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누군가 아기용품 잡지를 이용해 공원에서 나와 친구를 납치하려 했다
어느 날 나와 친구는 수업 도중 일찍 나왔고, 친구는 같이 시간을 보낼 만한 곳을 안다며 나를 데려갔다. 아마 2011-2012년 무렵이었을 텐데(우리는 12살 정도였지만 그보다 더 어려 보였다), 허락받은 범위보다 조금 더 멀리 나가는 게 멋지게 느껴졌다.
우리는 아주 번잡한 도시에 살았기 때문에 가까운 곳에만 있고 혼자 아무 데로나 돌아다니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우리 동네에는 걸어서 거의 20분 거리에 공원이 있었는데, 차가 많이 다니는 도로 근처이자 장난감과 가전제품을 파는 대형 매장(우리나라에서는 유명한 브랜드였다) 옆이라 아이들이 많이 놀고 가족들이 오가는 곳이었다.
공원에 도착해 벤치에 앉자 거의 곧바로 어떤 여자가 다가와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조금 이상해 보이는 사람이었는데, 옷차림과 전반적인 태도가 좀 어린애 같았지만 우리 눈에는 분명 어른이었다(젊은 성인이었을 수도 있다?). 여자가 말을 걸어 왔고, 우리는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친절하게 대하려고 했다. 이름과 전화번호를 묻기에 가짜로 알려 줬다. 안전을 위해 낡은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녔지만, 다행히 부모님이 낯선 사람을 조심하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가르쳐 주셨다.
우리가 최대한 모호하게 대답하며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여자는 벤치에 앉은 누군가를 돌아보고는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 남자는 거의 만화 속 인물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차려입고, 가죽 코트 같은 것을 걸치고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으며(햇볕이 쨍쨍하고 더운 날이었는데도), 담배를 피웠다. 우리는 그 남자가 너무 섬뜩했고, 친구는 슬슬 자리를 뜨자고 했다. 나는 어쩐지 그 여자가 안쓰러워서, 외로워 보이니 조금만 더 머물면서 말동무를 해 주자고 친구에게 말했지만 상황은 더 섬뜩해졌다.
여자는 젖병, 아기 옷, 아기 침대 같은 아기용품으로 가득한 잡지를 들고 돌아와 마음에 드는 게 있는지, 자기가 사다 줄까 하고 물었다. 또 물건을 고르는 걸 도와 달라는 등의 말을 하며 몇몇 물건을 우리에게 설명해 줬다. 그 잡지는 근처 매장과는 관계도 없었고 다른 곳에 있는 매장의 것이었다. 우리는 그런 물건을 쓸 나이와는 한참 거리가 멀었고, 그 대화에서 더는 말이 되는 게 하나도 없었기에 상황이 점점 이상해지고 있다는 게 분명했다.
그래서 우리는 정중하게 거절한 다음, 점심을 먹으러 집에 가야 한다며 나중에 다시 나오겠다고 말했다. 끝까지 아주 친근하게 대하려고 신경 쓰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자는 그 남자에게 돌아갔고, 남자는 다른 벤치에서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우리 쪽을 빤히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화가 난 것 같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지만, 눈도 보이지 않았는데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남자가 거짓말을 알아채고 따라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시야에서 벗어날 때까지 천천히 걷다가 달리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그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온전히 실감하지 못했던 것 같지만 몇 년 뒤에야 조금 와닿았고, 최근에 그때 그 친구와 이 일을 이야기하게 되어 여기에 글을 올리기로 했다.
돌이켜 보면 그 여자는 상태가 꽤 안 좋아 보였고, 그 여자도 피해자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남자가 처음 여자를 불렀을 때, 여자는 우리의 이름과 전화번호(가짜)를 적은 쪽지를 남자에게 건넸고 남자는 여자에게 잡지를 줬으니, 남자가 여자에게 뭘 할지 지시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여자가 무사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것저것 찾아보기도 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고,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다른 누군가에게 말해도 되는지, 말해야 하는지도 전혀 모르겠다. 부모님께 말씀드리긴 했어도 대충 말씀드렸던 것 같기도 하다? 나라면 분명 전부 말씀드렸을 텐데 기억이 선명하지 않다. 부모님께 다시 여쭤보고 뭔가 알게 되면 내용을 추가할 수도 있다. 또 그 무렵이 국제적으로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래 우리나라에서 납치와 인신매매 사건이 가장 많이 발생했던 시기였다는 것도 알고 있는데,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검은 옷을 입었던 소름 끼치는 남자야, 지금쯤 감옥에서든 땅속에서든 썩고 있길 바라며, 다시는 만나지 말자.
작성자 /u/cc-8-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