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딩거의 고양이 바꿔치기
주방 수납공간을 늘리려고 산, 양쪽으로 문이 열리는 키 큰 바퀴 달린 식료품 수납장이 있다. 안쪽 선반에는 칸마다 물건이 놓여 있지만, 맨 아래 칸만은 비어 있다. 우리 집에는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어린 고양이 두 마리가 있다. 검은 턱시도 고양이 오리온과 그 녀석의 누이인 삼색 고양이 네뷸라다.
오리온은 수납장 문을 아무리 잠깐만 열어도 안으로 몰래 들어가 맨 아래 선반에 올라가는 버릇이 있다. 어느 날은 녀석이 안에서 몇 시간이나 보냈을 무렵, 아들의 친구가 집에 왔다가 수납장 안에서 오리온이 작게 야옹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둘 중 오리온이 더 조용한 편이다.)
그래서 수납장에서 물병을 꺼내다가 녀석이 또 슬쩍 들어가는 걸 보고는 이대로 둬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녀석이 들어가는 걸 보지 못했다면, 얼마나 오랫동안 거기 갇혀 있었을지 모른다.
나는 일하는 시간이 길고, 다른 식구들도 하루 중 대부분은 집을 비운다. 누군가 알아차릴 때까지 녀석이 아홉 시간, 열 시간 넘게 거기 갇혀 있을 수도 있었다. 최악의 상황이 걱정돼, 안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가르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길어야 오 분만.’
그래서 녀석의 작은 검은 몸이 맨 아래 선반으로 소리 없이 올라가는 순간 수납장 문을 닫고 내 침실로 돌아갔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생각났다. ‘아차, 물병을 조리대에 두고 왔네!’
주방으로 돌아가다가 복도에 서 있는 삼색 고양이 네뷸라를 보았다. 네뷸라도 나를 따라 침실 쪽으로 오다가, 내가 갑자기 다시 튀어나와 주방으로 향하는 걸 보고 걸음을 멈춘 듯했다.
주방에 도착하자 수납장 안에서 작은 야옹 소리가 들렸다. 분명 오리온의 울음소리와 똑같았다. 하지만 녀석을 들여보내고 문을 닫은 지 몇 초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조금 더 두어야 했다. 그래서 물병을 집어 들고 방으로 돌아갔다.
방에 도착해서 땅콩버터와 잼을 바른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내 방에는 작은 냉장고와 따로 쟁여 둔 간식이 있다. 몇 분 뒤 샌드위치를 들고 편히 앉으려던 참에 생각났다. ‘아차, 오리온이 아직 수납장 안에 있잖아!’
나는 또다시 방을 뛰쳐나와 주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수납장에 가까이 다가가자 안에서 네뷸라의 커다란 야옹 소리가 들렸다. 주방으로 들어서며 수납장 문의 골이 진 아크릴 ‘유리’ 너머를 보았는데, ‘유리’의 흐릿한 무늬를 통해 작고 하얀 발이 달린 오리온의 검은 형체가 분명히 보였다. 녀석은 편안한 자세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안에서 네뷸라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린 그 찰나에 오리온이 자리를 잡으려고 움직이면서 그 뒤로 네뷸라의 털무늬가 조금 보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안에 있던 건 분명 오리온이었다. 네뷸라는 조금 전까지 복도에 있었다.
그런데 수납장 문을 열자 네뷸라가 걸어 나왔다.
게다가 오리온은 아예 그 안에 없었다.
우리는 가끔 오리온이 작고 말쑥한 턱시도를 차려입은 마술사라서 귀여운 조수 네뷸라와 자리를 바꾸는 거라고 농담하곤 한다.
게시자 /u/LocationEfficient111