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
살면서 좀 찜찜한 일들을 겪어왔기에 이 계정을 만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서브레딧을 자주 둘러보는 것도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이 또 있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기 때문이다. 특히 이 이야기는 올릴까 말까 늘 고민했지만, 전부 털어놓고 나면 좀 후련해진다. 그래서 하나 더 적어본다.
2014년, 고향 친구인 여자애에게서 문자가 왔다. 나는 온 사방으로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었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학비가 많이 들었다. 결국 페이스북에 아는 사람 중 일자리를 소개해줄 사람이 있는지 묻는 글을 올렸다.
“야아아! 네 글 봤어. 나 노래방에서 접대 일 하고 있는데 시급이 한 40달러야. 더 궁금하면 말해”
당연히 궁금했다. 노래방에서 일하는데 한 시간에 40달러라고?! 말도 안 됐다.
“헐 응 당연하지!!!”
“오케이 좋아!! 사장 이름은 시우보고 번호는 555-647-5309야. 그냥 문자로 일자리 구한다고 하면 면접 잡을 수 있을 거야”
그래서 그렇게 했다. 시우보와 나는 면접 약속을 잡았다. 시간은 8PM이었다. 좀 이상하긴 했지만 노래방이라는 걸 생각하면 딱히 놀랄 일도 아니었다. 보통 점심 먹으러 노래방에 가지는 않으니까.
나는 평소 면접 볼 때 입는 차림으로 도착해 자리에 앉았다. 시우보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안경 쓰니까 못생겨 보이잖아! 그거 쓰지 마!”였다.
내 안경 도수는 -3.75다. “안 쓸” 수가 없다.
나는 웃어넘기며 그렇게 말했고, 그는 나를 나무라며 콘택트렌즈를 권했다. 그러든가. 지금은 그런 직설적인 태도에 문화적인 영향도 어느 정도 있다는 걸 알지만, 당시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나머지 면접도 똑같이 어처구니없었다.
“어느 쪽 혈통이야?”
누가 봐도 빼도 박도 못하는 백인이었다.
“지금 하는 일 있어?”
없었다.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몇 년생이야?”
1995년.
“좋아! 19살!”
“이름은 뭘로 쓸 거야?”
응? 이름을 뭘로 쓰냐고?
아.
정말로 접대부가 있는 술집이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는, 의심할 만한데도 그런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들어오면서 여자들이 준비하는 모습도 봤고, 가게에서는 담배 냄새가 진동했고, 시급으로 40달러를 제안받았는데도, 어쩐지 캐나다 노래방은 원래 이런 곳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노래방에 가본 적이 없었으니까.
“카트리나요.” 내가 말했다.
그가 웃었다.
“좋아! 카트리나! 오늘 밤부터 시작해. 9:30에 10명 예약이 있어.”
그는 나를 “탈의실”로 데려갔고, 나는 어느새 예쁜 여자들 틈에 둘러싸여 있었다. 나이는 나와 비슷했지만 훨씬 거리낌이 없는 애들이었다. 다들 나를 좀 꾸며주고 싶어 했지만 나는 사양했다. 어쩐지 안경도 그대로 쓰고, 펜슬 스커트도 원래 길이 그대로 둔 채, 자존심도 100으로 꽉 채우고 이 “노래방” 자리에 맨몸으로 부딪쳐보고 싶었다.
그러고는 어느새 한 줄로 늘어서 있었다.
“오늘 함께할 아가씨들입니다!”
우리는 한 줄로 문을 통과했다. 스팽글 드레스, 몸에 딱 달라붙는 드레스, 드러낸 가슴골, 한껏 공들여 만진 머리. 아름다운 동아시아 여자들 사이에 난데없이 끼어든 백인 사서 하나.
“카라. 크리스틴. 엔젤. 루나. 대니엘. 카트리나. 고르세요!!!”
여러 연령대의 남자들이 U자형 테이블에 앉아 우리를 훑어본다. 시선이 위로, 아래로, 위로, 아래로 움직인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저 여자. 저 여자. 저 여자. 저 여자…… 그냥 전부 하죠.”
그들은 나를 빤히 보며 웃었다.
나는 다른 여자들을 따라 앉았다. 우리는 저마다 남자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함께 어울리고 술을 마신 뒤, 밤이 끝나면 돈을 받았다. 정말로 이상한 짓은 없었다. 이 남자들은 그냥 돈을 주고 여자들과 어울리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는 중국이나 한국 술자리 게임을 하고, 아무 얘기나 나누고, 그들과 술을 마시거나 춤을 췄다. 사실 꽤 재미있었다.
대부분의 밤이 그런 식으로 흘러갔다.
주말마다 8PM쯤 문자가 왔다. 정말 맹세코 형식이 이랬다. “손님 X명 (중국인, 한국인, 일본인 등), Y시.” 나는 그날 일을 나갈지 말지 정할 수 있었다.
고향 친구는 중국인 손님이 올 때만 나가라고 했다. 나는 백인이라 그냥 친구 말을 믿었다. 중국인들이 손님 수도 가장 많고 팁도 가장 후하게 준다는 것이었는데, 내가 겪어본 바로는 친구 말이 맞았다.
그저 앉아 있었을 뿐인데도 어떤 날은 팁으로 현금 천 달러를 받아 집에 갔다. 어떤 날은 손님들이 판매상을 불러 우리가 원하는 마약을 선물로 가져다주게 하기도 했다. 당시 나는 대마초를 엄청 피웠는데, 그곳에서는 아주 별난 취향이었다. 다들 코카인이나 M, 아니면 GHB를 좋아했으니까. 한 번은 대마 수지가 베이킹 팬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 생겨서 집에 가져갔다. 비현실적이었다. 허름한 방에 여자들과 모여 앉아 시시껄렁한 수다를 떤 대가가 이 정도라니. 정말 괜찮은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일했던 그날 밤까지는.
“중국인 10명 11PM”
나는 평소처럼 줄을 섰고 다른 여자들도 그랬다. 고등학교 친구도 와 있었는데, 자주 나오지 않는 애라 좀 드문 일이었다. 남자들은 “전부”를 골랐다. 이제는 꽤 흔한 일이었고, 우리는 모두 자리에 앉았다. 술이 돌고, 대화가 오가고, 마약을 했다. 늘 하던 대로였다. 2AM쯤 남자들이 더 들어왔다. 아시아인도 있었지만 아닌 사람들도 있어서 좀 이상했다.
그때부터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고, 남자들은 자리를 다른 곳으로 옮기자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밤을 마무리할 때 흔히 있는 일이었다. 몇몇은 여자들에게 자기 집에 같이 가자고 했다. 딱히 평소와 다른 일은 아니었다. 남자 몇 명이 방값을 계산하러 나갔고, 마침 나도 친구와 화장실에 가려고 나왔다.
일을 보고 모퉁이를 돌아 안내 데스크 쪽으로 오니 완전히 난장판이었다. 남자들이 데스크 직원인 자그마한 여자 두 명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사장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남자 하나가 접대부를 붙잡더니 팔뚝으로 목을 감아 꽉 움켜쥐었다.
“이천 달러? 좆까. 그딴 돈 못 내.”
데스크 직원이 설명하려고 하—
아. 저 남자한테 총이 있다.
“씨발, 이년들. 창녀 같은 년들 전부 죽여버릴 거야. 신분증도 빼앗고 손가락도 잘라버릴 거야. 너희 부모는 평생 너희 못 찾아.”
그 말을 듣고 토할 것 같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데스크 직원들은 황급히 주방으로 뛰어들어갔지만, 내 친구는 허세라고 맞받아치기로 했다. 친구는 그 남자에게 돈도 없는 찌질한 새끼, 등신, 멍청이 같은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쾅**
그는 친구의 머리를 코코넛처럼 움켜쥐고 내가 서 있는 곳에서 겨우 한 피트쯤 떨어진 데스크에 내려쳤다. 친구가 고집불통이라는 건 정말 머리가 단단하다는 뜻이기도 했나 보다. 친구는 바로 몸을 일으키더니 다른 여자들이 있는 주방으로 뛰어갔다. 나도 따라가서 친구의 얼굴에 얼음을 대주었다.
“경찰 불러야 하지 않을까?” 내가 물었다.
“아니, 저러다 포기하고 가겠지.” 친구가 자신 있게 대답한다.
어찌 된 일인지 친구 말은 거의 맞았다. 말다툼할 상대도 없고 여자들이 전부 사방으로 달아나버리자, 남자들은 그냥 노래방 안에 있던 자기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는 빠져나갈 틈을 보고 냅다 달아났다.
말할 것도 없이 집에 가는 내내 울었고, 집에 가서도 더 울었다. 한 블록쯤 걸으며 엉엉 울고 있는데 마이클이라는 정말 다정한 택시 기사가 나를 태워 아파트까지 데려다주었다. 이름을 듣고 대천사를 떠올렸던 게 기억난다. 그는 할 수 있는 한 나를 달래주었고, 돈도 받지 않았다. 나는 종종 그를 떠올린다. 감사 인사를 전하려고 택시 회사에 연락까지 했다.
다음 날 익명 제보 서비스에 연락해봤다. 여기 캐나다에서는 크라임스토퍼스라고 한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적대적이었다. “거기 왜 있었죠?” “본인은 연루되지 않은 게 확실해요?” “불법적인 일을 하고 있었나요?” 그래서 그냥 포기했다. 익명 제보 서비스에서조차 이런 취급을 받는다면 굳이 “진짜” 경찰을 상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끝냈다.
시우보, 엿 먹어. 그놈들도 전부 엿 먹어. 저 괴물들이 아직도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는 건 하느님만이 아실 테니, 그날 노래방에 있던 모두에게 말한다. 다시는 만나지 말자.
게시자 /u/sgeulach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