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불진화대원이고, 어젯밤 동료들이 죽는 걸 봤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적어야 한다. 나는... 도저히... 그냥 써야겠다. 모든 건 어제 시작됐다.
나는 솜사탕 구름 사이를 떠다니고 있었다. 준 할머니가 날개 달린 말을 타고 있는 게 보였다. 할머니를 다시 만난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가까이 다가갔다. “할머니!” 내가 말했다. “정말 보고 싶었어요!” 할머니가 내 눈을 바라봤다. 한때 짙은 파란색이던 할머니의 눈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할머니가 입을 벌렸다. 삐… 삐… 삐…
샘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일어나, 등신아! 불났다, 아주 뜨겁게 타오르신다!” 침대에서 미끄러지듯 빠져나오자 본능과 훈련이 몸을 움직였다. 몸은 정확하게 움직이는데 눈꺼풀은 무거워서 자꾸 오르락내리락했다. 노멕스 바지, 착용. 울 내의, 착용. 부츠, 착용. 함성과 고함이 벽에 부딪혀 울리는 동안 눈꺼풀이 내려앉는 게 느껴졌다. “빨리 따라와!” 샘이 나를 문밖으로 떠밀며 말했다. 나는 오십 파운드짜리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안전벨트를 맸다.
“루지 상황실, 여기는 소방차 631.” 데이미언이 잡음이 지직거리는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간헐적인 전파 간섭 사이로 쾌활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말씀하세요, 31대!”
“쳇코강 회랑 상류 연기 신고 지점으로 출동 중이라고 기록해 줘.”
“수신 확인, 소방차 631 쳇코강 연기 목격 지점으로 출동 중.”
“고마워, 민디.”
“언제든지, 데이미언.” 무전기가 조용해지자 굉음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샘이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자 엔진이 날카롭게 울며 으르렁거렸다. 누군가 앞좌석 창문을 내려서 차갑고 상쾌한 공기가 내게 쏟아졌다. 너무 매서워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비비며 말했다. “몇 시예요?”
“하! 새벽 한 시다, 귀염둥이. 너한텐 너무 이르냐?” 샘이 말했다. 데이미언이 자리에서 몸을 돌렸다. 그의 선명한 초록색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비상대기 근무가 좀 거지 같지, 신참. 익숙해질 거야. 특히 첫 월급이 들어오고 나면.” 그가 말했다. “이거 받아. 잠 깨는 데 도움이 될 거야.” 나는 아직 따뜻한 스티로폼 컵을 받아 조심스럽게 입술로 가져갔다. 쓴맛이 혀를 때렸고 알갱이 몇 개가 이에 꼈다. 그 소금물 같은 것을 억지로 목구멍에 넘기며 얼굴을 찌푸렸다. “블랙이야.” 그가 말했다. “크림하고 설탕은 복귀하면 기다리고 있을 거야.”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쇼핑몰 산타의 호호호 웃음을 떠올리게 하는 데이미언의 웃음소리가 속삭이는 바람과 화음을 이뤘다. 휴대폰을 찾으려고 주머니를 뒤졌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젠장, 어떻게 그걸 두고 오지?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어 모래사장과 바다 쪽으로 번져 이어지는 나무들을 바라봤다. 나쁘지 않네. 밤에 보니까 제법 예쁜데.
샘은 우리 작은 소방차를 최대한 빠르게 몰아 우리를 이리저리 흔들고 들썩이게 했다. 바로 내 뒤에서 600갤런의 물이 출렁이며 나를 기분 좋은 선잠으로 이끌었다. 눈꺼풀이 이십 파운드, 삼십 파운드, 사십 파운드씩 무거워졌다. 오십 파운드가 되자 더는 눈을 뜨고 있을 수 없어 잠에 굴복했다.
“쌍안경 꺼내, 신참!” 샘이 소리쳤다. 나는 심장이 가슴을 뚫고 나올 듯 뛰며 번쩍 깨어났다. 끝없는 순찰을 돌다 보면 타코벨이나 서브웨이 바로 앞을 지나곤 했고, 그때마다 차 안에 쌓아 둔 쓰레기 더미를 뒤졌다. 손끝에 거친 가죽 끈이 스쳤다. 나는 패스트푸드 무덤에서 쌍안경을 잡아 뽑았다.
“여기요.” 나는 데이미언에게 건네며 말했다.
그는 웃으며 윙크하고는 쌍안경을 받았다. “내려, 신참.” 그가 말했다. “밤눈이 예전 같지 않아서 말이야. 새미, 불 꺼.”
나는 차에서 몸을 끌어냈다. 근육이 공허한 비명을 질렀다. 우리는 강가에 차를 세워 두었고, 가느다란 달이 수면에 비쳐 반짝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데이미언이 풀이 난 언덕 비탈을 조금 올라갔고 나는 그 뒤를 따라갔다.
데이미언이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스크롤했다. 그는 내게 윙크하며 쌍안경을 던졌다. “여기 보니까 정동쪽에 있을 거라는데.” 나는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을 보고 차갑고 매끈한 금속을 눈에 갖다 댔다.
쌍안경을 들여다보며 위아래로, 좌우로 훑었다. 끝없이 이어진 소나무와 목련과 양치식물이 나를 마주 봤다. 희미한 연기 한 줄기가 하늘로 천천히 올라가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 줄기를 따라 시선을 내리자 나뭇잎과 솔잎 사이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보여요.” 내가 말했다.
“젠장.” 데이미언이 내 등을 철썩 치며 말했다. “오인 신고이길 바랐는데.”
“연기 한 줄기밖에 안 나요. 사실상 아무것도 아닌데요.” 내가 말했다.
데이미언이 내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저것들 바싹 말라 죽어 있어. 작은 불씨 하나면 우리 고용 기간이 십일월까지 쭉 늘어나는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발 별일 아니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소방차로 돌아갔다. 그는 말없이 빛나는 휴대폰 화면을 샘에게 보여 줬다.
“씨발.” 샘이 다시 전조등을 켜고 기어를 넣으며 말했다. 우리는 이리저리 굽이치고 몇 번이고 되짚어 가다가 표지 말뚝이 중간쯤에서 부러진 비포장도로에 도착했다. “이 길로 가면 나올 것 같아?”
데이미언이 휴대폰 화면을 누르고 쓸어 넘기며 살폈다. “다른 길이라고 더 나을 것도 없지.” 그가 말했다. 샘은 고개를 끄덕이고 돌투성이 길로 차를 돌렸다. 빗물이 파 놓은 홈 사이를 춤추듯 빠져나가며 능숙하게 차를 계속 위로 몰았다. 물탱크 안의 물은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박자가 흐트러지며 출렁거렸다.
“차다.” 샘이 차를 세우며 말했다. 밖을 내다보니 빨간색 소형 세단이 보였다. 앞부분이 거대한 소나무를 감싸듯 찌그러져 있었다. 텅 빈 차 안에서 에어백이 바람에 펄럭였다. “내려오다가 브레이크가 나갔나 보네. 로디한테 말해 주게 적어 둬.”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수염을 기른 건장한 두 남자가 모두 나를 돌아봤다. “아, 아, 알겠습니다.” 나는 수첩을 꺼내며 말했다. “여기 무슨 도로예요?”
“그냥 마일 표지 15랑 16 사이에 있는 도로라고 써.” 데이미언이 말했다. 나는 수첩에 빠르게 적고 백미러를 통해 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다시 기어를 넣자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몇 시간은 지난 것 같았을 때 시계는 새벽 2:36을 가리켰다. “우리 지나친 거 아닐까요?” 내가 한마디 보탰다.
“말이 좀 빨랐네.” 작은 공터로 들어서며 샘이 말했다. 한가운데에는 돌로 둥글게 둘러싸인 잔불이 연기를 내고 있었다. 맥주 캔과 탄피가 전조등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누가 딱 내 취향으로 파티를 벌였네.” 우리가 차에서 뛰어내리자 샘이 말했다. “신참, 가서 호스 가져와. 온 김에 물이나 끼얹고 가자.”
나는 소방차로 달려가 신속 방수용 호스를 풀기 시작했다. 오른손으로 크랭크를 돌리다가 손이 너무 차가워져 왼손으로 바꿨다. 축 늘어진 호스가 뱀처럼 땅 위에 넉넉하게 쌓이자 스위치를 눌렀고, 펌프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작동했다. 발끝까지 진동이 전해졌다. 나는 관창을 집어 들고 사그라드는 잔불의 고통을 끝내 줄 준비를 한 채 걸어갔다.
데이미언은 왼쪽으로 떨어져 서서 헬리콥터 탐조등처럼 손전등으로 땅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불에 다가가 자세를 단단히 잡고 관창 밸브를 열었다. 물이 침방울처럼 찔끔 흘러나오더니 펑 소리와 함께 본격적으로 쏟아졌다. 거센 물줄기가 숯불을 때리자 몇 개가 치익거리는 소리를 내며 안전한 돌 테두리 밖으로 튀어나갔다.
“조심해, 신참!” 데이미언이 외쳤다.
나는 호스를 더 꽉 잡고 숯불 한가운데를 겨눴다. “죄송해요.” 한층 축축해진 바람에 몸을 떨며 말했다.
“이 정도면 됐어.” 데이미언이 말했다.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호스를 감고
따뜻한 소방차에 들어갈 수 있어 기뻤다. 나는 릴 해제 장치를 제자리에 걸어 고정했다. “이상 없습니다!” 펌프 모터가 서서히 멈추는 동안 내가 외쳤다. 바지에 손을 문질렀다. 축축한 천에 대고 어떻게든 손을 말려 보려고 애썼다. 차에 뛰어올라 안전벨트를 매고 떠날 준비를 마쳤다. 어서, 여기서 나가자.
데이미언이 소방차에 다가오자 그의 손전등 불빛이 창문 너머로 어른거렸다. “아직 샘 기다리는 중이야!” 그가 소리쳤다. “제 신상에 좋으려면 서두르는 게 좋을 텐데!” 그가 차에 뛰어오르는 동안 외침이 놀리듯 메아리쳐 돌아왔다
“어디 갔는데요?” 나는 이를 딱딱 부딪치며 말했다. “정신이 나갔나?”
데이미언이 코웃음을 쳤다. “불 피운 놈들이 근처 덤불에 숨어 있나 보러 갔어.” 그가 말했다.
“그래도 얼른 돌아오는 게 좋을 거야!” 그가 창밖으로 소리쳤다. “그건 그렇고, 이런 걸 찾았지.” 그는 돌아서서 은도금된 매그넘 권총을 내게 보여 줬다.
“우와.”
“이걸 가지러 돌아올 배짱도 없으면 소유권을 포기한 셈이지 싶어서.” 데이미언이 권총을 바지에 쑤셔 넣었다. “일하면서 얻는 부수입이지.” 저건 딱 봐도 마약상 권총 같은데. 나라면 감히 손도 안 댈 거다. “이건 네가 가져.” 그는 반짝이는 물건을 내게 던졌다.
나는 손안에서 그것을 뒤집어 보고 뚜껑을 젖혔다. 위로 작은 불꽃이 솟아올라 우리 둘의 얼굴을 밝혔다. “고마워요.” 내가 말했다.
앉아서 오 분쯤 지나자 데이미언이 자리에서 몸을 뒤척이기 시작했다. 그는 무전기를 켜고 주파수를 이리저리 바꿨다. 거친 잡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깨끗하게 들리는 채널에서 멈췄다. “샘, 샘, 내 말 들려?” 십 초가 달팽이 등에 올라탄 듯 느리게 흘렀다. “샘?” 아무 대답도 없었다. 희미한 잡음만 들렸다. “찾으러 갔다 올게. 넌 여기서 무전기 켜 놓고 있어.”
“알겠습니다.” 나는 그의 자리였던 조수석으로 옮겨 앉으며 말했다. 그가 희끗희끗한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고 손전등으로 넓게 주위를 비춘 뒤 바지에서 매그넘을 꺼내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는 몸을 살짝 웅크렸다. 언덕을 올라가며 샘의 이름을 작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희미한 잡음 속에 앉아 있었다. 조금밖에 걱정되지 않았다. 늙은 데이미언을 혼쭐나게 놀라게 할 작정이라니, 역시 샘답다. 곧 끝날 일이었다. 그러면 나는 다시 솜사탕 구름 사이를 떠다닐 수 있을 것이다.
피로 때문에 눈꺼풀이 무거워질 무렵, 탕 하는 소리가 나무 사이로 퍼졌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방금 총소리였나? 심장이 점점 더 빠르게 가슴을 두들겼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무전기를 잡았지만 처음에는 떨어뜨렸다. “저, 저기요?” 내가 말했다. 대답이 없었다. 입김이 따뜻해졌고 앞 유리에 김이 서리기 시작했다. “거기 있어요?” 탕 탕. 나는 무전기를 떨어뜨렸다. 맙소사, 맙소사, 그 말이 머릿속 사방에 부딪혀 울렸다.
나는 숨을 죽인 채 얼어붙었다.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더는 춥지 않았지만 심장은 계속해서 가슴을 두들겼다. 점점 더 세게, 점점 더 빠르게. 나무 사이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난 죽었다.
“시동 걸어!” 익숙한 목소리가 외쳤다. 나를 고치처럼 감싸고 있던 보이지 않는 얼음에서 손가락이 풀려났다. “빌어먹을 시동 걸라고!” 데이미언이었다. 그는 무언가를 뒤로 끌며 비탈을 굴러떨어지듯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고치에서 벗어나 허둥지둥 운전석으로 옮겨 갔다.
방울뱀처럼 떨리는 손에서 열쇠가 짤랑거렸다. 나는 열쇠를 돌려 시동을 걸었다. 데이미언이 뒷문으로 다가왔을 때 엔진이 굉음을 내며 살아났다. 그는 문을 확 열고 끌고 오던 무언가를 뒷좌석에 던져 넣었다. 그것은 좌석에 떨어지며 신음하더니 진흙투성이 손을 내게 뻗었다. 데이미언이 조수석 문을 확 열었다. “출발해!” 그가 뛰어들며 외쳤다.
나는 기어를 넣고 길고 차갑게 식은 모닥불 자리를 빙 돌아 다시 그 길을 내려갔다. “샘은 어디 있어요?”
“여기 있다, 멍청아.” 뒷좌석의 덩어리가 말했다. “놈들한테 거의 잡힐 뻔했는데, 그래도—” 발작적인 기침에 말이 끊겼다. “날 그렇게 쉽게 막을 순 없지.”
차가 튀어 올랐고, 나는 하마터면 그대로 나무를 들이받을 뻔했다. “곰이었어요?” 차를 다시 도로 쪽으로 틀고 나서 물었다.
“곰이 아니야.” 데이미언이 말했다. “뭔지 모르겠어.” 운전대를 움켜쥐자 손가락 마디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뭐였든 간에, 나 제대로 당했어.” 샘이 말했다. 나는 슬쩍 뒤를 돌아 그를 봤다. 온몸이 짙붉은 피로 뒤덮여 있었다.
“세상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차가 크게 두어 번 더 튀어 오르는 동안 둘 다 대답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요?” 내가 다시 물었다.
“그냥 키 큰 남자들처럼 보였어.” 데이미언이 말했다.
“키 큰 뭐요?”
“키 큰 남자들.”
나는 브레이크를 세게 밟았다. “키 큰 놈 하나 때문에 그렇게 겁을 먹고 난리를 쳐서 나까지 바지에 오줌을 지리게 했다는 거예요?”
“그냥 운전해.” 데이미언의 목소리가 떨렸다. “지금 당장!” 그는 바지에서 총을 꺼내 안전장치를 풀었다.
“하하, 참 무섭네요. 거기 뭐 들었어요, 공포탄? 신참 신고식 얘기는 들었지만, 이건 좀—” 트럭이 흔들렸다. 속도에 미친 운전자가 옆구리를 들이받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가 좌우로 휘둘렸다. “뭐야?”
“그냥 가!” 샘이 비명을 질렀다. 우람한 소방대원보다는 여학생에 가까운 소리였다. “운전하라고, 젠장!”
머릿속이 빙빙 도는 동안 나는 몸이 알아서 움직이도록 내버려 두었다. 손이 다시 기어를 넣고, 발이 가속페달을 세게 밟았다. 심장은 가슴을 정으로 쪼아 대고 손마디는 뼈처럼 하얗게 질렸다. 대체 뭐야? 내 몸은 차를 몰아 아래로 내려갔지만, 앞서 박살 난 세단과 똑같은 지점에서 실패했다.
보이지 않던 요철을 밟아 차가 왼쪽으로 튀었다. 나는 오른쪽으로 운전대를 너무 많이 꺾었고, 우리는 버려진 빨간 차의 뒷부분을 쾅 들이받았다. 에어백이 얼굴을 후려쳤고, 나는 솜사탕 구름 사이를 떠다니러 갔다.
비명, 고막을 터뜨릴 듯한 울부짖음이 머릿속을 채웠고, 나는 퍼뜩 깨어났다. 색칠 공부 책에서 선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 애쓰는 아이의 그림처럼 모든 게 흐릿하게 보였다. 뭐…… 무슨 일…… 일이 있었지. 머릿속은 엉망이었지만, 몸은 아주 오래된 프로그램에 지배당해 심장이 멎을 듯한 비명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샘의 넓고 근육질인 체형을 어렴풋이 닮은 흐릿한 형체가 어둠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었다. 긴 팔 하나가 초록색 다리를 휘감고 있었다. 탕!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근육이 수축하자 바늘이 얼굴을 찔렀다. 무언가 턱을 간질이더니 손 위로 따뜻하게 튀었다.
눈을 뜨자 손등 위로 피가 구불구불 흘러내리고 있었다. “맙소사!” 내가 소리쳤다.
“닥쳐!” 악문 이 사이로 뭉개져 나온 거친 속삭임이 귓속에 머물렀고, 내 뇌는 한참 뒤에야 그걸 처리할 틈을 냈다.
“무슨…… 무슨 일이 있었어요?” 내가 말했다.
“닥쳐”라는 말이 다시 흘러왔다.
나는 안전벨트를 더듬었다. 엄지에 벨트를 풀 힘이 없었다. 세게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홈에 손가락 마디를 억지로 밀어 넣었다. 딸깍, 몸이 풀려났다. 문손잡이를 당겨 봤지만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이상한데. 이제 겨우 가을이고, 겨울이 돼야 얼음이 얼 텐데. 다시 당겨 봤다. 돌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게 왜 말이 안 되는지 다시 혼자 따져 보기도 전에 손 하나가 내 팔을 움켜잡았다.
그 손이 나를 조수석 쪽으로 잡아당겼다. 나는 허둥대며 손에 잡히는 틈과 구석, 손잡이를 모조리 붙잡았다. 또 비명이 들렸지만, 그 소리는 내가 숨을 들이쉴 때마다 끊겼다. 나는 점점 더 끌려갔다. 안 돼, 안 돼! 이렇게 끝날 순 없어.
빛이 눈을 멀게 했다. “닥쳐.” 빛이 말했다.
“하, 하느님?”
“아니야, 애송아. 그러니까 이제 닥쳐!” 데이미언이 손으로 내 입을 막았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피투성이가 된 데이미언이 매그넘을 나무들 쪽으로 겨눈 채 내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몸을 떨며 내 옆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놈들이 샘을 잡아갔어.”
“누가요?”
“그 빌어먹을 키 큰 놈들!” 데이미언이 내 몸을 훑어봤다. “그 팔 부러진 것 같은데.”
내려다보니 팔뚝 한가운데가 꺾여 있었다. 팔을 보는 순간 팔과 뇌가 다시 연결됐고, 뜨거운 통증이 온몸을 맥박처럼 타고 흘렀다. 젠장!
“가야 해.” 데이미언이 성한 팔을 붙잡아 나를 일으키며 말했다. 날카로운 통증이 등을 타고 올라왔지만, 나는 두 발로 버텨 섰다. “무전기는 내가 가져올게. 넌 일단 아래로 내려가.”
발이 땅을 디뎠다.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머리가 까딱거렸다. 성한 손으로 다친 팔을 살짝 눌러 보니 팽팽하게 부푼 피부와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느껴졌다. 발을 잘못 디뎌 자갈이 흩어진 곳에서 미끄러졌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몸을 홱 움직인 덕에 버티기는 했지만, 등의 통증은 더 묵직해졌다. 나는 비틀거리며 나무로 가서 울퉁불퉁한 껍질에 어깨를 기댔다.
가슴속의 짐승이 그럭저럭 견딜 만한 박자로 느려질 때까지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트럭 쪽을 돌아봤다. 데이미언이 거의 다 와 있었다. 숨을 깊이 들이켜자 갈비뼈 사이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파헤쳐져 나왔다.
“무전기 고장 났어.” 그가 다가오며 말했다. “총알도 두 발밖에 안 남았으니, 형편 한번 끝내주는군.” 그가 나와 눈을 맞췄다. “몸은 어때? 산 아래까지 갈 수 있겠어?” 나는 팔을 가슴에 붙들어 안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자.”
나는 데이미언의 검은 실루엣을 따라 비탈을 내려갔다. 흙길이 언제 낙엽과 잔가지로 바뀌었는지도 몰랐다. 낮게 늘어진 나뭇가지에 몸이 스칠 때마다 걸리지 않으려고 움찔하며 피했다. 데이미언이 멈췄다. “방금 뭐였지?” 나는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못 들었어?” 고개를 젓자 목에서 여태 느껴 본 적 없는 근육들이 느껴졌다. “조용히 가자.” 그가 계속 움직이라고 손짓했다.
다시 한 걸음을 내디뎌 발을 단단히 붙인 순간, 멀리서 나는 우르릉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잠깐만요, 저도 뭔가 들었어요.”
데이미언이 돌아봤다. “멀리서 지진 나는 것 같은 소리?”
“네.” 나는 한 걸음 더 앞으로 내디뎠다. 데이미언의 눈이 커지고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왜요?”
“그냥 계속 걸어. 천천히.” 그가 총을 들어 내 바로 위를 겨눴다. 나는 뒤를 돌아보려 했지만 데이미언이 말을 끊고 들어왔다. “보지 마! 그냥 계속 걸어.” 나는 가슴속에서 심장이 뛰는 속도와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힘겹고 고된, 소리 없는 걸음을 하나씩 이어 갔다. 데이미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몸을 떨며 서 있었지만 총은 돌처럼 꼼짝하지 않았다.
데이미언을 지나친 나는 용기를 내 뒤를 흘끗 봤다. 어둡고 호리호리한 형체 하나가 열 해 된 나무들보다 높이 솟아 서 있었고, 하늘에 걸린 가느다란 달빛을 등진 윤곽이 드러나 있었다. 나는 홱 고개를 돌려 발을 내려다보며 계속 다리를 움직였다. 저게 대체 뭐지? 나는 계속 움직이고 또 걸었다. 아래로 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산사태가 깎아 놓은 열 피트 높이의 작은 절벽에 다다랐다. 나는 뒤를 돌아봤다. “저기요, 좀 도와줘—” 나무 사이로 희미한 섬광이 깜빡였다. 탕! 탕! 창자가 뒤틀리는 듯한 비명이 솟아 공중으로 올라가다가, 쿵! 뚝 끊겼다. 가!
나는 절벽 아래로 뛰어내려 잠깐 굴렀고, 살갗과 뼈를 날카로운 통증과 충격이 꿰뚫었다. 발을 디뎌 몸을 일으키자 심장이 제 우리를 두드렸다. 나는 나무와 덤불 사이를 비틀거리며 지나갔다. 가시에 바지가 찢어지고 나무껍질과 가지에 팔이 긁혔다.
가느다란 달이 아침 안개 뒤로 달아났다. 안개는 피부에 서늘하게 닿으면서 마지막 남은 빛까지 빨아들였다. 휴대전화를 찾으려고 주머니를 더듬었다. 젠장, 없어. 잠깐 뒤적이는 동안 손가락에 매끈한 금속 물체가 스쳤다. 라이터를 꺼내 불을 켰다. 따뜻한 불빛이 안개 속으로 뿌옇게 번졌다. 어둠은 거의 걷히지 않았다.
나는 따뜻한 등불을 앞으로 뻗은 채 계속 걸었다. 오른발 앞으로 왼발을, 다시 왼발 앞으로 오른발을 내놓는 데 너무 집중한 나머지 나무에 세게 부딪쳤다. 손아귀에서 튕겨 나와 땅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따뜻한 불빛을 눈으로 좇았다. 나는 허둥지둥 몸을 낮춰 주우려 했다. 불, 불, 불. 라이터를 낚아채고, 그것이 떨어져 열기를 퍼뜨리던 자리를 두어 번 발로 밟았다.
라이터 뚜껑을 탁 닫자 어둠이 돌아와 나를 집어삼켰다. 숲에 불을 지르느니 어두운 게 낫지. 주위를 둘러보니 짙어지는 안개 너머로 새까만 나무줄기들이 흐릿하게 번져 보였다. 씨발, 그냥— 그냥 계속 가야 해.
한 걸음을 내디뎠다. 발이 갓 떨어진 낙엽에 닿자 앞에 있던 나무가 흔들렸다. 나는 얼어붙었다. 두 발이 제자리에 달라붙었고, 눈은 한곳에 고정된 채 깜빡이지도 않았다. 나무는 점점 더 격렬하게 흔들리며 좌우로 갈수록 크게 움직였다. 나는 천천히, 조금씩 손을 도로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라이터를 움켜쥐고 서서히 꺼냈다. 흔들리는 나무가 점점 더 세차게, 점점 더 큰 폭으로 휘둘리기 시작하는 동안 나는 라이터를 바로 앞으로 가져왔다. 길고 깊게 숨을 들이쉰 뒤 라이터를 열어 불꽃을 풀어놓았다. 빛이 안개 속으로 튀어나가 퍼지고 식어 가다가 나무의 검은 형체에 닿았다.
나는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을 내디디며 검게 몸부림치는 나무에 점점 가까이 다가갔다. 표면에서 몇 인치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르렀을 때, 흔들림이 느려지면서 나무껍질의 결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뭐라도 설명할 수 있는 걸 찾기를 바라며 나무줄기를 따라 땅까지 시선을 천천히 내렸다. 내려가는 동안 아무것도 찾지 못한 눈이 이번에는 가지 쪽으로 올라갔다. 눈이 높이 올라갈수록 불빛도 시선을 따라 하늘 쪽으로 조금씩 올라갔다. 나뭇잎은 전부 사라졌다. 매달려 있던 곳에서 내팽개쳐져 땅에 내려앉아 있었다. 검고 갈색인 가지들이 무리 지어 나를 마주 보고 있었다. 내 머리가 헛것을 보여 주지만 않으면 좋겠는데. 어렴풋이 낯익은 형체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약한 불빛으로도 전부 나뭇가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뭇가지는 모두 제자리에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뒤로 물러나려고 발을 들었을 때 가지 하나가 떨어져 나와 내 쪽으로 내려왔다. 가지가 다가오며 희미한 불빛을 더 많이 받아 내자 곧게 뻗은 모양이 드러났다. 나는 우습다는 생각에 그 가지가 떨어질 자리에서 한 걸음 비켜났고, 안전해졌다는 데 만족했다. 그런데 내가 움직이자 가지도 움직였다. 가지는 멈춰 서서 내 바로 위에 떠 있었다. 머뭇거리며 떨리는 손가락을 뻗었다. 차갑고 단단한 감촉을 예상하며 더듬은 피부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이 닿았다. 가지가 굽어지며 내 팔을 움켜잡았다.
손가락들이 근육 깊숙이 파고드는 걸 느끼며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움직이기 시작하며 붙잡힌 팔을 나무에서 잡아당겼다. 희미한 불빛 속에서 눈을 뜨고, 기이한 팔로 바뀌는 가지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가느다란 형체를 타고 천천히 올라간 시선이 불룩한 부분에 닿았다. 라이터를 들어 올리자 희미하고 따뜻한 불빛 두 개가 나를 마주 보고 있었다.
정신이 절망의 깊은 구석으로 파고드는 동안 근육이 몸을 움직였다. 라이터를 쥔 손이 뒤로 젖혀졌다가 희미한 반사광을 향해 라이터를 힘껏 내던졌다. 라이터가 거기에 닿자 내 팔을 움켜쥐고 있던 힘이 풀렸고, 내 몸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두 다리가 튀어 오르더니 나를 비탈 아래로 내달리게 했다. 나는 나무에 연달아 부딪히면서도 멈추지 않고 계속 아래로 내려갔다.
잎사귀와 깊숙이 뻗은 나뭇가지를 짓밟는 발소리 뒤로 탁탁 터지고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따라붙었다. 등 뒤의 바람은 서늘하게 나를 밀어주다가 어느새 따뜻하게 나를 끌어들였다. 탁탁 터지는 소리는 포효로 커져 점점 더 크게 귓속을 울렸다.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뒤를 흘끗 돌아보았다. 불길이 춤추며 뛰어올랐다. 잠에서 깨어난 굶주린 원시의 짐승이었다. 나는 달리고, 뛰고, 몸을 낮추고, 비틀거렸다. 등 뒤의 온기가 손을 뻗어 피부를 익혔다. 종아리와 목이 지옥의 열기를 흡수하며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눈에 눈물이 고였다. 작은 흐느낌이 들렸다. 쿵, 오른발, 쿵, 왼발. 끝이다. 나는 비겁하게 붙잡히느니 당당하게 최후를 맞으려고 뒤돌아설 준비를 했다. 발을 단단히 디디고 근육에 힘을 주어 달리던 기세를 죽이려는 순간, 발밑의 땅이 무너졌다. 두 팔로 무엇이든 붙잡으려 했지만 아무것도 손에 닿지 않았고, 나는 곤두박질쳤다. 머리를 보호하려 애쓰며 굴러떨어지던 중 날카로운 냉기가 온몸을 집어삼키고 숨을 앗아갔다.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강물에 목까지 잠긴 나는 곧바로 불의 열기와 아드레날린에 감사했다.
내 시선은 강둑에 다다른 불길의 끝으로 끌려갔다. 살을 태우는 덩굴손을 피해 몸을 숨길 곳을 찾은 것이다. 불길이 나무의 등을 핥고 올라가 순식간에 집어삼키는 동안, 나는 나무들이 탁탁 터지며 사납게 타오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 강물에 몸을 맡기고 불타는 강둑에서 멀어졌다.
울부짖는 근육을 움직여 물장구를 치며 강의 얕은 곳에 자리 잡은 바위로 다가갔다. 차갑고 울퉁불퉁한 모서리를 움켜쥐고 쑤시는 몸을 얼음장 같은 물 밖으로 끌어 올렸다. 소매를 걷어 올리자 팔이 비명을 질렀고, 처참하게 지그재그로 꺾인 모습이 드러났다. 나는 남자답지 못하게 들릴까 봐 두려워하지 않고 비명을 내질렀다. 불이 울부짖는 소리와 물이 세차게 흐르는 소리에 내 고통이 묻히도록 내버려두었다.
몇 차례 깊이 숨을 들이쉬고 나서야 안개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불이 얼마나 번졌는지 가늠하려고 다시 불 쪽으로 몸을 돌렸다. 헬기가 최소한 한 대는 필요하겠고, 어쩌면 비행기도-. 불길 위의 검은 점 하나가 생각을 끊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눈을 가늘게 떴다. 길고 가느다란 실루엣 하나가 강둑에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심장이 가슴을 세게 두드렸고 숨이 목구멍에 걸렸다. 나는 눈을 크게 뜬 채 시선을 고정했다. 그것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또 다른 실루엣이 불길 속에서 나타났다. 허공처럼 텅 빈 검은빛이 무시무시한 불길 때문에 더욱 짙어 보였다.
길고 가느다란 실루엣들이 점점 더 강둑을 메우는 동안 나는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팔은 비명을 지르고 등은 따끔거렸으며, 온몸이 심하게 떨렸지만 눈길만은 한 번도 돌리지 않은 채 몇 시간처럼 느껴지는 시간을 그곳에 머물렀다. 태양의 옅은 주황빛이 산봉우리 꼭대기를 넘어오자 실루엣들은 하나씩 몸을 돌려 불길 속으로 들어갔다. 하나만 빼고. 그것은 꿈틀거리지도 않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 나는 계속 시선을 고정했고, 마침내 그것이 움직였다. 그것은 길게 늘어난 검은 팔 하나를 하늘로 들어 올려 허공에서 이리저리 흔들더니 불길 속으로 물러났다.
나는 화재를 신고했다. 가능한 한 오래 공중에서만 진화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지휘부의 계획은 달랐다. 오늘 밤 처음으로 초동 진화대원들이 그 지역에서 야영하게 된다. 나는 무전기 음량을 끝까지 올려 무릎 위에 놓아두고 있다. 간호사들은 화재 소식보다 내 휴식이 더 중요하다며 자꾸 나를 놀린다. 지지직거리는 잡음 사이로 첫 목격 보고가 울려 나오면 내가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그들의 죽음은 내 책임이 될 것이다.
게시자 /u/lightningQ6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