려 있던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린다.
묘비와 스컬드 사이에는 한 걸음만큼의 거리가 있었다―― 데지레가 죽었던 바로 그때처럼. 그 딱 한 걸음이 스컬드를 살지도 죽지도 못할 "현실"이라는 무간지옥에 추락하게 했다. 한편, 어리석은 이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마치 이 세계에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스컬드의 세계에서 데지레는 여름날의 바람 같았다. 형체도, 질서도 없이 스컬드의 손끝을 빠져나가 버리며, 그저 약간의 열기를 빼앗아 가기만 할 뿐이었다.
스컬드의 손이 묘비를 만지는 순간, 데지레와 지냈던 추억의 조각이 차례차례 뇌리에 솟아 올랐다. 기억들이 스컬드의 마음을 스쳐 지나갔지만, 소녀는 그저 한 명의 관객이 되어 묵묵히 그 광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마치 영화관 스크린을 바라보는 시점처럼. ――그러지 않는다면, 스컬드는 "데지레"란 이름의 껍데기를 만들어 내고 말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모욕하는 공허한 껍데기를. 되살아난 그녀는 그저 기억을 되풀이할 뿐인 껍데기, 기억의 흐름 속에서 흘러가는 몸뚱이에 불과하다. 유리 조각을 합쳐 만든 모자이크화처럼…… 그녀지만, 동시에 그녀가 아닌 것이다.
스컬드는 눈을 감는다. 얕은 물웅덩이가 소녀의 모습과 푸르고 맑은 하늘을 비춘다. 결국에 자신의 능력은 타인이 기뻐하며 갈구하는 환상이며, 이 힘을 가진 자는 언제나 무언가를 위해 이 세계 전체를 바꾸려 든다―― 그러나, 이 허례허식으로 가득한 현실에 의문을 던지는 나는, 진작에 "무언가를 바꾸겠다"라는 신념을 잃었다. ……어느 생각만을 제외한다면, 그런가. 만일에. 그것만은 제외해도 좋다면
"데지레 언니, 나, 반드시 찾아낼게…… 살아갈 이유를."
이윽고 이곳에는 아무도 없어졌다. 오로지 태양만이, 보이지만 붙잡을 수 없는 미래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천국도 지옥도 없는 거라면 이런 끔찍이 괴로운 현실을 누가 심판할 수 있을까.
그렇다 해도, 음. 이것은 당신과 나, 오직 둘만의…… 내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제목 없는 이야기.
(저자: "스컬드")
by
LR0725
각주
1. SCPB3812-2023, 제2권 「인간형 개체」, 제11권 「최상급 다능성 독립체」
2. SCPB3999-2022, 제1권 「서사관통 개체」, 제6권 「서사조작 개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