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 불쾌한 꿈을 꾸는 방법
inome 2022/9/7(수) 3:06:48 #iY8MlAzt7E2
특정 의식을 소재로 한 도시전설은 제법 많이 존재합니다. 종이에 육망성과 ‘질렸다’라는 글자를 쓰면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다거나, 도쿄의 어느 노선에서 전철을 타고 내린 뒤 쌓아 놓은 소금 더미를 무너뜨리면 귀문을 열 수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들어 본 사람은 적지 않을 것입니다.
고등학교 이학년 초여름의 일이었습니다. 아무튼 인생에서 무엇 하나 제대로 풀리지 않는 것 같아서, 그런 의식을 닥치는 대로 시도해 본 적이 있습니다. 오컬트나 영혼 같은 것을 완전히 믿었던 건 아니지만, 숨 막히는 일상을 뒤집어 놓을 만한 자극을 찾고 있었던 것이겠지 하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식’은 아무런 결과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한밤중에 마주 세운 거울을 들여다봐도 이상한 것은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고, 쌀을 채우고 실로 묶은 봉제 인형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10엔짜리 동전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순서대로 엘리베이터를 조작해도 이세계로 갈 수 없었습니다.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에는 새로운 의식을 시도하는 것조차 이미 질려 버린 상태였습니다.
‘몹시 불쾌한 꿈을 꾸는 방법’을 접한 것은 아마 그 무렵이었습니다.
사실 어디서 그 방법을 알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린 빛바랜 오컬트 책의 한구석이었을 수도 있고, 변두리 게시판의 글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잡지의 독자 투고란이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확실하게 기억하는 것은 (경고:정말로 불쾌한 꿈을 꾸게 됩니다)라는 주의 문구가 붉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방법을 시도했습니다────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몹시 불쾌한 꿈을 꾸었습니다.
inome 2022/9/7(수) 3:15:17 #iY8MlAzt7E2
여기까지 읽으며 의문을 품으신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경험인데 왜 이렇게까지 모호한지, 그래서 꿈의 내용은 대체 무엇이었는지 하고요.
사실 제게는 고등학교 이학년 여름방학의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아무리 지루한 나날이었다고 해도 아무 일도 전혀 일어나지 않았을 리는 없습니다. 실제로 고등학교 일학년 여름방학에 있었던 여러 일은 되짚어 볼 수 있는데, 고등학교 이학년 여름의 그 기간에 관한 기억은 딱 두 가지뿐입니다. 첫 번째는 앞서 쓴 대로 ‘몹시 불쾌한 꿈을 꾸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는 기억. 그리고 또 하나는 바로 그 꿈을 꾸는 동안의 감정입니다.
꿈을 꾸는 동안이라고는 해도 구체적인 꿈의 내용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다만 그 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르던 혐오감과, ‘이렇게 불쾌한 꿈을 꿀 줄 알았다면 시도하지 말걸’ 하는 가혹할 만큼 강렬한 후회의 감정만큼은 지금도 뚜렷한 실감과 함께 떠올릴 수 있습니다.
추측이지만 너무나 충격적인 내용이었기에 뇌가 기억해 내기를 거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심리학적으로도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부자연스럽지 않으며, 여름방학의 기억이 빠져 있는 것 역시 그 여파라고 생각하면 납득이 갑니다.
그래서 그 방법은 진짜였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순서로 진행했는지도, 꿈의 내용도 하나조차 떠올릴 수 없지만요. 어쩌면 떠올려서는 안 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요.
inome 2022/9/7(수) 4:05:26 #iY8MlAzt7E2
자, 여기까지는 그저 과거의 기억입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서 아주 최근에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이학년 여름의 기억이 없다고 썼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돌이켜 보면 가을의 기억도 없습니다.
동아리 대회에서 준우승을 했다거나, 학교 축제에서 노점 판매를 맡았다거나 하는 그런 ‘사실’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감정이나 풍경이 도무지 조금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가을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고등학교 이학년 여름방학 이후의 인생 전부가 마치 철들기 전의 모습을 담은 앨범 사진처럼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조금 전 스마트폰의 카메라 롤을 열었습니다. 맨 위에는 저와 동료가 바다 앞에서 어깨동무하고 있는 사진이 있습니다. 동료의 이름은 알지만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전혀 떠오르지 않습니다. 〇월 〇일에 바다에 갔다는 사건은 기억하지만, 바다 냄새도 모래사장의 감촉도 아무것 하나 떠오르지 않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몹시 불쾌했던 그 꿈에서 깨어났다는 기억이 없습니다.
inome 2022/9/7(수) 4:12:19 #iY8MlAzt7E2
보통 악몽의 기억에는 벌떡 일어난 뒤 ‘아, 무서웠다’ 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장면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충격으로 기억을 잃을 정도의 꿈이라면 그 안도감도 더욱 클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바로 그 악몽 속의 혐오와 후회의 감정, 실감을 지닌 마지막 기억에서 막다른 곳에 이르고 맙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이후의 제 인생은 악몽 속에서 제가 본, 주마등과 비슷한 현실 도피────꿈속의 꿈 같은 것이 아닐까 하고요. 악몽에서 벗어난 나라는 허상만을 뇌가 만들어 냈을 뿐, 시곗바늘은 조금도 나아가지 않았고 진짜 저는 아직도 꿈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요.
꿈이란 뇌가 기억을 정리하는 과정이라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경험한 적 없는 일은 실감 나게 꿈꿀 수 없다는 것이 지극히 당연합니다. 저는 파라워치라는 게시판의 존재를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거나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스레드에도 답글이 달리지 않습니다.
이제 세상은 합판으로 만든 무대 배경처럼 보입니다. 그 뒤에서 몹시 불쾌한 것이 기어 나오는 일이 두렵기도 하고 기다려지기도 하는, 그런 기분이 듭니다.
글쓴이
RainL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