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움
캐스린은 북적이는 거실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온 가족이 추수감사절을 맞아 이곳에 모여 있었다. 벽에는 크리스마스 장식과 함께 아이들이 어릴 적 색도화지로 만든 칠면조들이 걸려 있었다. 세월이 흘러 색은 조금 바랬지만, 아이들의 소중한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해 주는 귀한 가보였다. 돌출창 너머로는 가을빛이 한껏 펼쳐져 겨울의 잿빛을 꿋꿋이 밀어내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고전 크리스마스 영화가 나오고 있었지만, 소리는 작았고 보는 사람도 없었다.
딸 리사는 남편 고든을 곁에 두고 소파 한쪽 끝에 앉아 생후 여섯 달 된 딸을 품에 안고 있었다. 릴리스는 또래 아기들보다 몸집은 작았지만, 밝고 생기 넘치는 성격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어김없이 매료시켰다. 흰 피부와 붉은 기가 도는 금발은 자라서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워질 앞날을 예고하고 있었다.
리사는 자매인 로리와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로리의 남편 짐은 두 살배기 딸 시에라를 쫓아다녔다. 시에라는 방 안의 모든 것에 관심을 보였다. 짐은 딸이 달라는 것이면 무엇이든 꺼내서 풀어 주었지만, 시에라는 이내 흥미를 잃고 다른 것에 이끌려 쪼르르 달려갔고, 어질러진 것을 치우는 일은 그의 몫으로 남았다.
짐이 정리하는 동안 시에라를 쫓아다니는 사람은 캐스린의 막내아들 카슨이었다. 그는 아직 대학생이었고 결혼도 하지 않았지만, 사랑스러운 여자 친구가 있었다. 샌드라는 시에라가 카슨을 요리조리 따돌리는 모습을 보며 킥킥 웃었다. 두 사람은 약혼한 사이가 아니었지만, 샌드라가 이 가족과 함께 보내는 첫 추수감사절인 만큼 이번 모임은 특별했다.
캐스린은 사이먼과 눈이 마주쳤다. 남편은 그녀에게 다정하게 미소 지으며 작은 이인용 소파의 옆자리를 두드렸다. 그녀는 서둘러 다가가 그의 옆에 털썩 앉았다. 그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멋진 추수감사절이지?” 그가 물었다.
“정말 그래.” 그녀는 그의 품에 파고들며 나긋하게 말했다. “칠면조는 언제 확인하러 갈 거야?”
그가 벽시계를 보았다. “십 분 뒤에. 우리끼리 오붓하게 있을 시간은 있어.”
캐스린은 거실을 둘러보았다. “우리 사랑스러운 가족하고도.”
사이먼은 그녀를 더 꼭 끌어안았다. “정말 사랑스럽지.” 그가 창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폭풍이 오려나 보네.”
캐스린의 시선이 돌출창으로 홱 향했다. 하늘이 언제 저렇게 새까매졌을까? 먹구름이 하늘을 가로질러 밀려오고, 소용돌이치는 구름 속에서 번개가 연신 번쩍이는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불안이 점점 커졌다.
“아, 안 돼.” 그녀가 울먹였다. “우리 괜찮을까?”
“그럼!” 그는 그녀를 안심시키며 마음을 헤아리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토네이도가 몇 개 내려오더라도 폭풍은 아직 한참 멀리 있잖아.”
집이 살짝 흔들렸다. 낮게 신음하던 소리가 서서히 높아졌다. 캐스린은 바람이 뒤뜰을 휘몰아치며 테라스 가구를 때려 콘크리트 바닥 위로 밀어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사이먼은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걱정할 것 없어.” 그가 달랬다. “곧 밥 먹을 거야. 좋겠지?”
“어서 먹고 싶어.” 그녀가 중얼거렸다.
“뭐라고?” 사이먼이 귀에 손을 갖다 대며 물었다.
“내 말은……” 캐스린이 입을 열었다. 낮은 신음은 요란한 울부짖음으로 변해 있었다. 딸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손녀가 꺅꺅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보였지만,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원래도 소리가 작았던 텔레비전은 아예 들리지 않았다. 테라스 가구들이 공중으로 날아올라 잔디밭을 가로질러 뒤쪽 울타리에 부딪혔고, 일부는 충격에 산산이 부서졌다.
“맙소사!” 캐스린이 외쳤다. “폭풍이 점점 심해지고 있어! 뭐라도 해야 해!”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어?” 사이먼이 물었다. “자연의 힘이잖아. 우리 집까지 날려 버리진 않을 거야. 여기 있으면 아주 안전해.”
돌출창의 유리 한 장이 산산이 깨졌고, 파편들은 요동치는 회오리 속으로 빨려 나갔다. 캐스린은 비명을 지르며 사이먼의 품에서 몸부림쳐 빠져나와, 다른 것에 눈이 팔려 쪼르르 달려가는 시에라에게 뛰어갔다. 시에라를 안전한 곳으로 끌어당기려 했지만, 캐스린의 팔은 아이의 몸을 그대로 통과했다. 사나운 뇌우가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가운데, 그녀는 가족과 집, 심지어 바깥 풍경까지 흐릿해져 거의 반투명해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커다란 나뭇가지가 집의 옆벽을 뚫고 들어와 그녀를 향해 곧장 날아왔다. 그녀는 두 팔로 얼굴을 가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사방이 조용했다. 캐스린은 자신이 얼마나 오래 바닥에 누워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앉으며 눈을 깜빡였다. 씁쓸하게 얼굴을 찌푸린 그녀는 자신이 어질러진 아파트 안에 있음을 깨달았다. 벽에는 장식 하나 없었고 가구는 낡아 해져 있었다.
그녀 앞의 커피 테이블에는 ‘리비움’이라고 적힌 작은 처방약 병이 놓여 있었다. 복용 지침에는 ‘매일 한 알, 또는 후회나 삶의 목적이 없다는 느낌을 완화할 필요가 있을 때 복용할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정신과 의사가 처방해 준 약으로, 마음속에서 간절히 바라는 것을 환각으로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의사는 폭풍우의 환영이 나타날 수 있으며, 그럴 경우 복용량을 조절해야 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병을 열어 본 그녀는 약이 두 알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래쪽에 적힌 날짜를 보니 약을 다시 받으려면 며칠은 더 기다려야 했다.
시작할 시간을 내지 못했던 가족의 품으로 필사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그녀는 두 알을 모두 으깨어 유리 커피 테이블 위에 놓고 코로 들이마셨다. 그녀는 뒤로 쓰러져 바닥에 엎드린 채,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굳어 있었다.
“엄마?”
그녀가 눈을 뜨자 가족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괜찮아.” 그녀는 몸을 일으켜 앉으며 힘주어 말했다. 가족들이 그녀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정말 괜찮아?” 로리가 몹시 불안한 눈빛으로 물었다.
캐스린은 미소 지었다. “그럼. 자, 다들 밥 먹을 준비 됐니?” 가족들은 시끌벅적하게 대답하며 주방으로 몰려갔다. 그녀도 그 뒤를 따랐다.
줄이 생겨 있었다. 모두 접시를 들고 완성된 요리들이 늘어선 곳을 따라 걸으며, 지나갈 때마다 음식을 한 몫씩 덜어 담았다. 사이먼은 칠면조 옆에 서서 각자가 원하는 대로 고기를 썰어 주고 있었다.
캐스린은 창밖을 보았다. 불과 몇 야드 떨어진 곳에서 토네이도가 굉음을 내고 있었다. 그것이 갑자기 그녀의 집 쪽으로 방향을 틀더니 집을 길게 찢어 벌리고 파편들을 하늘로 빨아 올렸다. 그러고는 모든 것이 캄캄해졌다.
캐스린의 시신이 쓸쓸한 아파트에서 발견된 것은 며칠이 지난 뒤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여전히 섬뜩할 만큼 활짝 핀 미소가 굳어 있었다. 사인은 처방받은 정신과 약물의 과다 복용으로 판명되었다.
작성자 /u/ulate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